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즙의 조성은 성별에 따라 다르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은 모두 담즙의 콜레스테롤 함량을 높인다. 프로게스테론은 또한 담낭 수축을 억제해 담즙을 십이지장으로 분비하는 속도를 떨어뜨린다. 따라서 프로게스테론 수치가 높은 월경 전이나 임신 기간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담낭 질환에 걸리는 빈도가 높다.·······

  담즙의 조성은 월경 주기와 임신에 따라 변한다. 담즙 분해물의 일부는 여성의 결장암 발병 위험성을 높인다. 그리고 아마도 그 빈도가 여성에게서 2배 이상 높게 나타나는 궤양결장염이나 국소장염 또는 크론병과 같은 장의 염증성 질환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124쪽)

  ·······담낭 절제술이 결장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담낭을 제거함으로써 담즙이 계속 장으로 흘러들어 결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133쪽)


우울장애로 숙의치료를 했던 여성이 인사차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담낭제거수술을 받기로 예약했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했다. 나는 정색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물었다. 담즙 이야기를 핵심으로 결장암 이야기까지 하면서 예약 취소하고 치료 계획을 전면 재조정하라 일러주었다.


백색의학의 판단력은 여성의 몸이 남성과 다른 점에 유의하지 않는다. 백색의학의 주의력은 몸과 건강 전체에 미치지 못한다. 전공의 테두리 안에 갇혀서 요법의 포르노를 매력 포인트로 삼는다. 외과의사는 사람 몸에 칼 대는 일에 기탄없다. 내과의사는 조폭보다 더 잔혹한 범죄 집단인 제약회사가 만들어내는 백색화학합성물질 먹이는 일에 기탄없다.


남성과 다른 조성, 특히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담즙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앞으로 좀 더 면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담석증, 과민성장증후군, 기능성 장 장애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불안·우울을 포함한 정신질환과도 상호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동아시아 전통의학은 담(쓸개)을 중정中正의 기관이라 인식했다. 단순히 담즙을 담아두는 주머니가 아니었다. 우리말 ‘쓸개 빠진 인간’이란 표현은 지조, 바른 판단, 최후 결단과 같은 정신 작용을 담낭에 귀속시킨 사유의 반향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과학적 은유가 아니다. 위장관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 속속 밝혀지고 있거니와, 머지않아 담즙의 신비, 특히 여성 마음의 복잡한 결과 미묘한 겹에 닿아 있는 메커니즘이 드러나리라 본다.


담낭 질환에 여성이 취약하다는 것은 모름지기 사회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백색문명의 가부장체제가 초래한 성차별은 수천 년 동안 여성을 ‘쓸개 빠진 인간’으로 묶어 놓지 않았던가. 녹색의학은 와신상담의 세월이 발효시킨 성 인지 의학이다. 주어진 문제에서 정답 찾기만 하지는 않는다. 문제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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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소화 과정에서, 음식물이 위를 통과하는 시간은 남성이 여성보다 30% 빠르다. 액체의 경우 거의 2배나 더 빠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고, 다만 배란 호르몬 특히 프로게스테론이 여성의 위에서 음식물 통과 시간을 늦출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식사 후 여성은 남성보다 훨씬 더 포만감을 느끼고 트림을 자주한다.(121쪽)


앞의 두 문장과 뒤의 두 문장 사이에 어긋남이 있다. 왜냐하면 프로게스테론의 분비에는 주기성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프로게스테론 작용 때문이 분명하다면 앞의 두 문장에는 시기를 명시하는 부가 내용이 첨가돼야 한다. 에스트로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면 어긋남은 많이 해소된다.


