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홀로 나와 진료실 문을 열고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흔을 썩 넘겼을 법한 노인이 버튼 터치로 여는 자동문 앞에서 쩔쩔매고 계셨다. 얼른 달려가 열어드린 뒤, 슬리퍼로 갈아 신고 들어오시도록 안내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나이 많으면 등신이 돼요.”
몸 떨림과 관절 경직을 호소하면서 노인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얼른 죽지도 않고 맨 아프기만 해서.”
시침하는 동안 노인은 띄엄띄엄 자신의 고통 핵심을 전하신다. 예순다섯 먹은 아들이 풍 맞아 팔 년째 누워 있어 그 수발을 드신단다. 이제 곧 백세가 되는데 그 삶의 신산함이 오죽하랴. 주머니 속을 뒤지는 노인께 성탄절 선물이라며 그냥 가시라 했다. 노인은 또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안합니다. 다만 얼마라도 받으시지.”
아, 어쩌나, 저 백년 미안을. 내 알량한 선물이 저 노인에게 또 한 짐 미안을 지웠구나. 왜 깨달음은 늘 나중에야 오는 걸까. 느릿느릿 돌아서는 노인 어깨에 아들이 매달려 있는 환영을 보는 찰나 내 눈물은 그대로 범람하고야 말았다.
2018년 성탄절은 아기 예수가 이렇게 미안에 허리 접힌 노인의 모습으로 내게 오셨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