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의 힘 - 대담하고 자유로운 스토리의 원형을 찾아서
신동흔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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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이 세계명작동화를 즐겨 보았었다. 물론 책장에 꽂혀 있는 몇 권 되지 않는 책이기도 했지만 유독 다른 책보다 세계명작을 좋아했다. 동화에 동화되어 철저하게 권선징악의 논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시절, 종이 인형놀이를 할 때만큼은 서로 신데렐라와 백설공주가 되겠다고 친구들과 싸우기도 했다. 그녀들은 아름다웠으며 갖은 구박과 고난 따위에도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었으니까. 그렇듯 갖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얻은 온갖 교훈들이 진리인 것처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이 명작동화의 결말처럼 되기에는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듯 나는 구전 이야기의 힘을 의심해왔다.

 

   각종 설화나 우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야기의 원형에서 닮은 구석이 많다. 인간들이 추구하던 선과 배척하던 악의 근원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심지어 놀랍게도 마치 표절한 것처럼 흡사한 얘기들도 있어 신기할 정도다.(네이버 지식IN에 보면 표절이냐는 질문도 있다.ㅋ) 대체적으로 옛이야기들에서 볼 수 있는 공식이라면 착하고 정직해야 복을 받고 이기적이고 욕심부리고 남을 해코지하면 벌받습니다, 이러이러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야기가 죄다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한정된 이야기 주머니안에서였음을 이 책을 통해 드러났다.

 

   저자는 10여 년 전 <그림형제 민담집>을 펼쳤다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야기에서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자 이야기가 다시 보였고 그렇듯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파고들어가자 그야말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엄청난 이야기로 다가왔다고 한다. 그 순간 여태껏 내가 읽어왔던 이야기들 속에서 지나치거나 간과한 대목이 무수히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쳤다. 옛이야기에서 뽑아낸 통찰력에 감탄은 당연하거니와 동시에 자괴감도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독서를 못할까 하고.^^ 난 원래 이야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데 재주가 없다. 통찰력이 부족한 건 그만큼 깊이 사유하는 걸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와 그의 학생들이 내놓은 다양한 관점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책은 두껍지만 다양한 민담을 만나볼 수 있어 내겐 정말 뜻깊은 독서가 되었다.

 

 

 

 

   저자는 그 많은 민담들을 다섯 가지 챕터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볼거리가 아주 풍성해서 며칠 동안 신나게 읽었다. 단순하게 읽고 넘겼던 부분을 세세하게 짚어주며 각 인물들의 내면과 행동에서 인간 본연의 진리와 삶의 목적을 찾고 다양한 사랑의 방식을 이해한다.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며 타협과 방향을 찾고 나아가 인생과 행복의 패러다임을 분석하며 진리를 찾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옛이야기에 이렇게나 많은 은유와 비유가 숨어 있을 줄이야!

 

   그림형제가 처음 민담집을 냈을 때 잔인하고 끔찍한 내용 때문에 반발과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던 시절, 무심코 읽어주던 명작동화 앞에서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빨간 모자는 왠지 잔혹동화 같고 헨젤과 그레텔 또한 비교육적인듯했다. 또한 신데렐라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 답답했고(아이에게 읽어주었던 동화에는 신데렐라가 두 언니의 만행을 용서하는 결말이었다) 남의 도움만 받는 백설공주는 자립심도 없어 보였다. 게다가 신데렐라의 다른 버전에서는 뜬금없이 두 언니가 불쌍하다고 하질 않나, 늑대와 일곱 마리 양에서 늑대가 호되게 당하는 장면에서도 좀 안되었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야기의 원형을 읽고 나서 그때의 기억을 다시 곱씹어 보니 당시 동화는 아이들을 위해 많이 다듬어진 것들이었기에 어쩌면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게 비쳐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즉 시련은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악행의 강도가 셀수록 결말도 통쾌하게 다가오는 것일 테니까. 나 또한 그런 이야기들을 보며 가졌던 생각이 달라졌다. 진짜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였단걸.

