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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선생님,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용서해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아베카와 겐지」
<구형의 계절>의 '온다 리쿠', <화차>의 '미야베 미유키', <용의자 X의 헌신>의 '히가시노 게이고'와 더불어 한국 서점가에 불고있는 소설계 일류_日流의 최선봉에 있는 빅4, 4인방, 4대작가, 4쿠라...(^^;)의 한 명으로 여성으로는 보기 드물게 하드보일드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잔학기>.
로맨스 소설 <밤이 떠나간 자리>로 데뷔한 이후, 여러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다가 <얼굴에 내리는 비>로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면서 본격 미스터리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기리노 나쓰오'는 냉정하리만치 정확한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관찰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인간 종족의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부분을 독자들이 부담스러워 할정도로 숨김없이 드러내는 치밀한 묘사로 정평이 나 있다는데 제목부터가 '잔혹'한 이 작품 <잔학기>에서도 과연 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러 낯선 곳에 갔다가 괴한한테 유괴되어 무려 1년 간을 감금당한채 절망 속에 살아야했던 열 살 소녀가 서른다섯 살의 성인으로 자라난 뒤 출소한 유괴범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그녀의 남편과 유괴범이 보낸 두 통의 편지로 시작되는 예사롭지 않은 서두와 함께 작품 속 작가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건 소설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기억에 대한 검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며 지난 25년간 감춰왔던 '진실'을 이제라도 밝혀 마음의 위로를 삼으려 하는 (어쩌면) 마지막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부터가 마치 체험수기를 읽는 기분에 빠져들게 하는데다 '겐지'한테 유괴당한 '게이코'가 그와 함께 1년 여의 세월을 보내며 겪게되는 좌절과 공포, 헛된 희망과 기대, 체념과 분노, 그리고 극적으로 구출되는 과정 등이 마치 바로 눈 앞에서 보고있는 듯 생생하게,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어 '게이코'가 폭행당하고 상처입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게되고(욕도 수차례 했다...) '게이코'의 기대가 무너져 낙담하는 장면에선 나역시도 그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에 눈가에 눈물이 글썽이곤 하게 만드는 '눈물나는 범죄소설'로 겉모습은 아이지만 그 속은 노인이 다 되어버린 '기타무라 게이코',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준채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을 '고미 나루미'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ㅠ_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작품은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한테는 특히 '게이코' 또래의 사랑스러운 자녀나 조카가 있는 사람들한테는(상처입을까 두려운 마음에) 결코 먼저 권하고 싶지는 않은 작품.;;
부모사랑 한창 받을 나이의 '게이코'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과 굴욕감을 독자들한테 고스란히 체험시킨 '기리노 나쓰오'는 정말이지 비정하기 짝이 없는 잔인한 작가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을 읽기가 두렵다...(그녀는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것일까?...)
덧, 월간 <판타스틱> 창간호에 실린 '미야베 미유키' 인터뷰 기사를 보면 신문지상을 통해 연일 보도되는 현실 속 끔찍한 사건들을 접한 '미야베 미유키'가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라며 개탄했다고 하는데 '기리노 나쓰오' 역시 한 인터뷰에서 "솔직히 이야기해서 앞으로는 더 어둡고 더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회라고나 할까요?"라고 말했단다. 뭐, 일본은 그렇다치고 그럼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우리 주위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있다...-_-)
덧덧, 작품 말미에 등장하는 게이코의 '고백'에 대해서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는데(범인은 '무엇'때문에 주인공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범인과 인질 사이에 연대감이 형성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고 본다.(그렇게 믿는다!!...)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범인의 손아귀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범인이 '조금이나마' 선량한 면이 있는 존재이기를(그래야 나중에라도 마음이 변해 자신을 살려줄지도 모르니) 갈망하는 상태에 빠져들다보니 범인의 자그마한/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좋은 점을 '굳이' 찾으려 애쓰게 되고 그로인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아닐거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뿐 범인과 인질간에 연대감이 형성된다는 얘기는 다 헛소리 내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성폭행의 경우도 마찬가지...)
덧덧덧, "맹목적 숭배가 살육보다 더 나쁘다."_<코란> 2장 190절.
살육보다 더 나쁜 것이 또 있다. '유괴 및 성폭행'. 모두 한 가정과 그 구성원한테 결코 씻을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 평생을 따라다니며 정신과 육체를 파괴시키는 행위로, 어쩌다보니(?) 우리나라도 사형제도 폐지국이 되어버렸지만 유괴범 및 성폭행범은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교화(?)되는 동안 피해자들의 불안은 누가 달래줄 것인가? 유괴범 및 성폭행범과 같은 가정파괴범한테 죽음을!!
"유괴 및 성폭행이 살육보다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