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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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예방접종 수첩에서나 보았던 단어, 폴리오.
과연 책 속에서 폴리오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왔을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단어가 주는 공포감에 익숙해지자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전쟁 트라우마와 같은 상흔을 남길 수도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 또 다른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라는 비디오 광고 문구가 익숙한 세대라면 전쟁과 질병은 거의 동급 수준의 공포감을 지닌 존재임을 알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인류를 지속적으로 떨게 했으며 백신이 개발되기까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최근에도 우리는 신종플루나 메르스 등 각종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감을 경험한 바가 있다. 그래서 더더욱 인간이 재앙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음을 잘 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불신과 증오의 확산이다. 질병으로 인한 공포가 그보다 더한 공포를 불러오는 셈이다.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던 사람들 중 과연 누가 누구를 가해자로 피해자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

때는 2차 대전 막바지, 전쟁터에 자식들을, 그리고 이웃들을 빼앗긴 이들에게 이제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노리는 질병이 퍼져나간다. 이야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이들의 바깥활동이 염려스러울 만큼 달아오른 미국 뉴어크. 그 마을에서 캔터는 체육교사로 아이들을 관리 지도하고 있다. 친구들은 이미 전장으로 떠났지만 유독 시력이 나쁜 이유로 그는 갈수 없었다. 건장한 그에게 그것은 늘 수치심이다.

이미 마을 주변은 폴리오 소식으로 뒤숭숭했고 이곳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감염되고 죽음을 맞는다. 굳건했던 마음도 지독한 더위와 부모들의 원망에 흐려지고 만다. 그리고 때마침 인디언 캠프에서 일하던 연인의 제안으로 그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홀로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매시간이 혼란스럽다. 그리고 모든 원망은 서서히 신께 옮아간다.


" 하지만 행복을 느낄수록 수치심도 강해졌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님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 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 p.156∼157

하느님 이야기를 하자면, 인디언 힐 같은 천국에서 하느님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1744년 여름 뉴어크에서는 -혹은 유럽이나 태평양에서는-그렇지 않았다. -p.179

그는 떠나왔지만 비난의 목소리와 그를 신뢰하던 아이들 생각에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그는 그만큼 책임감이 강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캠프장에서 폴리오 환자가 발생하고 그가 보균자란 사실이 밝혀진다.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그 상황에서 내가 굳건히 믿고 있던 신념들이 무너지면 신의 존재도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내내 캔터가 안타까웠고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인생의 뒤편으로 숨어버려도 그를 이해했다.
그러나 작가는 마지막에 가서 새로운 화자를 등장시키며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폴리오를 앓았고 제자였던 그는 캔터와는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어쩌면 캔터로 인해 병을 얻었을지도 모를 그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도 있고 스스로를 극복하며 생을 살아내고 있다. 이는 캔터와는 너무나 정반대의 삶이었기에 그 시점부터 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여태 한 남자가 재난 앞에서 어떤 인생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 할애하다가 트라우마를 이긴 쪽과 그렇지 못한 두 가지 상황 앞에 놓였으니 말이다. 내내 캔터를 두둔하고 있었는데 화자를 보니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신을 향한 원망은 캔터의 태생과 가정환경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그는 신 앞에서 피해자이자 가해자에 놓인 것 같은 복잡함에 놓인다.
결국 자책감으로 자신을 가두어버리고 연인과의 행복마저 포기해버린 그.
화자의 등장으로 인해 그는 그의 선택을 후회했을까.
그리고 우리는 캔터의 선택이 마냥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캔터는 화자를 통해 조금의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자신보다 나은 생을 살고 있는 그를 보면서.

불완전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삶에 대해 자부심과 책임감이 강했던 그였지만 폴리오로 인해 무너지면서 잘못된 책임감을 떠안았다. 자기의 고집스러운 판단이 때로는 자신에게 독이 됨을 깨달았어야 했다.

우리는 아무런 근거 없이 우리 자신을 가혹하게 심판하기도 해.

