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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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땅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친밀하다.(431)


 

광화문 교보문고 남쪽 카운터 앞에는 조각가 양화선의 작품 <山水紀行-물의 나무>가 전시되어 있다. 수없이 그 앞을 오갔음에도 거기 그 브론즈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버드나무 탐색 이미지가 형성되고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紀行은 작가가 연 전시회(2017) 주제였으니 그때 함께 전시되었던 모든 작품에 이 말이 붙었겠지만 물의 나무인 버드나무와는 더욱 각별한 의미 결합을 이루고 있다. 높이 차로 구별했으되 활짝 펼쳐진 책 형상이라는 점에서 물과 땅은 동일하다. ‘나무를 사랑해 나무가 된 물이라는 별명을 지닌 버드나무는 물과 땅 모두에 몸을 풀고 있다. 버드나무는 물과 땅을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친밀하게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사는 생명이다. 버드나무는 물과 땅이 얼마나 친밀한지 단도직입 증언함으로써 다만 땅에 뿌리내린 듯 보이는 다른 낭/풀들도 땅 품은 물과 닿으려는 소망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진실에 가 닿게 한다.

 

물과 땅이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친밀하다는 지식은 그러고 보면 낭/풀이 건넨 위대한 선물이다. 버드나무를 선구자 삼은 모든 낭/풀이 땅을 푸르게 뒤덮어 물과 더불어 지구를 푸른 별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극동아시아 사람들이 숲도 푸르다고 하고 바다도 푸르다고 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다시 만날 그 버드나무가 하늘하늘 춤추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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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8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혹시나 하는 설렘으로 제목타고 들어왔는데 다시 반가운 ‘버드나무‘ 만나게 되네요^^ 저도 bari-che님 글 읽은 후엔 산책 나가서 보이는 버드나무를 달리 보게 됩니다^^

bari_che 2021-08-19 09:26   좋아요 0 | URL
삶의 확장이 일어나고 있군요. 고맙습니다~^^
 
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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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숲은 아름다움 뿐 아니라 정교한 기능면에서도 놀랍다. 지원이 희소해지면 무차별적 성장이나 자원 낭비 같은 광란이 있을 수 없다. 숲 구조 자체의 녹색 건축은 효율성의 본보기로, 태양에너지 포획을 최적화하는 여러 겹의 숲 지붕 속에 잎들이 층을 이룬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 본보기를 찾고 싶다면 묵은 숲을 보면 된다. 묵은 숲과 공생함으로써 생겨난 묵은 문화도 좋은 모델이다.(417)

 

묵은 문화는 묵은 숲과 마찬가지로 아직 절멸하지 않았다. 땅에는 과거 기억과 재생 가능성이 깃들어 있다. 이는 단지 민족성이나 역사 문제가 아니라 땅과 사람 사이 호혜에서 비롯한 관계 문제다.(426)

 

 

낡지 않고 늙을 수 있는 장소에 대해 자네는 얼마나 알고 있나? 낡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워지는 곳, 몸이라는 장소에 관하여.”

 

김선우 제6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창비, 2021)에 실린 <몸이라 불리는 장소에 관하여> 마지막 두 문장이다. 늙되 낡지 않고 새로워지는 몸은 숲이 그 기원이다. 숲 본성을 핍진히 좇아갈수록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미 실재를 더욱 충실히 구현할 수 있다.

 

공동체로 보지 않는다면 자급자족이라는 말은 이치상 인간 몸에게 당치않다. 인간사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기 몸을 공동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더군다나 식물 심지어 미생물과 공동체를 이룬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다.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으로 돌아가려면 묵은 숲, 그러니까 늙되 낡지 않고 새로워지는 숲의 본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숲 본성과 이루는 교집합을 계의 가장자리부터 넓힘으로써 인간 몸은 공동체성을 극상으로 번져가게 할 수 있다.

