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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비소리 - 조선의 거상 신화 김만덕
이성길 지음 / 순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숨비소리』를 읽으면서 위인전을 읽던 어린 내가 자주 떠올랐다. 어릴 적에는 위인 전기를 많이 읽었다. 초등, 아니 국민학생 시절에는 위인전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자주 읽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위인전을 읽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혹자는 위인 전기를 읽는 것을 지양하자고 하던데 일단 나는 나의 독서습관과는 무관하게 그 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위인이야기를 읽는 것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제주 거상 김만덕! 부끄럽지만 나는 드라마로 제작되기까지 그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라 역사상 한 획을 그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나만의 인물 데이터 속에 김만덕은 미등록 인물이었다. 요사이 우후죽순으로 출간되는 김만덕 관련서적 열풍의 원인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야 하는 의무이자 권리에 대한 높아진 인식이 한몫 했을 것이다. 김만덕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나도 이 열풍에 살짝 편승해보았다.
양친을 잃고 여의치 않은 생활 때문에 혈육과도 떨어지게 된 어린 만덕은 퇴기 월중선의 몸종으로 들어간다. 부지런하고 영리한 만덕은 월중선의 눈에 들게 된다. 양민 출신인 만덕은 뭇사내에게 웃음을 파는 기생이 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지만 흰밥과 고깃국이 보장되는 월중선의 그늘을 떠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군자도 사흘을 굶으면 담을 넘는다는데 어린 만덕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결국 기생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 만덕은 제주 포구에 객주를 연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조선의 거상이 된다.
대다수의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만덕은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너무도 확고한 목표였기에 어떤 시련이 주어져도 목표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두둑한 배포와 타고난 경제 감각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였기에 제주목사 앞에서 양민의 신분을 회복하고자 간청할 수 있었고 여인의 몸으로 조선의 거상이 될 수 있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이 난다면 김만덕이란 인물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 것이다.
그녀가 돈보다 사람을 선택했다는 점은 만덕을 빛나게 만든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흉년은 빈번하다. 더욱 흉년은 몇 년씩 이어진다. 설상가상,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재해와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하는 장사치들은 가난한 제주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만덕이 거상이 되려는 이유는 바로 가난한 대다수의 제주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서였다. 만덕은 자신의 곳간에 있는 재물을 모두 내어주며 그들의 궁핍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고자 노력했다. 원래 인간이라는 동물은 욕망의 끝을 헤아릴 수 없다고 하지만 전 재산을 넉넉지 않은 이들을 위해 선뜻 내놓는 대인배, 김덕만이었다. 그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의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전반적으로 『숨비소리』는 착하고 까다롭지 않으며 쉽다. 이러한 평이성 덕분에 이 작품의 주된 대상은 중고생이 될 것이고 그랬으면 좋겠다. 『숨비소리』는 성인이 읽기에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어린 시절과 20대에 편중되어 글이 진행되다보니 중년과 말년의 김만덕에 대한 부족한 부분이 매우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김만덕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를 『숨비소리』를 통해 선사받았다. 김만덕, 그녀의 일생을 더 자세히 엿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