 

   앞서 언급했듯 이야기의 원형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것들이 많다. 오래전에 잔혹동화에 빠져 이야기의 원형을 알게 된 경우도 있지만 우리 고전 <콩쥐팥쥐>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어렸을 때 <장화홍련전>을 읽고 잠을 설친 기억이 있는데 이보다 더 무섭다. 콩쥐의 결혼 뒷이야기가 더 있었다니. 이건 뭐 이야기가 엽기 공포물이 따로 없다. 하지만 저자의 해석이 너무나 그럴듯해서 이건 어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닐까 한다.

 

 

 

 

   대체적으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행동과 배경은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 빨간 모자의 사냥꾼은 냉철한 이성으로, 마녀의 흉하게 묘사된 형상은 노인을 비하하기 위해서가 아닌 사회의 낡은 관습과 억압이 얼마나 흉측한지를, 난쟁이처럼 작고 비루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존재가 실로 커다란 능력자로 보이기도 한다. 마법에 걸려 동물로 변하는 존재들은 관계로 인한 상처를 짐작해볼 수 있고 주인공의 험난한 시간은 인생이 그만큼 힘듦을 시사한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마는 사회적 폭력으로, 숲은 세상 또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단순해서 의미가 금방 전달되는 반면 뒤죽박죽 얽혀 있어 생뚱맞거나 이해가 안 되는 것들도 있지만 풀이를 해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야기의 힘을 믿어야 한다. 이야기의 원형이 비슷해도 주인공의 작은 행동하나에 결이 달리 지듯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채로워야 인생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

역시 이야기는 원형 그대로 읽어야 제맛임을 알았다. 이야기를 사랑한다면 개구리 왕자의 반전, 라푼젤의 원뜻, 콩쥐팥쥐의 뒷이야기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민담집에 수록된 신선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에 흠뻑 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끼는 책인 <어린이 세계의 명작>을 다시 꺼내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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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펜션의 비밀 청어람주니어 고학년 문고 9
한영미 지음, 나오미양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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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적에 개암 하나로 도깨비방망이를 손에 넣었던 한 나무꾼을 기억하는가? 이 이야기는 그 나무꾼의 가족 이야기이다.^^ 물론 시대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아닌 그 후손들의 이야기인데 도깨비방망이가 대대로 물려져 내려왔었다는 가정을 두고 시작한다. 이러한 가정 앞에 도깨비방망이를 무탈하게 가보로 전하는 일 따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도깨비방망이의 존재는 금세 퍼져나가 위험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풀이네는 도깨비방망이 때문에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다. 이유는 도깨비방망이의 존재를 알고 있던 심술쟁이 이웃(박서방)의 후손들 때문이다. 풀이네는 지금까지 그 전설 속의 도깨비방망이를 지키기 위해, 아니 뺏기지 않기 위해 박서방네를 피해 수십 번을 옮겨 다녔고 최대한 없는 척을 하며 살았다. 풀이네 아빠는 이름조차도 없어 보이게 지었다. 이지푸라기.ㅋㅋ (진짜 작가님 작명 센스 최고세요. ᄏ)

 

 

 

 

  역시나 도깨비방망이는 물질적인 풍요를 안겨주지만 인간의 욕심을 부채질하는 요물이다. 풀이네 부모는 마땅한 직업도 없이 돈을 물 쓰듯 한다. 뭐 그도 그럴 것이 금 나와라 뚝딱하면 금이 쏟아지니 누군들 일을 하려 할까. 게다 아빠 이지푸씨는 돈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SNS 세계에서마저 돈을 뿌리고 다닌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풀이네 할아버지는 드디어 결단을 내린다. 여행을 가신 거라고 여겼건만 도깨비방망이를 원래 있던 산에다 두러 떠나신 것이었다. 돈이 든 항아리가 바닥나자 드러난 할아버지의 편지는 풀이네 부모를 망연자실하게 했고 어떻게든 되찾아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채 따라나서게 된다. 눈에 뵈는 게 없어진 부부는 풀이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나버린다. 방망이를 찾겠다고 온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채 말이다.

 

   부모님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인데도 풀이에게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부모보다 더 어른스럽고 대견하다. 아마도 풀이는 헛된 욕심 때문에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에 방망이에 대한 욕심이 사라져버린 듯하다. 풀이는 돈보다 안정된 집과 가정환경을 원했다. 방망이도 부모님도 다 사라진 집은 박서방네 손자인 만석이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풀이는 우선 돈을 벌 궁리를 하고 그렇게 숲속펜션이 탄생하게 된다.

