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먼트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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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로 가득 채워진 뉴스에 원하든 원치 않든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평소 전혀 인식하지 못하던 '죽음'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 가까운 곳에 몰래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앞둔 순간, 나는 무엇을 소망하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이 물음의 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은 나와 '죽음'과의 관계가 지구와 해왕성의 거리만큼 멀기 때문이리라. 혼다 다카요시의 『모먼트』는 세상과 작별할 사람들의 소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 사이에서 흑의를 입은 필살 청부업자가 자신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퍼진다. 어느 순간, 흑의의 청부업자가 쥐색 청소부복으로 갈아입었다는 소문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병원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대학생 '간다'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때, 적군이 아닌 같은 부대 동료를 살해하고 그 일을 평생 짊어지고 온 노인.
원죄처럼 허약한 심장을 갖고 태어나 매순간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소녀.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단 한명도 없어 외로운 여인.
사업에 망하고 가족과 헤어지고 사채업자에게 협박받고 있는 이혼남.
4명 환자들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열심히 동분서주하는 '간다'의 이야기가 총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있다.

한 번에 술술 읽힐 정도로 『모먼트』는 재미있다. 또한 깜짝 놀랄만한 반전도 있어 책을 읽다 화들짝 놀랄 수도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첫 번째 에피소드, '얼굴'. 노인의 이야기 덕분에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되었다. 인간성의 선과 악,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함 등과 같은 원론적인 문제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나머지 에피소드들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작가는 수수께끼 흑의의 필살 청부업자의 등장과 함께 생과 사에 관해 화두를 제기하기도 한다.

『모먼트』를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작가 '혼다 다카요시' 때문이었다. 독특한 소재, 의미 있는 주제로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하는 작가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작품을 접하지 않고 작가에 대한 기대를 높여 왔던 터라 『모먼트』를 읽기 전에는 오히려 기대에 미치지 못할 까 걱정이 되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그의 다른 작품과도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다.

『모먼트』는 2005년 작품이다. 혼다 다카요시의 최근작은 『모먼트』의 7년 후 이야기를 다룬 『WILL』이라고 한다. 7년 후의 이야기라니 대학생 '간다'는 사회인이 되었는지, 장의사 가게를 운영하는 '모리노'는 여전히 '간다'와 사이가 좋은 지, 필살 청부업자는 활동을 재개했는지 너무도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WILL』이 빨리 출간되길 바라며 마지막 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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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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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습관은 편향적이다. 문학, 그 중에서도 클래식이라 일컫는 해외고전문학을 선호한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유명한 현대문학 작품들은 십중팔구 나의 관심 밖에 존재한다. 특히 국내현대문학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적막한 상태이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내 독서습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작가 김숨의 『물』을 읽고 내가 놓친 훌륭한 작품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주된 인물은 '소금'이다. 소금은 '물(어머니)'과 '불(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금에게는 '금'과 '공기'라는 여동생들이 있다. 가족 구성원은 물, 불, 소금, 금, 공기로 이뤄져있다. 소금은 '혀(남편)'와 이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우연찮게도 소금이 집에 돌아온 날, '수족관'이 나보다 한발 앞서 먼저 들어왔다. 그다음으로 금, 공기, 불이 차례차례 집으로 모여들었다. 소금의 집은 불이 홀로 삼백만 톤의 물을 쫓아내고 저수지를 메워서 '이룩된' 결과물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을 펑펑 쏟아내던 수도꼭지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섯 명의 구성원은 심각한 물 부족 상태를 물, 불, 소금, 금, 공기의 각자 특성대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사연을 끄집어낸다.

