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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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이 이야기>는 몇 년 전 영화를 본 후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의 여운이 너무 길어서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해놓구선 작가의 다른 책을 먼저 읽었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이후 15년 만에 내놓았다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내겐 신선함과 충격 그 자체였다. 종교와 철학,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이 오묘하게 뒤섞인 환상과 현실의 야릇한 궁합. 나의 모자란 상상력을 쥐어짜내면서도 작가의 문장들에 매료되어 몇 번이고 곱씹어 읽은 기억이 있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어도 어찌 되었든 얀 마텔의 느낌을 만끽해서였을까. 책을 읽는 내내 그 느낌들이 되살아났다.

 

<파이 이야기>는 책보다 영화를 먼저 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CG의 놀라운 기술력에 무섭고 두려워야 할 태평양의 밤바다와 밤하늘에 대한 기억은 온통 반짝이는 것들로 각인되어 있고 무심하게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린 호랑이의 뒤태 또한 오래도록 남아 있다. 완독하고 보니 영화는 원작에 충실했다. 1부에서 종교와 동물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땐 영화를 먼저 본 걸 후회했다가 2부에서 본격적으로 바다 표류기가 시작되었을 땐 영화 이미지라도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으니까.

 

1부는 의외의 즐거움을 주었다. 동물과 종교에 관한 견해에 다시 눈이 띈다. 어쩌면 1부는 2부의 이해를 돕기 위한(호랑이와의 생존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밑밥이다. 그렇기에 1부를 잘 읽어둬야 한다. 생존을 위한 이론 공부랄까. 동물의 특성, 습성, 영역, 서열, 동물을 다루는 방법, 동물과의 안전거리 및 동물이라는 동반자?에 대한 소중함까지. 물론 동물은 동물일 뿐이라는 교훈을 던져 주며 리처드 파커의 무심함에 가슴이 삐걱이기도 했지만.

종교 또한 비껴갈 수 없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는 삶을 헤쳐나가기 위해선 모든 신이 총동원되어도 될까 말까다. 파이는 그저 신을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예수님, 마리아님, 마호메트님, 비슈누님 그 외 온갖 만물의 신들에게 기도하고 의지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힌두교도들도 사랑에 용량에 있어서는 대머리 기독교 들과 같다고. 이슬람교도들이 모든 사물에서 신을 보는 방식이 수염 난 흰두교도와 같고, 기독교들이 신에게 헌신하는 마음은 모자를 쓴 이슬람교도와 같은 것 아니겠냐고 -p.70​

 

피신 몰리토 파텔, 파이 파텔, 과학자들이 우주를 이해하는 데 사용한 신비로운 숫자 '파이'​

열여섯 살 파이는 모든 신을 사랑하고 동물에 대한 경이로움을 아는 소년이었다. 동물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1970년대 인도의 혼란기를 피해 캐나다행을 감행한다. 하지만 원인 모를 이유로 배는 침몰하고 구명보트에 덩그러니 남겨진 건 파이와 얼룩말과 하이에나와 오랑우탄과 서기의 실수로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뿐이었다. 그도 잠시 곧 서열이 정해지고 파이와 리처드 파커만 남는다. 주위엔 상어 지느러미가 유유히 떠다니고.

 

그렇다. 그의 인생이 이제 작은 생존 보트 한 척 안에 달렸다. 닻도 키도 없이 오로지 주변 환경의 뜻대로 내몰린 처지가 된다. 보트 안에서 남은 것이라곤 생존에 대한 절박함으로 인한 살려는 의지뿐이다. 호랑이로부터 상어로부터 풍랑으로부터 그리고 굶주림으로부터.

