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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평점 :
2023년 3월 31일 어느 특권층 부역자가 주인인 신문에 올라온 글 일부다.
“20세가 되면서 대학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갔다. 몇 해 머무는 동안에 가장 뼈저리게 느낀 게 있다.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기에 게으른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살았구나, 하는 죄책감이었다.
당시 우리 민족은 너무 나태했다. 놀고먹는 팔자가 상팔자라고 했고 노랫가락에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는 흥겨움이 깔려있었다. 양반들은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이쑤시개는 물고 다녔다. 배불리 먹고 나서는 모습으로 위장하기 위해서…. 내 아내 얘기도 그랬다. 어려서 친구들과 놀면서, 출가하게 되면 우편배달부한테 가야지 농사꾼에게 가면 어떻게 하느냐, 하고 걱정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일본인들과 같이 열심히 일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꿈이었다.”(<김형석의 100년 산책>)
참담하다. 104세 철학자 사유에서 나온 글이라니. 그가 평생 공부하고 가르친 철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스무 살 이전 특권층 부역자 소년이 본 식민지 풍경에 100세가 넘은 지금도 변함없는 해석을 가하는 철학자, 그 정신적 neoteny가 너무나 애잔하다. 설혹 그 해석이 옳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국민은 게으른 민족을 지배하는 권리를 지닌다는 식으로 전형적 제국주의 발상을 하면서도 전혀 각성이 없다. 아니. 다 차치하고라도 전체적인 글 수준과 기본 어휘 선택조차 중고생 백일장과 방불한데 100년 관록 자랑할 지면을 내주다니. 심지어 그 신문 인기 검색어 1위란다. 누구는 노망 아니냐 한다. 아니다. 정확히 특권층 부역자 심리 상태를 반영한 글이다. 누구는 무슨 언론이 이러냐 한다. 아니다. 정확히 이런 짓 하는 집단이 바로 이 나라, 그러니까 중첩 식민지 부역 언론이다. 참담하다는 말도 물색없다.
예순여덟 나이에 제국주의를 공부하고 부역 서사를 쓰겠다고 나선 내 자신이 심히 늦되다 탄식했는데, 마흔 살 가까이나 더 많은 철학자, 아니 철학“가”가 아직도, 아니 끝내 이런 말이나 한다니 적잖이 안심이다 싶어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지식이든 지성이든 지혜든 ‘패거리 우물’에 빠지면 그야말로 한심한 bullshit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 철학“가”처럼 오래 살 확률은 매우 낮을 터이므로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 돌이키려 지금이라도 이 글을 쓰는 만큼 헛된 짓거리가 되지 않도록 각고해야겠다.
각고를 벼린다. 도봉 숲이 내게 들려준 말은 “부역자 각성”이었다.(2023.2.14. <부역 생태 서사>) 검단 숲이 내게 들려준 말은 “반역자 각성”이었다. 검단 숲을 다녀온 뒤 ‘소식’을 기다리던 그제(2023.4.19.) 새벽 홀연 잠에서 깨는 순간 내 삶에 똬리 튼 “개체/미시 제국주의”를 통렬히 깨달았다. human-biont로서 내가 나와 공생하고 있는 nonhuman-biom에게 말살 전쟁을 벌여왔다고 검단 숲이 말해주어서다. 메모하려 스마트폰을 열자 처음 내 눈으로 날아든 짱돌이 바로 앞에 인용한 그 글이다. 설마 타산지석일 뿐일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