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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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이 덜 아프고 덜 부끄럽고 덜 두렵기 위해서는 고독한 몽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명제를 두고 현재의 내 모습과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좁혀 나가야 한다. 물론 경험만큼 확실한 교훈은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짊어지고 갈 경험의 양은 한계가 있고 깨우침의 질도 스스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책은 중요한 멘토가 되어준다.

 

나는 20대에 놓쳐버린 기회보다 놓쳐버린 감성을 이야기하고 싶다.라는 부재를 보며 나의 20대를 떠올려보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몰랐고, 관계는 서툴렀고, 두려움만 컸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 생각 없이, 계획 없이, 열정 없이 살아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청춘이라서 가지는 고민을 건너뛰며 떠밀려오다 보니 남들보다 뭐든 느렸다. 그렇다고 현재 내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십 대 내가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더라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은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멘토다. 이십대를 향한 메세지라는 콘셉트로 책을 집필했다고 하지만 이는 현대인이라면 갖추어야 할 기본 가치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스무 개의 키워드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이십대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나의 가치관과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울퉁불퉁했던 내 모습을 조금씩 다듬어 가게 된다.

 

스무 개의 명제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명제가 있을 것이다. 보고 싶은 부분부터 봐도 무방하다. 구성도 딱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글과 잘 어우러지는 사진은 두 배 이상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는 가족(내 삶을 지켜보는 최고의 관객)을 먼저 보고 우정(이런 친구라면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을 보았다. 사회적 위치보다 아이들에게 멘토가 되어야 하는 위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믿음이다. 기다릴 시간에 기다려주고 책임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서로를 질타하지 않으며 각자의 시간과 삶을 살 수 있도록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함을 새겼다.

 

중요 순서도로 정리한 것은 아닐 테지만 우정이 제일 먼저 등장한 걸로 봐선 우리가 제일 많이 고민하고 상처받고 힘들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도 우정이라 하면 내 편을 만드는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편을 만드는 것은 인간관계를 편협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뜨끔했다. 불편한 관계는 무조건 피하려고만 했었는데 그러한 관계에서 내가 성장한다는 걸 뒤돌아보니 알겠다.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관계에 익숙해져 있다면 그 관계를 다시 점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시간은 웬만해선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공간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는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현재 내가 이십대를 돌아보며 후회하는 게 딱 두 가지가 있다. 여행과 독서다. 난 두려움이 너무 커서 내가 있는 자리를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스스로 길치가 되어갔고 늘 제자리였다. 그때 조금만 용기를 냈더라면 분명 나의 내면은 더 달라져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여행길 위에서 차이를 통해 동질성 회복 -p.41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듯이 여행의 묘미를 일찍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요즘 내가 자주 하는 고민은 내가 빛날 때가 언제인가이다. 사십대에 나는 얼마큼 빛나는 순간들을 만나고 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빛날 순간들을 맞이할 것인가로 말이다. 하지만 알았다. 재능이라는 것은 노년을 밝혀주는 등불이며 재능의 비결은 매일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라는걸.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과 질투에서 오는 도화선을 잘 결합하면 재능을 만날 수 있다. 내가 글을?이라고 여겼던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니 때론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신기할 때가 있다. 재능이 있든 없든 내겐 즐거운 일이고 나를 던지는 시간만큼 나를 반짝이게 한다.

 

 

 

 

각종 트렌드를 반영하듯 이십대를 지칭하는 수식어들이 우프긴 하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계속 아파하게 내버려 두면 심각하게 병들어 갈 수 있다. 새로운 것에 쫓기고 새로운 기술에 빠져 사는 동안 남에게 나를 대입하고 맞추려 하다 보면 끝도 없는 절망감과 허탈감에 빠지기 쉽다. 이십대는 온갖 세상 소리에 반응이 빠르고 쉽게 현혹된다. 오죽하면 이상한 종교나 단체에서 가장 유혹하기 쉬운 타깃을 이십대로 정하겠는가.

 

행복이라는 강박증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를 알기 위해서, 진정 나답게 하는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삶의 가치를 확장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민들과 친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편협한 이념과 제도에 빠져 시야가 좁아지고 점점 이상한 광기에 집착하기도 한다.

 

이십대가 당당했던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나 서툴러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상 사는 법을 몰라 맨땅에 헤딩하면서 지나야 했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길도 잃어보아야 지나온 길을 더 기억하게 되듯 소중한 배움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성장하고 배우는 것이다.

