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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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다시 만난다는 의미에 숨은 애틋함 때문일까. 만남에 관한 여섯 편의 이야기에서 겨울의 안온함과 봄의 생기 가득한 설렘을 느끼고 싶었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고 그 속에 깃든 의미도 천차만별이다. 피곤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들도 있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들이 더 간절한 순간도 있다. 그렇듯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인생을 배운다.

[다시, 만나다] 속 일러스트 작가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처럼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이어진 기약 없는 만남도 있고 [매듭]처럼 한 번쯤은 만나서 해결해야 할 만남도 있다. [순무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에서의 무례한 만남과 [꼬리등]에서의 돌고 돌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만남 그리고 [마마]와 [파란 하늘]에서처럼 상상과 환상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만남 등이 있다.

언젠가부터 밥 한번 혹은 커피 한잔하자는 빈말을 던지지 않는다. 기약 없고 성의 없어 보이며 거짓 약속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만나다]편에서 그녀는 그와 꼭 밥 한 끼 먹길 바랐다. 업무로 이어진 만남 속에서 그는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녀가 정체성을 찾는데 영향을 주었다. 비록 그가 그녀와는 달리 반대 노선을 선택해서 달려나가며 그녀를 당황하게 하였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짧은 순간이나마 그녀는 안도한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현실에서 마주하자 평면적이었던 그와의 만남은 다시 입체감을 찾아간다.
그렇듯 잠시 서먹해지다 다시 만났을 때 그 시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만남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부쩍 필요한 만남이 아닐까.

오해로 인한 관계의 걸림돌이 내내 인생을 따라다닌다면 그 오해의 시간들이 참으로 아까울 것만 같다. 초등학교 시절 생긴 오해가 성인이 돼서야 풀리게 되는 [매듭]편을 읽으면서 내게도 풀고 싶은 매듭이 있단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연락할 방도는 없지만 말이다.
서투르고 겁이 나서 선뜻 말하지 못한 채 과거의 실수가 현재의 삶까지 지배한 그들. 인생에서 관계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한다면 살면서 그 무게를 비워내야 하는 것도 만남을 통해 헤쳐나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꼭 풀고 싶다.

살면서 스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때론 황당한 만남에 하루가 피곤해지는 날들도 있다. [순무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의 그녀의 하루가 그랬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부딪히게 된 무례한 남자로 인해 하루의 끝이 꼬인 걸까. 아니면 그 부딪힘으로 인해 더 큰 화를 면한 걸까. 하루쯤은 편한 주부로 살아보자던 생각에 사 온 순무 셀리리가 무 셀러리로 둔갑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그녀. 식탁 위에 순무 셀러리와 무 셀러리가 나란히 오르게 되기까지 그녀가 되찾고자 한건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총기살인이나 살인범의 얼굴 따위보다 순무는 순무고 무는 무여야 한다는 원칙 아래 나는 무례함과 무심함이 공존하는 만남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방탄소년단의 DNA가 절로 나올 만큼의 애절한 만남이 언뜻 스친 [꼬리등]의 네 편의 이야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다음 이야기를 비추듯 글의 마지막에 놓인 단어들에 다음 생을 기약하는 애절함이 가득하다.


처음 보는 이의 안녕을 빌어주는 만남에서의 부디, 아무쪼록.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다음 생을 기약하는 아무쪼록, 아무쪼록, 아무쪼록.
삶의 경계 앞에 체념을 후회하며 다음 생의 연분을 기원한 부디, 부디, 부디
집착의 연을 죽음 앞에서 내려놓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 아무쪼록, 부디, 아무쪼록.
나를 희생하고 타인을 위한 이 다양한 만남이 가슴 깊이 와닿던 이유도 현대인들의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만남에 피로감이 쌓여있어서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다.

만남에 대한 여섯 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이라면 어떤 만남이든지 의미가 없는 순간은 없다는 사실이다. 생에서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만남도 반갑고 좋지만 뜻밖의 만남은 짜릿해서 좋고 일상의 만남은 안정감이 있어서 좋은 것이다. 비록 살다 보면 그만큼 불편한 만남도 곱절로 늘기도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보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생각해도 좋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마]편에서 등장한 무민 마마의 긍정 코드가 이러한 삶을 사는데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올해 무민 시리즈를 읽으면서 무민마마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시간에 한정을 두지 말고 다시, 만나고픈 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다시, 만나다]의 그녀처럼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도 덜고 [매듭]의 그녀처럼 틀어진 관계도 바로잡고 [파란 하늘]의 그들처럼 가족의 상처도 보듬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보는 것 말이다.

