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저택의 상속자 북멘토 가치동화 36
서은혜 지음, 정경아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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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그다지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주로 인간을 놀래키고 괴롭히는 심술쟁이로 등장한다.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겠지만 첫 장면에서 도깨비들이 쫓기다 대장 도깨비 한 놈이 추격꾼에게 잡히고 만다. 그래서 나는 순간 추격자가 착한 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친구들이다. 도깨비들은 주로 그들의 주무기인 도깨비방망으로 온갖 요술을 부린다. 그들이 지닌 도깨비방망이만 있다면 천하를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그런 도깨비의 능력을 탐내며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그들을 도깨비 추격꾼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도깨비들의 힘을 마패에 끌어모아 영생을 꿈꾼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는 도깨비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보름이는 보육원에 살고 있다. 심술쟁이에 욕심 많은 능구렁이 같은 원장은 두 얼굴의 악마다. 원장의 눈밖에 난 보름이는 혼자 독방에 갇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서서 탈출을 시도한다. 부당함에 맞서는 모습이 어쩜 그리도 씩씩한지. 원장에게 들이박는 장면은 정말 시원했다. 그렇게 시도한 탈출이었지만 철장이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붙잡힐 위기에 놓인다. 그 순간 보름이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 그는 보름이가 독애비 저택의 유일한 상속자라며 같이 갈 것을 요구한다. 잡히는 것이 두려워 얼떨결에 따라나서게 되고 저택 앞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저택은 온데간데없고 큰 은행나무만 놓여있는데.

 

희한하게도 보름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형체와 그림자가 달리 보이는 것이다. 함께 따라온 남자의 그림자는 고양이를 닮았고 저택이라고 말한 은행나무의 그림자는 커다란 3층짜리 저택의 실루엣을 띄고 있다. 너무나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에 내내 어리둥절해하던 사이 저택 안으로 들어온 보람이는 기겁을 하게 된다. 눈앞에 며칠 동안 자신의 꿈속을 헤집고 다닌 괴상한 도깨비들이 떡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도깨비들은 각양각색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모양새다. 더군다나 같이 온 남자는 고양이였으니. 꿈이 덜 깬 거라 우겨보지만 뜬금없는 도깨비들의 부탁에 정신이 번쩍이다. 자신에게 저택의 상속자가 되어달라니. 보름이가 가진 그림자 식별 능력이 상속자가 되고도 남을 이유라는데 보름이는 그들의 바람대로 상속자가 되어줄까. 또 도깨비들을 추격꾼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림자는 제2의 인격이라고도 한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고 할까. 사람의 내면을 잘 이해하는 이들은 그 사람의 그림자에서도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처럼 보름이가 가진 능력은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휘하여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나름 반전도 있어 더 재미있다.

 

학교에서 지독히도 외톨이였던 보름이는 괴롭힘을 당해도 참고 지냈다. 어쩜 그리도 잘 참을 수 있는지.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사연에 도깨비들은 도깨비감투를 쓰고 학교를 따라와 보름이의 복수를 자처한다. 그 모습에 나는 후련하기도 했지만 보름이는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찌릿해한다. 마치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나무 구멍이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하듯 나무가 주는 소재는 참 다양한 것 같다. 저자는 어린 시절 동네를 지키던 오래된 나무가 사라지고 난 뒤 그 나무를 다시 되살려보고자 하는 맘으로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주는 으스스 한 기운과 신비한 분위기가 이 이야기의 탄생 배경이 된 셈인데 주말 숲에서 만난 온갖 기이한 형태의 나무들을 보며 그런 묘한 기운을 느꼈던 순간이 되살아나서일까. 도깨비와 인간의 공존이 따스하게 다가온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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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의 첫 번째 거미 - 2019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선정작 튼튼한 나무 34
양지윤 지음, 조은정 그림 / 씨드북(주)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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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야. -p.30

 

인간의 손에 지어진 집이지만 집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함께 하지 않으면 점점 망가져간다. 막연히 좋고 멋진 집만이 근사한 것이 아니라 마치 너와 나의 궁합이라는 게 존재하듯 나에게 맞는 집은 따로 있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해서 그 집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요즘 사람들은 돈 되는 집을 선호한다. 신도시 개발로 경쟁하듯 무시무시하게 대형건물들이 솟아난다. 이 책은 오래된 것들의 가치에 대해 고심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전통은 신문물속에 점점 자취를 잃어가고 역사의 흔적도 사라져만 간다. 어떻게 해야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보존해서 과거를 현재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건물을 의인화해서 건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대하다 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미선이는 80년 된 목조 건물이 헐리고 새로 지어진 노란색 2층 벽돌집이다. 집 주변 상황을 푸조나무를 통해 듣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에 인간이 중요함을 알게 되지만 시작이 좋지 않다. 평안해 보이지 않던 가족 때문에 미선이의 마음도 불편하고 외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날 거미 한 마리가 미선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있게 해 줄래?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할게." - p.18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라는 말이 스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독점하려 하는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거미 여사는 미선이 때문에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새로운 바람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다. 지진 소동이 벌어져 다시 혼자가 되어도 이미 거미 여사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이해했기에 기다린다.

