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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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그는 위대한 작가이고, 훌륭한 사람이다.

전쟁과 차별, 민주적이지 않은 자신의 국가를 비판하는데 유머러스해서 그 여유 있는 태도에 책장을 넘기다가 큭큭 웃었다. 내 웃음 속에는 미국과 불공평한 세계와 내 마음속에 있는 비겁과 이기적 욕망에 대한 아픈 인식이 있었다. 그의 유머는 대단하다.

그의 훌륭한 에세이에 대해 굳이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상을 향해 말할 때 어떤 태도가 더 나은 지, 그는 작품으로 보여줘 왔다. 진지하고 비참한 현실에 바짝 긴장하는 것보다 유머로 이야기하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짧은 에세이지만, 우울했던 오늘 하루를 가볍게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음의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반응하지 말고 생각하고 말할 것에 용기를 얻는다. 남의 생각이 늘 옳은 것이 아니다. 권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저 억측을 잘 하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틀러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세상에 ‘나’를 주눅들 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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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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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 선생이 발견해서 국내에 소개한 소설.

스물한 살 나이의 청년이 쓴 고요하고 적요한 여정.

(줄거리:해설 본문) 일단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18세기 베트남을 향하여 배를 타고 떠난다. 마음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이 여자 남자들은 미지의 땅을 찾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은 일 년이 넘게 걸려서 비로소 사이공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 그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런데 한편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산다. 선교사들은 그동안 모든 것을 버렸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은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155~156페이지

...마침내 그들은 도미니크와 카트린이 살고 있는 오두막집의 문을 열었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서로 꼭 껴안고 잠들어 있었다. 남자는 젊은 여자의 젖가슴 위에 손을 얹어놓고 있었다. 여자의 배는 땀과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을 했던 것이다. 깊은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육체를 서로 나누는 법이 없이 눈이 매섭고 말씨가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을 찾아내게 될 줄로 기대했던 것이다. 성직자들의 태연하기만 한 모습과 창백함에 군인들은 감동했다.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그들은 다른 마을로 떠났다.

145~147페이지

루이16세가 지배하는 베르사유, 외국의 힘을 끌어들여 왕좌를 되찾으려는 베트남의 우옌 씨. 혁명의 전조나 민심 이반 따위는 모르지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선교단을 파견하는 주교. 그들은 총과 대포를 배에 실었으나 그것들은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프랑스를 떠난 이후로 콜레라, 기후병 등으로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어느 다정한 마을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농사를 짓고 밭일을 하는 도미니크와 카트린. 베트남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의적이지만, 그것은 종교 때문이 아니라 카트린의 미소가 좋아서이다. 마을을 옮기고 외딴 마을로 들어갈수록 그들은 더욱 고독하고 외롭다고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스도 그들을 잊고, 그들도 점차 종교를 잊어간다.

담백한 정적 속에서 두 수도사들은 하나씩 내려두게 되고 최초의 목적 같은 것은 잊어버린다. 대신, 인간 본연의 고독을 체험하고 고요하게 스스로를 해방하게 된다.

서구 열강의 침입이 본격화되기 전 시대, 프랑스혁명과 베트남 떠이 썬 당의 난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이 두 사람만은 세상으로부터 잊혀가고, 그들도 세상을 잊어 간다. 그 격변의 시대를 덤덤하게 표현하고, 적요한 마음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문장이 참 좋았다.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 대뜸 민중과 서구 열강에 대한 경계심이 올라오지만,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아니었다고 긴장을 풀게 된다. 물론 중간중간 아시아인의 시각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게 아님을 알기에.. 까트린과 도미니크의 고독한 시선, 그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문학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논픽션이었다면 지루했을 수 있고, 역사로 보았다면 서구 열강의 왜곡이라며 분노했을 것이고, 사회학이었다면 프로파간다라고 맹비난했을 수 있다.

문학이라서, 좋았다. 읽을 만했다. 이 의미 없어 보이는 문장들이 마지막에 어디로 수렴할 것인지 따라가게 되고, 결국 소멸과 해방의 결말에서 그 아름다움에 탄식하고 만다.

김화영 선생이 해설에서 베트남 역사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에 낯선 베트남 역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의 다른 책도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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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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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다와다 요코가 독일어로 쓴 에세이.

