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깨비 저택의 상속자 ㅣ 북멘토 가치동화 36
서은혜 지음, 정경아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그다지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주로 인간을 놀래키고 괴롭히는 심술쟁이로 등장한다. 그런 이미지 때문이었겠지만 첫 장면에서 도깨비들이 쫓기다 대장 도깨비 한 놈이 추격꾼에게 잡히고 만다. 그래서 나는 순간 추격자가 착한 놈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친구들이다. 도깨비들은 주로 그들의 주무기인 도깨비방망으로 온갖 요술을 부린다. 그들이 지닌 도깨비방망이만 있다면 천하를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그런 도깨비의 능력을 탐내며 노리는 자가 있었으니 그들을 도깨비 추격꾼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도깨비들의 힘을 마패에 끌어모아 영생을 꿈꾼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는 도깨비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보름이는 보육원에 살고 있다. 심술쟁이에 욕심 많은 능구렁이 같은 원장은 두 얼굴의 악마다. 원장의 눈밖에 난 보름이는 혼자 독방에 갇히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서서 탈출을 시도한다. 부당함에 맞서는 모습이 어쩜 그리도 씩씩한지. 원장에게 들이박는 장면은 정말 시원했다. 그렇게 시도한 탈출이었지만 철장이 굳게 닫힌 정문 앞에서 붙잡힐 위기에 놓인다. 그 순간 보름이의 앞에 나타난 한 남자. 그는 보름이가 독애비 저택의 유일한 상속자라며 같이 갈 것을 요구한다. 잡히는 것이 두려워 얼떨결에 따라나서게 되고 저택 앞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저택은 온데간데없고 큰 은행나무만 놓여있는데.
희한하게도 보름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아무리 보아도 형체와 그림자가 달리 보이는 것이다. 함께 따라온 남자의 그림자는 고양이를 닮았고 저택이라고 말한 은행나무의 그림자는 커다란 3층짜리 저택의 실루엣을 띄고 있다. 너무나 놀랍고도 신기한 광경에 내내 어리둥절해하던 사이 저택 안으로 들어온 보람이는 기겁을 하게 된다. 눈앞에 며칠 동안 자신의 꿈속을 헤집고 다닌 괴상한 도깨비들이 떡하니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게 아닌가.


그야말로 도깨비들은 각양각색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모양새다. 더군다나 같이 온 남자는 고양이였으니. 꿈이 덜 깬 거라 우겨보지만 뜬금없는 도깨비들의 부탁에 정신이 번쩍이다. 자신에게 저택의 상속자가 되어달라니. 보름이가 가진 그림자 식별 능력이 상속자가 되고도 남을 이유라는데 보름이는 그들의 바람대로 상속자가 되어줄까. 또 도깨비들을 추격꾼들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림자는 제2의 인격이라고도 한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귀신은 그림자가 없다고 할까. 사람의 내면을 잘 이해하는 이들은 그 사람의 그림자에서도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처럼 보름이가 가진 능력은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휘하여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 나름 반전도 있어 더 재미있다.
학교에서 지독히도 외톨이였던 보름이는 괴롭힘을 당해도 참고 지냈다. 어쩜 그리도 잘 참을 수 있는지. 안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사연에 도깨비들은 도깨비감투를 쓰고 학교를 따라와 보름이의 복수를 자처한다. 그 모습에 나는 후련하기도 했지만 보름이는 처음 받아보는 관심에 찌릿해한다. 마치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는 것처럼.
나무 구멍이 이상한 나라로 통하는 문이 되기도 하듯 나무가 주는 소재는 참 다양한 것 같다. 저자는 어린 시절 동네를 지키던 오래된 나무가 사라지고 난 뒤 그 나무를 다시 되살려보고자 하는 맘으로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주는 으스스 한 기운과 신비한 분위기가 이 이야기의 탄생 배경이 된 셈인데 주말 숲에서 만난 온갖 기이한 형태의 나무들을 보며 그런 묘한 기운을 느꼈던 순간이 되살아나서일까. 도깨비와 인간의 공존이 따스하게 다가온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