프랑스어의 실종 을유세계문학전집 95
아시아 제바르 지음, 장진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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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야 할 필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고, 더 이상 그를 잊을 수 없을 때 그가 당신의 글을 읽도록 하기 위해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p.162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벽이 있고, 벽의 높이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것이다. 만약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의 높이는 얼마쯤 될까?

그리고 내 안에 두가지 언어가 공존한다면 내 마음의 벽의 높이는 얼마쯤 될까? 나는 누구일까?


<프랑스어의 실종>은 프랑스가 식민지배를 하던 시기의 알제리를 배경으로, 모국어인 아랍어와 식민지 언어인 프랑스어를  쓰는 남자 ˝베르칸˝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20여년간 산 ˝베르칸˝은, 프랑스 여배우인 연인 ˝마리즈˝와 헤어지고 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국 알제리로 돌아온다. 알제 근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한 그는 너무나 사랑했던 ˝마리즈˝에게 편지를 쓰지만 끝내 보내지 못한다.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물론 당신이 그립기 때문이지만, 또한 마음속에서 뜻밖의 불안이 감지되기 때문이기도 하오. 당신과의 말없는 대화가 끝난 후 그 불안이 감소되기를, 그저 나 자신을 다시 찾게 되기를 바랄 뿐이오.]  p.24


그들이 헤어진 이유는 언어 때문이었다. ˝베르칸˝은 어떻게든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그는 이러한 감정을 모국어로 밖에는 제대로 표현 할 수 없었고, 프랑스인인 그녀는 그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베르칸˝을 사랑하지만 그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베르칸˝은 고향에서 글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감정의 혼란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어린시절을 보낸 지역을 방문해서 기억을 회상한다. 그리고 같은 알제리인인 ˝나지아˝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그녀와 지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며, 그녀를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프랑스인 연인 ˝마리즈˝에게 쓴 편지를 찢어 버린다.

[그대를 향해 펼쳐지는 내 글은 내 피부, 내 근육, 내 목소리가 된다. 그대가 내 창문 아래서 파도 소리를 들었듯이, 그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나의 프랑스어는 변화하고 있다. 그대는 그 파도소리를 기억하는가?]  p.155


그는 ˝나지아˝와의 만남과 이별을 계기로 자신을 위해, 그리고 ‘프랑스‘에 식민지배를 당한 조국 ‘알제리‘를 위해 식민지배의 악랄함과 폐혜를 보여주는 글을 쓴다. 글의 제목은 <청소년>. 내용은 알제리의 독립전쟁 전후의 청소년기에 그가 겪은 경험담이다. 프랑스 국기 대신 알제리 국기를 그렸던 사건, 극단주의자에 의한 외삼촌의 죽음, 수용소에서의 고문과 비참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내 짝은 이미 국기를 그리고 있었네.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국기를. 그 아이를 따라서 그리던 나는 그에게서 색연필을 빌렸어. 그 아이와 나는 마음이 잘통했거든. 하지만 나는 즉시 이렇게 생각했다네. 난 파란색은 필요 없어! 그들 국기는 파란색이지만, 우리 국기는 초록색이니까.]  p.45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르칸˝이  <청소년>이란 글을  쓰고 난 후 실종된다. 그를 찾기 위해 프랑스 연인인 ˝마리즈˝는 알제리로 오게 되고, 그의 마지막 연인인 ˝나지아˝가 그에게 보낸 편지는 ˝베르칸˝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베르칸˝은 어디로 간 걸까? 납치된 걸까? 떠난 걸까?


책의 구성 자체가 독특하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연결이 되어 있으나 동일한 사건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베르타˝의 이야기, ˝베르타와 나지아˝의 만남, ˝베르타˝가 쓴 작품 <청소년>, ˝마리아˝ 이야기, ˝나지아˝ 이야기 등  챕터별로 이야기가 구분되어 있으며 시점도 다르다.

그럼에도 책의 일관성, ˝프랑스어의 실종과 모국어로의 복귀, 이후 정체성의 회복˝이라는 하나의 흐름이 아주 멋지게 그려져 있다. 익숙하지 않은 ‘알제리‘라는 나라의 배경과 아랍어의 등장에 따라 초반에는 다소 적응이 어려웠으나, 책을 읽어 나갈수록 완벽한 구성과 아름다운 문장에 감탄했다.
(폴스타프님이 이 책을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언어에는 그 나라의, 그 민족의,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의 작가인 ˝아시아 제바르˝는 이러한 언어를 소재로 식민지배에 대한 잔혹함을 비판하고 미래의 통합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100% 이해할 수 없고, 이에 따라 가끔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상대방과의 벽 높이를 낮추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야 같이 갈 수 있으니까.