 

 

 

 

  말이 펜션이지 정리가 안된 집은 자칫 흉가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초긍정 소녀 풀이는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는다. 일단 손님부터 받고 만석이를 구슬려 집안 정리를 한다. 펜션을 처음 찾은 손님은 베스트셀러를 쓰겠다고 찾아온 동화 작가다. 그러고는 귀신 체험을 하겠다는 어린이 단체 손님까지 받게 되는데.

놀랍게도 풀이는 도깨비방망이 따위 없어도 뭐든지 뚝딱뚝딱 풀어 나간다. 그래서 이름이 풀이인가.ㅋㅋ

 

   만석이의 능청스러운 활약상도 재미나고 곳곳에 웃음 빵빵 터지는 장면도 있어서 신나게 읽었다. 방망이의 정체가 궁금했음에도 알레르기 비염 핑계를 대는 모습이나, 책을 싫어해서 동화 작가의 책 제목을 듣자마자 제 스타일이 아니라며 툭 내뱉는 모습도 재미났지만 온 집안을 뒤지고 나서도 풀이의 펜션 사업을 도와주는 모습은 참 아이답게 순수해 보였다.

 

   옛날이야기 속 도깨비방망이는 착한 이들을 위한 선물 같은 존재였다면 현대 이야기 속 도깨비방망이는 인간의 삶을 망치는 존재이다. '잘 살았습니다~~'가 절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각종 히어로물을 보면 꼭 이런 물건들 때문에 사달이 나지 않는가. 세상에는 그렇듯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자연의 법칙은 그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는 법이다. 이제 숲속 펜션에는 풀이와 가족, 이웃의 노력으로 진정한 도깨비방망이가 생겼다. 도깨비방망이의 파워는 그것이 눈앞에 없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가 되기 위해서는 각자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아이에게 너의 '도깨비방망이'는 뭐냐고 물으니 '나 자신'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답을 내놓는다.^^ 그 자신감이 늘 함께 하기를.

 

   그나저나 나야말로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티 안 나게 쓰겠다. 끼니 해결, 청소 해결. 그리고 풀이처럼 읽고 싶은 책 왕창 들이기. ㅎㅎ (진짜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독후 활동 지하는 시간만큼은 조금 진지했으면 좋으련만 도깨비방망이라는 소재 때문에 계속 우스갯소리다. 방망이가 생기면 무얼 할 거냐는 질문지에 돈으로 사고 싶은 거 다 사겠다는 답이 역시나 일 순위다. 게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겠다는 다짐도 있다. 그리곤 백신을 만들어 무료 나눔을 하겠다고.

퍼즐 맞추기에서는 의외로 단어에 약세를 보인다. 진저리, 께름칙, 객식구라는 말은 떠올리지를 못한다. 이렇듯 단어 공부를 할 수 있어 유익했다. 활동지는 꼭 함께 해 보길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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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화해하기 - 관계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그림이 건네는 말
김지연 지음 / 미술문화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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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계획 중 '미술 관련 책 한 달에 두 권씩 꼭 읽기'가 있었다. 좀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로 집 밖이 위험한 상황이 되자 당초 계획했던 미술 관람마저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니 흥미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미술에 관한 신간도서가 보이면 열심히 모셔다 두었다. 언젠가는 이라는 가능성을 남겨두고서.

 

그러다 끌리는 책을 만났다. 한동안 덮어 두었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나 자신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가족'과 '나'라는 시간의 저울질에서 조금씩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그림을 보러 다녔다. 물론 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미술관을 찾을 때만큼은 나와의 소통이 수월했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 속에서 바라보는 시간 여행. 그리고 그 여행에서 느껴지는 화가의 열정이 느슨해져가는 나를 채찍질했고 삶의 덩어리들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구는 그림을 전체로 보며 만족하고 누구는 찬찬히 뜯어보며 분석하는 걸 좋아하고 또 누구는 잘 모르지만 그림이라서 좋아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미술사를 읽고부터였다. 더 솔직하자면 지식 장착 욕구 때문이기도 했다. 내적으로 와닿는 것보다 외적 정보에 더 충실하려 했다. 남들이 그렇게 보인다고 하니 그렇게 보였고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생애에 자꾸만 초점을 맞춰갔다. 그렇다 보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 좁았다.