하지만 잘못된 책임감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다네. -p.107

'어쩌면 그가 실제로 보이지 않는 화살이었을지도 모른다'라는 화자의 말을 곱씹어 보니 나의 좌우명이기도 한 '너 자신 외에 너에게 상처 입힐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불가항력의 재난 앞에 인간과 신의 관계를 따져 묻다 또 다른 화자의 시선을 내세워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은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라는 깨달음이다.
물론 인생의 다양한 변수앞에 한결같은 깨달음을 적용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게 나의 일이 된다면 말이다.

하지만 인생의 길은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내가 가는 길이 바로 길임을 안다면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때로는 불리한 상황에서 조금 내려놓았을때 오히려 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경우를 경험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운은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누구의 인생이든 우연이며,

수태부터 시작하여 우연-예기치 않은 것의 압제-이 전부다.
나는 캔터 선생님이 자신이 하느님이라 부르던 존재를 비난했을 때 ㅡ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p.243

자신에게 맞서지 마세요.
지금 이대로도 세상에는 잔인한 일이 흘러넘쳐요.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지 말라고요. -p.273

한가지 덧붙이자면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복수의 여신으로 모든 ‘과도함’, 즉 지나친 행동이나 오만(히브리스)을 벌한다. 라고 나와있다. 그렇다면 캔터가 자기 자신에게 내린 가혹함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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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권 통합본]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 9 : 혁명의 시대 - 산업 혁명, 미국 독립 혁명, 프랑스 대혁명, 나폴레옹의 등장, 독일.이탈리아의 통일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 9
차윤석 외 지음, 이우일 그림, 김경진 지도, 박병규 외 감수, 박기종 설명삽화 / 사회평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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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처음 접할 때 제일 우선적으로 고려할 점이 분량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나 아이들을 위해서 책을 선택할 때는 그 시대를 얼마나 흥미롭게 엮었는지부터

시각적 요소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용선생 세계사는 그 어떤 책보다 그런 점이 우수합니다.
용선생은 시끌벅적 한국사 뿐 아니라 만화 한국사도 재밌지만 개인적으로 세계사 시리즈는 소장 욕구가 넘치는 책입니다.
특히 다음 권수가 탄생하기까지 집필진들은 최고의 실사를 담아내기 위해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지역을 직접 찾았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져서일까요?
따끈따끈 새 책을 받고서 사진부터 후루룩 넘겨보게 되었답니다.
최근 사진뿐 아니라 세밀화는 감탄을 자아냈고요.
웃음을 유발하는 만화 컷과 간략 지도도 이해를 돕는데 한몫하고 있네요.

 

 

전체적 맥락과 단락별 구성을 살펴보니 각 단락의 첫 장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나라의 모습을 가득 담고 있어요.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그 나라의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으며 더구나 현재의 모습이라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그리고 해당 지역을 확대한 지도와 도시별 간략 설명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인데요.
그리고 각 나라별 특징을 특색 있게 뽑아 놓고 있어서 낯선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장소, 명물, 문화, 음식까지 아이들과 같이 보기에 더더욱 흥미 있는 소재였어요.
단락의 끝맺음의 세계사 카페에서는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요.
세계사의 뒷이야기는 이야기 소재로 좋기에 알고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 ● ● ●

 

 

 

벌써 세계사도 그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네요.
이번에 출간된 9권과 10권은 세계사에서 중요도가 꽤 높은 부분이라 관심이 많았던 부분입니다.
독서량이 늘어나고 범위가 확대되어감에 따라 세계사에 대한 관심도도 자연스럽게 커졌는데요.
특히 산업혁명이나 1차 세계대전은 자주 접했던 시대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답니다.
큰아이가 알고 있는 혁명 정도는 산업혁명과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혁명 정도뿐이라
함께 읽기에 진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 한번 본다고 알 수 없으니 중학교를 대비해 자주 관심을 가지고 보게 해 주어야 할 것 같았어요.

