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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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오랜만에 정말 흥미로운 ‘작법서’를 읽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앞선 한줄평에서 언급했듯이 그에 대한 근거들을 인지심리학 그리고 뇌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찾아와 제시하기 때문에 훨씬 더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잘 쓰느냐에 앞서서 먼저 다루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이야기를 왜 써야 하는가’이다. 저자는 이를 하버드대의 저명한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거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허구적 서사는 언젠가 우리가 맞닥뜨릴 수도 있는 운명적 난관들에 대한 일종의 정신적 카탈로그를 제공해주며, 그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결정의 결과도 알려준다.

23p

즉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아주 극적이고 강렬하고 위험할 수 있는 경험을 실제로 겪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차원에서 추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일종의 미래를 대비하는 ‘최종 리허설’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이야기란 대체 무엇일까에 대해 논의해보자. 저자는 몇 가지의 일상 용어들을 통해 개념을 제시한다.

이야기란,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나중에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는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25p

위에서 쓰인 일상 언어들을 ‘문학 용어’로 치환해보면, 목표한 ‘독자가 품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고 누군가는 ‘주인공’, 일어나는 일은 ‘플롯’,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는가는 ‘실제 이야기(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어느 정도 ‘이야기’란 녀석에 대해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답을 풀어볼까. 물론 이에 대한 답은 이 책의 목차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핵심에 집중하기’, ‘감정 전달하기’, ‘주인공의 목표 만들기’, ‘세계관 뒤틀기’, ‘구체적으로 쓰기’, ‘변화와 갈등 만들기’, ‘인과관계의 중요성’, ‘시험 들기와 상처 입히기’, ‘복선에서 결과까지’, ‘서브 플롯의 비밀’, ‘작가의 머릿속 들여다보기’ 등등… 이를 이곳에 전부 요약하여 설명할 순 없으므로 이 글에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만을 설명토록 하겠다.

신경과학자 조나 레러의 말을 빌리면 놀라움보다 우리 마음을 더 잡아끄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가장 원하는 것은 뭔가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듯한 느낌이다.

27p

그렇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이야기의 법칙, 그건 바로 ‘놀라움’이다. 우리의 신경은 무수히 많은 자극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 중 특정한 일부만을 선별하여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 많은 자극 중 하나로 간택(?)되기 위해서는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게 하는 ‘놀라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우리 안의 호기심이 작동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이야기를 계속 읽어나가게 된다고 하니, 이 점을 참고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끌리는 이야기’를 직접 쓸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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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는 아이들
범유진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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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러블 #앤드러블4기

최근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그만둔다는 (나름) 큰 결심을 하였다. 공무원 시험 공부를 계속하는 게 단지 힘들어서 포기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매우 힘들긴 했다.) 공부를 그만두는 이유는 공무원이 아닌,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아주 크고 선명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말 무수히 많고 깊은 고민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준비하고 공부했던 걸 뒤로하고 새롭게 도전을 하려는 데에는 분명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줄 사람은 아무래도 부모님이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께 이 고민을 토로했다. (나는 부모님과 꽤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특히 엄마랑은 거의 베스트프렌드 수준이다…) 그렇지만 엄마와 아빠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셨다.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해라, 아빠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마저 해라. 아빠의 생각은 노후까지 보장된 공무원을 마다할 이유가 없고, 지금까지 공부한 거에서 조금만 더하면 분명히 합격할텐데 이를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원체 내가 공무원 준비하는 것을 좋아라 하셨던 아빠였기에, 아빠의 그런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때, 엄마의 말 한마디가 그 대화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엄마는 평생을 하고 싶은 게 없었다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이끌리며 살아온 터라 그게 몹시도 후회된다고, 그래서 아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게 엄마는 너무 부럽고 자랑스럽다고, 아직 이십대 중반인데 하고 싶은 걸 도전하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거냐며, 약간 울먹이면서까지 이렇게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셨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시금 코 끝이 찡…😢) 아빠 또한 엄마의 그 말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셨던지 아무 말도 못하셨다. (물론 나중에 둘이서 밥먹을 때 공무원을 한번 더 해보라는 권유를 하긴 하셨지만… 이미 복학 신청을 해놓은 후라서 그 말을 들을 순 없었다☺️)

