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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평점 :
우선은 즐겨보는 장르가 아니다. 함께 읽기 선정도서가 아니었음 볼일이 없었을 책이란 얘기다. 초반부터 학교폭력이 등장한다.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낀 순간 중딩 여자아이의 발길질에 동급생의 숨이 끊어진다. 이런 젠장할. 슬슬 욕지기가 올라온다. 꿀토를 아름답게 보내고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발을 뺄 수가 없다. 처절한 복수극을 봐야 할 것 아닌가.
어라. 그런데 초반에 사고 친 중딩들은 잠시 사라지고 더 영악해 보이는 중딩이 등장한다. 이 책은 전작이 있었다. 물론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일단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새엄마(선경)와 딸(하영)의 분위기가 모호하다. 딸의 사춘기로만 치부하기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하영을 상담사인 친구에게 맡긴 선경. 그렇지만 이미 하영은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 좀 더 영악하다. 하영의 숨겨진 분노가 성장과정의 문제인지,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기인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이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선경의 신경세포가 예민해짐에 따라 나 또한 하영의 겉과 속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요주의 인물이 서서히 다른 인물로 옮아가는데.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었다.
내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 -p.299
이젠 이런 말을 흘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조심해야겠다. 내가 상대할 여력이 안 된다면. 그들에겐 나쁜 기억에 얽힌 비밀이 있고 그 비밀로 인해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미 드러난 악의 얼굴은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상대의 괴로움을 영양분 삼아 미소 짓고 기뻐하고 평정을 찾아간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등장한 악귀 변천사가 언뜻 스친다.
초반에 발생한 학교 폭력은 선경의 가족과는 별개의 사건이었지만 선경의 임신으로 이사를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운명의 고리가 엮이듯 어느 날 하영의 손에 들어온 죽은 아이의 가방이 발견된다.
숨겨진 학교폭력의 그림자는 하영의 그림자에 새로운 자극의 불티가 된다. 게다가 어린 시절 지워진 기억의 파편들이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으면서 왜곡되어 있던 가족 내 진실이 드러난다.
어쩌면 분노의 심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무조건적으로 타인으로 향할 때를 경계해야 한다. 타인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자들은 이미 善의 경계를 넘었기에 돌아오지 못한다.
하영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선 자보다 하영 같은 인물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악화될 것인가 아닌 가로.^^
결말을 슬쩍 말하자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쳐놓은 치밀한 거미줄에서 하영과 선경은 간신히 벗어났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외면해도 다음 편을 지나치긴 어렵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