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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집의 첫 번째 거미 - 2019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선정작 ㅣ 튼튼한 나무 34
양지윤 지음, 조은정 그림 / 씨드북(주) / 2019년 10월
평점 :

우리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야. -p.30
인간의 손에 지어진 집이지만 집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함께 하지 않으면 점점 망가져간다. 막연히 좋고 멋진 집만이 근사한 것이 아니라 마치 너와 나의 궁합이라는 게 존재하듯 나에게 맞는 집은 따로 있다. 오래되고 낡았다고 해서 그 집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을까.
요즘 사람들은 돈 되는 집을 선호한다. 신도시 개발로 경쟁하듯 무시무시하게 대형건물들이 솟아난다. 이 책은 오래된 것들의 가치에 대해 고심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전통은 신문물속에 점점 자취를 잃어가고 역사의 흔적도 사라져만 간다. 어떻게 해야 오래된 것들을 지키고 보존해서 과거를 현재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건물을 의인화해서 건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대하다 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미선이는 80년 된 목조 건물이 헐리고 새로 지어진 노란색 2층 벽돌집이다. 집 주변 상황을 푸조나무를 통해 듣게 되면서 자신의 운명에 인간이 중요함을 알게 되지만 시작이 좋지 않다. 평안해 보이지 않던 가족 때문에 미선이의 마음도 불편하고 외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날 거미 한 마리가 미선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있게 해 줄래?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할게." - p.18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라는 말이 스치는 순간 인간이 얼마나 지구를 독점하려 하는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거미 여사는 미선이 때문에 남편을 잃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는다. 새로운 바람을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다. 지진 소동이 벌어져 다시 혼자가 되어도 이미 거미 여사에게서 얻은 깨달음을 이해했기에 기다린다.
책에서는 오래되어 사라져버린 건물들이 나온다. 조일양조장, 인천 우체국, 답동성당, 애경사.
이 건물들의 역사는 이야기 끄트머리에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야기 속에서 그 건물들이 전하는 사연도 만나볼 수 있다. 답동이를 지킨 신부님, 애경이를 지키고자 했던 졸찬이, 폭격보다 무서운 개발로 사라져버린 조일이. 모두 새로운 바람이 불자 바람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다.

숨을 쉬던 마지막 순간과 숨이 멈춘 첫 순간 사이는 아주 빨랐어. 순식간이었지.
함께 살아온 수많은 순간이 그 찰나에 빨려 들어갔단다. -p.19
우리의 건축유산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미선이도 철거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고양이와 거미 친구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런 마음이 좋은 소식을 가져온 것일까. 미선이는 다시 새 식구를 맞이하게 된다. 미선이의 바람대로 오래오래 그 가족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을, 마음을, 인정을 끌어모은다. 이 따스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러한 마음에 기대볼 수 있다. 미선이와 함께 하는 재로는 결점이 있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결점을 함께 끌어안는 주변인들의 모습까지 더해져 우리!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집이 단순히 건축의 개념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까지 더불어서 말이다. 미선이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공간 속에 머무는 이들을 챙겨왔다. 그렇게 들고나가는 이들은 분명 미선이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분명 나의 기억 어딘가에도 미선이가 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연필 삽화와 이야기가 참 잘 어우러지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