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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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경제 체제를 만들고, 그 체제가 주도권을 잡도록 이끈 구조는 다름 아닌 서구 정복 전쟁과 제국주의였다. “미주대륙 토착민에 대한 제노사이드가 유럽을 위한 현대 세계 출발점이었다. ·남미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유럽은 훨씬 더 풍요로운 문명 본거지 대륙인 아시아 뒷마당 그 이상 존재가 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자본주의를 둘러싼 또 한 가지 뿌리 깊은 신화는 중요한 시장경제 특성이 유럽 주요 지역에 기원을 둔 역사적 발전에서 비롯했다는 믿음이다. 자본주의가 강압적 노동보다는 자유로운 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유럽 봉건적 과거와 철저히 결별했다는, 따라서 진보와 혁신 능력을 보여준다는 생각 또한 그만큼이나 뿌리 깊다.

  ···자본주의는 결코 서구에서 유래하지 않았다. 정복 전쟁과 미주대륙 토착민과 아프리카인 노예화야말로 자본주의 형성에 이바지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자본주의가 자유노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자본주의는 요컨대 제국주의 부수적 결과였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그토록 지정학적 맥락이라는 현실에서 분리, 추상화됐을까? 자본주의를 한 시스템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서구 근본주의 편향은 사악한 진면모를 감추려는 방편이다(세드릭 로빈슨). 이를 통해 우리는 서구 지식인과 학자 담론이 인종차별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세계 권력 위계를 지탱하는 조직적 폭력구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보다 추상적 경제 체제에 대해 논의하는 데 더 편리하도록 기획돼 있음을 알 수 있다.(166~171)

 

스티브 테일러는 자아폭발-타락-에서 현대 민주주의 발원지가 그리스 아닌 이로쿼이 동맹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쿼이 동맹은 북미대륙 일부 토착민 국가 간 평등 연방제다. USA가 입헌 과정에서 핵심을 제거한 이로쿼이 정신을 벤치마킹했다. 감사는커녕 그마저 속였으니 정확히는 훔치기라고 해야 옳다.

 

민주주의를 훔쳤듯 자본주의도 훔쳤다. 민주주의 절도와는 달리 다른 인종을 차별하고, 죽이고, 그들 삶 네트워킹 전반을 빼앗는 범죄 실행 과정에서 누적된 knowhow를 마치 제집에서 발명한 듯 거짓말하는 방식으로 훔쳤다. 훨씬 더 잔혹하고 야비한 절도 행각이다. 자본주의 절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으니 더 문제다.

 

인종차별 자본주의, 전쟁 자본주의, 압제 권력 자본주의라는 진실을 은폐하려 서구 지식인과 학자들은 작당하고 자본주의를 추상적 경제 담론으로 환원했다. 모든 문제를 경제 서사로 묶으면 정작 중요한 가치와 윤리가 매끈하게정리된다. 매끈해진 문제, 아니 인간은 납작한 지폐로 처리하면 그만이다. 그뿐이다.

 

이 프로젝트 표본이 한국이다. 과잉 경제화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돈을 좇는 집단과 각자도하는 개인만 남겨놓았다. 돈 없으면 근본 없는 이 된다. 돈만 있으면 과잉 사법화된 세상에서 안전 사서, 과잉 의료화된 세상에서 건강 사서, 과잉 언론화된 세상에서 bullshit 사서 떵떵거리며 산다. 특권 부역자 천국이다.

 

자본주의는 그저 제국이 남긴 찌꺼기일 뿐이다. 자본주의 타도한다고 평등세계 오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그저 제국이 던진 미끼일 뿐이다. ‘민주주의사수한다고 자유세계 오지 않는다. 문제는 제국이다. 아직도 제국적 시야를 부추겨 대접받는 사기꾼들이 득실대는 이 나라 지성 판에 나는 다만 합장 한번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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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는···국제적 권력 위계와 뒤엉킴으로써 경제적이지도 않고 목록화할 수도 없는 기득권을 만들어냈다. 이는 석유가 지닌 또 다른 물질성 때문에 가능했다. 배나 송유관을 통해 채굴 지점에서 다른 장소로 운송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 말이다. 여기서···제국주의 전쟁 역사로 곧장 이어지는 지정학적 역학이 생겨난다.(149)