다와다 요코에게 외국어를 접촉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외국어 뿐 아니라 모국어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언어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언어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보는 것과 드는 것, 새롭게 발견하는 행위를 멈추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19세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에 간 다와다 요코가 느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외국어와의 접점을 늘리려 하고, 이 에세이에도 다른 언어와 만나는 순간들, 그것들의 차이를 가지고 벌이는 언어유희들이 등장한다.

그녀의 에세이를 느끼며 상당히 내밀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 그것은 새로운 문화에 들어간 이방인이 낯섦의 순간과 그것을 흡수하는 시간들을 그냥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과 수없이 충돌하고 생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역자는 해설에서 다와다 요코는 큰 감정이입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지만 내용은 상당히 내밀하다. 스스로 느끼고 생각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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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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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 설립부터 회사를 유지했던 기조와 성장통 등을 기록한 책.

대학생일 때부터 시작했던 음악, 음악만으로는 수입이 어려우니 생계를 유지하는 일을 하며 병행하던 과정 등이 유쾌하게 기록되어 있다. 

음악을 잘 못하더라도 그저 박자가 맞는 음악을 하고, 음정에 맞는 노래를 부르고, 공연은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닌 보러 오는 것이므로 그에 호응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사람들. 음악, 미술, 경영, 마케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지 않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했던 사람들. 그들이 거친 세상에서 고유한 색깔로 대중을 사로잡기까지의 과정에서, 자기만의 감각을 찾고 지켜나가는 것의 가치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일의 기반이 된다는 것에서, 공감한다. 

대한민국에서 좋은 학벌을 가진 것이 이들에겐 메리트가 되긴 했지만, 번듯한 직장을 마다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열정도 쿨하게 느껴진다. 

독창적이지 못하더라도 독특하고자 노력하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것을 등한시하지 않았던 그 적당한 선이 좋았다.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적당히 하려던 것을 생각하고 발전시킨 방향들이 배울 만하다.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시작은 아마추어 같더라도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자기만의 생각과 지향점이 분명한 속에 그 감각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나간 것이 그들 독특함의 원천이 된 것이라 보인다. 가늘고 길게 유지할 것이지만, 꿈을 크게 꾸라는 것. 모든 것의 시작은 커다란 꿈이었다는 것에서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들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시대는 지금과 차이가 있고, 2020년 현재 그들의 홈페이지는 관리조차 되지 않고 다른 회사와 합병이 되었다는 소식이지만 그들은 또 어떤 색다른 행보를 보일지 기대가 된다. 

실행함에 있어서는 가볍게 생각하고, 꿈을 꿈에 있어서는 천하를 평정할 듯 거창한 것을 그리고, 내 일을 함에 있어서는 내 감각, 내 독특함에 자신감을 가질 것을 다짐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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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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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단편소설 중에서도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은 내게 어렵게 다가올 때가 많았다.

문장과 행간의 함의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이렇게 일상적인 행위와 의미 없어 보이는 서술을 이 짧은 단편에 담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의미조차 알지 못할 때가 있었다. 심지어 <대성당>은 3년쯤 전에 읽었던 책임에도 처음 읽는 것처럼 생소하기조차 했다.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가 표현하고 싶었으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무언가’인지 마음으로 와닿기도 한다.

김연수 작가가 번역한 판본에는 카버의 작품세계와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에 대해 친절한 해설이 있다. 번역문이었기 때문에 약화될 수밖에 없는 의미들도 해설 편에 짧은 원문을 실어 이 작품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다.

예전에는 카버의 작품을 읽으면 어딘지 찜찜하고 우울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대성당>을 읽으면서는 다행이다, 안도한다, 그래도 살아갈 힘이 있다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만난다. 특히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작품이 그러했다.

나는 그의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그저 이 작품을 통해, 어려운 생활 가운데 불행을 향해 걸어가는 어리석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벗어나야 할 것은 담담히 인정하고 삶을 향해 용감히 걸어 나가길 바라게 된다. 서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그저 달콤한 빵 조각 건네는 것으로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간결한 문장으로 미국 단편소설의 어느 경지를 이룬 것만큼이나,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인정했을 때 울림이 큰 작품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배운다.

카버의 다른 작품집도 다시 한번 꺼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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