ps. 이 책을 읽고나서 윤상의 <벽> 이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한국어-프랑스어로 서로 주고 받는 가사가 정말 좋고, 이 책의 내용과 완전 딱 맞는 노래다.  

https://youtu.be/DLIHuEEPT3o

ELQUES RIMES POUR VOUS DIRE
JE VIUS AIME SANS DILEMNE
미안해 모르겠어 무슨 말을 하는지
DES MOTS TENDRES A ENTENDRE
DES MOTS DOUX JUSTE POUR VOUS
몇번을 되물어도 마찬가진걸

어쩌면 우린 이토록 비슷한게 하나 없을까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왔는데
조금씩 닮아가는건 너무 커다란 기대인지
난 어느덧 지쳐가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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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7 21: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새파랑 2021-07-27 21:16   좋아요 5 | URL
🎉 오늘은 저도 1등을 목표로 😊

scott 2021-07-28 01:13   좋아요 2 | URL
우와 ! 이 작품 영화 같습니다
알제리 식민지 시절에 그곳에 살았던 알베르 카뮈가 남긴 글들에는 알제리에 살아가는 가난한 프랑스 백인의 모습을 그렸는데
이작품은 식민지 언어를 써야 하는 이의 정체성 사랑 고통이 담겨 있네요

이제 새파랑님 러시아 작품 뿐 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문학 작품에서도 애정이 느껴집니다 ^ㅅ^

새파랑 2021-07-28 06:48   좋아요 2 | URL
그러고 보니 이방인과 정 반대의 느낌이 나네요. 거기서는 아랍인에게 괴롭힘(?) 당하던데 🤔 다 상대적인 걸까요? ㅋ

파이버 2021-07-27 21: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등!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제대로 된 사랑을 전할 수 있을지 잠깐 생각해보았는데 역시 어렵겠네요... 더해서 왠만하면 연인에게 듣는 사랑고백도 (나의)모국어로 듣고 싶다면 너무 이기적인걸까요… 언어와 정체성은 정말 뗄레야 뗄 수 없나봅니다

새파랑 2021-07-27 21:22   좋아요 6 | URL
파이버님 감사합니다🌷🌷 이 책은 초반에는 언어를 소제로 한 사랑을 다루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언어를 통한 정체성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너무 좋았어요.완전 감탄!! 알제리의 독립전쟁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읽었으면 더 좋았을거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사랑 고백은 모국어든 아니든 다 좋지 않을까요? 😊

파이버 2021-07-27 21:27   좋아요 6 | URL
사라진 ‘베르칸‘이 어떻게 되었는지 새파랑님께서 너무 궁금하게 끊으셨어요ㅎㅎ
기왕이면 주인공이 사랑도 정체성도 모두 찾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네요
(,,•﹏•,,)

새파랑 2021-07-27 21:36   좋아요 6 | URL
궁금함이 생기셨다니 왠지 뿌듯하네요 😊 그런데 스포 방지를 위해 결론은...비밀로...

그런데 해피엔딩은 아닌것 같아요 😓

scott 2021-07-28 01:14   좋아요 3 | URL
사라진 베르칸 운명은
8월 장바구니 털고 나서 알게 될 것 같은

일단 땡튜 주머니 속에 주섬~@주섬~@

새파랑 2021-07-28 06:51   좋아요 3 | URL
음.. 제가 결말 부분을 뭔가 있을것 처럼 썼나봐요. 사실 큰 반전은 없습니다 😐 그런데 정말 좋아요. 추천 드려요 ~!!

미미 2021-07-27 21: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오 새파랑님 벌써 클리어 하셨군요!👍ㅋㅋㅋ저는 아직 초반. 학교가서 아버지에게 호되게 뺨맞은 부분 읽었어요~😳아랍쪽은 너무 몰라서 더 매력적이기도 하네요.실눈뜨고 봤어요ㅋㅋ저도 윤상 벽 좋아함요~오늘 노래 올릴것 있었는데 글을 못썼기에 내일 기약을~ 😎

새파랑 2021-07-27 21:42   좋아요 5 | URL
이 책 등장인물이랑 분위기에 적응하니까 완전 푹 빠져서 읽었어요. 그래서 밑줄도 별로 못그었어요 😑
전 이책 너무 좋았어요. 실눈뜨고 읽기 잘하셨습니다. 저도 윤상 완전 좋아요 😄

