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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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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나치당원으로 명성을 얻었고, 극작가였으며, 라디오에서 나치를 위한 선전에 열을 올렸던 주인공 하워드 W. 캠벨. 그는 연합군에 포섭된 스파이기도 했다.

전후 미국으로 건너와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던 캠벨은 이웃에 사는 러시아 스파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다. 그러자 이스라엘에서는 그를 전범재판에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미국 극우보수의 일원은 그를 지키려고 애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내가 돌아왔으나 알고 보니 러시아에 포섭된 아내의 동생이었고.. 그가 연합군에 협력한 스파이였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인데 그는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황.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며 그는 이스라엘 전범재판에 서게 되고 결국 그를 포섭했던 대령이 신분을 보증해 주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서문으로부터 편집자의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이미 소설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캠벨의 고백록 형식을 취하면서 아이히만, 괴벨스 등의 위선과 파렴치를 위트 있게 드러낸다. 단순히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을 핍박했던 과거에 머물지 않고, 전후 사회에서 공산주의와 인종을 빌미로 다시 한번 절대악과 적을 만들어내려는 네오나치의 움직임을 함께 그려 현재성을 더했다. 전쟁 서사는 읽기에 괴로운 면이 있는데, 이 책은 커트 보네거트 특유의 블랙유머와 패러독스로 경쾌하게 읽어나가는 신기를 발휘한다.

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캠벨의 행적 중 연합국 첩자였던 면을 부각시켜 그의 행동을 긍정하듯 정리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캠벨은 이미 나치 전범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첩자로 포섭될 수 있었고 본문에서 작가가 이미 지적했듯 “그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악에 봉사하고 너무나 은밀하게 선에 봉사했다. 이것은 그의 시대가 낳은 범죄였”다.

독일 나치와 유대인으로 생각하면 거리감을 두고 읽게 되지만, 이를 친일파와 한국 사회로 대입해 읽으면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주인공이 친일 인사였고 전쟁 막바지에 연합군을 위해 일했다고 하면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그런데, 작가는 독자의 고민을 여기서 고이게 하지 않는다.

“순수한 악을 물리치겠다고 전쟁을 일삼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꼴이 된다. 싸움을 벌일 이유는 많다. 하지만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전지전능한 하느님도 자기와 함께 적을 증오한다고 상상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즉, 인간 모두에게는 남에 대한 적개심이 있으며 이를 발휘할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총칼과 가스실이 있는 전쟁만이 아니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쉽게 적개심을 드러내며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말로 싸움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우리 안에 들끓고 있는 적개심, 증오. 누군가 이를 부추기려 할 때 우리는 건강하고 품위 있는 이성으로 이를 다스릴 수 있어야겠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애정, 인간에 대한 연민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또, 작가의 재기 발랄한 문장처럼 차갑고 무거운 순간에 유머를 발휘할 수 있다면 끔찍한 상황까지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는지.

뼛속까지 휴머니스트였던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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