그러나 차차 새로운 의지가 생겨난다. 리처드 파커 길들이기. 길들인 후 함께 하기. 그것이 바로 진정 살고자 하는 의지가 된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p.207​

 

열여섯의 순진한 소년은 생존법칙을 준수했고 게으른 기대감을 떨치고 현재에 집중한다. 터지는 눈물에 지쳐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처음 해 본 살생의 흐느낌이 자신감으로 뒤바뀐 후부터 227일간의 일과는 바쁘게 흘러갔다. 기도는 빼놓지 않는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려 들 때마다 나름의 방법을 쓰며 의지한다. 터번은 신의 모자(언제나 올이 줄줄 풀렸다), 바지는 신의 의복(산산조각이 났다), 리처드 파커는 신의 고양이(계속 위험스러운 존재였다), 구명보트는 신의 방주(감옥이었다), 양손을 쫙 펼친 곳은 신의 땅(천천히 날 죽이고 있었다), 하늘은 신의 귀(잘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라고 되새기면서. 펜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일기도 쓴다. 그럴수록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만으로는 인생을 헤쳐나갈 수가 없음을 알게 된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그것 또한 살아가는 방식이었을 뿐이다.

 

여러 가지의 하늘과 바다를 보았고 온갖 밤과 달을 보았다. 최악의 권태와 공포를 맛보았고 영양실조로 눈이 멀어버렸을 땐 앞날이 깜깜해진다. 식인섬의 존재 역시 뜻하는 바가 있다. 살면서 우리는 식인섬같은 인간이나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땐 재빠르게 관계를 끊고 발을 빼야 한다는 점이다. 망망대해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파이에게 리처드 파커는 희망이었다. '난 죽는다'가 마지막 일기였지만 운명의 신은 그와 리처드 파커까지 살려 주었다. 호랑이와 함께 한 그의 생존기는 굉장하고 흥미로운 사연이지만 현실에 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파이는 다른 버전의 리얼 생존기를 들려준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고도 끔찍한.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을 두고 잠시 멍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리처드 파커와 함께 한 그 시간들을 믿고 싶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죠.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p.375

나 또한 그들이 짓고 있는 다채로운 표정들을 믿는다. 세상을 아름답게 해 주는 묘하고 섬세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동물들의 표정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정말로 사랑해'라는 파이의 말이 진심이란걸 나또한 누구보다 잘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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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법칙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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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원래 선한가. 선한데 살다 보니 악이 스며드는 것인가. 일단 마음에 품은 악의는 없던 것이 될 수 없었다. -p.135라는 말이 제법 익숙하다. 단지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연극할 뿐이지. 어설프게 선을 넘다 보면 동시에 나에게도 적잖은 흉이 남는다. 차라리 흉이 남지 않으려면 완벽하게 선을 끊어야 한다. 선을 넘어선 존재 앞에 눈을 뜰 것인가 감아버릴 것인가.

 

선의 법칙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착할 선(goodness)/줄 선(line) ​

 

작고 좁고 낡은 것들은 아늑함이 아닌 식은땀과 한기만 줄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불행. 모든 것들의 시작은 가난(돈)에서 기인한다고 여길 만큼 암담하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점에서 시작해 우연이 되고 악연이 된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거나 배신하거나 방관한다. 그렇게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된다. 선은 뒤엉킨다. 윤세오는 눈을 감았다. -p.41 차라리 눈을 감으면 그 순간만큼은 안전하다.

 

[신기정]은 어느 날 불법 이민자(이복동생) 같은 아이의 언니가 된다. 네 식구는 각자의 행동양식을 고수한다. 진정한 선의 감정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악의 모습 또한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가엽고 무서웠다.

동생은 불쌍하고 영악했다.

아빠는 무책임하고 비겁했다.

신기정은 의식적으로 공평이 대하려고 애썼다. -p.31​

​그럼에도 동생은 영원히 떠났다. 죄책감을 덜고자 동생의 지나온 선을 쫓지만 그럴수록 어느 누구도 동생의 간절한 마음을 받아준 이가 없었단 사실에 죄책감은 더 커져만 간다. 게다가 동생의 삶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다단계였다. 연결된 사람들끼리 밑천이 되는, 상부상조를 가장한 먹이사슬 관계.