[꼬리등]을 읽으며 유사한 두 문장을 발견했다. 이건 작가가 그 기분을 강조하기 위해 두 번 쓴 것일까, 아님 편집의 실수인가. 아무튼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이란 표현은 잊히지 않을 듯하다.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으로 나는 탑 쌓기를 포기하고 접고 있던 다리를 쭉 뻗었다. -p.174
나는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으로 멀겋게 색이 바랜 일상을 살아갔다. -p.178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거짓말 같았다.
그를 마지막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거짓말 같았다.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또 헤어짐.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맞닿은 손끝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다시, 만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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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시작해보려 합니다 -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초보자를 위한 DSLR 사용법
고이시 유카 지음, 전지혜 옮김, 스즈키 도모코 감수 / 더숲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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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 초보자를 위한 DSLR 사용법 ··

 

 

 

스마트폰의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정말 좋은 풍경 앞에서는 DSLR 카메라가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은 카메라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나, DSLR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책을 보고 따라 해 보려 해도 혼자서 용어와 기술을 터득하기가 쉽지 않은 이들, 그리고 혼자서 해보다가 그 열의가 식어 제자리걸음인 이들이 보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나는 직업상 카메라를 전혀 놓을 수는 없었던 탓에 전문지식보다는 감으로만 대충 알고 있는 정도였는데 [카메라, 시작해보려 합니다]라는 책을 본 순간 개념을 바로잡고 싶단 생각에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확실히 학습만화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만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펼쳐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몇 장만 넘겨보아도 초보자들이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카메라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헤매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주요 명칭과 주요 기능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사진을 더욱 감각적으로 찍을 수 있는 팁을 배워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사진은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SNS은 그러한 일상에 더욱 불을 붙여서 사진 관련 콘텐츠들은 넘쳐난다. 예전보다 사진을 잘 찍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띄지만 그 속에서 내 사진이  더 주목받고 싶다면 스마트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능은 점점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제아무리 스마트폰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DSLR 카메라가 주는 사진의 묘미는 아직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문가 냄새가 폴폴 나는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도 초반에 카메라 구입부터 실패한 경험담을 얘기하며 내게 맞는 카메라가 무엇인지 기본적 지식 정도는 숙지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반부터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암호 같은 카메라의 기능들을 풀어보지도 못하고 방치한다면 그게 무슨 돈 낭비란 말인가.

그렇게 DSLR 카메라를 장만해놓고 허구한 날 AUTO 상태만 놓고서는 감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없다. 이 책 한 권이면 AUTO 상태를 벗어나 원하는 모드에서 다양한 결과물을 얻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대로만 설정해 놓고 찍어보아도 충분히 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설정 방법을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결과물 사진도 첨부되어 있어 밋밋한 사진과 변화된 사진을 보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익히고 빛과 색감에 대한 간단한 법칙만 익히고 나면 같은 장소나 피사체라도 여러 모드에서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여러 장 찍다 보면 조금씩 자신만의 감을 찾게 된다. 기본적인 기능도 중요하지만 사진에 있어 중요한 건 구도다. 배경의 주요 시점을 어느 곳에 둘 것인지, 피사체에서 가장 돋보이게 할 곳은 어디인지, 배경을 흐리게 하거나 빛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지, 동물이나 음식 사진을 돋보이게 찍는 방법은 무언인지, 인물사진을 찍을 때 피해야 하는 구도는 무엇인지 등을 배워보며 사진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진 찍는 일을 무척 즐기는 편이지만 DSLR 카메라는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주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폰의 사진 기능을 잘 활용하면 감각적이고 차별화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만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DSLR 카메라를 꺼내들고 싶어진다. 찬찬히 개념을 잡아가며 읽다 야경 사진 찍는 법이 눈에 들어왔다. 밤에는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인데 이렇게 멋진 작품 사진을 얻을 수 있다니 당장 시도해보고 싶었다.

사진 감각은 많이 찍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사각 프레임을 머릿속에 넣고 다녀야 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풍경을 바라보면서 찰나를 포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어떤 시간대에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어느 위치에서 찍어야 색다른 느낌이 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눈앞에서 멋진 순간을 포착한다. 그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카메라가 손에 없어 아쉬워하는 순간은 나도  자주 겪는 일이라 참 공감했다. 사진을 좋아하는데 자신감을 키우고 싶은 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길 바란다. 나도 내일은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숲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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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음 Touch
양세은(Zipcy)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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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음
Touch

 

...

