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三南)에 내리는 눈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9
황동규 / 민음사 / 197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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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판 1쇄가 발간된 197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61쇄를 찍어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시집이다. 나는 시인의 <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기항지1>을 기억하고 있었다. 독재 정권 시대에 이렇게 말랑말랑한 감성을 노래하는 시인이 있다니 특이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 시집에서는 군 제대 이전까지를 1부로, 에든버러 유학시절부터 귀국까지를 2부로, 아이오와 대학 이후를 3부로 나눈 것 같다. 시대별로 1~3부를 정리했지만, 작가 연보와 비교해 보면 그의 인생에서 굵직한 사건들과 연결되는 것이 그러한 것 같다. 내 기억과 달리 시인은 전봉준을 비롯한 시대의 인물과 정서를 통감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도 잊지 않아야 할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노래했다는 인상이 짙다. 시대 변혁을 꿈꾸는 듯한 은근한 은유의 시들은 이해치 못할 정도의 깊이를 갖고 있다.

시가 끝나고 시인과 깊은 우정을 간직하였다는 김병익이 해설을 달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요즘의 시집에 의무적으로 달리는 비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우정을 나누고 시가 생성된 시기를 함께 했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시인과 시와 문학 일반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도 역시나 나는, 즐거운 편지와 조그만 사랑 노래와 기항지1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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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자서전 틂 창작문고 1
김혜순 지음 / 문학실험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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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을 기준으로 죽음에 대한 시를 썼다. 생과 사, 안과 밖의 대립들이 강렬하다. 어떤 시들은 지나치게 비장하여 올드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2019년에 캐나다 그리핀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죽음이란 소재와 주제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독자에게 소구되는 것 같다.

읽으며 궁금했던 것은 <아님>이란 시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하는 점. 상당한 분량을 한국식 언어유희로 끌어갔는데, 어떻게 번역했을지 보고 싶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꺼내 봐야 참뜻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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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대를 불렀기 때문에 문학과지성 시인선 500
오생근.조연정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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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 시인선 500권을 기념해 엮은 책. 문지 시인선 1호 시인 황동규, 마종기로부터 2000년대 발표된 시까지 세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국내 출판 최초로 500권의 시집을 발매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는데, 첫 번째 시집 이후 40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계산해보면 1년 평균 8권의 시집을 발매한 것이고, 한 달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 책이다. 계산으론 그보다 더 많은 시인들이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쓰고 있을 것 같다.

500권의 시집을 모두 읽어보지 않았고, 모든 시인들을 알지는 못했기에 이렇게 특별히 엮은 책을 통해 다양한 시인을 만나서 좋았다. 때때로 이미 읽었던 시들은 다시 보니 각별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한 시인 당 두 편의 시가 수록되었는데, 그것만으론 아쉬운 마음이 드는 시인들은 그들의 시집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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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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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임금과 조정의 모략에서 잠시 풀려나 백의종군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노량해전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서 끝이 난다.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이순신의 내면세계를 정밀하게 따라간다. 2001년에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심사위원들은 세 개의 대극을 발견했다고 한다. 제목에서 보이는 칼과 노래의 대극, 역사와 개인의 대극, 난세를 그리는데 순수한 문체의 힘으로 이야기를 솟구치는 대극이라 했다. 크게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이순신은 적인 왜구의 죽음을 보면서 생각한다, 죽음은 모두 개별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전쟁 중에 개별성을 획득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전쟁 중인 자신의 정체성을 적의 적이라고 일단 규정하였으나, 숱한 전투를 치르며 생각한다. 적의 개별성이야말로 나의 적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그 개별성의 몸을 어째서 자신의 칼로 베어 없애야 할 적인지 알 수 없으나, 물러설 수 없기에 그는 칼로 적을 벤다.

선조의 무능과 치졸한 마음이야 익히 알고 있는 바라, 다른 서적에선 그의 행태에 분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칼의 노래>에서 우는 임금을 바라보는 이순신의 시선은 가엾다는 것이다. 백성이 공의 앞에서 울 듯이 임금은 신하 앞에 눈물을 흘린다. 그런 미련한 임금을 가엾게 보고, 또한 자신을 겨누고 있는 적은 눈앞의 왜구와 북쪽의 임금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공은 늘 사지를 찾는다.

