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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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은 즐겨보는 장르가 아니다. 함께 읽기 선정도서가 아니었음 볼일이 없었을 책이란 얘기다. 초반부터 학교폭력이 등장한다.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낀 순간 중딩 여자아이의 발길질에 동급생의 숨이 끊어진다. 이런 젠장할. 슬슬 욕지기가 올라온다. 꿀토를 아름답게 보내고픈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미 발을 뺄 수가 없다. 처절한 복수극을 봐야 할 것 아닌가.

 

어라. 그런데 초반에 사고 친 중딩들은 잠시 사라지고 더 영악해 보이는 중딩이 등장한다. 이 책은 전작이 있었다. 물론 굳이 전작을 보지 않아도 별문제는 없다. 일단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새엄마(선경)와 딸(하영)의 분위기가 모호하다. 딸의 사춘기로만 치부하기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런 하영을 상담사인 친구에게 맡긴 선경. 그렇지만 이미 하영은 자신을 드러냄에 있어 좀 더 영악하다. 하영의 숨겨진 분노가 성장과정의 문제인지, 전작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기인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사이코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선경의 신경세포가 예민해짐에 따라 나 또한 하영의 겉과 속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요주의 인물이 서서히 다른 인물로 옮아가는데.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었다.

 

내 눈에 거슬리게 하지 마. -p.299

이젠 이런 말을 흘리는 사람을 만난다면 조심해야겠다. 내가 상대할 여력이 안 된다면. 그들에겐 나쁜 기억에 얽힌 비밀이 있고 그 비밀로 인해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미 드러난 악의 얼굴은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내려고 한다. 상대의 괴로움을 영양분 삼아 미소 짓고 기뻐하고 평정을 찾아간다.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등장한 악귀 변천사가 언뜻 스친다.

 

초반에 발생한 학교 폭력은 선경의 가족과는 별개의 사건이었지만 선경의 임신으로 이사를 오게 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운명의 고리가 엮이듯 어느 날 하영의 손에 들어온 죽은 아이의 가방이 발견된다.

숨겨진 학교폭력의 그림자는 하영의 그림자에 새로운 자극의 불티가 된다. 게다가 어린 시절 지워진 기억의 파편들이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에서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으면서 왜곡되어 있던 가족 내 진실이 드러난다.

 

어쩌면 분노의 심지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 분노와 비난의 화살이 무조건적으로 타인으로 향할 때를 경계해야 한다. 타인을 짓밟으며 희열을 느끼는 자들은 이미 善의 경계를 넘었기에 돌아오지 못한다.

하영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선 자보다 하영 같은 인물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악화될 것인가 아닌 가로.^^

 

결말을 슬쩍 말하자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쳐놓은 치밀한 거미줄에서 하영과 선경은 간신히 벗어났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무리 외면해도 다음 편을 지나치긴 어렵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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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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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여행의 의미와 지금 우리가 쓰는 여행의 의미는 달라졌다. 인간은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길 원한다. 즉 떠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올 곳이 있어야 여행의 가치는 상승한다.

 

나는 여행에 적합한 체질과 성향은 아니다. 멀미도 잦고 특히 배멀미는 끝장이다. 더군다나 긴장하면 장트러블도 잦아 공간이 바뀌면 화장실부터 걱정이다. 여행지에서 조금만 피로감을 느끼면 방구석이 그렇게도 그립다. 배낭여행도, 해외여행도 없었다. 어쩌면 낯선 장소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더 컷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처럼 호텔에 대한 기대감 따윈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호캉스도 그닥 당기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의 나의 여행의 목적은 힐링보단 사진이 이유였다. 물론 나의 삶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그럼에도 그 미미했던 순간을 오래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진에게 쏟은 열정때문이다. 낯선 장소들은 나에게 새로운 글감이 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여행은 그럴 수밖에 없다. 작가처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될 그런 여행. 이젠 내게도 그런 여행이 필요함을 느끼지만 아쉽게도 기약할 수 없는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각자가 갖는 여행의 이유와 목적의 종착역은 '나'가 아닐까.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 또한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의 강점이라면 시간이나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반드시 여행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쓰는 고통보다 즐거움이 먼저라면 여행의 설레임과 기대감은 몇 배가 되고 계획에 어긋난 추방을 당하게 되더라도 여유가 생긴다. 여행은 여행의 순간이 주는 강렬한 감정도 있겠지만 다시 되짚어 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언제나 여행기를 책과 영화로 대신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겐 방구석 여행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작가의 조언이 감사하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소소한 경험담과 에피소드도 잔 재미가 있지만 일화 속에 덧붙인 책 이야기에 귀가 팔랑 팔랑인다. 오디세우스(Nobody nobody but you ㅋㅋ)와 그림자를 팔아버린 사나이(여행자이자 방랑자에게 그림자 따위)를 만나 여행에 숨은 삶의 깨달음을 찾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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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를 꿈꾼다 - 가족은 복잡한 은하다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고정아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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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1986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지금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훨씬 태어나기 이전의 시간일 것이다. 왜 시간적 구성이 그 시점으로 옮겨 가 있는지는 1월 1일 버드의 시점이 열리면서 알게 된다. 1986년 1월은 챌린저호 발사로 미국이 부산스러웠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케이블 티브이도 흔치 않았고 게다가 이번 발사 계획엔 민간인 교사 한 명도 탑승하여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이었다.