 

[윤세오]는 혼자가 된다. 죽겠다 소리를 밥 먹듯이 하던 아버지가 정말로 죽어버렸다. 집은 타버렸고 남은 건 157번지에 살았던 윤세오뿐이다. 아버지의 일상은 앓느니 죽고, 아까워 죽고, 멋있어 죽고, 맛은 죽여주는 것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사채는 그 소소한 일상의 맛담을 무서운 악담으로 만든다. 더 이상 사랑이 없는 세상. 윤세오에겐 다시 작고 좁은 어두운 터널만 보인다. 저만치서 손짓하는 건 '증오'의 불씨뿐이다.

 

[이수호]는 갑이 되기로 한다. 번듯한 양복쟁이가 되기 위해 선택한 길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악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협박, 비아냥, 조롱은 꾸고 갚지 않는 이들이 달게 받아야 할 화살이다. 그들을 무책임한 짐승으로 치부하며 사냥하듯 몰아댄다. 무엇 때문에 점점 사나워지는지조차도 잊는다.

 

각각의 순간들이 흩어져 있다가 어느 지점에서 희미하게 하나로 이어졌다. -p.97

 

선의든 악의든 어쩌다 보니 그렇게 흘러간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게 삶인지, 어찌해도 안되는 게 삶인지, 행운과 불운도 사람을 가려가며 찾아오는 것인지 내내 아리송하게 한다. 그저 안간힘을 쓰며 살아도 계속 바닥을 치는 인생들을 보고 있자니 죽을 맛이다.

 

대체 어느 순간이 생의 참혹한 순간일까. 돌이켜보면 그들에겐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똑같이 가난하고 똑같이 방황하고 똑같이 무력하다. 선의보단 악의로 버티고 진실보단 허울로 덮고 사는 게 위안이 된다. 살기 위해 기를 쓴 죄밖에 없다.

신기정은 고시원에서 건네받은 동생의 유품에서 필립로스의 책을 발견한다. 읽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네메시스가 아닐까.

 

에필로그에서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신기정과 엄마가 기대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사람人의 형상이다.

우연은 원할 때는 못 본 척하지만 원치 않을 때는 조력을 베풀기도 하니까.-p.227

그리고 이 한 문장에 기대어 볼만한 게 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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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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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뒤엉켜 있는 장면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내가 키우던 두 녀석은 온데간데없고 사무실엔 죄다 낯선 고양이들로 뒤엉켜 있었는데, 그 사이를 아무리 헤집어봐도 두 녀석이 보이질 않자 애타게 이름만 부르다 깨난 것이다. 나는 신기하게도 책을 읽다 잠이 들면 책과 관련된 꿈을 자주 꾼다. 어제도 한 챕터 정도 읽다가 엎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역시나 고양이가 등장한다. 그 고양이들은 고급 지게도 셰익스피어 희곡의 캐릭터 이름을 가진 희극의 주인공들이 될 운명이다.

 

"인간의 뜻과 운명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니"​

 

압도적인 비주얼.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홀로그램. 온통 반짝인다. 별빛도 반딧불도. 어둠이 주는 황홀함. 이렇듯 숲과 별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떤 마음도 열릴 것만 같다. 인간사 엉망진창 뒤틀려도 결국 해피할 거라는 희망으로 가~~득.

 

예비 조류학자인 조앞에 이상한 아이가 나타난다. 자신은 외계에서 왔으며 죽은 아이의 몸을 잠시 빌리는 중이고 지구에서의 다섯 가지 기적을 발견하면 다시 떠날 거라는. 그러니 제발 경찰 따위에 연락해서 자신을 곤란에 빠뜨리면 안 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제 겨우 여덟 살 정도 된 아이의 언변치곤 꽤나 그럴싸하다. 눈치도 백단, 행동은 천단. 게다 습득하는 능력도 상당해서 우주와 별에 대해 재잘거릴 때만 해도 난 철떡같이 판타지라고 믿었다. 이 아이는 현대판 '어린 왕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애틋한 여운을 남기고 끝날 줄 알았다.

 

어찌 되었든 한 아이의 등장은 조의 일상을 뒤흔든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고수하며 어떻게든 조의 곁에 붙어 있으려는 아이와 조의 밀당은 계속되고 이웃 남자 게르만까지 끼어들게 되면서 묘한 상황이 계속된다.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엄청난 기적을 불러온다.