 

매번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만 이 책이 재출간된 데는 분명 어느 시기를 지나든 청춘들이 갖는 고민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삶을 위해서라도 멘토가 되어 줄 책 한 권 곁에 두면서 이십대를 지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가 놓쳐버린 감성들로 영혼에 건강함을 채워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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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세와 함께한 10일 도란도란 마음 동화 2
안선모 지음, 이장미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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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결방안뿐 아니라 난민에 대한 인식조차도 제자리걸음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 아이들 책에서 난민에 관한 소재를 자주 만나게 된다. 기성세대보다는 글로벌한 세상을 맘껏 누릴 세대이기에 더더욱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덕분에 나도 아이에게 여러 권의 책을 보여 줄 기회도 있었고 난민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도우며 살기란 쉽지 않다. 맘은 있어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많지 않다. 열이 엄마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인 분이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데도 열이는 조금 불만인가 보다. 우리 집과는 상관없는 일에 엄마가 관심을 두는 게 싫다. 열이의 입장에서는 주목받아야 할 자신의 생일보다 난민 생각에 더 빠져있는 엄마가 서운했을 수도.

 

열이네 반에 얼마 전에 따세라는 아이가 전학을 왔다. 미얀마 난민이라는 정도만 안다. 그런데 열이 엄마가 어려움에 처한 따세네를 돕자는 제안을 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아빠까지 거든다. 생일선물 얘기를 꺼냈다 잔소리부터 하던 엄마는 열이에게 조건을 내건다. 열흘 동안 열이와 잘 지내면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사주기로.

 

 

 

 

그렇게 해서 따세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따세와 학교도 같이 가고 학교에서도 줄곧 붙어 지낸다. 다행히 따세는 한국생활을 잘 하고 있는 친구다. 주눅 들어 하지 않고, 벌레도 사랑하고, 나무도 잘 타고, 달리기도 잘하고, 물구나무 서와 축구도 잘 한다. 그런 따세를 챙기는 열이를 처음엔 의아하게 보았지만 차츰 착하다며 칭찬한다. 그런데 따세가 점점 아이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하자 속상하다.

 

학교뿐 아니라 집에서도 따세가 늘 중심이다. 열이는 소외감에 괜한 심술도 부린다. 하지만 열이는 심하게 잠꼬대를 하던 따세를 본 뒤 조금 놀란다. 따세는 난민으로 살아온 지난 시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가슴 아픈 과거가 늘 따세의 마음 한구석에 그늘로 남아 있었다. 그런 마음을 헤아린 열이 엄마는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따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평화로웠던 고향 마을과 행복했던 시절, 전쟁으로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그림으로 보여준다. 평화로웠던 고향마을을 그리워하는 따세의 마음이 아이들에게도 전해지지 않았을까.

 

 

 

 

따세는 약속했던 열흘을 채우고 가게 되었다. 난민이 아닌 정착민이 되어 더 나은 곳으로.

처음 장난감이 목적이었지만 어느새 따세와 정이든 열이는 결국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따스하게 안아주는 따세도 울고 있는 열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우리는 난민에 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편견이 앞서는 것이다. 저자도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한다. 당시 전학 온 난민 친구에 관해 별다른 설명을 못 해 주었던 것이 걸려 난민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았다고 한다. 따세는 종교적인 이유로 미얀마에서 떠밀려 한국까지 오게 된 친구다. 각양각색의 사연을 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떠밀려온 사람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그들이 낯선 곳에서 따스한 시선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좋은 글로 탄생하게 되지 않았을까.

 

큰 아이 반에는 피부색이 다른 친구가 있다. 가졌던 우려와는 달리 그 친구는 성격이 쾌활하고 달리기도 잘 해서 반에서 인기도 많다고 했다. 아이들이 피부색이 다르다고 멀리하거나 무시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아이들은 편견 없이 잘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편견의 중심에는 어른들의 잘못된 태도가 있는 것이다. 2018년 제주도 난민 사건 때 난민 거부에 대한 국민청원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고용주들의 태도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문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등을 보고 자란다. 열이 네처럼 부모가 행동으로 실천하는 집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당장에 그런 상황을 끌어 붙일 수는 없겠지만 이런 소재를 다룬 책들을 많이 접하게 해주어 앞으로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은 사라져갔으면 좋겠다. 배제하는 문화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더욱 서로를 밀어내며 살 것이다. 조금씩만 배려하고 한 걸음씩 만 양보해도 인종 간 장벽은 허물어지지 않을까.

 

 

 

 

책을 읽고 활동지를 해 보았다.

 이야기 순서 찾기, 숨은 낱말 찾기, 내용 확인하기 등을 해보며 생각을 키워볼 수 있어 좋았다.

