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네 집 창비시선 173
김용택 지음 / 창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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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섬진강변 시인으로 이름을 높이던 시기의 시집.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시집 안에는 목가적 풍경 안에서 인간의 관계와 욕망을 유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가득하다. 집을 짓고, 여자를 기다리고, 집 같은 시를 쓰며 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언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어쩌면 너무 어린 나이에 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의 솔숲을 어느 정도 걸어온 지금, 낙담하고 절망하는 기분을 겪어 본 지금에서야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쫑긋 귀 기울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대 생의 솔숲에서>, <사람들은 왜 모를까>, <생각이 많은 밤>, <세상의 길가>, <푸른 나무>, <노을>이 특히 좋았다. 어떤 시들은 지금 읽기에 다소 투박하고 지나치게 옛된 감성인 것도 있었으나 그런 작은 허물쯤은 그냥 지나칠 수 있을 만큼 다른 시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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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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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꾸는 현직 부장판사의 에세이. 스스로 개인주의자라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선 우선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아야 하고, 이에 대해 소신 있고 용기 있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의 근원은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하며, 타인의 무언가를 비판하고 침해하게 될 때 그 원하는 것의 출전은 지성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자본주의와 근대적 합리주의를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사회를 제대로 만들고 나서 자본주의의 폐해를 말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연대와 희망, 담담한 낙관성으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배울 것이 많은 책이고, 오만하게만 생각했던 판사 직업군에 대해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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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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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에 비해서는 심심하게 흘러가는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인간 내면의 슬픔과 공허를 끈질기게 파헤치는 책 같다. 신흥종교에서 구원의 실마리를 얻은 남자가 흑마술을 이용해 죽은 딸을 부활시키기를 원한다. 그의 제물로는 4세가량의 여아가 희생된다.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한데 파벌(캐리어vs논캐리어) 간 갈등이 한몫한다. 더불어 매스컴은 무책임한 보도를 쏟아내면서 수사에 방해가 될 뿐이다.

여기까지는 지금 시점에선 특이할 만한 점이 없지만, 영리기업화된 신흥종교를 매우 구체적으로 취재한 흔적이 있다. 영민했던 사람들이 왜 신흥종교에 빠지는지, 삶과 재산을 탕진하면서도 그에 심취하는 이유를 심도 있게 다뤘다.

제목만 봤을 때, 사람이 통곡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생각했었다. 자식이 죽었을 때, 나라를 잃었을 때 정도일까. 여기서는 냉담한 주인공의 방식으로 통곡하는 순간을 그렸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을 맞닥뜨렸을 때, 사람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통곡한다.

책 표지에 이 책의 결말을 밝히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다. 냉담하고 느리게 흘러가던 소설이 15페이지 정도를 남겨놓고 갑자기 급물살을 만난 듯 빠르게 진척된다.

구원을 바라는 마음, 사라진 것을 부활시키고 싶은 마음, 과오를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통곡하게 만드나 보다. 냉정하게 보게 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선 싸늘한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희망 없는 세상을 견디는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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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520
이제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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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인기 많은 시집인 건 알았는데, 간기면을 펴 보고 놀랐다. 2019년 1월에 1판 1쇄를 찍었는데 2월 18일에는 무려 5쇄를 찍었다. 기대가 커 한 장 한 장 시집을 넘겼다.

대부분이 산문시. 어렵지 않은 말로 행간을 이어 나가는데, 그리고 있는 마음과 정서가 너무도 공감 가는 것들이라 놀랐다. 한 번쯤 또는 여러 번 나를 괴롭혔던 질문과 감정들. 그것들의 사이를 이 시집이 메워주는 기분이었다. 행간의 사이마다 생각할 여백이 생겼다. 다른 시를 읽으면서도 이런 적이 있었던가 묻자면, 이 시집이 처음이었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항상 남겨지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했다면, 실은 거기 남겨두고 떠난 것은 나 자신이란 생각도 들었다. 발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고뇌하고 고통받고 고투하는데, 시인의 믿음대로 라면 언젠간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성실한 희망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계속해서 걸어도 된다고, 꿈을 향해 가도 된다고 말해 준다. 어떤 문제의 안쪽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바깥쪽에도 있어봤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시선을 키워주는 것 같아 좋았다. 소장해야 할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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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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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놓고 한참 안 읽다가 8년이 흘러 읽었다. 쉽게 넘길 수 있는 페이지가 아니었다. 심연을 획득하는 시구들, 주요한 메시지를 흘려버리듯 눙치는 시였다. 감상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색다른 비유가 있었다. 생각이 병이라는 시인 자신의 말처럼,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시들이 보였다. 여러 편의 시가 눈에 들어왔고, 몇 편은 필사를 하며 읽었다. 그중 마음을 치고 갔던 말은 "다들 사소하여 다들 무고하다"는 말. 마음을 괴롭히는 무언가, 어떤 존재가 과연 내게 그토록 무게감 있는 존재들인가 생각하고 말았다. 표시해 놓은 페이지를 언젠가 다시 들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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