 

 

 

인류는 혁명에 혁명을 거듭하여 발전해 왔죠.
그래서 9권의 타이틀도 혁명의 시대입니다.
6교시까지 각 나라별 혁명들을 살펴보면서 전체 흐름을 잡아나가면 될 것 같아요.
유럽, 미국, 라틴 아메리카로 이어지는 세계적 변화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할 거예요.
놓치지 말아야 할 사건과 인물들이 꽤 많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 많은 분량을 이해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더욱 사진 자료가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특히 세계사의 뒷이야기는 관심도를 끌어내기에 좋았던 것 같아요.

 

 

―――◆◆―――

 

 

뭐니 뭐니 해도 세계사의 큰 전환점은 산업혁명일 것입니다.
그래서 1교시도 영국의 산업혁명부터 문을 열고 있어요.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산업의 변화에 주목할 것은 도시입니다.
맨체스터, 리버풀, 버밍엄을 중심으로 한 산업의 부흥기가 어떻게 시작되고 활발해졌는지 살펴보고
산업혁명과 함께한 신제품들과 도시의 변화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좋았던 부분은 QR코드였는데요.
일일이 찾지 않아도 되고 바로바로 아이들에게 영상을 보여줄 수 있어서 반가웠어요.
말로 하기 힘든 부분은 영상만 한 것이 없지요. 세밀화 그림도 빼놓지 않고 덧붙여 놓았습니다.

 

 

 

영국 편에서는 세계사의 뒷이야기로 축구를 빼놓을 수 없지요.
지금이 월드컵 시즌이라서 더욱 관심도가 높아졌어요.
축구가 노동자의 삶을 반영한 운동이었다는 점부터
지금의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하기까지의 역사를 알게 되어 흥미를 끌어내기 좋았어요.

 


 

 

이어서 2교시는 세계의 최강대국 미국 편입니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미국이란 나라의 탄생 과정부터 독립하기까지의 과정이 이야기처럼 잘 기술되어 있는데요.
미국의 영토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가슴 아픈 역사도 뒤돌아보게 됩니다.
살고 있던 터전을 무자비하게 빼앗기고 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생각으로 영심이도 나선애도 화가 단단히 났네요.
영토 확장으로 인한 욕심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슬퍼했는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어요.
그래야 다시는 그런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양한 이민족을 받아들여 세계 강대국으로 성장한 그들의 패기와 열정은 높이 사야 하겠지요.
뒷이야기로는 미국 화폐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미국의 선거 과정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교시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을 혁명의 바람으로 이끌었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3교시에 이어 4교시까지 이어집니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는 나폴레옹의 활약상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유럽 여러 지역에 미친 비중도 크고요.
비록 혁명은 실패하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성과를 이루어내죠.
국민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결과로 볼 수 있겠네요.


 

 

5교시는 여러 민족이 얽히고설켜 있던 땅 위에 서서히 민족주의의 바람이 불던 유럽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국민들을 하나로 단합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배워보면서

자연스럽게 사상이나 나라 간 외교 등에 대해 알 수 있어요.
복잡한 나라들이 정리되어가는 과정도 복잡해서 순서대로 기억하는 일이 쉽진 않겠지만
중요 인물과 사건을 잘 연관 지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나폴레옹 3세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인물이란 사실을 함께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죠.


 

 

6교시는 라틴아메 리카들의 독립에 관한 부분인데요.
그들의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이 복잡한 만큼 생소한 부분이 많네요.
신분으로 묶인 억울한 사람들의 투쟁과 독립을 이끈 인물들을 만나보며 기억하면 좋겠어요.
여전히 분쟁이 끊이지 않는 땅이지만 먼로 선언 이후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에 이어

7교시는 미국의 발전에 대해 한 번 더 짚고 갑니다.
철도와 운하를 건설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지만 남북부의 갈등으로 남북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흑인에 대한 차별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죠.
세계 각지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문학책에서도 다루고 있어
찾아 읽어 볼 것도 권하고 싶네요.