결국 노량해전에서 전사하며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먼저 적들 쪽으로 간다는 사유를 남긴다. 놀랍도록 고귀하고 놀랍도록 공감하게 되는 공의 고뇌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는 것의 무의미함,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무내용함이다. 그것이 작가의 깊은 고뇌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기에, 이 무의미함과 공허를 극복해 내야 하기에, 내가 먼저 적들 쪽으로 향하는 공의 안타까움을 남긴 것이 아닐지 생각했다.

김훈 작가의 문체는 그 뼈대만 남기고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하다. 역시나 이번 소설에서도 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문체의 힘을 크게 느낀다. 이문열의 문체에서 작가가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데 반해, 김훈의 문체에서는 탐할 수 없는 우아함과 고귀함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살벌할 정도의 냉정함을 동반하여.

동인문학상 수상 후기에 남겼던 임화의 말을 인용하여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이다’ 이 문장을 아로새기고, 허무와 공허함을 싸워 물리쳐 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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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깊은 집 문지클래식 2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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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를 나와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소년 길남이 대구 약전골목의 마당 깊은 집에서 보낸 시절을 쓴 자전적 소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이 배경이다. 4남매의 장남인 길남은 엄마와 가족들과 떨어져 살다가 대구로 올라왔는데, 곧장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신문팔이, 신문배달을 하면서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한다. 엄마는 바느질로 4남매를 키우며 부지런히 성실하게 일할 것을 중요하게 가르친다.

길남은 엄마에게 서운함을 느껴 자신은 데려온 자식일 거라 생각하면서 전후의 소년기를 겪는다. 마당 깊은 집에는 상이군인 가족, 평양에서 피난 온 가족(사상범이 되는 정태의 가족), 경기댁(말 옮기기 좋아하는), 김천댁과 길남네 가족, 그리고 안채 주인 가족이 살고 있다. 주인집은 사업이 불같이 번성하지만, 피난민 셋방살이 사람들은 고된 삶을 살아간다. 얄미운 사람은 있어도 모지락스러운 사람은 없고, 안타까운 사람은 있어도 도와줄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은 없다. 여름 장마철엔 똥물이 들어오는 것을 주인집이 모른 체해도 아래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이겨낸다. 엄동설한에 셋집마저 구하기 힘든 시절 주인집이 아래채의 방 하나를 아들에게 줘야겠다 하여 셋방 식구 중 하나가 나가야 한다고 하자, 엄마는 생전 처음 땔감 통나무를 구루마로 주문해 쌓아 놓는다. 통나무를 잔뜩 쌓아놓으면 쉬이 나가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라는 지략인데, 그나마 다른 두 집도 통나무를 들여놓는다. 형편이 가장 어려운 상이군인(준호 아버지) 네만이 땔감도 쌓지 못하고 속 타는 시절을 보낸다. 제비뽑기에서 진 엄마는 바느질 일감이 떨어질까 무서워 김천댁이 떠난 가겟방을 어렵게 웃돈 얹어 주고 살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늘 더러운 세월이라 한다. 만두 맛을 보게 해준 문자 이모의 자살, 막내 길수의 안타까운 죽음, 길남의 가출, 어른스러운 동갑내기 한주 등의 시절을 보낸 그 시절을 기억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정태(평양댁네 폐병쟁이 아들)의 꼬박 20년 수감생활과 출소 후 제정된 사회안전법 때문에 다시 감호소에 수감되는 미전향 장기수에 대한 이야기로 맺음 한다.

드라마로 방송되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현재까지도 꽤 많은 책이 인쇄되고 보급되었다. 전후의 속 깊은 아이와 아이들만 생각하는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그 시절에도 꿈과 희망과 갈등을 겪는 생생한 소년기를 그리고 있다. 생존에 직면한 어머니라는 인간을 그린 것도 인상적이다.

과하지 않은 감정으로, 그 시절 어려움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소식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진한 아쉬움이 여운으로 남는 책이다. 마당 깊은 집에 살던 사람들은 결국 주인집의 양옥집 신축으로 모두 이사를 가야 했고, 그들의 삶은 주인집의 흙더미에 묻히고, 그 기반 위에 주인집은 신축되었다. 그 시절을 묻어버린 누군가, 그 세월 속에 묻어있을 누군가들이 꼭 행복해졌기를 바라며 읽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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