 

틀을 깨고 싶어 읽기 시작한 것이 그림 에세이였다. 여러 권을 통해 같은 그림이라도 다양한 느낌을 공유할 수 있고 작가의 역량을 보면서 자극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니 책에 실린 작가와 작품은 이미 여러 책에서 본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책은 무언가 다르게 다가왔다. 미술작품에 관해 개인적 사유를 덧붙인 책들을 보면 작가의 인생관이나 삶의 방식이 드러난다. 그것은 작품을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좋은 글인지 아닌지를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작가와 나와의 닮은 지점을 발견하고 나면 글이 더 쏙쏙 잘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위로는 거창한 응원이나 조언보다는 나와 비슷한 한 사람의 삶의 궤적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10

 

 

 

 

작품 속에는 예술가들의 분투와 그 끝에 이루어 낸 회해의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는 그림과 화해라는 키를 꺼내들고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전한다. 많은 작품들을 테마별로 선별하는 작업도, 그림에 덧붙인 다양한 사유(문학 작품, 역사 속 인물, 티비쇼, 사회 이슈, 경험담 등) 들을 연결 짓는 작업도 신중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며 얻는 위안은 모든 것들로부터 화해할 수 있는 길이 된다. 나 자신, 타인, 사회로부터 화해를 할 수 있다면 삶은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에 공감하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을 잘 모른다고 지나칠 책이 아니다. 잘 모른다면 더 봐야 할 책이다. 그럴싸한 말들로 치장한 심리 책보다 훨씬 잼나게 볼 수 있으니까. 덕분에 나 또한 좀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와의 화해를 위한 작품들에 더 집중해서 읽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이야기가 있는 인물화나 풍경화를 더 좋아한다.(아직까지 중세 종교화에서는 작가의 역량 외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진 못하겠다.) 고흐의 풍경화에 베여있는 진한 그리움을 보고 있으면 갱년기가 벌써 올 리가 없을 텐데 가끔 울컥함이 밀려온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닛>은 분노가 치밀 때 보면 좋다. ㅋ

 

뭉크의 <절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를 떠올리지만 언젠가 노을 진 하늘을 보면서 이 남자의 표정이 떠오른 적이 있었다. 저자도 자연의 절규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 쪽으로 해석하고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뭉크의 <태양>이란 작품은 처음 접했는데 노르웨이가 지폐에 이 그림을 선정한 이유를 알듯하다. 저자는 쿠르베라는 인물의 이해를 돕고자 <그리스인 조르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순간 올 초에 꼭 읽는다고 해 놓고선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스친다. 진정한 삶의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고 산 이 인물이 궁금해서 꼭 읽어야겠다. 렘브란트의 일생을 보면 진정한 인생의 황금기는 고통 속에서 피어남이 언뜻 보인다.

이처럼 작가들의 인생 여정이 묻어 난 그림 속에서 그 단서를 찾다 보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다.

 

 

 

 

표지 그림은 윌리엄 퀼러 오차드슨의 <첫 구름>이라는 작품이다. 작가는 상류사회의 결혼 풍습을 비판하고자 삼연작을 남겼는데 그림을 보고 나면 결혼에 좀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도 참 좋아하는데 <293호 열차 C 칸>을 다시 보니 앉아 있는 여인이 나였으면 싶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그녀의 생 때문에 바라볼 때마다 맘이 아프지만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더 불편한 작품을 마주하고 말았다. 크리스 조던의 사진 한 장 때문에 충격의 여파가 너무 커서 나머지 책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플라스틱을 삼킨 채 죽어가는 새라니. 인간으로 인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동식물을 볼 때마다 죄스러워 미치겠다. 어미 새와 아기 새의 모습에 울컥한다. 환경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

 

오래간만에 괜찮은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이상하게 늘 빠르게 넘기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앞에서 잠시 머무르게 된다. 저자의 해석으로인해 달리 다가왔다. 이처럼 독서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다. 고전을 좋아해서 가끔 미술작품 앞에 서면 고전 속 인물을 떠올릴 때가 있다. 나 혼자 그렇게 만족해하면서 말이다. 이제는 화해라는 코드까지 함께 떠올리면서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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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엮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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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하여 ->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내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을 읽은 순서다. 순서도가 나쁘지만은 않다.

