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김화영 예술기행 김화영 문학선 4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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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고성 지대, 마담 보바리의 소설을 따라가는 여정, 파리 기행, 인도와 아프리카 기행을 수록한 김화영 선생의 산문집.

내게 김화영 선생은, 그가 없었다면 알베르 카뮈도 장 그르니에도 제대로 만나지 못했을 고마운 사람이다. 그는 프랑스 문학 번역에 큰 획을 그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헌데, 첫 번째 챕터인 예술의 성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관념적이었다. 아마도 유학 초창기에 썼던 글들이 꽤 있기 때문에, 프랑스 문학에 푹 빠져있던 젊은 날의 글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관념의 말들에는 보편적 진리가 표현되곤 하지만, 그것의 실체를 잡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그가 은유하고 상징하려는 것들의 의미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상상해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번째 챕터부터는 나도 언젠가 이 길을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마담 보바리>의 배경이 되는 루앙부터 리-용빌 라베이 마을, 또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들라마르의 삶을 추적하며 성실하게 기록해 주었다. 기행문과 사진을 통해 소설의 배경이 소개되니, 다시 그 책을 펼칠 때면 더 생생하게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파리 기행 부분을 읽을 때는 반성했다. 나는 파리에서 3년을 살았는데, 그가 기록한 내용의 절반 정도만 알뿐 모르던 부분이 많았다. 프랑스인들이 빅토르 위고를 그토록 사랑했었다는 것을, 작가의 유언과 개선문에서의 장례식, 거리 이름의 유래까지. 루브르 박물관 건축사의 구체적인 정황들을 놓치고도 있었다.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해 준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 노트르담 성당, 개선문, 콩시에르주리, 루브르 박물관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문학지식을 바탕으로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가미하여 설명해 주었기에 게을렀던 나의 여정을 반성하게 되었다.

선생은 책의 말미에서 말했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모든 것은 이별하기에, 생명은 이별해야 하기에, 삶은 이별 연습이라고.

언젠가부터 여행할 때도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았다.

내가 가려는 곳들에 대해 더 공부하고, 그곳을 만나고 잘 이별하고 돌아오고 싶어진다.

공간의 여정뿐 아니라, 내 삶 속 사람과의 여정에서도.

공들여 이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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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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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에 다시 읽은 위대한 개츠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책이 왜 그렇게 호평받고 미국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겼는지 이해를 못 했다.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를 3번 읽은 사람은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도 했는데,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김영하 작가가 번역한 판본을 읽으면서는 이해가 됐다.

데이지를 사랑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와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데이지, 빗나간 과녁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과 1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가 미국의 분위기까지.

자신과 다른 환경에서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데이지를 선망하게 된 개츠비, 선망을 위해 달려왔던 그, 결혼한 데이지 앞에서도 긴장한 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던 청년, 톰 뷰캐넌을 사랑한 적 없었다고 말하면 모든 것이 전과 같아질 것이라 말하는 눈먼 사람, 데이지의 살인마저 뒤집어쓰고 그녀의 연락만을 기다리다 끝내 죽음으로 향한 사람.

어떤 것을 향한 선망을 끝내 버리지 않는 개츠비에게서, 소설의 마지막 세 문단에서 마음을 두드리는 묵직한 어떤 것을 느낀다. 사실, 마지막 세 문단의 정교한 뜻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왜 이리 마음이 울리는지 모르겠다.

집념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개츠비가 위대했던 것은, 그 집념의 대상은 이미 처음 헤어지던 시절에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 의미를 살려내려 했고, 버리지 않았고, 도망가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무언가를 이토록 사랑하고 끝끝내 기다려본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의 날들에 내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의미가 퇴색된다 해도 본질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그리고 누군가를 한정 없이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인가 묻게 된다.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번이 두 번째 읽은 것이었으니 세 번째는 언제 읽을까. 그때도 마음속에 웅웅거리는 이 여운을 느낄 수 있을까. 인간을 향한 벅찬 존경을 느낀다.

김영하 작가의 번역본이 훌륭한 것은 소설 자체의 번역과 해설에도 있지만, 작가 연표를 정리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의 삶을 함께 정리해 주었다. 피츠제럴드에 대해 아는 바는 적으나, 젤다와의 사랑과 작가적 경쟁관계, 파탄에 이른 정신세계가 눈길을 끌었다. 반려자가 있는 작가는 결코 혼자 창작해내지 않는다.


개츠비가 사랑한 것이 데이지를 사랑하는 자신의 이미지였다해도,

약삭빠르게 도망가는 사람들 틈에서

그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랑과 믿음, 기다림은 위대했기에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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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범우문고 2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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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70년대에 법정 스님이 쓴 산문.

본래무일물에 입각해 무소유와 침묵, 평화, 자비 등에 대한 생각을 썼다.

본래무일물은 만물은 실체가 아니고, 공에 지나지 않으므로 집착해야 할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져주고, 손해 볼 때마다 나는 이 세상을 살기에 적합한 인간이 아닌가.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마음에 약을 발라주는 것 같은 글이다.