이런 나의 내밀한 사정을 이 글에 적은 이유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너무도 필요한 위로와 조언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범유진 작가님의 작품 [런웨이, RUN, WAY]에는 주변의 단짝 친구들과는 달리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모르는 주인공 ‘유하’가 등장하고, 이와 달리 이선주 작가님의 작품 [실패하겠다는 말]에는 하고 싶은 게 너무도 뚜렷하여 부모님의 반대와 부딪히는 주인공 ‘아름’이 등장한다. [런웨이, RUN, WAY]를 보면서는 유하가 결국 자신의 장래 희망을 멋지게 찾아내서 꿈을 이룩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데 그게 어쩐지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는 것 같아 조금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반면 [실패하겠다는 말]을 읽으면서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얻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문장 자체를 옮겨 적으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혹시 나같은 고민을 품은 사람들, 특히 나의 동년배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필요하잖아. 근데 그보다 더 필요한 게 뭔지 알아?”

엄마와 꿈에 관해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패를 받아들일 용기.”

76~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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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서보경 지음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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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가 쓴 우리나라의 HIV에 대한 책이라길래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다. HIV에 대한 의학적인 지식보다는 그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그로 인해 (의학적이든 사회적이든)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며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라는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역시나 이 책에는 그 기대에 부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저자는 역사 깊이 뿌리내린 낙인, 혐오, 잘못된 편견 등으로 인해 정치 사회적으로 ‘휘말리는’ 고통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쓰셨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HIV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고, HIV에 감염된 사람들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풀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HIV에 대한 혐오적인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는지 그 역사를 톺아보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는 사실들을 짚으며 우리가 앞으로 가져야할 인식의 변화를 촉구한다.

‘보균자’ 발견 중심의 정책은 에이즈를 질병과 치료의 문제가 아니라 검거와 발각이라는 범죄의 언어를 통해 말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127p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볼까. 과거 우리나라의 HIV 대응 방식은 ‘강제 검진 제도’와 ‘일방적 통보 방식’이었고, 이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낭비가 발생하였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그렇게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들의 사회적인 ‘추락’을 야기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부터 HIV를 둘러싼 온갖 억측과 집단적 공황이 배양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흔하게들 알고 있던 HIV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한번 짚어보자. 혹시 우리들 중 HIV와 에이즈를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HIV와 에이즈를 구분조차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HIV’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며 걸리는 무수히 많은 질병 중 하나가 바로 ‘에이즈’인 것이다.

또 한가지 꼭 일러두고 싶은 점이 있는데, 바로 HIV에 걸렸다고 해서 무조건 에이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는 HIV에 감염된다 하더라도 항바이러스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에는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발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HIV의 만성질환화라고 부른다. 이 말인 즉슨, HIV 감염이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전파가 되지 않는 것이 밝혀졌고, 지속적인 약물 치료를 통해 관리가 가능하게된 점이 똑같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의학의 발전이 아닌 사람들의 ‘인식 변화’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이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평소에 관심 있게 보던 주제였다거나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느끼는 주제는 아니였던지라 가독성 좋게 술술 넘어가는 그런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고, 의미있다. 살면서 한번쯤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HIV는 내 삶과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고혈압과 당뇨처럼 HIV 바이러스가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우리는 그저 앞줄에서 먼저 바이러스를 만난 것 뿐입니다. 그래서 뒷줄에 서 계신 당신들께 알려드립니다.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느끼는 것들을 말이지요.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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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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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는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보통 소설에서는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서사 및 사건이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어 이야기가 전개되는 반면, <로드>는 그렇지 않다. 종말이 도래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부자(父子)의 모습만 비칠 뿐, 왜 종말이 찾아왔는지 그 이유에 대한 서술이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으며 주인공들이 극 중에서 겪는 사건들도 그저 에피소드 형식으로 짧게만 나올 뿐 극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전무후무하다.

그렇기에 <로드>는 일반적인 소설같은 서사를 기대하고 읽는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수도, 지루하게 할 수도 있다. 맞다, 그 사람은 바로 나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두 번째 시도 만에 완독에 성공하였고 첫 번째 시도에선 처참한 ‘중도 하차’라는 결과를 맞이했었다. 그렇지만 처음 독서 때 이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으므로 두 번째 시도 때는 ‘<로드>는 기존 소설들과는 다른 작품이다’라는 인상을 안고 시작해서 그런지 완독에 성공할 수 있었고, 더불어 첫 시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간 고속도로 나들목의 길게 휘어져나가는 콘크리트 길들이 멀리 암흑을 배경으로 거대한 도깨비 집의 폐허처럼 보였다. (…) 사방이 미라가 된 시체 천지였다. 뼈가 불거진 곳을 따라 살이 찢어져 있었다. 인대는 철사처럼 팽팽하게 말라붙었다. 토탄 늪에서 발굴된 사람들처럼 쭈그러들고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은 삶은 시트 같았고, 이는 누렇게 변색되었다.