 활동지는 알라딘 이벤트 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으며

구매시 마스킹 테이프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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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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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난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펼쳐들었다. 표지만 보고 페미니즘을 위한 계발서인 줄 알았다. 유리천장을 뚫고 나온 여성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어가는 세상.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사회이든 균형이 무너지면 대혼란을 야기한다.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능력이 주어진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여성들의 멋진 신세계를 예견하는 듯 보였으나 파워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또 불편하다. 여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더 부드러울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음에 동의해야 하니 말이다.

 

[시녀 이야기]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은 비참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여성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되찾았던 권리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을 보며 디스토피아의 끝판을 본듯했다. 반면 파워는 정반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여성들에게 생긴 '파워(전기 자극)'로 인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중심의 사회로 뒤바뀐다. 열다섯 살 소녀들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놀라운 힘은 점차 모든 여성들에게서 발견된다. 태어날 때부터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능력이지만 손가락만 까딱해도 누군가의 생명을 쥐 흔들 수 있는 능력이기에 이것은 남성들뿐 아니라 서로에게 두려운 능력이 된다.

 

결국 남을 해치는 능력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깨닫게 되리라. -p.320

 

표면적으로는 여성작가가 쓴 소설이지만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가를 등장시키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남성 작가 닐은 이 소설을 역사적 사료를 기초해서 쓴 역사소설이라며 내세우지만 은연중에 여성 우월주의 시대를 비꼬는 듯한 뉘앙스다. 그런 의도를 파악한 여성 작가 나오미는 여성작가 이름으로 책을 낼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며 한방 먹인다.

 

 

 

 

구조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 그 힘에 얽힌 삶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파워를 발견한 록시, 입양된 가정을 전전하며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한 앨리, 시장이자 싱글 맘인 마고, 파워가 일으킨 각종 사건사고로 돈벌이를 하려는 남성 툰데.

 

인간은 개인의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뭇잎이 제때 움트고 작은 나뭇잎에 싹이 피고 뿌리가 퍼지는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복잡성 속의 유기적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과정이 인간을 만든다. -p.413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서 발현된 '파워'는 여성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폭력성을 끌어낸다. 순식간에 이 놀라운 힘은 세상을 장악하게 되고 곳곳에서 끔찍한 폭력이 발생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보다 그 이상의 힘자랑을 하기에 이른다. 남성에게 억눌렸던 분노가 끝도 없이 번져간다. 남성들은 사냥을 당하고 노리감이 되어 강간을 당하고 끔찍하게 살해된다. 이는 남성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조장한다.

 

앨리에게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앨리에게서 그 이상의 폭력성을 억누르게 하고 여성들의 파워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기에 신의 능력에 의지한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기적은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하게 된다. 앨리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서 어머니 이브가 된다.

인간에게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초에 종교도 남성적 색채를 띠고 여성을 억누르는데 이용되었기에 평등을 주장하던 교리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대혼란(여성이 파워를 가지기 시작한 때)을 기점으로 종교관도 뒤바뀐다. 어머니 이브는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창시자가 되고 여성 공화국이 세워진다.

 

여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 알려 주실 거야. -p.106

 

주어진 환경, 군상, 인간의 욕망 등은 다양하다. 네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를 보며 정의로운 힘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힘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가? 평등을 쟁취하려는 운동은 세상을 뒤집고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한다.

억압받던 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이 주어진다면 분명 그들은 다른 이들을 억누르려 할 것이다. 인간의 지배욕과 파괴욕은 멈춤을 모르기 때문에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키우게 된다. 강력한 파워를 지녔던 록시가 믿었던 아버지에게 배신당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타래를 옮겨심을 수 있다는 설정은 더 잔혹한 범죄를 낳을 것이다.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더 험악하고 잔인하게 흘러갈 것이다.

 

여성 중심 사회가 좀 더 너그러운 세상을 보여주었다면 좋겠지만 파워는 그런 세상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의 지배 욕망에 남녀가 어디 있겠는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세상에 균형이 존재할 수 없으며 게다가 사춘기 소녀들에게 주어진 파워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그런 능력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처럼 세상은 혼란스러움의 연속일 뿐이다. 꿈틀대는 타래는 힘(분노)이 아니라 공포다. 이 파워를 통제할만한 대안이 과연 있기나 할까.

 

세상을 움직일 이상적인 힘은 전기 자극이 아닌 사랑뿐이라고 인류애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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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에게 - 솔직하고 다정하게 내 안의 고독과 만나는 방법
에바 블로다레크 지음, 이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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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그렇기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잘 알면서도 우린 자꾸만 고립을 자초하는 걸까.

