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모를 땋으며 - 토박이 지혜와 과학 그리고 식물이 가르쳐준 것들
로빈 월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조류는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단세포 군집으로, 빛과 공기를 당으로 바꾸는 귀중한 연금술인 광합성을 선물로 가져온다. 지의류의 조류는 독립영양생물, 즉 스스로 식량을 만들어내는 과의 생산자며 요리사다. 에너지원인 당은 만들 수 있으나 무기질을 찾는 솜씨는 별로다. 수분이 존재해야 광합성을 할 수 있는 데 반해 자기 몸을 마르지 않게 보호할 능력은 없다.

 

지의류의 균류는 종속영양생물, 다른 생물을 먹는 생물이다. 스스로 식량을 만들 수 없어 남이 만들어 놓은 탄소를 먹고 살아야 한다. 균류는 물질을 분해해 무기질을 뽑아내는 솜씨는 훌륭하나 당을 만들지는 못한다.......공생 덕분에 조류와 균류는 당과 무기질을 호혜적으로 교환한다. 이렇게 생겨난 유기체는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하며 이름도 하나다.(396~397)

 

 

움빌리카리아, 그러니까 석이石耳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기존의 분석 과학은 석이에 베타글루칸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어 항암 효과를 낸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서사가 아니다. 내가 발원하는 서사과학, 그러니까 대승과학은 호혜적 공생이라는 지의류 본성이 항암 작용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베타글루칸은 바로 그 본성의 산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는 서사다.

 

지의류 서사는 풍요롭고 경이로운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어떤 이는 공생이 아니라 호혜적 기생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공생과 호혜적 기생 사이를 진동하는 차이에 주의하면 절묘한 깨달음이 찾아들 수 있다. 다른 어떤 이는 자기 균사 울타리 안에 광합성 하는 존재를 가꿈으로써 이 균류가 농업을 발견했다고 한다. 신선한 충격을 받는 일이 호들갑만은 아니다.

 

지의류는 다른 생명체가 서식할 수 없는 시공간을 열고 들어간다. 고산에 쌓인 만년설 가장 가까이, 화산 폭발로 형성된 용암에 가장 먼저 삶을 시작함으로써 모든 식물 군락의 선구자가 된다. 이런 생명 본성을 인간의 삶과 치유에 적용하는 일이 다만 은유에 지나지 않을까. 인간은 이제 종말론적 자세로 종 너머 생명과 만나 이룰 네트워킹을 꿈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장구한 세월 동안 지의류는 생명의 토대를 닦는 책임을 맡았는데, 눈 깜빡할 순간에 우리는 그들의 노고를 무위로 돌리며 거대한 환경 스트레스 시대를, 스스로 만든 불모를 불러들이고 있다. 지의류는 이겨낼 수 있을 듯하다. 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도 그럴 수 있으리라. 지의류 가르침을 외면하면.......우리시대 돌투성이 잔해가 지의류에 덮이고 말리라.

 

석이, 돌의 귀.......그들이 귀 기울이고 있다는 상상을 한다.......돌의 귀여, 우리가 저지른 짓을 인정할 때 그대는 우리 고통을 들을 건가요? 그대가 몸으로 보여준 호혜적 결혼이 지닌 지혜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 혹독한 후빙기를 우리도 겪게 될 듯해요. 우리가 그대처럼 대지와 결혼할 때 부르는 환희의 송가를 그대가 들어준다면, 구원은 거기 있어요.(40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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