 

찰스 부코스키라는 작가는 우연찮게 알게 되었다. 도리스 레싱의 <고양이에 대하여>을 검색하다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먼저 읽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고양이로 맺어진 인연이라고나 할까.ㅋ 그 뒤 나머지 에세이 2종(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을 읽으려 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었다.

 

그의 글은 문학계 이단아, 위대한 아웃사이더라는 별칭처럼 내가 여태 읽어왔던 글들과 느낌이 달랐다. 시에 등장한 외설스러운 단어에 움찔했으나 문학이 아닌 그의 삶이 보였기에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여러 칼럼과 에세이를 읽다 보니 픽션과 진실이 적절히 어우러지면서도 어딘가 도전적이기도 한 문장에 자꾸 빠져든다. 분명한 건 가식도 꾸밈도 허풍도 없는 날것 그대로의 삶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있다. 저질스럽고 외설적인 것도 선뜻 넘겼다. 그는 쓰는 순간만큼은 겁날 것이 없어 보였다. 삶의 중심에서 비껴난 적도 하층 바닥을 전전하며 술과 도박, 섹스에 인생을 허비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작가적 본능을 잃지 않았다. 숙명처럼.

빨리 작가가 되려면 술도 끊고 여성을 보는 잘못된 인식도 고쳐야겠지. -p.32

 

비망록에서 언뜻 보았던 그의 과거를 <음탕한 늙은이의 고백>편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자 아웃사이더로 성장하다 어느 날 뜬금없이 터프한 소년이 된다. 책을 향한 본능이 이때 잠시 깨어나지만 그는 술과 도박으로 에너지를 충당한다. 내재된 문학적 소양은 그를 다시 깨워냈고 드디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닥치는 대로 마시고 쓰고 또 마신다. 게다가 닥치는 대로 일하고 또 떠돈다. 정말 이것저것 가리지 않는다. 그냥 한잔 두 잔 걸치고 쓴다. 술에 취하듯 예술에 취한다. 취기에 나온 진심들이 너무나 솔직해서 낯 뜨겁기도 하다.

 

오랜 무명시절과 수없이 세상의 문 앞에서 인내를 배워나갈 수밖에 없었던 고된 삶. 어쩌면 그 시작은 그가 아버지의 매질에 이를 악물고 울지 않았던 그 시점부터가 아니었을까. 그의 반항기?는 주로 하찮은 일상들에서 진하게 베어 나온다. 어떤 글은 전후 사정이 뒤죽박죽이고 전혀 연결지점이 없어 보인다.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를 끼적여 놓은 듯한 문장도 더러 있다. 그런 점에서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언뜻 비치기도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의 글은 난해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섹스에만 관심을 쏟는 사람이 이해할 만한 살짝 덜 죽은 이야기를 쓰고 있다. -p.178

 

 

 

 

결국 훌륭한 작가는 두 가지만 잘하면 된다. 살고 글을 쓰는 것. 그거면 끝이다. -p.191

 

  그는 훌륭한 작가였다. 살았기에 썼다. 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아 글을 썼다는 그는 엄청난 다작가였다. 스물네 살에 첫 단편을 발표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스물여섯부터 10년간 글쓰기를 포기한다. 술로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일주일에 6~10편의 단편을 쓰며 고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시, 에세이, 칼럼 등을 닥치는 대로 쓴다. 그의 나이 쉰 살에 이르러 19일 만에 장편을 써냄으로써 전업 작가가 된다.

 

가난이 절망적이지 않았다고, 배고픔과 외로움 따위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던 그는 인생의 벗으로 술과 책을 택했다. 그만의 방식대로, 그만의 고집으로 써 내려간 글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애착이 있었음이 느껴진다. 그가 늘어놓은 말과 말들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러고 보니 난 한잔 걸치고 글이란 걸 써본 적이 없다. 일단 알콜이 들어가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ㅋㅋ 적당히 두어 잔 걸치고(와인으로) 떠오르는 대로 한번 써볼까나. 물론 그런 재주는 없을 테지만.