 

친정엄마가 즐겨 보는 프로가 있다. 엄마는 "나는 자연인이다"속 사람들을 보며 마치 원시인을 보듯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들의 사연들은 하나같이 드라마틱 하다. 진행자가 그들의 삶 속에서 간접 체험을 하는 동안 엄마는 그들의 사연을 들으며 안타까움에 혀를 차다가도 자연체험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들은 하나같이 외로워 보인다는 사실이다. 특히 진행자가 손을 흔들며 산을 내려가는 모습에 나는 왜 울컥하고 있는 걸까.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던 절친이 있다. 페이스북 친구 명단이 다 찰 만큼 지인이 넘쳐났다. 예쁜 데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여행도 좋아해서 친구들 명단도 글로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외롭단 말을 들었다. 네가? 오마이갓!

 


 

 

 

나는 외로운가?

 

글쎄다. 이색리뷰덕분에 오랜만에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외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새도 없이는 바쁜 중년이라서다. 결코 일 중독자는 아니다.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은 것뿐이다.

 

시기별로 외로움의 형태와 부피는 다르다. 청춘이라서 느끼는 외로움, 역할이 주는 압박과 스트레스로 인한 외로움, 정말 관계가 힘들어 오는 외로움 등 수많은 외로움에 직면한다. 사람이 무서워서 오는 외로움, 무리 속에서 끼지 못해 느끼는 외로움,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 등 나도 다양한 성질의 외로움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만큼 감정의 파동을 격하게 보내며 살았다. 충분히 다치고 상처를 봉해가며 살았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외로움의 뿌리도 찾고 상처 입은 과거의 나를 위로하며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 지금은? 물론 전혀 외롭지 않다는 건 아니다.(전혀 외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단지 외로움의 가면이 나를 뒤흔들 만큼 심각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살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가면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뒤집을 만큼 거짓된 가면은 점점 자신을 고립시킨다. 소설 <친밀한 이방인>의 이유미처럼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가면의 종류와 두께를 늘 살펴야 한다. 책에는 그 가면의 종류를 일 중독자 가면, SNS의 가면, 조력자 가면, 허영의 가면, 고슴도치 가면, 질병의 가면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다행히 어느 쪽으로 치우친 가면은 없어 보인다.

 

 

 

 

중년기,

'더 이상 젊지도 않고' '아직 노인도 아닌'

 

외롭지 않다고 말하던 내게 이 책은 나를 점검하게 만들었다. 중년의 위기에 직면하기 전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 보았다. 젊음을 놓아주고(아! 놓아주어야하는구나.ㅎ) 지나친 몰두에서 빠져나와 변화에 대처하며 나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는 것. 단계를 밟을 때마다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외로움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함을 깨달았다.

 

외로움은 스스로가 자꾸만 키워나간다. 소통에서 오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긍정적 사고를 위해 자신에게 칭찬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내 마음속 상전과 하인의 싸움에 휩쓸리기 않기 위해서는 나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 줄 행동을 습관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은 자신감 회복이다. 타인을 향한 관심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린다면 외로움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가끔 밀려드는 외로움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같다. 책을 보고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전시회를 가는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을 찾는 것 말이다. 사람들과 있을 땐 나보다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나를 돌보지 못하지만 이때만큼은 나에 대해 더 찬찬히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지금 이 책을 본 것도 그렇지 아니한가.

 

 

 

 

 

요즘 코로나로 뒤숭숭해서 미술책만 보고 있다. 역시 나만의 콜라주가 위안이 된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하지만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자는 자신의 외로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법이다. 외로울땐 자신만의 행운의 콜라주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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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물리학자 - 명화에서 찾은 물리학의 발견 미술관에 간 지식인
서민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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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미술책을 보다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이란 작품을 아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의 그림 속에 깃든 과학적 기법들이 무척이나 신기했고 그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의 그림들이 유독 내 뇌리 속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작가의 고뇌와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고 제품 촬영도 하다 보니 나도 빛에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특히 자연광을 선호하기 때문에 하루 언제쯤 촬영을 해야 좋은 감도를 얻을 수 있는지, 혹은 시간대별로 촬영을 했을 때 사진의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잘 안다. 그러한 이유로 빛을 잘 표현한 작품이나 풍경화를 보면 막 설렌다.

 

미술은 예술이라는 하나의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와 맞물려 있다. 어바웃어북에서는 꾸준히 수학, 화학, 의학, 인문학과 미술작품의 상관관계에 관한 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번에는 물리학이다. 다른 책은 패스해놓고 관심도 없던 물리학에 혹 한건 페르메이르 작품뿐 아니라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등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언급되어 있을 것 같아서였다.