 

책에서는 오래되어 사라져버린 건물들이 나온다. 조일양조장, 인천 우체국, 답동성당, 애경사.

이 건물들의 역사는 이야기 끄트머리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 그 건물들이 전하는 사연도 만나볼 수 있다. 답동이를 지킨 신부님, 애경이를 지키고자 했던 졸찬이, 폭격보다 무서운 개발로 사라져버린 조일이. 모두 새로운 바람이 불자 바람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숨을 쉬던 마지막 순간과 숨이 멈춘 첫 순간 사이는 아주 빨랐어. 순식간이었지.

함께 살아온 수많은 순간이 그 찰나에 빨려 들어갔단다. -p.19

 

우리의 건축유산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미선이도 철거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고양이와 거미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런 마음이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일까. 미선이는 다시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된다. 미선이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그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을, 마음을, 인정을 끌어모은다. 이 따스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러한 마음에 기대볼 수 있다. 미선이와 함께 하는 재로는 결점이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결점을 함께 끌어안는 주변인들의 모습까지 더해져 우리!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집이 단순히 건축의 개념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더불어서 말이다. 미선이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공간 속에 머무는 이들을 챙겨왔다. 그렇게 들고나가는 이들은 분명 미선이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분명 나의 기억 어딘가에도 미선이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필 삽화와 이야기가 참 잘 어우러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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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부모 찾기 비룡소 걸작선 6
데이비드 바디엘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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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처럼 그 나이 때가 되면 슬슬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자아가 형성되면서 욕구 불만이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가까운 친구들이 그 대상이 된다.

배리는 자신의 이름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배리라는 이름이 너무나 촌스럽게 느껴진다. 아마 어린 시절 자신의 이름에 불만을 가져본 이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고 멋진 부모님을 가진 친구들에게 시샘도 가져보았으니까.

 

마찬가지로 배리도 딱 그런 시절을 지나고 있다. 무엇보다도 베리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아빠, 엄마에 대한 불만이 차고 넘친다. 자신의 불만을 종이에 빼곡히 적어 두었다. 것도 무려 열 가지나!

 

배리는 007영화의 광팬이다. 제임스 본드 같은 멋진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가올 생일은 정말 영화처럼 근사하게 보내고 싶다. 일요일 아침 배리는 용기를 내어 아빠에게 생일과 관련해서 부탁을 드려본다. 하지만 자신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아빠뿐 아니라 시시콜콜 훼방놓는 쌍둥이 동생들 때문에 소통이 깨어진다. 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일이 꼬여버렸다.

 

재미도 없고, 맨날 피곤하다 하고, 맨날 잔소리만 퍼붓고, 내가 겨우 '쓰레기'라고 말한 걸 갖고 나쁜 말 쓰지 말라고 혼내고! -p.29

 

배리가 이 정도로 툴툴댄 걸 보면 정말 속상해 보인다. 그러나 불만을 토로해봤자 돌아오는 건 또 잔소리일 뿐이다. 반항의 외침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기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아버린다. 속상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자 더 나은 엄마 아빠가 있었으면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마치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듯 외침은 커지게 된다. 순간 눈부신 빛과 함께 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라! 자신의 방에 붙어 있는 포스터 속 영웅들이 살아서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낯선 곳을 지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길이 닿은 곳은 엄빠소라고 쓰여진 건물 앞. 게다 주위 어른들이 배리에게 죄다 호의적이다 못해 간절해 보인다. 그런 당황한 배리 앞에 나타난 이는 현실 세계의 쌍둥이 모습을 하고 있다. 무작정 배리가 따라간 곳은 엄빠소란 사무실이다. 엄빠소라는 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부모를 고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이 얼마나 환상적인 곳인가.

 

배리는 부모에게 불만투성이였는데 무려 닷새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다섯 번의 기회를 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열 살 생일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게 되면 엄청난 결과가 생기나 본데 비서들은 도통 배리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슬슬 구미가 당기기 시작하자 배리는 마침 주머니에서 자신이 적은 불만 종이를 꺼내들고 불만을 충족시켜 줄 부모를 찾아본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부모는 해달라는 건 뭐든 들어줄 돈 많은 부모, 애가 없는 유명한 부모, 항상 즐겁게 해 줄 에너지 넘치는 부모, 다른 형제들보다 자신만을 사랑해 줄 부모,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는 부모였다.

 

이 다섯 부모 중에서 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배리는 무언가 빠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무엇이란 뭘까.