글을 쓰는 건 특이한 일이다.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가까이 갈 수는 있지만 결코 도달할 순 없다. -p.358

 

Don't try.(그의 묘비명에 적힌 글)

이 말은 애써본 자만이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읽고 쓰는 일에 애 좀 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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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찰스 부코스키 지음, 공민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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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마치 맡아보지도 못한 냄새가 풍기는 -p.176 듯하다. 그의 글에서는 싸구려 술 냄새가 진동한다. 표지만 보고도 짐작했겠지만 고상한 문체와 적법한 은유와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장 따윈 기대할 수 없다.

그의 아버지 말처럼 자살하거나 미치거나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섹스하거나 자위하거나 똥만 싸지르는 내용이 질펀하게 등장한다. 다른 사람을 웃게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교훈을 주는 글 따위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실과 머릿속의 일들이 뒤죽박죽이라서 도덕적 선의 경계마저 헷갈린다. 그 시대 미국 사회 바닥이 이랬단 말인가 하고 짐작만 할 따름이다. 걸러지지 않은 대화들, 둘러대지 않은 표현들. 찰스 부코스키의 <고양이에 대하여>를 읽지 않았다면 인상 꽤나 써가며 읽었겠지만 다행히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가 고양이와 함께 하고 있는 사진을 본 이들이라면 내 마음을 잘 알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까지 짐작하자니 애잔한 마음도 크다.

 

그가 칭송하는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글의 결. 그가 이처럼 삶의 밑바닥에서 풍겨 나오는 오리지널 인생을 갈겨쓴 데는 쓰고 싶은 글을 맘껏 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싸구려 잡지에 걸맞은 음탕한 내용들을 맘 내키는 대로 써 내려가도 어느 누구 하나 터치하지 않았고 의외로 그의 글은 많은 독자를 홀리게 했다.

쥐가 득실거리는 뒷골목, 폐고무와 낡은 신문 쪼가리와 말라비틀어진 벌레가 가득한 곳에 나뒹굴어도 행운과 길이 내 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남자라니 술 한 잔 걸치고 늘어놓는 음탕한 이야기가 그닥 나쁘지 않다.

 

허나 월리엄 포크너를 칭송하는 내게 그는 포크너마저 까버린다. 카뮈도 내내 까고. 음... 뭐 취향은 다 다르니.

그래도 도스토옙스키에서는 많은 걸 배운다고.ㅎ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과 삐딱한 반항기, 정치와 종교를 향한 풍자에 거침이 없다. 건들면 바로 쏟아낸다. 질 떨어지는 글이라고 해도 핵심은 비껴가지 않았다. 오히려 품위 없이 내뱉는 말들에 시원함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

난 정치에 관심이 없지만 이런 속임수가 가득한 변화구가 던져지면 열받아서 거기에 개입할 것 같다. -p.68

 

인류의 한 사람이 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에 더해 부끄러움을 더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자꾸만 귓전에 맴돈다. 부코스키의 칼럼을 읽고 나니 뜬금없이 미드 <섹스 앤 더시티>가 떠오른다. 섹스 칼럼을 쓰는 여자 캐리 브래드 쇼의 거침없는 입담에 흠뻑 빠져들었던 나를 떠올리니 찰스 부코스키의 글이 왜 그리 대중들에게 먹힌 건지 이해가 된다. 음탕함에 걸맞게 섹스 냄새가 진동을 한다. 섹스가 끝난 뒤 침대 다리가 부러진 사실을 알게 되던 장면을 읽다 빵 터트리고 말았다. 여자의 반응이 더 반전이다. (여성을 비하한다고 잡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그냥 시대적 흐름을 감안하고 넘어가련다.)

 

부코스키의 글을 덮고 나니 나 또한 속 깊은 날것의 감정들을 마구 꺼내보고 싶다. 분명 나의 이면에도 거침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분명 난 지성인은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건 못한다.

지성인이란 단순한 것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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