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두구의 저주 - 지구 위기와 서구 제국주의
아미타브 고시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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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일은 풍경이 지닌 보이지 않는 힘이 반격해오는 사태가 아니었을까? 아마 그런 생명력에 대한 공포로 절어 있는 그들 자신의 인식이 모조리 없애버리겠다는 분노를 부채질했으리라.

  이런 두려움에서 유럽 정착민을 괴롭힌 정복당한 풍경에 대한 불신과 의혹이 피어났다. 그러므로 정복당한 영토를 테라포밍하고, 그 땅에서 보이지 않는 힘을 축출하고, 그곳을 익숙한 자원 저장고로 길들여야 할 필요성이 시급해졌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파멸 충동 속에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명시적으로인정할 수 없는 무엇에 대한 암묵적인인식이 깔려 있었다. , 토착민이 시종일관 옳았다는 사실, 풍경은 비활성도 언어 무능도 아니고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 말이다.

  ···확고한 근대성에 대한 모든 합의 이면에 종잡을 수 없는 무언가, 고요한 겉모습을 지니지만 끝내 침묵하지 않을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의심이 깔려 있지 않을까?

···

  그리고 점차 심화하는 기후 위기는···무자비한 종말론적 폭력에 직면해 비인간은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고 시종 굽힘 없이 항변해온 목소리에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준다. 이제 지구적 대재앙 가능성이 한층 더 가까워짐에 따라, 우리 이야기에서 그 같은 비인간 목소리를 복원해내는 작업은 필수불가결하다.

  인간, 그리고 우리 모든 친족은 바로 여기에 운명을 걸고 있다.(355~357)

 

416 9주기 아침 미리 전화로 알아본 하남시 배알미-01 버스 기점으로 출발 시각에 맞추어 집을 나선다. 지난주 나를 울게 만든 검단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뭔가 알지 못할 기대감이 없지 않으나 비속한 신비는 사양하므로 평정이 흐른다.

 

윗배알미 계곡은 제법 깊어 처음부터 개울 물소리가 낭자하게 숲을 흔든다. 개울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난 길은 충분히 습해서 많은 이끼와 버섯을 품고 있다. 나중에는 귀찮을 만큼 곳곳에서 눈길을 잡아당기는 생명들로 수없이 멈춰 선다.

 

물소리 우렁찬 곳에서 홀연 앉아 돌을 모은다. 250개를 채워 아리잠직한 바위 위에 쌓는다. 특권층 부역자 권력이 9년 전 바다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생때같은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검단 숲에 전해드리기 위해서다. 합장한 뒤 더 깊은 숲으로 나아간다.



능선에 이르러 한참 나아가니 기품 서린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배 모양을 닮은 돌 하나를 주워 뒤집힌 각도로 바위 주름에 얹어놓는다. 검단 숲에 이 배 이름이 세월호라고 말씀드린다. 오후 416분에 알람을 맞춘다. 합장한 뒤 더 깊은 숲으로 나아간다.



정상을 밟지 않는 원칙에 따라 직전에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경사가 가파른 돌투성이 길이다. 한참 내려오니 한 귀퉁이에 팔각정 지어놓은 넓은 빈터가 소란하다. 여러 일행이 모여 하나같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떠들고 있다. 되지도 않는 정치 얘기가 대부분이다.

 

서둘러 떠나며 괜스레 운동화 먼지를 탕탕 떨어낸다. 여전히 불편한 돌투성이 길이지만 얼마쯤 가니 울창한 침엽수림이 나타나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다 내려와 돌아본 검단산은 팔당역 쪽보다 훨씬 온화하다. 알람이 울린다. 가던 길을 멈추고 묵념한다.



상수리 어린나무 뒤 갸름한 바위 위에 작은 귀 모양 돌 하나를 얹는다. 돌들로 숲에 소식을 전했으니 숲이 말 아닌 말로 내게 하는 말을 귀 아닌 귀로 들으려 한다. 무자비한 종말론적 폭력에 직면해 비인간은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한다. 인간은 삼가 들어야 한다.



제국에 살해당해 존재가 부정되기는 무고한 인간이나 무고한 비인간이나 마찬가지다. 동일 문제며 동등 당사자다. 내가 416 9주기에 검단 숲에 온 까닭은 바로 이 진실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우리 제의가 부디 가이아 네트워킹에 가 닿았기를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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