프로게스테론이 소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메커니즘은 아직 잘 모르지만) 분명해 보인다. 에스트로겐(정확히는 에스트라디올)은 타우린 억제 기능을 한다. 타우린은 GABA 수준을 높이는 물질이므로 에스트로겐 분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히 GABA 활성 저하로 이어진다. GABA 활성이 떨어지면 소화주기가 늘어진다.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 분비 증가가 겹치는 월경 직전에 특히 많은 여성들이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가스가 찬다고 호소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한다면 일상생활에서 남성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자신도 월경주기를 점검하면서 배려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 식사 시간과 식단을 조정해야 한다. 식사 직후 하는 설거지도 남성이 대신하거나 그럴 형편이 아니라면 시간을 어느 정도 늦추는 것이 좋다. 그뿐만 아니다. GABA 비활성은 불안을 야기하므로 심리적 배려도 필요하다.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 시민이 이런 지식을 지닐 가능성은 매우 낮다. TV를 포함한 대중매체가 온갖 건강 관련 담론을 쏟아내지만 대부분 정보 포르노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삶을 의료화한 세상이면서도 정작 필요한 지식은 유통시키지 않는다. 돈독 오른 백색의학이 그려내는 씁쓸한 풍경화다. 월경주기를 고려해서 처방 조절하는 백색의사에 관한 소식을 듣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녹색의학 혁명이 필요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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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도 하단에는 위산과 음식의 역류를 막는 심장 판막 모양의 근육이 있다. 이 근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위의 내용물이 식도 하부로 역류해서 위식도 역류성 질환을 일으킨다.·······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여성에게 좀 더 높은 빈도로 나타나고 여성이 증상을 더 심하게 느낀다. 그러나 더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는 것은 남성 쪽이다.(120쪽)


흔히 역류식도염으로 불리는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 최근 몇 년 동안 유행병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아픈 증상 때문에 심혈관계 질환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계속해서 기침이 나는 경우에는 호흡기 계통 중병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질환으로 말미암아 천식이나 폐렴이 생기기도 한다. 통증이 견갑골 사이 등 부분이나 목, 팔 쪽으로 나타나는 것 때문에 단순히 정형외과 물리치료나 침 치료를 받으면서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그밖에도 인후 이물감, 만성 부비동염(축농증), 연하곤란, 쉰 목소리 등 다양한 관련 증상을 유발한다. 더 중요한 것은 치료 안 된 상태로 시간이 흐를 경우 식도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과식, 특정 음식물, 임신에서 비롯하기도 하고, 항 콜린제와 같은 약물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인 근본 원인은 정신적 스트레스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단순한 개인 생리 문제가 아니다. 사회 문제다. 정치경제 문제다. 여성이 이 질환에 더 높은 빈도로 노출되는 것은 남성가부장체제의 소산이다. 남성이 더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는 것은 적폐본진이 오랫동안 자행해온 정치경제적 수탈구조의 소산이다.


백색의학은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 지니는 소미한 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체를 기계로 여기므로 진단을 할 때도 내시경검사, 24시간 식도 산도검사, 식도내압검사 따위의 방법을 사용한다. 생활 전반 특히 정신적인 문제를 점검하지 않는다. 기계적 진단으로 병명이 확정되면 화학합성물질 처방하고 끝이다.


국내 최고의 어떤 양방병원에서 백색의학 방법으로 3년 동안 치료(?) 받았으나 전혀 차도가 없어 애태우던 어떤 분이 찾아왔다. 나는 대화와 간단한 손 진단으로 몸과 마음 상태 전반을 확인했다. 그의 끈질긴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한약 한 제와 침 치료 10여 회로 완치되었다. 소요 기간은 보름이었다. 그가 신기하다며 혹시나 해서 그러니 마무리로 한약 한 제를 더 지어 달라 해서 그리했다. 그 마무리(?)까지 포함하면 딱 한 달이었다. 녹색의학이란 이런 것이다.


극적인 효과에 의거한 말이 아니다. 병과 사람의 서로 다른 결을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결이 다르면 같은 병명이라도 치료의 길을 달리해야 한다. 백색의학에 길들여지면 아픈 사람조차 이런 진실에 귀 기울이지 못한다. 얼마 전 경추 디스크를 의심하며 목과 등이 아프다고 찾아온 분이 있었다. 목과 등에다 침을 놓아달라고 했다. 진단 결과 위식도 역류성 질환이었다. 나는 소상히 이야기해주고 치료 방향을 달리했다. 그는 내 진단과 치료를 신뢰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필경 당장 통증이 나타나는 곳에 집중하지 않은 것이 못마땅했을 터. 인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백색의학 적폐란 이런 것이다.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상당 기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많이 번져 가리라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다. 임상 현장을 지키는 의자로서 좀 더 세심하고 곡진하게 녹색의도에 배어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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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을 저해하고 혈액 중 해로운 저밀도지단백LDL을 제거하는 간세포의 능력을 강화시켜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을 예방하거나 경감시킵니다.·······