 

배리는 늘 바라던 대로 이상적인 부모와 일일체험을 해보게 된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돼 갈수록 내면에서 또 다른 결핍이 생겨남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입장이 아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게 되니 다른 형제의 기분도 이해하게 되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기나긴 일주일을 보내고 난 배리가 부쩍 철이 들어 보였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엮은 재미난 상황이었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기에도 좋은 이야기였다. 다그치고 잔소리만 늘어놓지 말고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을 더 가져야겠다. 아마도 큰아이에게 완벽한 부모란 게임실컷하게 해주는 부모, 둘째에게는 사달라는거 다 사달라는 부모가 아닐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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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장풍
최영희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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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덜트 소설이라 그냥 가볍게 웃기는 내용일 거라 생각했다. 보라. 제목도 현아의 장풍이지 않은가.

표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아 얼굴 옆에 시퍼런 아저씨 얼굴이 하나 더 있다. 즉 현아 안에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단 말씀인데 한 몸뚱이에 두 자아라니. 그림만 보아도 무언가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이야기는 우리의 지구가 다른 외계의 손아귀에 있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설계한 데이터대로 지구는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실수로 특정 데이터에 오류가 생기게 되고 그 오류 난 데이터가 열일곱 살 강현아다. 현아에게 생긴 오류란 바로 락사멘툼(팽창), 즉 장풍의 힘이 생겨난 것이다. 나로부터 무언가를 밀어내는 힘 말이다.

 

 

 

강현아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아니 따지고 보면 평범하진 않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따로 떨어져 혼자 살아간다. 뭐 이런 슬프고 애처로운 상황이 다 있담? 어찌 고등학생 딸을 혼자 살게 할 수 있을까. 당최 내 상식으론 도저히 납득이 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현아는 보기보다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이돌 가수에 자신의 정신세계를 거의 내어주다시피했고 부당한 일을 보면 쉬이 넘기지 못한다. 그런데 우상 같았던 아이돌 그룹의 해체 소식에 세상이 끝난 것만 같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현아는 엔터테인먼트로 향한다. 이미 사옥 앞에 진을 치고 있던 팬들 사이에 끼어 있던 현아는 그런 팬들을 조롱하던 한 남자 때문에 분노하게 되고 그 순간 현아의 숨겨져 있던 오류가 드러나고 만다. 10미터쯤 솟구쳐 날아가 버린 남자는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로 불의만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장풍이 나왔고 현아도 점점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구 밖 세계에서는 그런 오류 X, 즉 현아를 감시하고 제거 임무를 맡은 설계자를 내려보낸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재밌는 상황에 빵빵 터지게 된다. 어쩜 이리 글을 센스 있게 웃기게 쓸 수 있는지 오래간만에 이런 글을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읽을수록 재미난 설정 덕에 작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현아라는 캐릭터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설계자가 지구에 떨어지는 장면, 설계자의 취향, 설계자가 현아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장면, 그리고 특정 이미지에 현아의 자아가 뒤바뀌어 무도인이 되는 장면 등은 정말 웃지 않고는 못 배긴다.

 

설계자 미카는 현아가 다니는 고등학교에 전학생으로 오게 되고 오자마자 대놓고 현아에게 들러붙는다. 하지만 오류 X의 위험성을 걱정하고 내려온 미카에게 현아는 얼렁뚱땅 허당에다가 순진 무해해 보인다. 위험한 구석이라곤 불의 앞에 대책 없이 힘을 쓰려고 할 때와 무도인 최배달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불안한 순간이다. 그래서 미카는 혼란에 빠진다. 설계자들이 말하는 지구와 몸소 겪고 있는 지구는 분명 무언가 달랐던 것이다.

 

이곳은 데이터로만 가늠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p.52

 

그런데 의외로 현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에 대해 꽤나 긍정적이다. 되려 무너진 상실감을 되찾은 기분이다.

이건 누군가가 안겨 준 꽃다발 같은 거니까. 지금까지 중요한 날에 꽃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p.65

 

그래서 그 고마운 힘을 올바른 곳에 쓰려 한다. 어쩌면 자신의 외로움까지도 던져버리는 쾌감을 느꼈을는지도. 암튼 여기서부터는 나까지 정의감에 불탔다. 혼내주고 싶은 인간들을 제대로 응징하는 순간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현아가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아가 힘을 남용할수록 미카는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게 되고 결국 다른 설계자가  오게 되면서 현아는 더 위험에 빠지게 된다. 과연 현아는 제거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건 미카의 변화다. 오류 X라고 부르던 명칭을 점차 쓰지 않게 된다. 이는 미카가 현아를 단순히 데이터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오류였다고 생각했던 현아는 오히려 세상에 대해 거침이 없다. 미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진심이 통한 걸까. 어느새 미카는 현아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세계가 틀렸음을 알게 된다.