그와 그녀의 이야기

 

 

 

! 예쁘다.
서로의 눈빛이 오로지 서로에게만 향해 있는 순간들.
사랑은 그렇게 그들 주위의 공기마저도 애틋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나 보다.

그림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잘 그린 그림들은 그 솜씨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없다면
여느 잘 그린 그림들 속에 묻혀 잊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림에도 스토리를 담아 생명을 불어 넣으면 한 장의 그림이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라폴리오 작가이자 인스타에서도 인기 작가로 알려진 그녀의 그림을 만난 순간들이 그러했다.
그림이지만 살아있는 눈빛 때문일까.
책장을 처음 열자마자 놀란(?) 마음은 어느새 조금씩 설레임으로 녹아내렸고 나는 발그레진 두 볼을 꾹꾹 눌렀다.
내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던가를 떠올리는 일이 더딤을 느낀다.
분명 그와 그녀의 일상과 같지는 않더라도 한두 장면은 분명 그렇게 알콩달콩한 순간이 존재했을 텐데...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짜릿했던 순간.
처음 손을 잡았던 순간 정신이 우주로 달아나버린 순간.
그렇게 깍지 낀 손과 손에서 전해지던 열기로 땀이 맺혀도 빼지 못하던 순간.
스치던 향기가 내 머릿속에 저장되던 순간.
숨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리던 나의 또렷한 귀.
차가운 내 손위를 댑혀 주던 나보다 더 큰 너의 손.
그렇게 찬찬히 그림을 보며 더듬어 보았다. 그제서야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들.

시간은 흐르고 서로의 익숙함이 가득한 일상이지만
닿음이란 주제의 그림이 가득한 책장을 넘기며
지하 끄트머리에서 잠자고 있던 말랑말랑만 감정들이 되살아 나서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도 몰래 찾아오던 설레임이 있었지.~~

 

 

 

인체의 움직임에 숨죽여본 적이 참 오랜만이다.
로맨스 소설 못지않은 연인들의 일상에 오두방정 떠는 심장을 주체 못 하며 감성에 푹 젖어보았다.
수줍어서일까. 책장은 그냥 그렇게 조심스레 넘기게 된다.
작가의 디테일하고 섬세한 표현력에 감탄하다가도 마치 나의 살갗에 손길이 닿은 것 마냥 찌릿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림과 함께 실린 짧은 문장들에 사랑의 온기가 더 전해지는듯하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전해 들을 수 있는 순간이라서일까. 뭐니 뭐니 해도 포옹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든다.

연인들의 다양한 일상을 보며 남녀가 하루를 지내는 동안 저렇게 많은 포즈들이 나올 수 있구나를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해서 닿음과 거리가 멀어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요즘의 무심한 나를 반성해보기도 했다.

연인 사이라면 얼마나 자주 서로가 닿아 있는지 들여다볼 시간도 가질 수 있겠다.
작가가 오래도록 고심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껴보며

가슴속 하트들이 요동치던 그때를 떠올리며 감정에 온도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뒷장 작가의 작업 스케치를 참고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진 초등 딸에게 그림 몇 장을 슬쩍 보여주니 쑥스러워하지만 작업과정은 흥미를 보였다.
특히 채색 과정은 신기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잠깐 방문한 작가의 인스타에서 딸은 여러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줍게 넘기고 있던 그림을 몇 컷 담아 '이 겨울을 달달하게~'라는 짧은 문장을 담아 가까운 이들에게 보냈다.
이제 핑크빛 로맨스는 더 이상 올 일이 없지만 그래도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던 친구들에게

염장을 지른 건 아닐까 하다가도
분명 그들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달달해지는 가슴한켠에 손을 올리고 있을는지도.^^
그래도 쬐끔은 미안하다. 친구들아.ㅎㅎ

두툼한 양장본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어 선물용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이 겨울, 예쁜 사랑을 선물하는 뜻깊은 순간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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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 이생진 산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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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는 잘 모른다. 아는 시인도, 아는 시도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우연찮게 참석했던 시 낭송 모임 덕에 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좋은 건 아니다. 그냥 노래를 듣듯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읽는다. 그중에서도 자연이나 풍경 그리고 작은 일상을 끄적이고 있는 시가 와닿는다. 그리고 시를 보면 늘 놀란다. 어쩜 이런 표현을 떠올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요즘 부쩍 글을 쓰면서 모자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 무언가 고갈된듯한 느낌이랄까. 별로 재능도 없는데 글이랍시고 긁적이다 보니 한계에 다다른 느낌도 오고... 그래서 나름의 방안이 국내 작가의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신선한 스토리나 짜임새 있는 소설도 좋지만 심리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보기엔 이만한 장르도 없을 것 같았다.