그랬기에 학교에서 아이들은 이 엄청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1989년 1월 한 달, 세 남매의 시선으로 매일의 일상을 쫓아가다 보면 안타까운 챌린저호 사건의 뒷면에는 위태로워 보이는 한 가정의 일상도 보인다.

 

가족은 복잡한 기계다.

 

운동을 좋아하는 첫째 캐시, 기계의 속 사정이 궁금해서 분해도를 즐겨 그리며 누구보다 챌린저호에 온통 정신을 뺏겨있는 둘째 버드, 그리고 버드와 쌍둥이이자 오락게임을 좋아하는 피치. 책을 좋아하지만 아빠와 늘 삐걱거리는 엄마. 오죽하면 버드는 부모님의 소음을 들으며 우주에 떠 있는 상상을 할까.

 

기계의 작동원리에 대해 호기심이 많은 버드는 그만큼 사물과 사건에 대해 눈과 귀가 열려있다. 버드네 가족은 우주 속에서 떠도는 먼지가 되어 각자의 궤도를 도느라 주변을 신경 쓰지 못한다. 버드는 각자의 삶으로만 침참해가는 가족 구성원 때문에 외로움을 느낀다. 부모님의 대화는 매번 엉켜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캐시는 손에 깁스를 하는 바람에 학점도 위태롭고(운동부에 들어가려면 평균 성적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 아주 좋다.) 전부였던 농구팀에서도 빠질 위기다. 피치 또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던 여학생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상태다.

 

가족 구성원 누구도 버드에게 무관심이다. 가끔 다른 이가 가족이었으면 하는 예쁘지 않은 생각들로 위안을 얻고 챌린저호 발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다. 우주에 대한 희망은 자신의 꿈과도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승무원인 주디스 레스닉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해 있던 상태였다. 1월 하고도 6일이 지난 수업 시간, 같은 반 친구가 주디스와 버드를 비교하며 버드의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말을 흘리게 된다.

너는 별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파동은 생각보다 강력한다. 예쁜 건 아무것도 아니야. 예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예쁜 건 자신이 만드는 거야. -p.148라는 말에도 위안을 얻을 수 없다. 챌린저호가 폭발한 이후 너는 별로라는 단어 뒤에 붙일 수 있는 부정적 완결문은 수백 가지의 가지가 되어 뻗어 나갈 것만 같았다.

가족은 가장 예측 가능한 기계야.

버드는 학교 수업 시간에 했던 기계와 인간의 차이점에 관한 생각에 집중한다. 기계에 비하면 인간은 정말 오점투성이다. 챌린저호의 기계 오작동도 인간의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참사였다. (실수를 하고 감정에 휘둘린다)

이처럼 중대한 오작동이 벌어지면 기계는 폭발해버리고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하지만 인간은 성찰과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세 남매와 가족의 한 달은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친다. 마치 별이 우리의 눈에는 정지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인간이기에 회복의 시간도 갖는다.

버드 곁에 캐시와 피치가 발걸음을 맞추어 준 것처럼.

 

챌린저호가 공중분해되었을때 버드의 충격과 슬픔과는 달리 아이들은 단축수업에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일상과 가장 가까운 일에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가 왜 우주를 꿈꾸는지에 대한 살롱가 선생님의 조언을 한 번 더 새겨본다면 생각의 폭이 달라질 것이다. 요건 책을 통해 만나보시길.

 

​세 남매가 고민하며 인생의 궤도를 수정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현재의 나는 어떤 고민과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돌아본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왜 우주탐사가 필요한지에 대해 친구들이 고민하다 크리스토퍼의 말대답에 빵 터졌다. 요즘 좀 심하게 어이없는 생명체가 눈에 들어오긴 하지.

