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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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난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펼쳐들었다. 표지만 보고 페미니즘을 위한 계발서인 줄 알았다. 유리천장을 뚫고 나온 여성들이 사회의 주축이 되어가는 세상. 뭐 이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어느 사회이든 균형이 무너지면 대혼란을 야기한다.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게 보이지 않는 능력이 주어진 것은 자신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 이야기는 여성들의 멋진 신세계를 예견하는 듯 보였으나 파워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또 불편하다. 여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더 부드러울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음에 동의해야 하니 말이다.

 

[시녀 이야기]를 접했던 많은 여성들은 비참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여성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되찾았던 권리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을 보며 디스토피아의 끝판을 본듯했다. 반면 파워는 정반대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어느 날 여성들에게 생긴 '파워(전기 자극)'로 인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 중심의 사회로 뒤바뀐다. 열다섯 살 소녀들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놀라운 힘은 점차 모든 여성들에게서 발견된다. 태어날 때부터 여성들에게만 주어진 능력이지만 손가락만 까딱해도 누군가의 생명을 쥐 흔들 수 있는 능력이기에 이것은 남성들뿐 아니라 서로에게 두려운 능력이 된다.

 

결국 남을 해치는 능력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깨닫게 되리라. -p.320

 

표면적으로는 여성작가가 쓴 소설이지만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가를 등장시키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남성 작가 닐은 이 소설을 역사적 사료를 기초해서 쓴 역사소설이라며 내세우지만 은연중에 여성 우월주의 시대를 비꼬는 듯한 뉘앙스다. 그런 의도를 파악한 여성 작가 나오미는 여성작가 이름으로 책을 낼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며 한방 먹인다.

 

 

 

 

구조는 네 명의 등장인물이 각자 그 힘에 얽힌 삶을 보여주고 있다. 엄마의 죽음 앞에서 파워를 발견한 록시, 입양된 가정을 전전하며 폭력에 시달리다 탈출한 앨리, 시장이자 싱글 맘인 마고, 파워가 일으킨 각종 사건사고로 돈벌이를 하려는 남성 툰데.

 

인간은 개인의 의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뭇잎이 제때 움트고 작은 나뭇잎에 싹이 피고 뿌리가 퍼지는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복잡성 속의 유기적이고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과정이 인간을 만든다. -p.413

 

잔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여성들에게서 발현된 '파워'는 여성들에게 잠재되어 있던 폭력성을 끌어낸다. 순식간에 이 놀라운 힘은 세상을 장악하게 되고 곳곳에서 끔찍한 폭력이 발생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보다 그 이상의 힘자랑을 하기에 이른다. 남성에게 억눌렸던 분노가 끝도 없이 번져간다. 남성들은 사냥을 당하고 노리감이 되어 강간을 당하고 끔찍하게 살해된다. 이는 남성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조장한다.

 

앨리에게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앨리에게서 그 이상의 폭력성을 억누르게 하고 여성들의 파워를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은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모자라기에 신의 능력에 의지한다. 방향성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기적은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하게 된다. 앨리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서 어머니 이브가 된다.

인간에게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초에 종교도 남성적 색채를 띠고 여성을 억누르는데 이용되었기에 평등을 주장하던 교리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대혼란(여성이 파워를 가지기 시작한 때)을 기점으로 종교관도 뒤바뀐다. 어머니 이브는 여성들을 위한 새로운 창시자가 되고 여성 공화국이 세워진다.

 

여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원하는지 알려 주실 거야. -p.106

 

주어진 환경, 군상, 인간의 욕망 등은 다양하다. 네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어떻게 풀고 있는지를 보며 정의로운 힘이 존재할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힘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가? 평등을 쟁취하려는 운동은 세상을 뒤집고 또 다른 불평등을 조장한다.

억압받던 자들에게 그러한 능력이 주어진다면 분명 그들은 다른 이들을 억누르려 할 것이다. 인간의 지배욕과 파괴욕은 멈춤을 모르기 때문에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키우게 된다. 강력한 파워를 지녔던 록시가 믿었던 아버지에게 배신당하는 것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타래를 옮겨심을 수 있다는 설정은 더 잔혹한 범죄를 낳을 것이다.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줄다리기는 더 험악하고 잔인하게 흘러갈 것이다.

 

여성 중심 사회가 좀 더 너그러운 세상을 보여주었다면 좋겠지만 파워는 그런 세상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인간의 지배 욕망에 남녀가 어디 있겠는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세상에 균형이 존재할 수 없으며 게다가 사춘기 소녀들에게 주어진 파워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그런 능력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처럼 세상은 혼란스러움의 연속일 뿐이다. 꿈틀대는 타래는 힘(분노)이 아니라 공포다. 이 파워를 통제할만한 대안이 과연 있기나 할까.

 

세상을 움직일 이상적인 힘은 전기 자극이 아닌 사랑뿐이라고 인류애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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