아는 시인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이생진 작가도 내겐 낯설다. 바다와 섬을 좋아해 '섬 시인', '바다 시인'이라고 불린다는 작가의 이력에서 끌림이 왔고 우선 시보다는 산문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먼저 전해 듣고 싶었다.
시작부터 역시나 작가의 자연 사랑을 엿볼 수 있어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해서인지 요즘은 자연을 보며 인생을 이해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가 콕 집어 자연 찬양을 늘어놓은 문장들이 반가워진다.

자연은 정직의 대명사다 산이 거짓말하는 것 봤느냐.
바다가 나쁜 짓을 함께 하자고 유혹하는 것을 봤느냐. 구름이 남의 집 담을 넘 자고 하더냐.

자연은 너의 친구요 스승이요 신이 보낸 사자다.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버릇은 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온다.
산에 가거든 나무를 이해하려 하고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려 하라.
그 출발이 여행이다. 여행은 너를 따라다니며 가르쳐주는 평생의 스승이요 동반자다.
-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라, 중에서

 

 

 

여태껏 섬을 찾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다. 섬 하면 등대와 외로움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여태 가본 섬이라고는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섬이 주는 낭만도, 고독이 주는 즐거움도 아직 잘 모른다. 그나마 우도는 큰아버지가 거주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기에 익숙한 느낌만 있는 곳이고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관광지는 등 떠밀려 다니기 바빴기에 추억이 별로 없다. 걷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는데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섬들만이라도 가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을 찾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고독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섬이 주는 각각의 매력과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를 압도하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 넋을 잃다가도 한없이 약해지기도 하며 때론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 순간 시인이라면 시상이 떠오를 것이고 사진작가는 사각 프레임 안에서 멋진 구도를 만들어 낼 것이며 화가는 현실을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담아낼 것이다. 그만큼 자연은 누구나 예술가로 변신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시인이라면 섬이 주는 고독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모든 소리에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죽은 자의 소리를 듣고 산 자의 귀에 담아 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시인이 되는 것이라는 말로 시인의 역량을 강조한다. 이십 년 전 자신이 펴낸 산문집을 다시 꺼내보며 행복함을 느낀다는 시인 이생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며 글 쓰는 즐거움에 행복하다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시와 살겠다고 한다.
그의 글은 산문인 듯 시인 듯 애매하지만 내겐 그런 느낌이 좋았다. 산문 속에 시의 은율을 발견하기도 하고 멋진 구절 앞에서 몇 번씩 곱씹어 넘겨본다. 곳곳에 그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는 또 다른 시로 다가왔다.

 

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식물과 곤충, 바람과 구름, 별과 어둠 사이에서도 오갑니다. - p.210

 

 

자연을 노래하는 시만큼 아름다운 문장은 없을 것이다. 해변이 주는 리듬에서 시의 선율을 읽을 수 있으며 해가 뜨고 지는 아름다운 리듬에 삶의 지혜를 배운다. 섬은 그리움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고민조차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이며 섬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은 큰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다.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끌리듯 섬을 찾는 이들에게 시를 권한다면 그의 시집을 권하고 싶다.

시를 쓰면 소소한 일상에서 깨닫는 바가 많아진다. 사물 하나도 허투루 보게 되지 않으며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게 된다. 작가도 시가 있었기에 삶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마무리 지으며 시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강조한다.
자연은 복잡하지 않다. 단풍을 이해하고, 파도의 리듬을 느끼고, 겨울바다의 외로움의 깊이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시는 한층 더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소 느끼는 자만이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산이 좋아 산을 찾는다. 책에 소개된 [낙엽]이란 시가 참 좋았다. 그래서 그의 시집 『산에 오는 이유』를 장만하련다.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 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 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 산에 오는 이유, 낙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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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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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가 된지 만 삼 년을 넘어간다. 나도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동물애호가다. 이전에 코커 스파니엘 세 마리와 동거를 했었고 지금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요코처럼 개보다는 고양이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산책이 필요 없고 개인주의적이며 청결하다. 자는 시간이 많다는 점도 상당한 이점이다. 털이 좀 심하게 빠지는 것만 제외하면 키우기에 완벽하다고나 할까.

