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7. 일. `나를 보내지마 (Never let me go)` - 가즈오 이시구로 /62

태어나고 죽는 일 그 숙명의 굴레 안에서
내가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느껴온 것, 내가 꿈꾸는 것.
그것은 어느 부분까지가 진실이고
또 어느 부분이 허상일까.
여기에서 진실의 반대는 거짓이 아니다.
실제론 있지도 않는 그것이
무언가에 반사되어 내 앞에만 피어난..
주로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으로서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이 불현듯 내 곁을 스쳐지나가고
나는 갑자기 소름이 끼친 채 멍하니 멈춰선다.

이 책은 그렇다.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학생`들이 성장하고 기증자가 되고
또 간병인이 된다.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간직하고
사랑을 나눈다. 혹시 모를 평범한 인간의 삶을 꿈꿔 보려다 이내 허락받지 못한다.

너무나 슬픈데 울수는 없다. 너무나 두려운 데 무서운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그네들을 앞에 두고, 감히 슬프고 무섭다는 감상에 빠질 수가 없는 그런 이야기이다.
자신들의 세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감히 그럴 의지를 세우지 않는다.
그런 시도를 해보는 것을 두고 고민하다 고민하다 수술대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간다.
감히 시도를 해보려다 `그건 아니되는 일`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고개숙인다.

이 책은 그렇다.
애써 열심히 클론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운좋게도 허락된 추억의 한 자락을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
또한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며 운좋게도 허락된 추억의 한 자락을 붙들고 살아가는 나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유민이가 엄마를 위한 책갈피를 만들어 선물해주었다. 빈티지 책갈피라며 스스로 가슴 설레 하는 모습이... 나에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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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식탁
윤고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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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3. 수. `1인용 식탁` - 윤고은 /61

내가 아는 사람 중 혼자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그가 떠오른다.
세상 누구보다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만 또한 깊은 심연에는 외로움이 가득차 있는...
그래서 떠올리면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나고.

항상 그리움의 촉수가 그를 향해서 안부를 묻고 안녕을 당부한다.
아마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수도 있는 그를 떠올리며 허공에 잔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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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2. 화. `무의미의 축제` - 밀란쿤데라 /60

# 도라지 이 발칙한 것. 네 감상이 어떨지 궁금하다며 감히 쿤데라의 책을 건넨... 이 발칙한 것. 아마 무심코 건넸으면 한달 뒤 쯤 펼쳤을터이지만...
약간의 강제성과 의무감이 함께 따라온 책이기에 열 책 뒤로 미루고 먼저 펼쳤다.
도라지... 넌 내게 그런 존재인 것이다. 이 발칙한 것.

# 의무감으로 펼쳤지만 쿤데라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끌어당기는 맛이 상당하다.
뭔말인지 머리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고 때론 목적지를 모르고 탑승한 버스처럼 살짝쿵 겁나고 막막하기도 하지만
쿤데라의 글에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예전 책들도 그랬지만 쿤데라의 책은 늘 넘기 힘들어 보이는 산처럼 보인다.
그러나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잊게 할 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탁월한 심리 묘사. 정치적 색이 짙으면서도 인간 본성을 관통하는 묘사로 그 무거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능력.
그리고 거장의 격이 다른 농담까지.
이 책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전작들에 비하여 너무 짧다.
짧은 글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것 같다. 원래 태생이 단편이라면 모르겠지만 명색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은 이야기들은 금방 읽어내는 반면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이야기 속에 동화되고 몰입할 충분한 시간이 없이 막을 내리는 아쉬움이란...
난 이제서야 비로소 시작하고 싶은데 이미 사라진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처량함이란...

# 웃자고 이야기한 농담과 비열하고 역겨운 거짓말, 제대로 구분하기도 어려운 그 한끝차이 일란성 쌍둥이.
일상의 무의미한 것들에서 더욱 깊고 큰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
일상과 축제의 경계에서 `기분 좋은 무언가`를 찾아 헤메며 소진하는 삶.
농담과 무의미와 축제. 아 지금 내게 필요한 3대 영양소를 만난 것 같은 느낌?
나를 `무의미의 축제` 그 한복판으로 이끈 채 유유히 사라져간 네명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조물주 쿤데라. 그리고 축제로의 초대장을 건넨 도라지. 이 발칙한 것들.
그래도 책장을 덮은지 한참 뒤인 지금까지도 자꾸만 베시시 웃음이 나는 것이 기분 꽤나 괜챦다.
축제를 한번만 즐기기는 부족하여 조만간 다시금 펼쳐들 날이 있을 것 같다.