Falstaff 2021-07-27 21: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바르의 <사랑, 판타지아>도 절창입니다만, 아쉽게 품절입니다. 혹시 헌책 발견하시면 무조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 대단했어요! @.@

새파랑 2021-07-27 22:00   좋아요 5 | URL
아 우주점 중고 있나 검색해보니 없네요 ㅜㅜ 과연 발견할 수 있을것인지 🤔

페넬로페 2021-07-27 22:26   좋아요 5 | URL
‘사랑, 판타지아‘가 마침 도서관에 있네요. 찜 해놓겠습니다^^

새파랑 2021-07-27 22:5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이 저 대신 읽어 주고 알려주세요 ^^

붕붕툐툐 2021-07-27 22: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야~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군요~ 벌써 클리어라니, 새파랑님의 읽는 속도는 정말 👍👍

새파랑 2021-07-27 22:53   좋아요 4 | URL
저 그렇게 빠르지 않습니다 ㅡㅡ 잃시찾 읽으면 1권 읽는데 3일 걸리는듯 🤔

붕붕툐툐 2021-07-28 00:32   좋아요 4 | URL
일시찾이 1권 당 3일이요? 와~ 제 1/10이시네요? 전 30일은 족히 걸릴 듯! 딱 맞네~ 제 10배 속도 딱 맞으신 듯!👍👍

scott 2021-07-28 01:15   좋아요 4 | URL
툐툐님 우리 페이지 한장 넘길때 새파랑님은 한 묶음(10페이지) ㅎㅎ

새파랑 2021-07-28 06:46   좋아요 3 | URL
30일이라니 🤔 전 한 책만 파서 그런겁니다 ㅋ저는 어려운 책을 잘 못읽어요 😔 스콧님은 저보다 8배는 빨리 읽으신거 다 압니다 😏

페넬로페 2021-07-27 22: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는게 어찌 의사전달의 수단만 되겠습니까!
그 언어에 나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봐야 하겠지요. 분위기도 좋고 왠지 애절할것만 같은 이야기인것 같아 흥미로워요^^

새파랑 2021-07-27 22:55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책인거 같아요. 특히 이국적인 분위기가 묘하게 좋더라구요. 언에에 대한 페넬로페님의 생각에 완전 공감합니다 😊

그레이스 2021-07-27 22: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노래가 있었네요
앨범은 클리셰?
알제리, 식민지배, 수용소, 고문, 프랑스어의 실종...
어떤 이야기일지 생각해 봅니다.
책상위에 놓여있는 책만 쳐다보고.^^

새파랑 2021-07-27 22:57   좋아요 3 | URL
이 노래 클리셰에도 있는데 원래 Renacimiento 앨범에 있던 노래 입니다 ^^ 클리셰 앨범은 완전 좋아요 ㅋ 이 책은 더 좋은 거 같아요 👍

그레이스 2021-07-27 23:05   좋아요 4 | URL
레나시미엔또.
르네상스.^^

새파랑 2021-07-27 23:16   좋아요 4 | URL
아 ㅋ 이게 르네상스의 프랑스 단어인가 보네요 🙄 전 그냥 노래만 들었어요 😆

희선 2021-07-28 0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제리는 아랍어를 쓰는군요 카뮈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본래 알제리 사람인데 프랑스로 가고 프랑스말로 글을 쓰지 않았는지... 그런 사람은 많을 것 같네요 디아스포라... 일제강점기 때 조선도 생각나요

같은 말을 써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네요 말이 달라서 헤어진 거 정말일지... 그것보다 다른 것 때문은 아닐지 싶기도 합니다 서로 다른 말을 쓴다는 건 작은 거였을지도, 다시 생각하니 그렇게 작은 건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새파랑 2021-07-28 06:43   좋아요 4 | URL
이 책에도 카뮈에 대한 언급이 잠깐 나오더라구요. 사람에게 있어서 언어란 중요한 의미인거 같아요. 다른 언어는 아무래도 공감에 제한이 있겠죠? 주인공이 프랑스연인과 헤어진것도 언어 때문만은 아니긴 할겁니다.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는 않아서 저도 분위기로 추정한거예요. 희선님 완전 예리하심 👍

mini74 2021-07-28 14: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언어가 안 통해서 정신병동에 수감되는 이야기가 생각나요.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었기고 하고요. 벽높이를 낮추는 노력 !! 먼저 남편하고 해야할 듯합니다 ㅎㅎㅎ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요 *^^*

새파랑 2021-07-28 14:11   좋아요 2 | URL
남녀사이나 가족에게도 어느 정도 벽은 있겠죠? ㅋ 다가가려는 노력이 중요한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