 

20세기에 벌어진 양차 대전에서 승리는 특정 인간 집단뿐 아니라 화석연료 에너지가 일구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석유 부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추축국 석유 부족이 훨씬 더 큰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

  요컨대 20세기 전반에 걸쳐 석유에 대한 접근은 세계 지정학적 전략에서 핵심으로 떠올랐다. 강대국에 석유 흐름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힘이 있다는 말은 경쟁국 급소를 때릴 수 있다는 의미다. 20세기 상반기 석유 흐름을 좌우한 국가는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바통은···미국으로 넘어갔다. 세계 에너지 흐름을 보증하는 직무는 현재 미국이 구사하는 전략적 세계 지배와 그 패권적 지위에 결정적이다.(151~152)

 

석유가 불균일하게 분배되며 해양을 거쳐 운송돼야 한다는 사실은 해양 choke point 몇 개에 압박을 가함으로써 그 흐름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공교롭게도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은 모두 인도양에 위치한다.···

  ···인도양으로 창출된 지정학적 연속성은 시간이 흘러도 놀랍도록 일관되게 남아 있었다.

  오늘날에는 그 어느 곳도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미국이···‘군사기지 제국(Empire of Bases: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셀 수없이 많은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제국이라는 뜻-옮긴이)’으로서 총괄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155~157)

  

  실제로 지구 종말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서구가 점한 지정학적 절대우위 종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시시각각 커지면서 지구 위기에 더 큰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다.(171)

 

사실상 지구 전체를 지배하는 초거대 제국 USA가 거느린 해외 군사기지는 80개국에 750개다. 거기에 17만여 명 병력이 투입돼 있다. 이를 통해 총괄 감시하고 있는 choke point는 다만 석유 흐름이 형성하는 물류 거점이 아니다. 에너지로써 제국이 구가하는 전략적 세계 지배와 그 패권적 지위에 결정적인 지정학적 거점으로서 블랙 네트워킹을 이어주는 결절점이다.

 

이 블랙 네트워킹은 여전히 강력하다. USA가 저무는 제국이라는 담론이 부단히 나돌고 실제로 그런 증후가 나타나고 있지만, 일극 집중 세계체제가 무너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전방위·전천후 긴박성을 띤 지구 위기가 이 문제를 어떻게 예측불허 방향으로 끌고 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 같은 소시민에게는 아뜩한 문제다. 관심사를 조금 좁혀 본다.

 

가장 많은 미군기지가 있는 나라는 일본(120), 독일(119), 한국(73)이다. 각각 53,700, 33,900, 26,400명이 주둔하고 있다(2021년 해외자료). 63%에 달하는 기지, 66%에 달하는 군인이 세 나라에 몰려있다. 게다가 세계 최대 미군기지인 Camp Humphreys가 한국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주축국인 독일과 일본이야 그렇다 치고, 한국은 대체 왜 이 지정학 한가운데 놓여 있는가?

 

일제 식민지였으므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카스라-태프트 밀약으로 팔아먹고, 해방을 분단으로 결딴내고, 남한에 점령군으로 들어와 3년 동안 군정을 실시하면서 식민지 유제를 대한민국 국가체제 근간으로 굳히고, 뒤이어 내전까지 유발한 역사에 따르면, 미국이 전형적인 제국주의 전략을 동원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흘러넘친다.

