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 무엇이 되었든 다시 만난다는 의미에 숨은 애틋함 때문일까. 만남에 관한 여섯 편의 이야기에서 겨울의 안온함과 봄의 생기 가득한 설렘을 느끼고 싶었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고 그 속에 깃든 의미도 천차만별이다. 피곤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들도 있지만 지금 당장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날들이 더 간절한 순간도 있다. 그렇듯 만남을 통해 성장하고 인생을 배운다.

[다시, 만나다] 속 일러스트 작가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처럼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이어진 기약 없는 만남도 있고 [매듭]처럼 한 번쯤은 만나서 해결해야 할 만남도 있다. [순무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에서의 무례한 만남과 [꼬리등]에서의 돌고 돌며 다음 생을 기약하는 만남 그리고 [마마]와 [파란 하늘]에서처럼 상상과 환상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만남 등이 있다.

언젠가부터 밥 한번 혹은 커피 한잔하자는 빈말을 던지지 않는다. 기약 없고 성의 없어 보이며 거짓 약속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만나다]편에서 그녀는 그와 꼭 밥 한 끼 먹길 바랐다. 업무로 이어진 만남 속에서 그는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녀가 정체성을 찾는데 영향을 주었다. 비록 그가 그녀와는 달리 반대 노선을 선택해서 달려나가며 그녀를 당황하게 하였지만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짧은 순간이나마 그녀는 안도한다. 과거의 어느 시점을 현실에서 마주하자 평면적이었던 그와의 만남은 다시 입체감을 찾아간다.
그렇듯 잠시 서먹해지다 다시 만났을 때 그 시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만남이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부쩍 필요한 만남이 아닐까.

오해로 인한 관계의 걸림돌이 내내 인생을 따라다닌다면 그 오해의 시간들이 참으로 아까울 것만 같다. 초등학교 시절 생긴 오해가 성인이 돼서야 풀리게 되는 [매듭]편을 읽으면서 내게도 풀고 싶은 매듭이 있단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연락할 방도는 없지만 말이다.
서투르고 겁이 나서 선뜻 말하지 못한 채 과거의 실수가 현재의 삶까지 지배한 그들. 인생에서 관계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한다면 살면서 그 무게를 비워내야 하는 것도 만남을 통해 헤쳐나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꼭 풀고 싶다.

살면서 스치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때론 황당한 만남에 하루가 피곤해지는 날들도 있다. [순무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의 그녀의 하루가 그랬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부딪히게 된 무례한 남자로 인해 하루의 끝이 꼬인 걸까. 아니면 그 부딪힘으로 인해 더 큰 화를 면한 걸까. 하루쯤은 편한 주부로 살아보자던 생각에 사 온 순무 셀리리가 무 셀러리로 둔갑한 것을 두고 볼 수 없던 그녀. 식탁 위에 순무 셀러리와 무 셀러리가 나란히 오르게 되기까지 그녀가 되찾고자 한건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총기살인이나 살인범의 얼굴 따위보다 순무는 순무고 무는 무여야 한다는 원칙 아래 나는 무례함과 무심함이 공존하는 만남을 함께 들여다보았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방탄소년단의 DNA가 절로 나올 만큼의 애절한 만남이 언뜻 스친 [꼬리등]의 네 편의 이야기는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다음 이야기를 비추듯 글의 마지막에 놓인 단어들에 다음 생을 기약하는 애절함이 가득하다.


처음 보는 이의 안녕을 빌어주는 만남에서의 부디, 아무쪼록.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 다음 생을 기약하는 아무쪼록, 아무쪼록, 아무쪼록.
삶의 경계 앞에 체념을 후회하며 다음 생의 연분을 기원한 부디, 부디, 부디
집착의 연을 죽음 앞에서 내려놓으며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 아무쪼록, 부디, 아무쪼록.
나를 희생하고 타인을 위한 이 다양한 만남이 가슴 깊이 와닿던 이유도 현대인들의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만남에 피로감이 쌓여있어서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다.

만남에 대한 여섯 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이라면 어떤 만남이든지 의미가 없는 순간은 없다는 사실이다. 생에서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만남도 반갑고 좋지만 뜻밖의 만남은 짜릿해서 좋고 일상의 만남은 안정감이 있어서 좋은 것이다. 비록 살다 보면 그만큼 불편한 만남도 곱절로 늘기도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보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생각해도 좋은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마]편에서 등장한 무민 마마의 긍정 코드가 이러한 삶을 사는데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나도 올해 무민 시리즈를 읽으면서 무민마마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또 저물어 간다. 시간에 한정을 두지 말고 다시, 만나고픈 이들을 만나볼 수 있는 가슴을 가지고 살아보는 건 어떨까.
[다시, 만나다]의 그녀처럼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도 덜고 [매듭]의 그녀처럼 틀어진 관계도 바로잡고 [파란 하늘]의 그들처럼 가족의 상처도 보듬는 그런 계기를 만들어보는 것 말이다.

[꼬리등]을 읽으며 유사한 두 문장을 발견했다. 이건 작가가 그 기분을 강조하기 위해 두 번 쓴 것일까, 아님 편집의 실수인가. 아무튼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이란 표현은 잊히지 않을 듯하다.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으로 나는 탑 쌓기를 포기하고 접고 있던 다리를 쭉 뻗었다. -p.174
나는 구멍 뚫린 항아리 같은 기분으로 멀겋게 색이 바랜 일상을 살아갔다. -p.178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거짓말 같았다.
그를 마지막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거짓말 같았다.
만남, 헤어짐, 다시 만남, 또 헤어짐.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맞닿은 손끝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다시, 만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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