30p

밤에 머리 위의 산에서 폭풍이 불기 시작해 우지끈 쿵쿵 소리를 내며 아래쪽을 폭격했다. 수의처럼 덮쳐오는 번개 불빛에 황량한 잿빛 세상이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57p

내가 <로드>라는 소설에서 느낀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문장’이다. 책의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나오는 배경에 대한 황량한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진정한 ‘디스토피아의 묘사’란 바로 이 소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는 동안 내가 직접 황폐한 세계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정말 폐허가 된 세계의 묘사가 탁월하다.

있지도 않았던 세계나 오지도 않을 세계의 꿈을 꾸어서 네가 다시 행복해진다면 그건 네가 포기했다는 뜻이야. 이해하겠니? 하지만 넌 포기할 수 없어.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거야.

215~216p

그리고 또하나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너무도 가슴 아프게 따뜻하다. 불필요한 서사를 접어둔 채로 극을 진행하여 역으로 이들의 관계가 돋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황량한 디스토피아의 배경과 이들의 사랑이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일까? 뭐가 됐든 독자의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 작품을 읽은 뒤 다른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이 궁금해져서 검색을 조금 해보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로드>는 다른 매카시의 작품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하루키의 소설들 중 <노르웨이의 숲> 같은 느낌이랄까?) 만약 매카시의 모든 작품들이 <로드>와 같은 느낌이었다면, 나는 <로드>를 끝으로 그의 소설을 더 찾아서 읽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로드>가 선사하는 묘사와 분위기는 정말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서사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소설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사리 추천하기도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매카시의 다른 소설들은 <로드>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기대를 품고 또 한번 찾아서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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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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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소설을 다 읽자마자 중고 서점에 팔아 치워버렸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불편한 소재를 가지고 전개되며 소설 속 인물들의 행동들 또한 독자(인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까지 전부 읽는 순간, 그 감상은 180도 뒤집힌다. 거대한 규모로 휘몰아치는 여운이 그대로 나를 덮쳐 잠식해버린다. 일순간 멍해지며 홀린듯이 책의 첫번째 페이지를 다시 펴 첫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는다. 이런, 이렇게 또 한번 새로운 소설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실제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벌어진 일(실화)들이다. 이 시설에서는 수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은폐, 감금 및 강제 노역을 당했는데, 이를 당시 가톨릭 교회가 정부와 함께 지원하고 운영해왔다고 한다.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이 시설에서 무슨 짓이 벌어지더라도 이들은 그저 묵살할 뿐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실제 이 역사에 남을 사건을 전면에 내세운다. 거기에 ‘펄롱’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독자들이 이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겪을 만한 충격과 고심을 ‘펄롱’이 대신하게 한다.

그렇다면 나는 ‘펄롱’의 주저하는 심리에 불편함을 느낀 것인가. 뭐, 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할 만한 고민들이 너무도 비슷하여 그 부분에서 불편함이 느껴진달까. 다만 그보다도 가장 불쾌한 것은 세탁소의 사정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 모두’의 모습이다. 이들은 수녀원의 비밀을 알면서도 쉬쉬한다. 이러한 수녀원의 부정을 완전히 앞세우는 행동은 그야말로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므로 그런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게 피해가 갈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묵인’을 택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납득’이 된다는 점이 가장 불쾌했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었으면 나 또한 그랬을까봐, 나도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일까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펄롱’이 선택한 결심은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짜릿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글쎄, 이렇게 글을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애초에 지금 이 글을 올리는 시점이 ‘뒷북’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다들 이 책을 읽었을 거라 생각하여 죄책감을 덜고 이 글을 올린다. 덧붙여 앞선 첫 문단에서 ‘첫문장을 다시 읽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얼어붙는다’고 말한 배경에는 옮긴이의 말에 그 전후 사정이 담겨 있으므로 내가 이를 설명하기 보다는 책에서 직접 읽어보기를 바란다. 클레어 키건… 이 작가 천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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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1-29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듯해요. 지금도 별반 다른지 않은 것 같아요. 범죄혐의가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직언하지 못하고 내 밥그릇만 챙기려는 엉터리 정치인들이 대표적인 케이스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