 

빵빵 웃음을 전하던 이야기의 끝은 반전과 함께 심오한 상황으로 찌릿하게 끝났다. 뻔하지 않은 결말에 여운이 오래가서 좋았다. 인류가 여태껏 살아온 패턴을 본다면 좋은 면보다는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그랬기에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었을 테지만 세계는 특정 데이터로 해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렇기에 정작 위험인물이 아닌 신념이나 가치관에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도 있음을 마지막에서 보여준 것 같다.

 

한 소녀의 외로움을 이렇게도 씩씩하게 풀어나가서 더 좋았다. 세상은 해독할 수 없어 골 때리는 곳이지만 무심코 부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면 아마도 현아를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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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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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하면 주로 왕의 업적과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를 했고 붕당정치와 쇄국정책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선비의 나라이자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등의 좋은 면을 더 부각해서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조선시대의 모습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목조목 다 까발려 놓은 걸 보니 더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말하자면 조선은 선비의 나라랍시고 실속없는 서원만 세워 이론 공부만 하다가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실전 따위는 개나 주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말만 늘어놓으며 서로 잘난 채만 했다. 당연히 바깥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이 될 리가 없다. 성리학을 너무나 중시한 탓에 다른 사상은 이단 취급을 했고 상업이나 과학 등을 천대 시 했다. 권력자들은 안정을 택하려고만 했으며 거대한 중국의 눈치만 보며 부국강병을 도모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543년, 세상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도 그에 맞춰 나라의 문을 열고 세계정세에 발맞춰가고 있을 때 조선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죽어라 학문만 팠다. 그래서 일본은 흥했고 조선은 망했다. 역사 속에서는 늘 쎈 놈이 이겼다.

 

 

 

 

징비록이라 함은 다시 말해 반성문이다.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모든 내용이 이 책 한 권에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다. 1543년을 기점으로 조선, 일본, 유럽의 정세를 한 번에 보여주며 한반도가 얼마나 한심하게 대처를 하였는지 뼈아프게 바라볼 수 있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피비린내 나는 무차별 영토 확장이 시작되었다. 일본까지 찾아온 유럽인들을 일본은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무도 몰랐다. 레콩키스타가 유대인 추방으로 이어지고, 유대인으로부터 강탈한 돈으로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게 될 줄은. 아주 먼 훗날 엉뚱하게도 늪지대 가득한 소국 네델란드를 초강대국으로 만들더니

마침내 극동의 섬나라 일본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국으로 만들게 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1543년까지는. -p.30

 

일본이 유럽에서 철포를 두 자루 구입할 때 조선은 서원을 세웠고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이 얼마나 대비되는 상황인가. 고작 서원이라니....

 

일본이 사들인 철포 두 자루가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드리라고는 그 누구도 몰랐다. 서원을 세운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 폐단은 정치였다. 정치 뒤에 부패권력이, 부패권력 뒤에 교육은 참담했다. 성리학이 나라를 망친 꼴이다. 일본이 철포 두 자루를 들고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동안 조선은 철포를 처박아두었다. 그 뒤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우리의 도자기 장인들을 납치해서 발전시킨다. 도자기 무역으로 짭짤하게 번 돈으로 군수산업에 투자해 세계정복을 꿈꿀 동안 우리는 철저히 쇄국정책만 고집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의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숨이 끊어진 것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조선 권력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p.238

 

 

일본은 네덜란드와 독점 무역을 통해 나라 정세가 빠르게 변화한다. 자국민을 유학 보내 무엇이든 신문물을 배우게 한다. 일본이 발 빠르게 교류를 넓혀갈 동안 조선은 찾아오는 외국배도 내쫓고 더욱 폐쇄정책을 고집한다.

일본이 은으로 무역을 하며 돈을 벌 동안 조선은 금은 광산을 폐쇄하는 등 일본 경제가 탄탄해질 동안 조선 경제는 망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일본이 조선을 찾지 않았던데는 더 배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개국, 목숨을 건 쇄국이었다.

 

 

 

나라가 변하기 위해서는 국민 의식이 변해야 한다. 일본이 개방정책을 펴서 서양문물을 흡수하기 바빴다면 조선은 한글을 창제하고도 서민들의 개화는 더뎠다. 글과 지식을 독점하고자 하던 지도자들로 인해 서민들은 책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어려운 한자와 병행된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그에 반해 일본 지도자들은 지식을 대중과 공유했고 다양한 학문이 활성화되어 전문서적이 출간되고 대형서점도 생겨났다. 서점 없는 나라, 조선의 미래는 이미 예견된 불행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고종집권당시 지식인들이 나섰음에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데는 무능한 왕과 무지한 민중 때문이었다. 기운을 다 빼버린 고종 때문에 분노한 민중의 목소리도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500년 왕조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일본에 경제적으로 뒤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현 정세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반성문만 쓰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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