『물』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소금과 물의 관계가 인상적이었다. 소금은 물의 사랑을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물은 이런 소금을 야속하게 밀어낼 뿐이다. 그리고 물은 십오 분 차이로 태어난 쌍둥이동생 금을 안아준다. 모든 사람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도 모자라 물의 사랑까지 빼앗은 금에게 소금은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금에 대한 소금의 질투는 너무도 오래된 것이다. 그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도 방금 생성된 싱싱한 것 마냥 질투는 소금을 자각하게 한다. 그럼 물은 왜 소금을 밀어냈던 것일까? 금은 물속에서도 원래 모습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물속에서 소금은 상황이 달라진다. 물이 소금을 밀어내지 않았다면 소금은 녹아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소금이 아니게 된다. 물은 자신의 딸이 물이기를 바라지만 한편에는 딸의 본디 모습을 유지하길 원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수족관에 들어가 점점 침잠되어가는 상태에서도 물은 잠시 깨어나 소금에게 소금 섬의 위치를 알려준다. 소금이 지금보다 완벽한 소금이 되길 바라면서. 결국 물은 금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을 소금에게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이 '이룩한' 집과 삼백만 톤의 물은 참 독특한 소재였다. 삼백만 톤의 물은 불에 의해서 안식처를 잃고 자취를 감춘다. 대신 그 자리에는 이들의 집이 생겼다. 삼백만 톤의 물은 이들에게 복수를 단행한다. 집안의 모든 물을 말라버리게 하는 것으로 복수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일시에 많은 물을 집으로 흘러 보내 그들의 공간을 엉망으로 만든다. 또한 집 주변에 늪지대를 형성해서 그들을 철저하게 현실과 고립시킨다. 삼백만 톤의 물은 결말까지 복수를 행하고 이들의 복수는 현재진행형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의 복수가 어떻게 끝이 나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제목이 '물'인만큼 나는 호기심의 갈증에 시달리면서 작품을 읽어나갔다. 어떤 식으로 사건이 이어지는지, 가족구성원 욕망의 형태가 어떤 모양인지, 나는 궁금증이 심하게 발동되었고 해답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작가 김숨은 별로 힘을 들이지 않고 독자의 호기심을 구현한다. 힘을 잔뜩 뺀 작가의 문체는 오히려 역으로 독자가 잔뜩 힘을 실어 긴장하게 만든다. 『물』을 읽으면서 생성된 긴장감은 내게 매력적이며 기분 좋은 것으로 다가왔다. 이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김숨의 『물』에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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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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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를 읽으면서 위인전을 읽던 어린 내가 자주 떠올랐다. 어릴 적에는 위인 전기를 많이 읽었다. 초등, 아니 국민학생 시절에는 위인전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자주 읽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위인전을 읽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혹자는 위인 전기를 읽는 것을 지양하자고 하던데 일단 나는 나의 독서습관과는 무관하게 그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위인이야기를 읽는 것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제주 거상 김만덕! 부끄럽지만 나는 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나만의 인물 데이터 속에 김만덕은 미등록 인물이었다. 요사이 우후죽순으로 출간되는 김만덕 관련서적 열풍의 원인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에 대한 높아진 인식이 한몫 했을 것이다. 김만덕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나도 이 열풍에 살짝 편승해보았다.

양친을 잃고 여의치 않은 생활 때문에 혈육과도 떨어지게 된 어린 만덕은 퇴기 월중선의 몸종으로 들어간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만덕은 월중선의 눈에 들게 된다. 양민 출신인 만덕은 뭇사내에게 웃음을 파는 기생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흰밥과 고깃국이 보장되는 월중선의 그늘을 떠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군자도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데 어린 만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기생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 만덕은 제주 포구에 객주를 연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조선의 거상이 된다.

대다수의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만덕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너무도 확고한 목표였기에 어떤 시련이 주어져도 목표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두둑한 배포와 타고난 경제 감각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제주목사 앞에서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자 간청할 수 있었고 여인의 몸으로 조선의 거상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이 난다면 김만덕이란 인물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 것이다.
그녀가 돈보다 사람을 선택했다는 점은 만덕을 빛나게 만든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흉년은 빈번하다. 더욱 흉년은 몇 년씩 이어진다. 설상가상,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재해와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는 장사치들은 가난한 제주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만덕이 거상이 되려는 이유는 바로 가난한 대다수의 제주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서였다. 만덕은 자신의 곳간에 있는 재물을 모두 내어주며 그들의 궁핍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고자 노력했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은 욕망의 끝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전 재산을 넉넉지 않은 이들을 위해 선뜻 내놓는 대인배, 김덕만이었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숨비소리』는 착하고 까다롭지 않으며 쉽다. 이러한 평이성 덕분에 이 작품의 주된 대상은 중고생이 될 것이고 그랬으면 좋겠다. 『숨비소리』는 성인이 읽기에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어린 시절과 20대에 편중되어 글이 진행되다보니 중년과 말년의 김만덕에 대한 부족한 부분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김만덕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숨비소리』를 통해 선사받았다. 김만덕, 그녀의 일생을 더 자세히 엿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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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김없이, 남김없이>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숨김없이 남김없이
김태용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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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가 많이 요구되는 작품이었다. 긴 분량의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을 읽어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시간보다는 앞서 말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한 『숨김없이 남김없이』였다.