 

미군정, 73개로까지 늘어난 미군기지, 실질적 미국 통치가 한국 사회에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무엇일지 자칭 진보 또는 좌파 지식인들만이라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자신들이 교묘한 부역자라는 진실에 결곡히 승복할까? 구태여 답을 구하려는 질문이 아니다. 딱 오늘 우리 정치 현실만 보더라도 통렬한 참회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차마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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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화석연료가 다른 에너지원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까닭은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엽 석탄-화력 제분소가 물로 움직이는 경쟁자를 서서히 몰아내기 시작한 이유는 석탄이 더 저렴하고 한층 효율적이어서가 아니었다. 물을 동력으로 삼는 제분소도 석탄-화력 제분소만큼이나 생산적이었고, 비용은 그보다 훨씬 낮았다.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들이 득세한 까닭은 기술적 이유에서라기보다 사회적 이유에서였다. 석탄-화력 제분소는 그 소유주에게 인구 밀도가 높고 값싼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에 그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해주었다.···

 

석유가 지닌 물질적 특성은 권력구조를 강화하는 능력에서 석탄을 월등히 능가하도록 만들어준다. 지배계급이 보기에 석탄은 한 가지 중대한 결점을 안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석탄은 대규모 광부가 캐내야 하는데, 이는 그들이 급진화하기 맞춤한 조건에서 노동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광부들이 세계 노동운동 선봉이었다.···석탄과 달리 석유 채굴과 운송은 많은 인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석유는 자본이 지역에 얽매이지 않은 채 세계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도록 보장해주었다.

  요컨대 화석연료는 지배계급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간사와 얽혀왔다. 이런 역학을 완벽하게 드러내 주는 말이 바로 ‘power’라는 영어 표현이다. “자연적 힘으로서 에너지 개념과 인간관계 속에서 권력·지배구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이와 달리 태양, 공기, 그리고 물 같은 대안적 근원에서 비롯하는 에너지는 커다란 해방적 잠재력으로 충만하다. 원리상 모든 가정, 농장, 공장은 에너지를 자체 생산함으로써 권력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또한 더없이 중요한 국제적 차원도 지닌다. 일정 정도 수준에 이르면 세계질서를 사실상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146~149)

 

특권층 부역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직후 갑자기 전기·가스요금이 폭등해서 난리가 났다. 특권층 부역 언론이 가짜 뉴스 만드느라 혈안이 돼 있을 때 <<시사인>>은 조용히 그 원인을 분석했다. 기사를 읽는 내내 나는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미국이 주도하는 에너지 세계체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협잡과 소용돌이는 계속될 텐데 현실적으로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석연료는 제국주의 경험이 일으킨 자본주의가 도시화·산업화를 휘몰고 올 때 이중적 동력으로 작용했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전해지는 동안 에너지 세계체제는 더욱 강고해졌고, 그만큼 지구 위기는 대파국 카이로스로 육박하고 있다. 자연적 힘으로서 에너지를 내는 화석연료가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기후 위기가 가파르게 증강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속 권력·지배구조로서 석유 패권이 지정학적 불균형을 극단화하고 있어서 인류 공동체 위기 또한 맹렬하게 고조되는 상황이다.

 

물론 답은 간단명료하게 이미 나와 있다. 커다란 해방적 잠재력으로 충만한 태양, 공기, 물 같은 대안적 근원에서 비롯하는 에너지를 쓰면 된다. 문제는 그러면 세계질서가 혁명적으로 변화한다는 데 있다. 이 변화를 USA가 바라지 않으므로 그 답은 답이 아니다. USA가 꾸는 꿈은 지구를 최종 목적지로 삼지 않는다. USA가 사랑하는 사람은 인류인 인간이 아니다. USA 눈에 지구는 자원 생산하는 기계고, 그 지구에서 인간으로서 평등하고 평화롭게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평범한 인류는 짐승이다.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온 영혼이 녹아내릴 때 우리는 홀연히 빙의된다. 기계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짐승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부역자 각성이 통렬히 일어나는 찰나 우리는 마지막 샤먼이 되기 때문이다. ? 이렇게 집단 각성이 일어나는 꿈이 황당한가? 그러면 과학이라는 이름 걸고 휴거를 꿈꾸는 서구 제국주의 프로젝트는 진리인가? 저들이 이토록 무모하게 에너지 제국주의를 밀어붙이는 광기 뒤에 도사린 만고불변 진리는 나는 나다.”. 거기에 변화는 불가하다. 에너지는 거기에 충성한다. ‘우리에너지는 다르다. 변화하는 주체다. 변화는 다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는 뜻 아니다. 변화는 끊임없이 전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 여행길 주도하는 에너지를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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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토착민 식물학자 로빈 월 키머러는 이름은 우리 인간끼리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름 짓는더 정확히 말해 새로 이름 짓는힘은 제국이 훔친 가장 큰 특권 가운데 하나였다. 그 힘이 오늘날 살아 있는 세계를 주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에 발판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장소에 이름 짓은 일은 탐험가나 항해자 몫이었고, 그 밖 다른 모든 이름은···자연철학자(과학자-필자), 예술 권위자, 의사, 유물 수집가들이 잡다하게 섞인 전문가 집단에 맡겨졌다. 이 전문가들이 제국 생태 자산을 범주화하고 분류했으며, 특히 거기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제국 정책 입안자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역사적으로 과학과 제국은 상호 원인이자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135)