최근 냥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었다고 한다. 택배아저씨도 배달을 다니다 보면 냥이 키우는 집이 예전보다 늘었다며 이야기하신다. 고양이는 그 어떤 애완동물보다 새끼 때의 모습이 예쁜 동물이다. 그 모습에 반해 덜컥 데려오지만 집사가 되고 나서는 우왕좌왕하게 된다. 당최 냥이의 울음소리와 몸짓만으로는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향이 천차만별이기에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아이들과 교감이 된다고 여기고 있지만 어떨 땐 심각하게 알다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무레 요코는 [카모메 식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상을 잔잔한 웃음으로 채우는 묘미와 낯선 이들이 만들어가는 우정에 정감을 느꼈던 기억 때문인지 그녀가 쓴 냥이 에세이라면 믿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도 키우는 냥이가 있다. 하지만 글을 이어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표지에서 보았다시피 뚱뚱한 몸매와 단춧구멍만 한 눈을 가진 줄무늬 길양이, 시마짱이 그 주인공이다.

산책길에 그녀를 따라붙은 건 어쩌면 시마짱의 직감이 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렇게 이어진 시마짱과의 인연은 그가 떠나던 날까지 지속된다. 시마짱은 뻔뻔해 보이지만 붙임성도 있고 의리(?)도 있어뵌다. 자신의 요구 사항을 확실히 피력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단춧구멍만 한 눈에서 느껴지는 빈대 정신이 사랑스러울 정도다. 얻어먹는 주제에 더 달라고 울어대며 양껏 배를 채우고 사라진다. 처음과는 달리 거리를 점점 좁혀 그녀의 현관을 거쳐 집안을 돌아다니는 대담함도 보인다. 물론 그녀가 키우는 냥이와의 충돌은 알아서 피하는 현명한 계산도 한다.

비록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요코네 카펫에 토를 하는 등 잔잔한 사고도 일으키지만 그녀는 시마짱을 진심으로 아낀다. 험난한 길 위의 인생을 혹독하게 견뎌내며 하루하루 버텨내지만 저자의 보살핌 덕에 행복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있지만 시마짱 같은 녀석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시마짱의 패기가 참 마음에 든다. 시마짱이 요코 같은 좋은 인간을 만나고 떠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 받는 트라우마도 인간 못지않음에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평소와 달리 짖어대는 개들, 바닥의 흔들림에 놀라서 소파에서만 산다는 치와와, 배탈이 나거나 식욕이 주는 고양이, 그들만의 안전한 장소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인간과 똑같이 돌봐주어야 할 존재임을 알았다. 그런 와중에 지진 후 시마짱이 요코와 이웃집의 안전까지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에 뭉클했다. 설령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가 동물들과 함께 하는 일상 속에 불청객 모기와의 사투는 친숙하지만 베란다로 날아오는 새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진정 요코의 동물 사랑이 전해져서 행복해지는 에세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시오라는 푯말 따위 붙어 있지 않고 눈을 피하지 않고도 냥이들의 밥을 챙겨 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시마짱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를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스쳐갔다. 찾아오는 아이들 중에 시마짱처럼 밥을 달라고 강하게 우는 애들도 있지만 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녀석도 있다. 입에서 점액질이 흐르는 아이뿐 아니라 얼굴이 부은 것인지 지나치게 커 보이는 친구도 있다. 몇 달 전에 나타났다 이제서야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친구도 있으며 살그머니 와서 부어논 사료만 냉큼 먹고 사라지는 녀석도 있다. 하지만 길냥이들은 자기들만의 룰을 지켜가며 영역을 넘나들지는 않는다. 철저히 혼자 와서 먹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감성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 집사를 향한 애정과 무한의 사랑은 그들과 함께 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현재 집사이거나 동물애호가라면 추천하고픈 책이다. 요코의 따스함으로 이루어내는 동물과의 교감이 참 따뜻해서 함께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이 커진다.

이번 달부터 등산을 다니고 있다. 신기한 건 산 정상마다 냥이들이 집단으로 서식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꺼내놓은 도시락을 야금야금 받아먹는 것도 우습지만 이놈들의 입이 고급화돼서 고기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등산가방에 냥이 캔 두어 개를 넣어가지고 올라간다. 잠깐 스칠 인연이지만 잘해주고 싶다.
"그래, 이놈들아 이제부터 고구마 말고 참치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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