 

 

 

8교시는 산업혁명과 사회주의에 관한 부분인데요.
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는 발전을 거듭하지만 나라 간, 계층 간 빈부격차는 더욱 심화되지요.
또한 힘겨운 노동자들의 삶으로 인해 부각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짚어보며
현재는 어떤 형태로 진화되어왔는지 살펴보게 되어 유익하였습니다.
아직까진 정치나 사상이 낯설고 어려울 테지만
이렇게 접근하면서 짚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각 단락을 읽고 나서 한 번 더 정리하고 문제를 풀어 볼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되지요.
나선애의 정리노트는 아이들 노트 정리에 도움이 될 것 같고요.
큰 맥락을 이해하는데 좋습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몇 문제를 풀어보며 얼마나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테스트해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아이들에게 세계사는 아직 어려운 시간입니다.
그러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겠죠.
용선생 세계사는 아이들뿐 아니라 세계사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보기에도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아요.
두고두고 보기 좋은 책이기도 하고요.
용선생 세계사를 한 권 한 권 읽다 보면 세계사 공부에 흥미를 가져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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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여름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4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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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워 보이는 무민가족의 일상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 다만 돌아와야 할 스너프킨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널어 놓은 빨래 위에 검은 먼지가 앉자 불 뿜는 산의 활동이 시작됨을 알게 된다. 그러나 대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해일이 밀려든다. 온통 물바다가 된 상황인데도 무민 가족은 심각하지 않다. 마당에 있던 해먹 걱정과 만들던 돛단배 걱정이다.
다시 산은 조용해지고 여전히 물은 일층을 점령 중인데도 다음날 엉망이 된 마당을 보면서도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예전 모습이 더 좋았는데."라고 할 수 있는 내공을 배워야 하나?

무민가족은 그냥 처한 상황을 받아들인다. 이미 일어난 일에 심각하거나 우울함으로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거꾸로 떠다니는 가구에 웃음이 터지고 간절한 커피 생각에 뚜껑이 닫힌 커피통이 반갑다. 이미 설탕은 녹았지만 시럽을 찾아내는 행운도 즐긴다. 물론 짜증 내거나 심각한 이웃도 있다. 또 다른 이웃 훔퍼는 현명하고 긍정적이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이 어쩌다 일어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만 하면, 큰 파도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일 거예요. - p.37

다시 물은 차오르고 무민 가족은 지붕으로 피신하고 건져야 할 가구를 생각하는 사이 떠내려오는 새집을 발견한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큰집이라니.....
천만다행으로 새집으로 옮긴 무민가족이지만 어째 분위기가 조금 으스스하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집안 풍경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누군가로 인해 공포물을 보고 있는듯한 나와는 달리 무민가족은 안정을 찾아간다.

점차 집의 정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집의 주인이 얼굴을 내밀면서 그곳이 연극 무대란 사실이 드러난다. 여전히 미스터리한 분위기에서 미이도 사라지고 무민과 스노크에이든도 사라진다. 그리고 무민파파와 무민마마는 공연을 하면 사라진 이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공연 준비에 분주해진다. 연극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무민가족이지만 연극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냥 외로움에 숨어 지내던 집주인 엠마는 공연이 가까워오자 기운이 솟아난다.

 

인생은 뜻하지 않는 난관의 연속이다. 무민가족 또한 홍수로 인해 살던 집을 잃는다. 임시로 머물던 곳에서 또 가족과 흩어진다. 그러나 어떻게 역경을 뚫고 나가야 할지 알고 있다. 공연이 곧 삶이다. 인생의 무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소화하면 된다. 조화롭든 그렇지 않든 그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투덜쟁이 미이도 소설 속에서 나름 사랑스럽게 표현되고 있지 아니한가. 어떤 일이든 생각한 대로 그리고 맘먹은 대로 흘러감을 무민가족을 통해 보여주는 듯하다. 그렇게 고난은 스스로를 성장시킨다.