"우주에 생명이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이야?" 크리스토퍼가 물었다. "지구에도 어이없는 생명체가 가득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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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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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세대 어르신들은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한다. 내 인생은 한 권의 책으로도 다 못 쓴다고. 그만큼 고된 삶을 살았음을 강조한 건데 이 책 또한 못지않게 고달프다 보니 시대의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자국에서는 출간을 금지당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시간은 밤>의 안나의 고백처럼 삶의 혹독한 진실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여러 편의 단편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꾸밈이 없다. 게다가 단편이라 더 강렬하다. 이는 작가의 불우한 어린 시절(지옥에 갇힌 느낌)이 투영되어 있다. 앞쪽의 짧은 단편들은 중편 <시간은 밤>을 위한 준비운동과도 같다. 그만큼 <시간은 밤>의 심적 고통이 세다. 결국 앞쪽 짧은 단편들은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가난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정신을 극한 상황으로 쉴 새 없이 몰고 간다. 그러한 상황들을 풀어낸 작가의 글솜씨에 제대로 꽂혔다. 풍자와 해학은 물론이고 한편의 긴 시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웠다.

책을 덮고 나니 우선은 단편적 생각이 먼저 흐른다. 딸아이가 그녀가 되고 그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기까지 그녀들을 둘러싼 운명의 색채들은 어둡다. 그곳엔 우리가 듣기에 불편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사실들이 존재했다.

한마디로 욕밖에 나오지 않는 인생이었다. -p.305​​

가난, 병, 어둠, 답답, 짜증, 우울, 고독, 불행이라는 키워드를 끼고돌고 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에게 집과 남자와 아이와 희망 같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존재했었나를 짚어 보았다.

그녀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런 여인들로 불렸고 그냥 그렇게 잊혔다. 그녀들에게 남겨진 건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부채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밤>에서 안나가 남긴 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시인이었으며 그녀의 바람대로 시인으로 남았다. 그녀는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집의 비밀>편 그녀의 꿈속에 등장한 아래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현실에서 그는 말 그대로 남에게 해만 끼치고, 자신의 삶과 경박함, 미래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으로 불구가 되어버린 쓸모없는 존재였다. -p.103

다시 말해, 가망이 없는 작자, 규율이나 양심, 의무에 대한 일말의 징후도 없는 인생이었다. 하긴 위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제멋대로 굴고 강자가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약자를 파멸시키듯 그 여자들을 파멸시켜왔다. 내 잠을 방해한 불쌍한 파리떼를 내가 죽인 것처럼. -p.104​

그런 남자들 곁에서 모든 것이 버려지고 사랑 밖으로 밀려나고 모든 삶이 삶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아주 가끔은 그들의 계산(세 얼굴의 료바같은 놈)에 속아 그들의 삶 속에 합류하지만 똑똑한 그녀(엘비라)처럼 승리자로 남는 경우도 있다. 엘비라 만만세!

알콜중독에 손가락이 꺾인 알리바바처럼 진짜 집을 버린 채 가짜 집(피난 처)을 전전하거나 여기저기 밀그롬같은 여자들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의 사진 한 장에 기대어 아무것도 없이 살다 간다. 독신 여성의 미래는 <어두운 운명>의 그녀처럼 덜떨어진 남자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려지고 <아름다운 도시로>의 미혼모들의 운명 또한 바늘 위에 앉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기대감은 간간이 있어 왔다. 이해! 하지만 그녀들에게 이해는 삶 속에 섞여 드는 단어가 아니었다. <성모 사건>속 아들은 엄마와 공통으로 얽히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시간은 밤>의 딸과 엄마는 동일한 삶의 패턴(불행)이라는 공통으로 얽혀 들어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삶(회상)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살아서는 더더욱.

아이에 대한 사랑(모성애)이 당연함에도 단편 속에서 유독 강조되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아니었을까. 아이라는 양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양심이다. -p.277​

삶이 그녀들에게 가르쳐 준 건 달걀을 부치고, 수프를 끓이고, 기저귀를 가는 일뿐이다. 덤으로 엇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밑빠진 독에 물(사랑, 희생, 헌신)을 쉴 새 없이 들이붓는다. 더군다나 그녀들에겐 최소한의 물품만 있었다. 물려 입고 물려 입고 물리도록 입는 옷처럼 가난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입던 옷의 운명의 끝이 쓰레기통이듯 가난이란 운명의 종착역은 포기였다. 새 생명의 탄생보다 현재의 생명줄 다섯(자신을 포함한)을 책임져야 했던 <파냐의 가난한 마음>편은 죽음의 그림자가 태어날 아기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고통이 밀려온다. <시간은 밤>편의 안나는 끝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그처럼 가난은 모든 걸 지닐 수 없게 한다. 때론 견딤조차도.

하지만 사샤는 왠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로 하여금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울지 않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분명하게 대꾸해보라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무언가가 그녀를 떠밀었다. - p.57​

사샤는 인생을 잘 관찰하면 나름 뜻대로 잘 굴러가리라 여겼다. 그녀는 막이 내리고 문이 열리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제까지나 인생이 연극이었으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 위에 새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놀랍지 아니한가.