예비 조류학자, 시골의 달걀 장수, 외계인 아이. ​

세 사람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삶에 교감은 윤활유가 되어준다. 아이가 찾고 있던 다섯 가지의 기적이란 건 그리 놀랄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운명은 충돌하고 결말은 인간의 뜻과 상관없이 뒤죽박죽이 되어가지만 우리를 제대로 된 우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이다. 각자의 둥지를 사랑으로 품고, 새 생명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봐 주고,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겪는 동안 상실감에 잠식당한 시간과 오해와 불신으로 일그러졌던 관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배신감을 감수해야만 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우주로 귀환할 줄 알았던 아이가 우주가 아닌 real 현실 지구인이었다는 사실에 실망감과 아쉬움이 진동을 한다. 어쩌면 우주에만 괴물 생명체가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안에도 썩은 내가 진동하는 괴물 같은 생명체가 너무 많다. 아픈 인간사에 그만 찔리고 싶은데 역시나 여기도 그런 사연이 있다. 그렇지만 둥그런 연대가 나를 감싸고 수많은 독자를 감쌀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가능성의 문은 언제든 우리를 이끈다. 숲과 별이 만나는 곳에서는 언제든 기적이 일어난다. 어두울수록 빛나는 별들은 길을 잃은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 이상한 아이 하나가 일으킨 기적에 사람들이 되찾은 미소가 반짝인다. 반짝반짝.

그들은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그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작정한듯한 해피엔딩이지만 좋다. 가끔은 이런 기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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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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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맷이 비슷한 단편이 하나 떠오른다. 베르베르의 나무에 등장했던 <바캉스>편 역시 과거 여행사가 등장했었다. 미래가 밝지 않았기에 과거를 동경했던 한 남자가 문화의 절정기였던 르네상스 시대로 이동하지만 역시나 우리가 역사 책에서만 접했던 르네상스에 환상이 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 단편을 읽으면서 나라면? 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과거 말고 동화 속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작년에 꿈 이야기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책이 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에 매혹되었던 독자라면 <과거 여행사 히라이스>를 읽으며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고 인간이니까 후회를 하고 인간이라서 만회할 기회를 가지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상상 속에서 채워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가가 구상한 상황들 속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과거를 대입시켜 볼 수도 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 머물며 과거 속에 한 점을 남겨 볼 수도 있다. 물론 또렷한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과거로의 여행을 원하는 인물과 시간대를 설정하는 작업이 만만찮았을 것만 같다. 이야기 속에 또렷한 깨달음과 자아성찰도 한 스푼, 훈훈한 마무리에 미소 한 큰술도 독자들이 원하는 소스다. 더 궁금하다면 이 과거 여행사 한줄평을를 참고하도록.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열명중 아홉은 찬성하지 않을까. 뜬금없지만 저런 여행사가 있다면 주식이 대박날텐데.ㅋㅋ 그렇기 때문에 이 히라이스 여행사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명함이 어떤 경로로 뿌려졌는지도 불명확하다. 단지 짐작건대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해 보이는 자들에게 점쟁이처럼 능력을 지닌 자가 흘리고 다닌 건 아닐까.

 

이야기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거나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들면 재미없다. 동화는 따지고 드는 게 아니듯이. 중요한 건 우리가 왜 과거로 떠나느냐이고 과거를 통해 현재가 어떻게 달라지느냐다. 당연히 과거의 큰 틀은 절대 건드려선 안된다. 그것은 시간 여행의 룰!이다. 어느 특정 시간대를 잘 못 건들면 모든 시간대가 꼬이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가 뒤틀린다. 그렇기에 여행사 또한 이 점을 늘 주시하고 관리 감독한다.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엔 당장의 이득에 눈먼자들(소설가의 원고를 훔치려 했거나 부동산이나 주식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도 있지만 히틀러 암살 시도를 하려던 자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살렸겠지만 반면 현재의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여행의 강도가 세다. 학폭에 관한 사연(해피 크리스마스)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더니 남북 이산가족의 얘기(시간의 거리와 네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눌러놓는다. 열 건의 여행 중 참신하고 애잔하게 인상 깊던 사연은 고의적 실수(엄마의 인생을 구하겠다고 과거로 뛰어든 딸)와 파인드 미(자신의 요양보호사와 함께 프리미엄 패키지를 선택한 할머니)였고 <인생극장>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한 이야기였다. 고아원에 버려진 뒤 헤어진 여동생을 찾으려는 오빠의 사연(띠앗)도 맘이 짠했다. 절묘한 막판 반전 또한 이 책이 주는 묘미다.

