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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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글은 수다스러운 친구가 주변 이야기를 들려주듯 친근하고, 편안하다. 자칫 긴장 풀고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슥 넘어가 버릴 때도 있다.

이 소설집은 중년에서 노년에 이른 주인공들이 겪는 세태와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관계가 가족에 머물며 그 안에서 인간의 위선을 폭로하곤 한다. 때로는 노동운동을 했던 신뢰관계의 동료인 ‘언니’에게 극심한 배신감을 겪게도 된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노년에 접어든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풍족한 생활을 하는 중산층 엘리트들이라서 말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나눠줄 부동산도 있고,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을 죽음 직전의 삶을 계획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발간되고 13년 후인 지금. 내가 보는 노년은 위태롭기만 하다. 전문직 중산층 엘리트보다 사회의 구석으로 몰려 폐지를 줍고, 버려지고, 소외되는 노인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적당하게 노후설계를 하지 못했거나, 사기를 당했거나, 원채 어렵게만 살아와서 모욕과 폭력을 견디며 여전히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더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노년 세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뉴스 사회면에 나오는 삶 외에 중산층 이상의 노년들은 이 소설집에 보이는 이들처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는 내 시각을 넓혀준 것이 사실이다.

각 단편마다 전복되는 결말이 밝혀지는 비밀들이 의외였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삶을 모두 겪은 이만이 수용할 수 있는 생각들이 시야를 넓혀준다. 대표적으로 넘치는 젊음을 낭비하라고 격려하는 것, 인간의 위선이란 결국 관계를 부드럽게 해주는 윤활유 같은 것이라 인정하는 태도 같은 것이다. 

더 이상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삶의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는 인물들에게서 편안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 해방의 감정, 노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타인의 평가와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 삶의 필요와 효용에 따라 살아도 충분히 짧은 인생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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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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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의 고통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책. 아니,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책.

상실, 실직, 부재 등의 결핍으로 비통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모든 고통에 수긍하면서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발생한 슬픔을 다룬다. 아직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적은 없기에 내가 겪었던 모든 상실의 기억과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며 읽게 됐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땐 분명 내가 고통의 당사자가 되어 저자들이 하는 말에 공감하며 내 상처를 위로받고 있다는 생각했다. 그런데 채 50페이지를 읽기도 전에, 나도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책임감을 갖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며 무책임하지 않게 그들을 위로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끝까지 읽게 된다.

고통의 순간에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혼란과 그것을 내색하지 못하게 막는 문화적 압박, 본능적으로 생존하고 보호받고 싶어 탐닉하게 되는 것들을 충분히 인정하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고, 그 사실을 인정한 후 이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사회적 죽음들, 그리고 유족들에게 쏟아진 정치적 의도의 폭력들, 비통해 하는 사람들에게 가한 관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족들이 느꼈을 고통이 현재의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 거대한 트라우마로 남았겠다는 짐작을 할 뿐이다. 그들에게 나 역시 한 쪽의 밧줄을 잡고 위로의 말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죽은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죽을 때 소중했던 사람이 있을는지, 죽은 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을는지, 그리고 내가 남겨버리고 가면 그 사람 곁에는 그 사람을 위로해 줄 사람이 있을는지 하는 고민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가까운 지인에게 이 책을 꼭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가 없을 때, 나로 인해 상처받은 그 사람을 적절하게 위무해 달라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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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 - 제3판 나남신서 410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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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성생활에 대한 담론, 그 담론을 부추기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연구한 책.

성이 권력에 의해 억압되고 있다는 인지, 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 본다. 반면, 푸코는 성에 대한 담론이 이렇게까지 많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해 성담론이 파생된 이유와 결과, 논의들을 살펴본다.

일단, 아무리 꼼꼼히 천천히 읽으려 해도 이 책을 전부 이해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부분 부분에서 동의하고 납득하기는 하지만 전체 논지에서 최종적인 푸코의 논지를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성과 성생활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할 정도로 공론화되었으며, 그로 인해 권력은 성을 보다 통제하고 규범화할 수 있었다는 변화 과정을 이해했다. 18세기로부터 부부관계 성생활만을 정상 범주에 넣었고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정상 범주의 성생활과 혈연으로 연결되는 헤게모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성담론이 활성화될수록 인종차별이 정당화되었던 역사를 집는다.

결론적으로 푸코는 성과 성생활은 사유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에 적극 동의한다. 특히 오늘날 인구감소 문제로 국가에서 출산율 장려 정책이랍시고 내놓는 야만적인 정책 때문에라도 푸코의 주장에 적극 동의할 수 있다.