인생은 정말 농담을 잘한다. -p.171 인생은 뜻대로 되질 않는다. 진리다. 고로 인생은 때론 엿 같다. 그럼에도 생의 면역력은 공감과 희생에서 출발한다. 십오분의 소음이 영원한 화음<쇼팽과 멘델스존>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소중한 기억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즐거움<아름다운 도시로>을 선사한다. <시간은 밤>에서의 안나의 희생은 뭐 거의 숭고할 지경이다.

이 여러 개의 단편들은 여성들의 삶의 여러 단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그저 한 여인에게 모두 일어난 일처럼 여겨진다. 밤은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다. 수없이 많은 밤이 지났다. 삶의 밑바닥을 억척스럽게 지켰던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가족의 영원함을 기약할 수 있었을까. 또한 '기대를 가져볼 만'한 것들이 있었기에 가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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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5-07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빵과 별사탕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이책 찜!☝

건빵과 별사탕 2021-05-07 16:43   좋아요 1 | URL
ㅎㅎ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드밀라 작가님 강츄~~합니다.
 
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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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이 책을 북클럽도서로 만나 e북으로 읽었다. 아마도 내가 모바일로 본 유일한 책이자 마지막 책이 아닐까. 눈이 너무 피로해서 혼났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박서련 작가는 <더 셜리 클럽>으로 먼저 만났었다. 사랑과 연대를 젊은 작가만의 통통 튀는 매력으로 그려냈다면 <마르타의 일>은 화통한 복수극으로 후련함을 선사한다. 마르타(수아)의 철두철미한 일정에 숨이 막혀 오지만 이 정도쯤 치밀해주어야 진정한 복수가 가능한 것이라고 이해했다.ㅎ

어쩌면 한 뱃속에서 나온 형제자매들은 그리도 성향이 다를까. 우리 집 남매도, 지인들 자매도 극과 극이다. 그런 극과 극의 성향이 한 집안에서 나름의 조화를 이루어주면 좋겠지만 대체로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된다. 소설 속 자매 또한 연년생으로 태어나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지만 점차 각자의 장점이 두드러지자 삐걱거리게 된다. 주변인들의 말과 말에 오해는 부풀고 그렇듯 말 없는 사이가 되어 지낸다.

첫 장면은 동생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둘의 불편한 관계는 동생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부모님의 모습 앞에서 드러난다. 누워 있는 게 나였어도 엄마 아빠는 이렇게 울었을까? -p.12 이쯤 되니 둘 사이에서 부모님의 역할도 의심스럽다. 동생만 편애한 게 아닐까 하는. 물론 이것 또한 둘의 성향 때문에 생긴 오해일 뿐이었음을 알았다. 수아는 차가운 물이라면 경아는 따뜻한 물같다고나 할까.

암튼 사건은 여기서 시작한다. 착하고 예쁜 게다가 어마 무시한 팔로워를 거느린 SNS 셀럽이었던 동생의 자살. 하지만 절대 자살일 리 없다고 직감한 수아에게 제3의 인물이 등장해 타살임을 알리고 수아는 증거를 찾아 미친 듯이 몰두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후 완벽하게 끝을 낸다. 수아의 찰진 욕도 한몫했고.ㅋ

경아가 마리아라면 나는 마르타가 되어야 했다. -p.260

마르타는 성경 속 인물이다.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의 이야기를 빗대어 현대판 마르타(수아)가 성경 속 마르타의 억울했던 속 사정을 재해석한 이야기다. 죽음이라는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나서야 깨닫게 되어 맘이 아프지만 마르타의 일은 권선징악이라는 진리를 현실 속에서 확실히 재연시킨다. 마르타의 한다면 한다 정신도 한몫 거들었고.

유명 셀럽의 이면에 그려진 동생의 삶은 유명세에 이끌리다 좌초된 배가 되고 말았다. 미모의 봉사녀라는 타이틀이 동생을 만인의 연인으로 앉혀 놓았지만 시기와 질투 그리고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언니처럼 예쁜 이름이 갖고 싶어 리아로 개명한 경아, 리아의 언니라는 수식어가 싫었던 수아. 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보이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늘 부족함을 느끼며 스스로의 삶을 악착스럽게 몰아가는 수아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럼에도 수아에게 동생의 죽음이 전환점이 된다거나 의식의 변화 따윈 없었다. 그저 자신의 계획에 죽음의 진위를 파악하는 스케줄을 욱여넣고 더욱 미친 듯이 매달린다. 잠시 동생의 죽음 앞에 112를 부르느냐 119를 부르느냐를 두고 제3의 인물과 관점의 저울질을 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변함없는 건 자매의 사랑은 태어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수아 씨는 무섭습니다. - p.188

어떤 방식이 되었든 죽음에는 죽음으로 대갚음해 주었다. 그럼에도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른다는 섬뜩한 암시를 남기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 찝찝하고 소름 돋는 마지막 한 문장에 수아의 화끈한 욕설 한방을 덧붙여야 될 것만 같다. 그래야 완전히 끝난 것만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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