무민마마는 자신이 무민마마다워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무민 가족은 노를 저어 외로운 산을 지나쳤고 무민 마마는 다음 산모퉁이를 지나면
무민 골짜기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190

뭐니 뭐니 해도 행복한 순간은 모험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물살을 헤치고 걷는 걸음걸이에 기운이 실린다. 위험한 여름은 막은 내렸지만 물이 빠진 해먹을 보며 색깔이 더 예뻐진 것 같다고 여길 수 있는 여유로움도 안도감 때문이리라. 다음 편 무민의 겨울은 또 어떤 느낌일까. 위험한 여름이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았듯이 무민의 겨울도 따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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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파파의 회고록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3
토베 얀손 지음, 따루 살미넨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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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또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참 신기할 때가 있다.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마치 그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다. 핀란드에서 태어난 무민은 이미 국내에서도 꽤나 친숙한 이미지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친구다. 아이들 동화책이나 인형 및 각종 팬시용품에서 많이 보아왔으며 그 생김새의 친숙함으로 성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더불어 무민 가족의 이야기는 잔잔한 즐거움을 준다.

요즘처럼 일상에 지칠 때면 동화처럼 잔잔하고 엉뚱하면서도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런 이야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깊고 복잡한 사고를 벗어던지고 단순하고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이야기들 말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여도 또 나름의 무언가를 얻기도 한다. 그런 바람을 타고 온 보노보노나 무민 시리즈가 사랑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무민은 자연친화국인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로 토베 얀손의 작품이다. 우선 무민을 잘 모른다면 좀 더 찾아보길 권한다. 하마 캐릭터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트롤이 원형이다. 그리고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도 삽화를 통하는 것보다 원화를 참고하면 더 재미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무민 가족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핀란드의 삶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무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할정도로 무민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내가 무민 시리즈에 대해 본격적인 호기심이 생긴것도 이 때문이다.

 

 

 

시리즈를 1권부터 읽었어야 하는 게 맞겠으나 3권인 무민 파파의 회고록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처음부터 시작함을 권한다. 감기몸살이 심해진 무민파파는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무민마마는 그런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회고록을 써 볼 것을 권한다. 무민 골짜기에 오래도록 남겨질 모험담에 한껏 기운을 차린 무민파파는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첫 장은 무민파파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늘 호기심이 많았지만 그와 상대해 주는 이가 없어 불편했던 일상을 털어놓는다. 왜?라는 질문으로 늘 관계에 불편함을 겪고 외로웠던 그는 진정한 모험가가 되기 위해 보육원을 탈출한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호기심을 보인 호지스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진정한 모험이 시작됨을 직감한다.

커피 통 속에 살며 단추 수집광인 머들러와 몽상가 같은 요스터와 함께 바다 관현악단배를 띄우는데 성공하지만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보육원의 헤믈렌 이모를 구조하는 황당한 일도 겪는다. 그는 그의 이야기를 무민과 스너프, 스너프킨에게 들려주며 궁금증을 키워 나간다. 독자들도 무민처럼 낯섬과 변화무쌍함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5장부터는 모험담에 더욱 재미가 더해진다. 거짓말이 일상인 민블의 딸과 독재자의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파티, 12시에 무슨 일인가를 벌일 듯 하지만 결국 유령마저도 친근하게 만들어 버린다. 무민 파파의 모험이 마냥 부러운 민블의 딸은 모험을 동경한다. 민블의 막내딸 미이의 탄생시기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고록으로 흥분감에 들떠 있는 사이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새날의 문을 열어젖힌 무민가족은 또 어떤 모험담으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할까.

현실을 뒤로한 무민 골짜기의 삶에서 철학적 의미가 느껴지는 건 팍팍한 현실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토베 얀손도 철학적 요소 없이 오로지 재미를 위해 이야기를 써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굳이 의미를 찾으려 말고 그냥 즐겁게 읽으면 된다. 읽다 보면 가끔 아! 하는 구절이 보이게 된다. 그게 이야기의 숨은 묘미 아니겠는가. 무민의 팬이 되고 나면 무민 테마파크를 방문하고 싶어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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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의 진실 - EBS 다큐프라임_교육대기획
EBS 다큐프라임 「대학 입시의 진실」 제작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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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대학을 가야 한다는 한국의 현실, 이 얼마나 참담한 이야기인가.
여전히 대학문을 향해 십 대 시절을 고스란히 책상에 묶여있는 아이들의 삶은 언제쯤 해방기를 맞이하게 될까.