푸코가 성, 성생활, 성 담론에 대해 강의하며 논의를 시작하고 이어간 시기를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1976년 발표되었다. ‘나에게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모토 아래 자유와 해방을 염원했던 68혁명 이후 채 10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인간 해방 속에서 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니까 푸코가 이렇게 담론이 활발할수록 권력과 지식이 침투해 간섭할 여지를 넓히는 것이라 지적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현대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 비혼 등 ‘비정상 범주’의 라이프 스타일, 성생활에 대해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럼에도 당사자들은 있는 것을 없는 척 부정당하기 싫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는 반면, 혹은 조용히 있다 하더라도, 그 반대급부로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이들을 부정하고 법체계 아래서 이들을 탄압하려는 의지를 밝히곤 한다. 이 논의가 발표된 시대와 이 글을 읽는 내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어떤 형태이든 간에 성생활은 개인적인 것으로 간직하고 개인의 판단 하에 비밀스러운 것 혹은 비밀스럽지 않은 것으로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권력에 의해 억압되는 성과 그 문제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고 논의되는 것들이 있어 평소 문제의식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성의 역사에서 지식과 권력의 의지가 차지하는 부분을 설명한 1권이기 때문에 마지막 권까지 읽어야 푸코의 논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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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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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1850년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화자는 초로에 접어든 변호사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이들은 일장일단이 있으며, 일이 많아 필경사 한 명을 새로 고용한다. 그가 바틀비다. 

바틀비는 구석진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화자가 지시하는 일에 대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저항한다. 화자는 정상 범주에 속하는 일을 시켰으나 그의 거부에 충격 받는다. 이후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숙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고 해 회유해 보지만 바틀비는 이유도 말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선택을 고수하고 실행한다. 해고했으나 바틀비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결국 화자는 자신의 사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겨 바틀비를 남겨두고 오지만, 마음에는 꺼림칙하고 불안한 마음이 남았다. 

이전 건물에 새로 들어온 변호사나 건물주는 바틀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화자이니 바틀비를 건물에서 나가게 하라고 위협하지만, 바틀비는 그 무엇도 말하지 않고 건물 주변에서 노숙인이 되어 갈 뿐이다. 결국 경찰에 연행되고 구치소에 감금된 바틀비는 먹지 않는 것을 택함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바틀비의 마지막을 화자는 지켜본다. 


바틀비라는 독특한 캐릭터,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지도 설명되지도 않는 이 괴팍한 캐릭터와 많은 함의가 담긴 이 소설은 소극적 저항을 비롯해 많은 철학적 담론에 소환되기도 한다. 


내 눈에 뜨이는 것은 바틀비의 예기치 못한 저항이기도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화자라는 캐릭터다. 사무실의 자본가이며 고용주이자 변호사인 화자는 바틀비의 대응에 처음에는 충격을, 이후에는 이해를, 차츰 회유와 멀어짐, 도망침을 택한다. 그러나 객관적인 정황상 화자는 처음부터 경찰을 불러 바틀비를 구치소에 보낼 수도 있었고,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명예와 고귀한 인격을 추구하는 화자는 우회적인 방법을 택해왔다. 그런 것이 용납되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바틀비를 이해하려 했던 시선이 있었고, 그의 마지막 순간에는 연민을 느꼈던 인간성이란 동지가 있었기에 바틀비는 소극적 저항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금 만약 어떤 작품에 바틀비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화자가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는 않은 우월한 계급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과연 바틀비의 행동을 기다려줄 수 있을까? 대뜸 경찰에 신고하고 내쫓으면 된다는 반응이 우선하지 않을까? 

아마도 우리 시대의 작가는 바틀비와 대적하는 화자라는 인물을 이해시키기 위해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바틀비가 그토록 소극적인 저항을 이어갔던 것에는 궁금증이 생긴다. 자기 삶을 의욕적으로 꾸려나가지도 않으며, 곁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바틀비는 그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무언가 마음에 드는 공간 혹은 순간을 찾았을 때, 내게 점유할 수 있는 서류상 권리가 없다 해도 그곳에 존재할 수 있는 권리.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한 권리. 소유도 점유도 할 수 없는 순간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라서, 먹지 않는 것을 택함으로써 죽음에 이른 바틀비의 생이 결국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바틀비는 신에게 저항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생명을 준 신에게, 그 생명 속에서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인간의 저항이란 먹지 않음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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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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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 선선한 바람은 육체를 시원하게 쉬게 하고, 강풍은 세상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휩쓸어 버린다. 인간의 마음에도 연약함과 강인함까지 그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있어 그 마음이 지나온 길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 되곤 한다.

이병률의 시는 지나온 것에 마음을 잠시 고여 있게 하다가 어느새 떠나있게 한다. 그 지나온 길을 먹먹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 목적을 지니고 떠난 길에서 극악한 마음을 외면하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나누고 오기도 하는 바람의 결.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풀어지곤 한다.

시의 마지막에는 신형철의 해설이 실렸는데, 그 또한 명문이다. 시인이 구체적인 장면과 심상으로 행간을 이어갔다면 그를 잘 이해한 비평가는 이별과 작별을 구분하여 해설하고, 엇갈림과 묵인이라는 형태로 작별하는 화자를 이해시켜 준다.

시인과 비평가의 글이 모두 좋기만 한 시집이다.

시집을 덮고 묻게 되는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이별을 짓고 있는가 같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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