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보다 거대한 무언가의 메신저(8쪽)


나는 대뜸 이 “거대한”이란 말에 걸려 멈춰 선다. 스티브 테일러가 신, 특히 거대유일신 개념은 타락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것임을 분명히 했으므로 여기 “거대한 무언가”가 거대유일신이 아님은 물론이다. 필경 신과 같은 존재로 의제되지 않는 “위대한 영혼”(285쪽)을 가리킬 터이다. 이런 의문이 든다.


“거대/위대한 무언가가 메시지를 보낼 수 있을까?”


각기 다른 영혼 사이의 네트워킹 사건으로서 나를 메신저 삼는 그 “무언가”는 소소하고 미미하다. 소미하기에 빚어내는 무한한 결과 겹으로 말미암아 천지간 가득해서 크게 여겨진다. 크게 여겨지나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다. 실체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이어서 메시지를 지닌다. 그 메시지를 감지하고 전달하는 메신저를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군자라 한다. 『중용』은 말한다. 군자지도비이은君子之道費而隱. 대우 명제로 바꾸면 명료해진다. 소소하고 미미해서 포착되지 않는 상호작용인 메시지가 아니면 군자가 전할 수 있는 말道이 아니다. 아니, “거대한 무언가”는, 그것이 질량이든 에너지든 도무지 메시지를 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거대한 무언가의 메신저”를 자처하는 자가 나타났다면 그 메신저도 가짜고 그를 보낸 “거대한 무언가”도 가짜다.


진실에서도 진리에서도 거대한 실체는 없다. 소미한 실체들의 동시적 군무가 그려내는 찰나적 덩어리 실재로 떴다 사라질 뿐이다. 이 진실, 이 진리를 아는 것이 참 앎이다. 거짓 앎은 거대를 휘감은 질병이며 악이다. 스티브 테일러의 탁월함에 뚫린 작은 구멍부터 들여다보고 가는 것은 독자인 내게는 행복이고 저자 자신에게는 행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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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폭발 - 타락
스티브 테일러 지음, 우태영 옮김 / 다른세상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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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백년 미안>(마이페이퍼 2018.12.28.) 어르신께서 오늘 아침 오셔서는 하실 말씀이 있다며 정색하고 앉으신다. 실은 한의원 처음 오시기 전 날, 꿈을 꾸셨단다. 호랑이를 보셨단다. 붉은 점 두 개를 등에 새긴 호랑이가 너무도 무서우셨단다. 그 때문에 떨림 병-의학적으로는 노인성 진전振顫이라 함-이 왔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


저 마법적 사고로 백년을 사신 거다. 어떡해야 하나. 잠시 걱정하다가 나는 침 하나를 들어 보인다. 어르신 귀 가까이에 입 대고 이렇게 소리친다.


“호랑이 잡는 침 들어갑니다!”


꿈에 본 호랑이로 말미암아 병들었다는 생각이 우스운가. 일소에 붙일 수 있는 앎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왜 저 노인에게는 없는가. 누가 인간다운가.


인간의 삶에서 앎은 가히 결정적crucial이다. 알지 못해서 치명적 결과에 이르는 경우가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 제대로 아는 것이 거룩한 것이다. 진리는 허나 여기서 입을 다물고 말지 않는다. 진리는 앎이 병이자 악이기도 한 진실을 감추지 못한다. 이 어둠의 진실에 가 닿는 데 다시없이 좋은 안내자가 바로 스티브 테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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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단출한데다 거의 밖에서 각자 식사를 해결한다. 냉장고에 너무 오래 보관된 식재료를 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게 마련이다. 얼마 전, 싹이 나고 뿌리 부분에 이미 곰팡이까지 생긴 마늘 여남은 개를 발견했다. 무심코 버리려다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먹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폐기하는 건 옳지 않은 일 아닌가. 싹이 났으니 혹 땅에 심으면 살아나지 않겠는가. 마침 아무것도 심지 않은 오래된 화분이 있기에 흙을 부드럽게 한 뒤 적절한 깊이로 심어주었다. 이내 잊어버렸다. 사나흘 뒤, 우연히 머문 눈길에 연둣빛 마늘 대궁들이 낭창거리며 달려들었다. 바로 얘들이다. 나는 그냥 엎어져 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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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2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쎄인트 2019-01-02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큰절 하실만 합니다~
 





3월혁명이 일어난 100년 전, 그해 양력 정월 초하룻날도 이리 저물었을까.

친일매판집단 빼놓고는 적막했을까.


100년 지난 오늘에도 친일매판집단만 소요하다.

세월이 무색하다.


제발 이 적막 뒤에 그때처럼 3월 민중이 다시 봉기했으면.

제발 저 야차종자들이 올해마저 더럽히도록 내버려두지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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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홀로 나와 진료실 문을 열고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흔을 썩 넘겼을 법한 노인이 버튼 터치로 여는 자동문 앞에서 쩔쩔매고 계셨다. 얼른 달려가 열어드린 뒤,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오시도록 안내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나이 많으면 등신이 돼요.”

몸 떨림과 관절 경직을 호소하면서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얼른 죽지도 않고 맨 아프기만 해서.”

시침하는 동안 노인은 띄엄띄엄 자신의 고통 핵심을 전하신다. 예순다섯 먹은 아들이 풍 맞아 팔 년째 누워 있어 그 수발을 드신단다. 이제 곧 백세가 되는데 그 삶의 신산함이 오죽하랴. 주머니 속을 뒤지는 노인께 성탄절 선물이라며 그냥 가시라 했다. 노인은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다만 얼마라도 받으시지.”

아, 어쩌나, 저 백년 미안을. 내 알량한 선물이 저 노인에게 또 한 짐 미안을 지웠구나. 왜 깨달음은 늘 나중에야 오는 걸까. 느릿느릿 돌아서는 노인 어깨에 아들이 매달려 있는 환영을 보는 찰나 내 눈물은 그대로 범람하고야 말았다. 

2018년 성탄절은 아기 예수가 이렇게 미안에 허리 접힌 노인의 모습으로 내게 오셨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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