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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여행사 히라이스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1년 4월
평점 :
포맷이 비슷한 단편이 하나 떠오른다. 베르베르의 나무에 등장했던 <바캉스>편 역시 과거 여행사가 등장했었다. 미래가 밝지 않았기에 과거를 동경했던 한 남자가 문화의 절정기였던 르네상스 시대로 이동하지만 역시나 우리가 역사 책에서만 접했던 르네상스에 환상이 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그 단편을 읽으면서 나라면? 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나 과거 말고 동화 속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작년에 꿈 이야기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책이 있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에 매혹되었던 독자라면 <과거 여행사 히라이스>를 읽으며 비슷한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우리는 인간이기에 실수를 하고 인간이니까 후회를 하고 인간이라서 만회할 기회를 가지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상상 속에서 채워볼 수 있다는 점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작가가 구상한 상황들 속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과거를 대입시켜 볼 수도 있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 머물며 과거 속에 한 점을 남겨 볼 수도 있다. 물론 또렷한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지만. 작가는 작품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을까. 과거로의 여행을 원하는 인물과 시간대를 설정하는 작업이 만만찮았을 것만 같다. 이야기 속에 또렷한 깨달음과 자아성찰도 한 스푼, 훈훈한 마무리에 미소 한 큰술도 독자들이 원하는 소스다. 더 궁금하다면 이 과거 여행사 한줄평을를 참고하도록.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열명중 아홉은 찬성하지 않을까. 뜬금없지만 저런 여행사가 있다면 주식이 대박날텐데.ㅋㅋ 그렇기 때문에 이 히라이스 여행사는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명함이 어떤 경로로 뿌려졌는지도 불명확하다. 단지 짐작건대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해 보이는 자들에게 점쟁이처럼 능력을 지닌 자가 흘리고 다닌 건 아닐까.
이야기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거나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들면 재미없다. 동화는 따지고 드는 게 아니듯이. 중요한 건 우리가 왜 과거로 떠나느냐이고 과거를 통해 현재가 어떻게 달라지느냐다. 당연히 과거의 큰 틀은 절대 건드려선 안된다. 그것은 시간 여행의 룰!이다. 어느 특정 시간대를 잘 못 건들면 모든 시간대가 꼬이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의 과거가 뒤틀린다. 그렇기에 여행사 또한 이 점을 늘 주시하고 관리 감독한다. 블랙리스트 고객 명단엔 당장의 이득에 눈먼자들(소설가의 원고를 훔치려 했거나 부동산이나 주식 등으로 이득을 취하려는)도 있지만 히틀러 암살 시도를 하려던 자도 있다. 수많은 사람을 살렸겠지만 반면 현재의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여행의 강도가 세다. 학폭에 관한 사연(해피 크리스마스)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더니 남북 이산가족의 얘기(시간의 거리와 네 아버지의 이야기)로 가슴을 먹먹하게 눌러놓는다. 열 건의 여행 중 참신하고 애잔하게 인상 깊던 사연은 고의적 실수(엄마의 인생을 구하겠다고 과거로 뛰어든 딸)와 파인드 미(자신의 요양보호사와 함께 프리미엄 패키지를 선택한 할머니)였고 <인생극장>은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한 이야기였다. 고아원에 버려진 뒤 헤어진 여동생을 찾으려는 오빠의 사연(띠앗)도 맘이 짠했다. 절묘한 막판 반전 또한 이 책이 주는 묘미다.
과거 따윈 돌아가서 뭣하냐며 반문하다가도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우찌 미련과 아쉬움이 없을까. 오래도록 숨겨왔던 과거의 거울을 마주한 시간여행자들은 과거에서 건져올린 새로운 사실이나 과거에 슬며시 놓고 온 마음들로 미래를 준비한다. 나 역시 터치 한번 못 해본 그 녀석의 손도 덥석 잡아보고 싶고, 얄미웠던 그놈의 뒤통수도 때려주고 싶고,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며 한소리 쏴주고픈 인간도 있다.
제아무리 사는 게 지랄맞아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며 후렴구를 반복하며 살게 되더라도 <파인드 미>편의 할머니의 조언처럼 후회를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가는 인생은 살진 말자. 그럼에도 <띠앗>편의 여행자처럼 과거 여행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과거의 시간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처음부터 여행사 문은 두드리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