 

과거 따윈 돌아가서 뭣하냐며 반문하다가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우찌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까. 오래도록 숨겨왔던 과거의 거울을 마주한 시간여행자들은 과거에서 건져올린 새로운 사실이나 과거에 슬며시 놓고 온 마음들로 미래를 준비한다. 나 역시 터치 한번 못 해본 그 녀석의 손도 덥석 잡아보고 싶고, 얄미웠던 그놈의 뒤통수도 때려주고 싶고,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며 한소리 쏴주고픈 인간도 있다.

 

제아무리 사는 게 지랄맞아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며 후렴구를 반복하며 살게 되더라도 <파인드 미>편의 할머니의 조언처럼 후회를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가는 인생은 살진 말자. 그럼에도 <띠앗>편의 여행자처럼 과거 여행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과거의 시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처음부터 여행사 문은 두드리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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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하영 연대기 2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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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즐겨보는 장르가 아니다. 함께 읽기 선정도서가 아니었음 볼일이 없었을 책이란 얘기다. 초반부터 학교폭력이 등장한다.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낀 순간 중딩 여자아이의 발길질에 동급생의 숨이 끊어진다. 이런 젠장할. 슬슬 욕지기가 올라온다. 꿀토를 아름답게 보내고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발을 뺄 수가 없다. 처절한 복수극을 봐야 할 것 아닌가.

 

어라. 그런데 초반에 사고 친 중딩들은 잠시 사라지고 더 영악해 보이는 중딩이 등장한다. 이 책은 전작이 있었다. 물론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일단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새엄마(선경)와 딸(하영)의 분위기가 모호하다. 딸의 사춘기로만 치부하기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하영을 상담사인 친구에게 맡긴 선경. 그렇지만 이미 하영은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 좀 더 영악하다. 하영의 숨겨진 분노가 성장과정의 문제인지,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기인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이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선경의 신경세포가 예민해짐에 따라 나 또한 하영의 겉과 속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요주의 인물이 서서히 다른 인물로 옮아가는데.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었다.

 

내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 -p.299

이젠 이런 말을 흘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조심해야겠다. 내가 상대할 여력이 안 된다면. 그들에겐 나쁜 기억에 얽힌 비밀이 있고 그 비밀로 인해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미 드러난 악의 얼굴은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상대의 괴로움을 영양분 삼아 미소 짓고 기뻐하고 평정을 찾아간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등장한 악귀 변천사가 언뜻 스친다.

 

초반에 발생한 학교 폭력은 선경의 가족과는 별개의 사건이었지만 선경의 임신으로 이사를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운명의 고리가 엮이듯 어느 날 하영의 손에 들어온 죽은 아이의 가방이 발견된다.

숨겨진 학교폭력의 그림자는 하영의 그림자에 새로운 자극의 불티가 된다. 게다가 어린 시절 지워진 기억의 파편들이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으면서 왜곡되어 있던 가족 내 진실이 드러난다.

 

어쩌면 분노의 심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무조건적으로 타인으로 향할 때를 경계해야 한다. 타인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자들은 이미 善의 경계를 넘었기에 돌아오지 못한다.

하영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선 자보다 하영 같은 인물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악화될 것인가 아닌 가로.^^

 

결말을 슬쩍 말하자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쳐놓은 치밀한 거미줄에서 하영과 선경은 간신히 벗어났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외면해도 다음 편을 지나치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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