 

  린네 체제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확장성을 지닌 놀라운 분류법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한 이유는 그 체제가 자연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니다. 에스파냐 제국 개입이 결정적이었다. 에스파냐 제국은 18세기 중엽에 공통된 용어와 일관된 언어를 가지게 하려고 린네 이명법 체제를 채택하도록 제국 식물 탐험대에 명령했다. 모든 대상을 유용 자원으로 바꾸도록 명명 과정에서 비교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제국이 내린 은총으로 린네 체제는 일찌감치 다른 모든 지식 체제와 그 방법론을 제압하며 진실에 관한 독점권을 주장함으로써 지식 획득 방식에 관한 토대로 자리 잡았다.(137)

 

아미타브 고시는 중요하고 많은 잘못된 기존 지식을 무너뜨린다. 우주과학에 이어 이번에는 생물학이다. 생물학은 린네를 피해 갈 수 없다. 린네는 제국주의를 피해 갈 수 없다. 제국주의를 더더욱 피해 갈 수 없는 중첩 식민지 대한민국 생물학도는 이 진실을 알고 있을까? 나는 지난 3년 동안 비전공자로 식물을 공부하면서 이 진실에 적으나마 가닿을 수 있었다.

  내가 가닿은 진실은 그야말로 피상적이었다. 아미타브 고시가 여기서 밝혀준 진실만으로도 내 애통은 한층 깊어졌다. 차마 그럴 수 없을 듯한 분야까지 속속들이 제국주의 마수가 뻗쳐 있는 풍경을 마주할수록 부역자 각성은 신랄하다 못해 참담해져 간다. 깨침이 요구하는 삶을 살아낼 깜냥이나 될지 의심은 더욱 육중해져 간다. 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고 무지렁이라고 못 박아도 짐이 쉽게 덜어지지 않는다. 내 문제 너머 공동체 문제여서 그렇다.

 

  정색하고 물어보자. 제국주의가 과학 내용까지 규정할 수 있는가? 통속한 우리 지식으로는 과학에 정치와 문화가 개입하지 못한다. 가령 제국이 명한다고 해서 물이 수소 4개와 산 소 1개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모든 진실이 이런가 묻는 일은 얼마나 순진한가. 이른바 과학은 이런 진실을 쉽게 뭉갠다. 코로나19로 백신 맞은 사람이 문명사회 인구 대다수다. 정색하고 물어보자. 그 백신 과학 진실을 아는가? 아니, 그 백신을 뭐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는가?

  나는 백신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백신 만드는 초국적 제국 제약회사 상품 백신을 신뢰할 수 없다. 저들이 린네 체제와 다르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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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진보가 다른 종들, 그리고 인간 대부분에 대한 말살을 수반한다는 개념은···19세기 말 자유주의 또는 진보 지식인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특히 어쩌다가 국가 정책을 통해 자기 소신과 이론을 현실 세계에 구현할 수 있는 권력자들에게 해당한다.