 

숲 본성으로 들어가기는 원리 문제가 아니라 윤리 문제다. 윤리는 구체적·물질적 참여가 이루어지는 수리를 동반한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 더불어 실제 생명을 주고받는 감각, 정서, 의식, 수용, 행동을 낱낱이 경험함은 물론 각 맥락 속 전경을 온이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묵은 숲이 일으키는 생명의 창발 네트워킹을 살아가는 인간이 그 본성에서 우러나온 묵은 문화를 빚을 때, 숲과 분리된 뒤 형성된 문화 핵심은 전미래 관지로 과연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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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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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는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단세포 군집으로, 빛과 공기를 당으로 바꾸는 귀중한 연금술인 광합성을 선물로 가져온다. 지의류의 조류는 독립영양생물, 즉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내는 과의 생산자며 요리사다. 에너지원인 당은 만들 수 있으나 무기질을 찾는 솜씨는 별로다. 수분이 존재해야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자기 몸을 마르지 않게 보호할 능력은 없다.

 

지의류의 균류는 종속영양생물, 다른 생물을 먹는 생물이다. 스스로 식량을 만들 수 없어 남이 만들어 놓은 탄소를 먹고 살아야 한다. 균류는 물질을 분해해 무기질을 뽑아내는 솜씨는 훌륭하나 당을 만들지는 못한다.......공생 덕분에 조류와 균류는 당과 무기질을 호혜적으로 교환한다. 이렇게 생겨난 유기체는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며 이름도 하나다.(396~397)

 

 

움빌리카리아, 그러니까 석이石耳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기존의 분석 과학은 석이에 베타글루칸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항암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서사가 아니다. 내가 발원하는 서사과학, 그러니까 대승과학은 호혜적 공생이라는 지의류 본성이 항암 작용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타글루칸은 바로 그 본성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서사다.

 

지의류 서사는 풍요롭고 경이로운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어떤 이는 공생이 아니라 호혜적 기생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공생과 호혜적 기생 사이를 진동하는 차이에 주의하면 절묘한 깨달음이 찾아들 수 있다. 다른 어떤 이는 자기 균사 울타리 안에 광합성 하는 존재를 가꿈으로써 이 균류가 농업을 발견했다고 한다. 신선한 충격을 받는 일이 호들갑만은 아니다.

 

지의류는 다른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는 시공간을 열고 들어간다. 고산에 쌓인 만년설 가장 가까이, 화산 폭발로 형성된 용암에 가장 먼저 삶을 시작함으로써 모든 식물 군락의 선구자가 된다. 이런 생명 본성을 인간의 삶과 치유에 적용하는 일이 다만 은유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은 이제 종말론적 자세로 종 너머 생명과 만나 이룰 네트워킹을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장구한 세월 동안 지의류는 생명의 토대를 닦는 책임을 맡았는데, 눈 깜빡할 순간에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무위로 돌리며 거대한 환경 스트레스 시대를, 스스로 만든 불모를 불러들이고 있다. 지의류는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으리라. 지의류 가르침을 외면하면.......우리시대 돌투성이 잔해가 지의류에 덮이고 말리라.

 

석이, 돌의 귀.......그들이 귀 기울이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돌의 귀여, 우리가 저지른 짓을 인정할 때 그대는 우리 고통을 들을 건가요? 그대가 몸으로 보여준 호혜적 결혼이 지닌 지혜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혹독한 후빙기를 우리도 겪게 될 듯해요. 우리가 그대처럼 대지와 결혼할 때 부르는 환희의 송가를 그대가 들어준다면, 구원은 거기 있어요.(4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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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타와토미족 이야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이 한 언어를 쓰던 때가 있다고 기억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어떠한 모습인지 서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선물은 사라졌고 그만큼 우리는 빈곤해졌다.

  같은 언어를 말하지 못하기에 과학자로서 우리 임무는 이야기를 최대한 멋지게 엮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연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물을 수 없으므로 실험으로 묻고 그들의 대답에 신중히 귀 기울인다.......그렇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염도가 귀화종 식물의 생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을 진행한다. 그렇게 우리는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가 측정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방법은 생명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이 방법은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이해하는 통로다. 경외와 겸손으로 과학 하는 일은 인간 너머 세계와 호혜관계를 맺는 곡진한 행위다.(370~371)

 

과학, 특히 자연과학은 인간이 발견하고 발전시킨 탁월한 인식 방법임에 틀림없다. 한 언어를 쓰던 선물이 사라진 뒤 인간이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이해하는, 빈곤하나마 유력한 통로임이 분명하다.