미술책을 가리지 않고 보다 보면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다행히 아는 작품들이 많았고 그 작품들과 물리의 상관관계를 언급하고 있어 정말 흥미롭게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첫 번째 챕터가 빛에 관한 작품들이었다. 첫 작품부터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빛이 없는 겨울 풍경이지만 그 시절의 날씨를 예측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500년대는 소빙하기 시대로 혹독한 추위가 온 세상을 얼려버렸고 페스트로 유럽 인구 절반 이 사라졌으며 그로 인해 마녀사냥도 자행되었던 시기다. 어쩜 그렇게 지금과 상황이 비슷하게 돌아가는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인간 본성은 1500년대나 21세기나 별반 차이점이 없구나. 허나 고단하고 힘겨운 시절이었을 텐데 겨울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과 풍경만은 시리도록 아름다워 보인다.

 

빛과 관련된 여러 물리학적 관점의 여러 작품들을 보다 보니 이전에 보았던 작품도 새롭게 보인다. 모네와 마네의 작품에서는 인상적인 물결의 흐름을 볼 수 있는데 물결에서 전해지는 파동과 예술가의 고뇌를 연결 지은 점도 흥미로웠다. <로슈포르의 탈출>에서 느껴지는 긴박감과 위태로운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해가 뜨고 지는 일은 똑같이 반복되지만 풍경은 매번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이를 포착한 화가들은 자연을 관찰하며 빛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그 풍경 속에 눌러 앉은 작가들도 있다. 그림을 통해 세상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좋아하는 두 작가의 풍경화들을 보면 풍경화에서 다양한 표정을 찾아볼 수 있다. 다채로운 날씨를 지닌 영국의 하늘을 담은 <건초 마차>와 무지개로 포인트를 준 듯한 햄스테드의 풍경은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 또한 풍경을 재해석한 점이 돋보였다. 작가가 그만큼 이 풍경을 사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360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하지 않은 델프트의 모습이 더 신기했다.

 

쇠라의 작품은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가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완성하기 위해 2년 동안 햇빛 아래서 고생을 하며 한 점 한 점 그렸다고 상상하니 이 작품의 점 하나하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세하고 많은 점들이 어느 시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지를 치밀하게 계산했다는 점도 놀랍다. 19세기 과학자들이 고민했던 빛의 탐구를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처럼 시대적 고민은 어느 한 분야에서만 유행하는 게 아님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용기와 집념으로 시도한 새로운 화법이 또 다른 사조를 낳은 원동력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누군가는 내 그림에서 시를 보았다고 하지만, 나는 오직 과학만 보았다." - 조르주 쇠라

 

그림이 점차 세분화되고 과학이 발전하자 보이지 않던 영역까지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시공간이나 리듬까지도 담아내려고 시도했다. 그만큼 화가들도 작품을 위해 과학을 공부했다. 작가의 머릿속에만 있던 상상의 세계들이 화폭으로 옮겨지자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난다. 여러 가지 기법뿐 아니라 화가들이 사용한 물감의 종류나 재료의 변화를 통해서도 흥미로운 작업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 잘 알고 있는 고흐의 파랑(코발트블루)과 노랑(크롬 옐로) 이 작가의 입맛에 딱 맞추기가 어려웠던 색이었다고 한다. 강렬한 두 보색의 대비를 보며 고흐의 끊임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있는데 고흐의 노란색이 점점 짙어져간다니 아쉽기만 하다.

 

이처럼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옵아트, 추상화 등 다양한 작품들 속에 깃든 작가의 고민들은 물리학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에 철저히 계산된 과학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과학의 발전으로 그림을 분석해서 비밀을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모나리자의 미소에 얽힌 비밀, 작가만이 알고 있었던 덧칠, 진품과 위작을 가려낸 기술력, 고흐의 그림 속에 드러난 또 다른 인물 등은 당시 작가의 일생을 훔쳐본듯한 느낌이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미술책을 보면서 늘 실감하게 된다. 그래서 더 알고 싶은 것이겠지만.

 

 

 

 

M.C. 에셔 <원형의 근한 Ⅳ> 1960년, 이 작품을 본 순간 지금 상황과 어쩜 이리도 비슷해 보이는지. 날로 상황이 심각해지다 보니 박쥐(악마)만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지금 내 심정이 불안해서 일는지도. 얼른 천사가 더 잘 보이기를.

과학자와 화가라는 꿈 사이를 방황했다던 저자는 과학자가 되고 루소처럼 일요일에는 붓을 드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물리학의 관점으로만 미술작품을 설명하고 있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사랑을 저자와 딸의 작품을 보면서 한층 느낄 수 있었다. 간만에 재밌게 읽은 책이라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미술관 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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