  이 개념 밑바탕에는···지구를 인간이 좀 더 높은 단계 존재로 비상하려면 벗어던져야 하는 짐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실제로 이런 관지는 제노사이드나 에코사이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은 물론 행성 자체 절멸, 그러니까 옴니사이드 가능성마저 상상하고 적극적으로 반긴다.···세계 종말은 인간이 온갖 세속적이고 육체적 속박을 벗어던진 순수 영혼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도록 이끄는 멀리서 일어나는사건으로 여겨진다.

  이 개념은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상상계 필수 기층을 떠받치고 있다.···‘휴거에 대한 기독교 근본주의자 사상에서, 에코파시스트 종말론 비전에서, ‘청소된 세계를 갈망하는 인종주의자 꿈속에서, 그리고 이 거친 대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못마땅한 거주민에게 넌더리 내고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함으로써 좀 더 나긋나긋한 지구 버전을 구축하고자 혈안이 돼 있는 억만장자 환상 속에서 말이다. 그 꿈은 일견 미래지향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정착형 식민주의 주민이 지구 대부분을 네오 유럽으로 바꿔놓은 테라포밍 과정을 다시 한번 추진하고자 하는 유제(遺制)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118~119)

 

역사에서 가정이란 부질없다고는 하나 이렇게 전복해본다. 가령 아시아 몇 나라가 제국주의 전쟁을 벌여 유럽을 식민지화했다면 그들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인류학이란 학문이 유럽인을 대상으로 펼쳐졌다면 기독교에 휘감긴 그 문화가 얼마나 황당한 미신 덩어리로 치부됐을까?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 유럽이 문화적으로 앞서 있어서 서세동점이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이 가정은 유럽중심주의 또는 인도유럽어 패권주의 또는 앵글로아메리카 제국, 아니 기독교 일극 집중구조 신화를 깨뜨리는데 유력한 역발상일 수 있다. 찬란한 문명, 위대한 과학이 오직 휴거를 향해 질주해온 유제(遺制) 욕망 차라리 망상이라고.

 

아미타브 고시에 따르면 알프레드 테니슨(1809~1892)<In Memoriam>에서 이렇게 읊었다.

 “한층 높은 종족의 전령···

  짐승을 몰아내고 위쪽으로 움직이라.···

  멀리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사건,

  모든 천지 피조물이 그곳으로 이동한다.”

 

지구 밖 저 멀리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고 유럽기독교도는 거기로 올라간다(휴거)는 이야기다. 이 시는 묵시록 비전을 읊은 종교시가 아니다. 당대 탁월한 과학 지성이기 때문에 존경받은 시인이 쓴 과학 시다. 이 시는 과학을 종교 프레임에 융해시킨 일극 집중구조 서사다.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서구 과학은 기독교 신학 세속 버전 중 하나다. 지구 안에서 펼쳐졌던 제국주의 과학이 지구 밖으로까지 확장되었을 뿐이다. 그 이름이 우주과학일 따름이다.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이유도 제임스웹 망원경을 만든 이유도 휴거를 통해 신과 하나 되기 위해서다.

 

얼핏 정신 나간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상상계 필수 기층을 떠받치고 있다.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한단 말인가. 우주과학은 여러 세부 항목에 따른 각기 다른 과학을 포괄하지만, 물리학을 빼놓을 수는 없다. 어떤 천재 물리학자가 우주 구성 원리를 설명하는 단 하나 방정식을 찾기 위해 연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단 하나 방정식을 왜 전제하는지 꼭 물어야 할 이유는 없으리라. 그는 개신교도다.

 

이런 논지가 불편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 특히나 사려 깊은 사람에게는 논의 대상을 단순화하고 자신만 복잡한 존재라고 전제라는 짓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짓은 나쁜 짓이 맞다. 그렇다면 문제는 서구 제국주의 정치, 종교, 예술, 과학과 그 상호관계가 참으로 복잡한가, 여부에 달렸다.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해왕성 고리와 위성 7개를 선명하게 포착하는 우수한 과학과 앵글로아메리칸은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는다며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우스운 기독교가 공존하는 현상은 얼핏 복잡한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매우 단순하다. 과학을 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일과 신앙을 과학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일이 어찌 복잡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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