  과학만이 진리나 진실에 이르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틀림없고 분명하다. 인간 너머 세계와 호혜관계를 맺으려 한다면 과학은 경외와 겸손으로 곡진히 행해야만 한다. 경외와 겸손은 분석의 극한에서 종합의 검푸른 바다로 뛰어들 때만 이루어지는 예의다. 도의 인과 사슬을 끊어야만 가 닿는 초인과의 덕이다. 미분법 문명에서 적분법 문명으로 역진해야만 얻어지는 마음 자세며 몸 실천이다. 수식적 삶에서 서사적 삶으로 확장해야만 열리는 기품이다. 이 기품 있는 과학이 서사과학이다. 서사과학을 나는 대승과학이라 이름 한다. 대승과학 행위가 인간 아닌 종의 수수께끼 같은 삶을 통해하는 대승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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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의는.......주의attention를 의도intention로 승화시킨다.......실천적 힘이 있다. 삶을 확장하는(367)


 

주의는 마음을 어디엔가 두는 행위다. “의도는 그 마음을 어디론가 향하게 하는 행위다. 지향이 실천의 시작이다. 거기서 삶을 확장하는일이 일어난다. 삶을 확장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버드나무가 내 삶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버드나무 제의를 매일 시행한다. 버드나무 제의는 내 삶을 초군초군 바꾸는 중이다. 인사동 가로수로 서 있는 다섯 그루 버드나무 덕분에 나는 백악에서 한강으로 흘러내리는 내를 모두 확인했다. 복개로 숨겨진 물길을 찾아내기도 했다. 이젠 옥인동에서 혜화동까지 이어지는 나지막한 언덕과 야트막한 계곡 파동을 한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수없이 걸어온 도성 안길 풍경들이 더 선명하고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버드나무가 이끄는 내 발길은 선정릉으로 이어졌다. 버드나무 서 있는 곳을 증거 삼아, 두 내 물길이 한 흐름으로 만나 금천을 형성하고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드는 궤적을 톺아보았다. 두 내에게 물을 내어주고도 울창한 숲을 키우는 부드러운 능선들 전경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뭇 눈길들이 훑기조차 하지 않고 지나치는 작디작은 도랑을 찾아 일일이 사진에 담았다. 틈틈이 이끼 가족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내 삶은 섬세하게 확장된다.

 

이 확장은 사업 확장과 다르다. 돈이나 힘 쪽으로 뻗어나가지 않는다. 내밀한 생명 네트워킹으로 번져나간다. 신비주의로 우뚝한 정답을 내지 않는다. 신비를 끌어안고 끝내 질문을 부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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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8-11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퍼가는 기능이 있다면 이 글 제 서재에 ˝모셔˝가고 싶습니다^^ 버드나무를 따라가면 물길을 상상할 수 있나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신비롭네요. 말씀하신 대로.

bari_che 2021-08-13 08:13   좋아요 1 | URL
버드나무는 ‘나무를 사랑해 나무가 된 물‘이라 일컬어지죠. 실제로 물과 뭍의 경계에 가장 먼저 자리 잡아 자랍니다.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거나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이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예전에 존재했(는데 없앴거나 복개로 가렸)다는 증거죠.

버드나무는 물의 차가움을 견디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아스피린이 버드나무에서 나왔죠. 버드나무꽃으로 우울증을 치료한 임상기록도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 시험 때 낙마하여 다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버드나무 껍질을 벗겨 동여매고 다시 임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무엇보다 버드나무는 척박한 땅에 먼저 들어가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다른 식물들이 무성히 자라 극상림을 이룰 정도가 되면 표표히 떠나는 개척, 공존, 겸양 본성을 지닌 신성한 생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주 만나보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