미혹한 인간으로 살면서 느끼는 공허감에 대해서도 답을 준다. 책을 읽고 침묵하며 자신의 마음에서 여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나는 여과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덮으면서 여전히 의문이 들기는 한다. 스님의 철학대로 사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서 분투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에게 적합한 행동일까. 아니면, 스님의 말씀대로 유일한 인생을 더 기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살면서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스님은 관계 속에 있으라 말했다.

그 조언 먼저 실천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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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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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읽으면서부터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

사카쓰키 시즈토는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다. 신문과 잡지, 뉴스의 기사를 보고 들은 후, 그 사람들이 죽은 장소를 찾아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여정 중에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주변에 묻는 것은 세 가지다. 망자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구로부터 사랑받았습니까, 사람들은 망자에게 어떤 것을 고마워합니까.

독자로써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상관없다.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해 끈질기게 파고들기 때문에 시즈토의 여정을 따라가면 된다. 우발적인 사고, 누군가의 괴롭힘으로, 누군가의 부주의로, 병으로, 스스로 죽은 사람들. 그들이 살아있을 때의 행적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시즈토는 인간을 판단하고 재판할 권리가 자신에게는 없다고 말한다. 그저,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받았고, 사랑했고, 고마운 일을 했으니 그것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는 것으로 애도한다고 한다.

사람은 회색 지대에 산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 언젠가는 찾아온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사람이 되는 것.

분량이 꽤 되는 소설이지만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시즈토가 애도하는 여정 중에 그의 어머니는 말기 암 환자로서 마지막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 봉사하고 좋은 것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들 시즈토를 기다린다. 어머니 준코가 죽어가는 순간 딸 미시오는 혼전 임신을 하고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 죽어가는 어머니와 탄생을 준비하는 딸의 신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불러오는 배, 변비 등으로 고생하는 것은 같다. 탄생을 기쁘게 맞이하고, 삶을 후회 없이 마무리하는 과정. 그리고 사라진 자들을 기억하는 것이 모든 삶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시즈토는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타인의 죽음에서 그의 삶의 흔적을 알게 되고 그 삶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것으로 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순간을 소중히, 작은 것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삶의 경중은 없으며 죽은 후에도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는 것.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나누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인의 죽음에 마음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기사는 가십으로 소비되고, 삶과 죽음이 가벼워진 시대에 꼭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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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개정신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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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과 <열하일기>에 대한 통찰이 돋보이는 해설서.

실학자로만 알려진 연암 박지원은 혈통으로는 노론 계파의 후손이지만, 자의로 정계 진출을 하지 않았다. 허생전과 호질 등으로 드문드문 절단되어 알려진 <열하일기>는 맥락을 파악하며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을 연구 결과로 해설하고 있다.

정조의 문체반정은 왕이 주도한 반정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그것의 원인으로는 열하일기가 꼽힌다. 당대에 열하일기는 패관잡설이라 저평가되었는데, 이는 ‘사이’에 머무르고자 했던 연암의 정체성과 관련 있어 보인다.

연암은 공식 사절단이 아니라 비공식 사절단으로 청나라 건륭제의 70세 생일 축하연에 따라가게 되고, 중원의 험난한 자연재해를 뚫고 연경(북경)에 도착한다. 건륭제는 몽골의 위협을 방비하기 위해 별궁인 열하로 떠난 뒤였기에,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연암 일행도 열하로 가게 된다.

그 여정에서 연암은 만주족, 한족, 관리, 저잣거리의 사람들과 필담을 나누거나 관찰하며 견문을 넓히고 이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그것이 열하일기다.

당시 조선 지식인 사회는 인조 이후로 소중화주의와 북벌론에 빠져있었다. 학교 다닐 때는 민족 자주 자강 노선의 북벌이 뭐가 나쁜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그 좁은 세계관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 물자와 인간이 교류하고, 우열 없이 다양한 세계를 만나지 못한 채 중국 한족을 대신해 인의예지의 좁은 시야를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열하일기 이후로 실학사상가들은 북벌이 아닌 북학을 발전시켰기에, 이 기행문의 확장성을 발견한다.

연암은 강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중도가 아니며, 어디로든 확장 가능하고 어디로든 가지를 칠 수 있는 길이다. 그가 교류했던 박제가, 이덕무, 홍대용, 백창수 등 당대의 실학자들과 무인의 면면도 짧게나마 만날 수 있었다.

또한, 남인 세력의 정약용과 박지원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론으로 실었는데 전혀 생각지 못했던 두 지식인의 면면을 보게 된다. 왕권 강화가 필요했던 정조는 젊은 정약용 등을 중용했고, 그들의 업적 또한 뛰어나지만, 정약용의 권력 중심을 향했던 시선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면이다.

고미숙 선생님은 젊은 연구자의 시선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좁은 지식의 틀을 깨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연히 <열하일기> 전문을 읽고 싶어진다. 또,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 등을 읽고 싶어진다. 들뢰즈를 읽지 않고서는 지금, 여기의 담론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문체도 특이한 편이다, 연암처럼. 여느 인문서, 대학교재 같지 않고 연암 박지원에 푹 빠져있는 선배가 그 마음을 담아 열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듯하다. 연암이 문체반정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고미숙 선생님도 기존의 질서에 항변하는 듯 자유롭게 그 지식과 감정을 모두 담아냈다. 교류하고, 변화하고, 영합하지 않으며 틀에 가두지 않는 사상과 포용력과 표현의 책임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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