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별이 만날 때
글렌디 벤더라 지음, 한원희 옮김 / 걷는나무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내 눈앞엔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뒤엉켜 있는 장면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내가 키우던 두 녀석은 온데간데없고 사무실엔 죄다 낯선 고양이들로 뒤엉켜 있었는데, 그 사이를 아무리 헤집어봐도 두 녀석이 보이질 않자 애타게 이름만 부르다 깨난 것이다. 나는 신기하게도 책을 읽다 잠이 들면 책과 관련된 꿈을 자주 꾼다. 어제도 한 챕터 정도 읽다가 엎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역시나 고양이가 등장한다. 그 고양이들은 고급 지게도 셰익스피어 희곡의 캐릭터 이름을 가진 희극의 주인공들이 될 운명이다.

 

"인간의 뜻과 운명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니"​

 

압도적인 비주얼.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홀로그램. 온통 반짝인다. 별빛도 반딧불도. 어둠이 주는 황홀함. 이렇듯 숲과 별이 만나는 곳이라면 어떤 마음도 열릴 것만 같다. 인간사 엉망진창 뒤틀려도 결국 해피할 거라는 희망으로 가~~득.

 

예비 조류학자인 조앞에 이상한 아이가 나타난다. 자신은 외계에서 왔으며 죽은 아이의 몸을 잠시 빌리는 중이고 지구에서의 다섯 가지 기적을 발견하면 다시 떠날 거라는. 그러니 제발 경찰 따위에 연락해서 자신을 곤란에 빠뜨리면 안 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제 겨우 여덟 살 정도 된 아이의 언변치곤 꽤나 그럴싸하다. 눈치도 백단, 행동은 천단. 게다 습득하는 능력도 상당해서 우주와 별에 대해 재잘거릴 때만 해도 난 철떡같이 판타지라고 믿었다. 이 아이는 현대판 '어린 왕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무언가 애틋한 여운을 남기고 끝날 줄 알았다.

 

어찌 되었든 한 아이의 등장은 조의 일상을 뒤흔든다. 고집스럽게 자신의 정체를 고수하며 어떻게든 조의 곁에 붙어 있으려는 아이와 조의 밀당은 계속되고 이웃 남자 게르만까지 끼어들게 되면서 묘한 상황이 계속된다.

 

서로에게 길들여진다는 건 엄청난 기적을 불러온다.

예비 조류학자, 시골의 달걀 장수, 외계인 아이. ​

세 사람의 불안하고 불완전한 삶에 교감은 윤활유가 되어준다. 아이가 찾고 있던 다섯 가지의 기적이란 건 그리 놀랄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운명은 충돌하고 결말은 인간의 뜻과 상관없이 뒤죽박죽이 되어가지만 우리를 제대로 된 우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사랑이다. 각자의 둥지를 사랑으로 품고, 새 생명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봐 주고, 사랑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을 겪는 동안 상실감에 잠식당한 시간과 오해와 불신으로 일그러졌던 관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배신감을 감수해야만 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우주로 귀환할 줄 알았던 아이가 우주가 아닌 real 현실 지구인이었다는 사실에 실망감과 아쉬움이 진동을 한다. 어쩌면 우주에만 괴물 생명체가 있는 게 아니다. 지구 안에도 썩은 내가 진동하는 괴물 같은 생명체가 너무 많다. 아픈 인간사에 그만 찔리고 싶은데 역시나 여기도 그런 사연이 있다. 그렇지만 둥그런 연대가 나를 감싸고 수많은 독자를 감쌀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가능성의 문은 언제든 우리를 이끈다. 숲과 별이 만나는 곳에서는 언제든 기적이 일어난다. 어두울수록 빛나는 별들은 길을 잃은 이들에게 길이 되어준다. 이상한 아이 하나가 일으킨 기적에 사람들이 되찾은 미소가 반짝인다. 반짝반짝.

그들은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그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 작정한듯한 해피엔딩이지만 좋다. 가끔은 이런 기적도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