작가의 언어 선택은 매우 강하다. 작품 초반에는 험하고 자극적인 단어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것에 솔직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제목처럼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에게 모든 것을 '숨김없이 남김없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다만 이러한 작가의 과감성을 독자인 내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숨김없이 남김없이』의 서사구조는 독특하고 신선해서 호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시간적 순차적인 체계가 무시된 들쑥날쑥한 서사의 흐름은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그 장면 장면의 이미지는 희미하지 않고 매우 선명하고 뚜렷한 장면을 선사하는 '독특함'이 있었다. 장면을 하나로 이어가는 것은 어려웠지만 눈 앞에 있는 선명한 이미지덕분에 흩어졌던 장면의 조각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점이 나에게는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끝까지 붙잡고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작품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숨김없이' 이야기하자면 내 스스로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귀를 틀어막았을는지도. 또한 작가의 사유를 따라잡기에는 나의 사유세계가 너무 좁고 얇고 편향적이며 조촐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복잡한 생각들을 글로써 표현해내는 작가의 표현력은 너무나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뒤죽박죽 정신없이 얽힌 생각들을 정리하다가 결국은 미궁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그만큼 머릿속이든 가슴속이든 깊은 곳의 생각을 정리하는 작업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복잡한 생각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세세히 술술 풀어내고 있다. 그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깔끔한 문장솜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숨김없이 남김없이』는 어렵다. 그리고 과감하다. 하지만 중도포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마도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독특한 표현력의 매력에 빠졌던 것이 중간에 책을 덮지 않은 이유가 될 것 같다. 이제 나는 김태용 작가의 다른 소재의, 다른 이야기의 글을 만나보고 싶다. 기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소재의 이야기에서 김태용 작가의 독특한 문장을 만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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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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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는 살인자 아닌가요, 신부님?"
학생 시몬의 질문에 청년 신부 엑토르는 물론이거니와 독자인 나 역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이는 데 여유가 없고 벌컥 화를 잘 내긴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일궈낸 천재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살인의 누명'이 소설 속 픽션의 도구가 아닌 실재하는 책인 『천상의 음모(Heavenly Intrigue)』에서 주장되는 의견이란다. 가벼운 장르소설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보이니치 코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청년 신부 엑토르는 예수회 수도원 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 엑토르는 지적인 호기심, 특히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인터넷 동호회 '보이니치 리스트'를 통해 알게 된 천문학자 존, 암호학자 후아나와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연구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하룻밤 사이에 수도원 담벽에 엑토르를 협박하는 듯 한 글귀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후, 미모의 여인이 엑토르 신부를 찾아온다. 그녀는 '보이니치 리스트' 동호회에서 왈도, 요아나 등의 여러 아이디로 활동하는 후아나였다. 그녀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왠지 협박받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이다. 천문학자 존은 이미 스페인에 체류 중이었다. 이렇게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엑토르, 존, 후아나 삼총사는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3인은 각자 나름대로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도원장이 알려준 수도원 지하의 통로와 어렵게 찾아낸 이달고 수도원장의 옛 설계도(수도원 지하)를 도둑맞은 과정에서 엑토르 신부는 '보이니치 필사본'과 예수회와의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실 조각들은 복잡한 퍼즐의 요긴한 실마리가 된다.

『보이니치 코드』는 사실을 바탕으로 물리학자 엔리케 호벤이 쓴 소설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사실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이 작품은 '사실'이 많이 담겨 있다. 일단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존 디와 켈리, 루돌프 2세까지 역사상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니치 필사본' 이라는 아직까지 해석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안고 있는 예일대 소장 서적이 이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실제 인물들과 번역되지 않은 실재 도서의 관계를 독자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천문학과 과학, 종교의 역사가 끊임없이 소개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운 좋게 과학 관련서적을 읽었다. 그래서 튀코와 케플러의 관계, 루돌프 2세, 종교 안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위치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에는 1%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입장에서는 자칫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작품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열려있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아쉽게도 '보이니치 필사본'은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신비한 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엑토르 신부가 제 2의 케플러가 되어 끝까지 '보이니치 필사본'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독과 약의 차이점은 오직 화합물의 순도와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독과 약은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츰 허점이 드러나는 천동설을 억지로 인정하고 정확한 증거로 확실하게 증명하는 지동설을 무리하게 박해했다. '보이니치 필사본'은 지동설을 몰래 주장한 갈릴레오, 튀코, 케플러가 그들의 이론(지동설)을 풀 수 없는 암호로 기록한 것은 아닐런지, 하는 생각과 함께 『보이니치 코드』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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