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책. 문학을 통해 평생 구도하듯 실험해 왔다는 마루야마 겐지의 독특한 소설 <달에 울다>와 사건 전후 맥락의 모호함 속에 또렷한 메시지를 전하는 <조롱을 높이 매달고>가 수록되어 있다.

<달에 울다>에서는 형식적 독특함과 문장의 아름다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사계절을 그린 병풍을 소재로 하이쿠처럼 시를 써 내려간 소설이다. 내용면에서는 전체주의적 권력의 몰락을 그린 듯하다. 마을 촌장에 의해 죽은 남자, 그 남자를 때려잡은 아버지, 그 남자의 딸, 그 딸에게 사랑을 느끼는 주인공. 주인공이 10살, 20살, 30살, 40살이 되어 가는 시간을 병풍의 사계절과 교차시키고 그때마다 바뀌는 이들의 관계를 그린다.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절제된 문장에 압도되어 읽게 된다. 촌장의 권력은 마을을 휘어잡고, 촌장의 풍족한 곳간을 도둑질한 남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무참히 살해된다. 이들에게 명령한 이는 촌장, 남자가 죽은 날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며 시끌벅적하게 웃고 먹고 논다. 그날 마을을 떠났던 남자의 딸은 몇 개월 안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고, 꽃다운 나이가 되어서는 주인공과 육체를 나눈다. 여름의 열정에 빠진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를 사다리에서 떨어지게 만들어 불구의 몸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떤 죄책감도 없으나 그 딸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마을에 돌아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겨울이 되었을 때, 촌장은 아슬아슬한 도로에서 차가 전복되어 죽게 되고 촌장의 아들은 그의 권력과 권위를 그대로 물려받지는 못할 것이라 암시한다. 스무 살 이후 마을을 떠났던 여자는 초주검이 되어 돌아와 집 눈밭에 쓰러져 죽는다. 마을의 모든 역사를 지켜보는 주인공. 사건들은 인물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마치 계절이 지나고 세상이 변화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듯이. 인간의 안간힘이 작용하지 않아도 스러질 것은 스러지고 죽어야 할 것은 죽는다.

<조롱을 높이 매달고>는 재미는 덜했지만 인생 후반기를 기대하며 가족과 살던 곳을 떠나 고독과 환영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힘으로 읽게 된다. 모든 관계와 의무, 책임으로부터 떠나온 주인공은 피리새를 가져오고 싶지만 노인 때문에 항상 실패한다.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자살한 노인, 피리새를 얻은 주인공. 그러나 피리새의 조롱을 열어주고 그 마을을 떠나는 주인공. 피리새가 과연 열린 조롱을 떠날지 새장이 열린 것도 모르고 새장 속에서만 지저귈지 의아해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비슷한 메시지를 넣은 작품들이 꽤 되는데, 이 소설이 최초로 발표된 것이 1986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앞선 생각을 써 내려갔다는 생각이 든다.

부록으로 역자가 소개하는 마루야마 겐지에 대한 설명도 꽤 인상적이다. 작가가 지향했던 삶. 고립되고 고독할 것. 그 말을 보며 힘을 얻는다. 반드시 친구를 만들어야 하고, 어떤 관계는 부지런히 유지해야 하고, 수다스럽게 떠들어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줘 좋았다. 우리는 다른 모습, 다른 개성을 가지고 살아도 되니까. 이런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작가를 만날 때 기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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