난 수능세대다. 학창시절 밤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했던 결심하나가 있었다.
내 아이만은 절대 획일화된 교육시장에 끼워 넣지 말아야겠다고.

그렇게 이십 년이란 시간이 훌쩍 흐르는 동안 무관심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학부모가 되었다. 가끔은 조용조용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의 이야기나 특정 지역의 지나친 교육열에 대해 들은 바가 있긴 하지만 학생부 종합 전형에 관한 것들은 관심 밖이었다. 간혹 중학교 엄마들이 아이들의 스펙 쌓기에 관해 불만을 토로하는 정도는 들은 적이 있었다. 엄마들이 시간을 내어 봉사시간을 잡아주거나 각종 대회 일정을 체크하는 걸 보면서 대체 엄마의 손이 어느 선까지 미쳐야 하는 건지 되물었던 적이 있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시작은 좋았다. 지나치게 획일화된 입시교육에 적잖은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욕심이 과한 이들은 넘쳐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교육도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교육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든 간에 지 사교육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부와 권력이 있는 집단들의 교육의 질이나 기회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학생들의 개성을 반영하는 학생부가 학생을 망쳐가고 있다. 선진국에서 바라본 한국의 학생부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과반수다.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임엔 틀림없다.

전체적으로 교사들이 작성하거나 대학 입학 담당자들이 읽기에 양이 너무 많다.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에는 이런 수상내역을 쓰는 란이 일절 없다는 것이었다. -p.122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이미 작년에 TV에서 방영이 되었던 내용들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의 이점을 악용한 사례와 공평하고 공정하지 못한 채 점점 변질되고 있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제보와 조사를 통한 팩트라는 사실이 더 믿기지 않았다. 돼지엄마, 몬스터 엄마라는 용어도 처음 접하였지만 학교와 선생들이 혼연 일체가 되어 선택받은 아이들의 학생부를 조작한다. 학생이 어떻게 하면 스펙이 서른 장까지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하다. 만능 천재인가? 그렇게 누군가는 편법으로 올라서고 누구는 미끄러진다. 시작도 못 해본 게임인데 벌써 져 있다. 듣기만 해도 억울한데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래가 어찌 희망적이겠는가.

또한 부모의 손에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들이 어떻게 삶이 즐거울 것이며 능동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겠는가.
부모와 아이들은 더 이상 행복할 시간이 없다. 떠밀고 밀려가고 그러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 부모가 떠밀린다.

세계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하지만 행복지수는 최하인 나라. 왜 여전히 이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대한민국의 지나친 경쟁구도와 지나치게 부에 편중된 사고방식이 가지고 온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개개인의 의식전환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돼지엄마와 그들을 따르는 새끼 돼지들의 의식이 변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는 하다.

결국 학생부의 문제를 인식하였으니 선진국을 벤치마킹해서라도 수정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자발적이고 긍정적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교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독서가 학생부 스펙용으로 이루어져서야 되겠는가? 얼마나 읽고 어떤 책을 읽었는 지로 어떻게 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한단 말인가. 자발적 봉사가 아닌 학생부의 장수를 늘리기 위한 봉사가 올바른 인성을 길러줄 수 없음은 당연한 결과이다. 내 아이만 잘 되고 또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사고는 협업이 요하는 교육의 장에서는 버려야 할 사고방식이다.

"문학부가 아닌 이상 일본 대학 입시 전형에서는 학생이 읽은 책에 대해서 묻는 일은 거의 없다"라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는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묻고 기록하는 것을 굉장히 경계하는 편이라고 했다. -p.124

내가 손놓고 있는 엄마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얇은 귀 팔랑이며 생각 없이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공평하고 균등한 기회를 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주기 위한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아이들이 막연한 입시로 우왕좌왕하며 십 대를 보내게 할 것이 아니라 진정 본인이 원하는 길목 앞에서 방향을 찾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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