# 소설은 언제나 그것을 읽어내는 독자의 행위로 인해 완성되는 또 하나의 세상, 결국 수백만 독자로 인해 수백만 세상을 만들어내는 마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금 떠오른다.
작가의 의도라는 것은 독자로서의 작가, 그 한 사람을 위한 것. 그 이상 그 이하의 의미도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인지 어째서인지... 쿤데라는 자신의 책에 평론가들의 분석이나 서평을 담지 않도록 하는 것에 유명하다. 프로필도 가능한 싣지 않도록 한다. 이런 모습에서도 작가의 카리스마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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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9. 토. `프리즌 호텔` - 아사다 지로 /59

난 왜 자꾸 `프리즌(Prison)`을 `프리즈(Freeze)`로 읽었을까.
아마도 지난 한달... 내 그릇 이상의 활동과 고민, 바쁜 일상들이 나를 `Freeze` 시켰기 때문인가 보다.
게다가 가정의 달 5월이 불러일으키는 묘한 긴장감과 부모로나 자식으로서나 부족한 나 자신에 대한 속상한 마음 등이 뒤엉켜
요 몇일은 말그대로 정신줄을 놓고 살았던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 책읽기 마저도 더딜 수 밖에 없으니.. 금단 현상도 겹친 듯 하다.

프리즌 호텔은...
인생을 감옥이라 여기며 고통받던 여러 인간 군상들이 야쿠자가 운영하는 온천 호텔에 모여들어 그야말로 힐링의 2박 3일을 보내는 이야기.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나도 2박 3일을 함께 했다.
여행자들이 우연치 않게 다다른 호텔에 주저주저하며 체크인을 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고
의외로 멋진 장소, 훌륭한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것에 놀라며 의외의 만족감이 번지고...
수국이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바라보며 겨울 온천을 즐기는 대목에선 함께 황홀한 기분에 휩싸였다.
한직으로 밀려난 지배인, 잘나가는 협객 소설 작가 ,정년 퇴직 노부부, 야쿠자, 동반자살 예정중인 가족들...
각자의 사연과 아픔이 그물처럼 촘촘하게 연결되더니 묘한 유대감이 싹트고 서로를 감싸는 정이 된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
삶을 회복시키는데 이것 이상의 것이 있을까.
나 또한 그 기운과 마음을 얻고 흐뭇하게 프리즌 호텔을 체크 아웃한다.
정신줄 놓지 말고 다시금 활기찬 일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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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5. 화. `밤의 여행자들` - 윤고은 장편소설 /58

`... 출장이든 여행이든 타국으로 떠난다는 생각을 하자, 오랫동안 닫혀있던 머리 위의 창문이 조금 열리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적당히 차갑고 낯선 공기가 드나들었다.... ` - p.34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주인공 요나가 `정글`이라는 숨막히는 직장을 떠나 쉼표 같은 여행을 통과할 줄 알았다.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새 인생을 시작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나도 그 `적당히 차갑고 낯선 공기`에 머리를 식히고 나로부터 거리를 둔 그 곳으로의 행보에 동참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나가 떠난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었다. 재난을 목격하고 경험하는 것을 테마로 하는 `재난여행`
`재난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작가가 상상해 낸 허구의 세계이긴 하나
상상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너무나 또렷하고 생생하다.
재난을 흥미로운 스펙타클로 바라보는 시각이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무런 기대도, 마음의 준비도 없이 만난 소설 안에서 서슬 퍼런 도끼가 튀어 나와 내 가슴을 내리 찍는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스스로 위안과 행복을 확인하는 인간의 값싼 우월감.
어떤 무리에 속해 있던 간에 역할을 벗어나는 이들은 결국 그 세상의 절벽으로 떨어져 내리는 슬픈 현실.

지금 이 곳이든, 저기 그 곳이든...
삶이 점점 재난, 재해,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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