  스타틴이 여성에게 효과가 있고 안전하냐고요? 전반적으로 볼 때 이 약물은 효과가 높고 해로운 부작용이 거의 없어서·······가장 유용한 약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09쪽)


메리앤 J. 리가토가 이 글을 쓴 것은 적어도 책이 출간된 2002년 이전 일이다. 2013년 출간된 피터 괴체의 『위험한 제약회사』에는 스타틴을 전혀 상반되게 평가한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스타틴은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맹렬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제약회사뿐 아니라, 일부 열광적인 의사들도 마케팅에 앞장선다. 그러나 스타틴을 심혈관 질환의 1차 예방으로 사용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매우 적다.·······스타틴은 근육통과 근육 약화를 유발한다.(97-98쪽)


이 상반됨은 견해차 문제가 아니다. 의산복합체를 구축하여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제약회사와 그 마름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는 의사의 실체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안타깝게도 메리앤 J. 리가토는 의산복합체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이 ‘성 차이를 고려한 의학’ 연구를 위해 재정 지원을 한 대기업 P&G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기업500 가운데 10위라고 하니 대략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 안일한 태도를 눙치고 넘어갈 수는 없다. 그가 여성이 남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녹색의학의 지평을 활짝 열어 젖혔다는 사실로써, 고의는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조폭보다 더 부도덕한 제약회사의 손발 노릇을 했다는 사실을 상계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해두자. 스타틴은 예방 효과가 거의 없고, 부작용은 있다. 부작용으로서 근육통과 근육 약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도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대한 질환으로 이어지며 생사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여성은 월경부조, 우울증과 긴밀한 연계를 형성하므로 십분 주의해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한 사람의 지식과 사상이 모두 옳을 수도 없다. 한계와 오류는 누구에게나 있다. 관건은 각성 여부다. 각성할 때, 인정하면 된다. 인정할 때, 수용하면 된다. 수용할 때, 네트워킹을 향해 두 팔을 벌리면 된다. 네트워킹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의학이 바로 녹색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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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중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여성은 괴로운 경험이나 감정을 느낄 때 다시 약물에 손을 대곤 하지만 남성은 그 반대로 좋은 기분이 들 때 다시 약물에 빠진다. ‘좋은 기분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여성은 남성보다 약물중독에 다시 빠지는 빈도가 낮다.(100쪽)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즐거움을 더하고자 하는 마음이 같을 리 없다. 전자는 즐겁기까지야 바라겠느냐 괴롭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즐거움을 향락으로까지 극단화 하지 않는다. 후자는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좋다는 얘기다. 즐거움을 향락으로까지 극단화 한다.


극단화는 백색문명이 낳은 일극집중구조의 전매특허다. 음성 되먹임이 불가능한 무제약의 매혹이 도사리고 있다. 그 매혹은 문명 전체를 포르노로 만든다. 포르노는 백색인간의 숙명이며 저주다. 우리 자신이 이미 익숙히 몸담고 있는바 이제 포르노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중독이 아닌 무엇이 있단 말인가.


중독은 진정한 몸 느낌의 전체성을 상호 소외된 파편들에 사로잡히게 한다. 찰나적 각성과 지속적 몰각이 끊임없이 단순 반복됨으로써 향락은 타락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타락은 필연이다. 필연 속에서 백색문명은 멸망을 향해 달린다. 멸망일로의 백색문명에 백색의학은 땜질 시늉으로 삽질하며 부역한다.


담금질, 저 진정한 몸 느낌의 전체성을 복원하는 힘든 과정이 바로 녹색의학이다. 녹색의학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비대칭의 대칭을 이루며 인간의 삶을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이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이 불망의 약속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를 뿐만 아니라 더 야젓한 지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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