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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케플러는 살인자 아닌가요, 신부님?"
학생 시몬의 질문에 청년 신부 엑토르는 물론이거니와 독자인 나 역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이는 데 여유가 없고 벌컥 화를 잘 내긴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일궈낸 천재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살인의 누명'이 소설 속 픽션의 도구가 아닌 실재하는 책인 『천상의 음모(Heavenly Intrigue)』에서 주장되는 의견이란다. 가벼운 장르소설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보이니치 코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청년 신부 엑토르는 예수회 수도원 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 엑토르는 지적인 호기심, 특히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인터넷 동호회 '보이니치 리스트'를 통해 알게 된 천문학자 존, 암호학자 후아나와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연구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하룻밤 사이에 수도원 담벽에 엑토르를 협박하는 듯 한 글귀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후, 미모의 여인이 엑토르 신부를 찾아온다. 그녀는 '보이니치 리스트' 동호회에서 왈도, 요아나 등의 여러 아이디로 활동하는 후아나였다. 그녀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왠지 협박받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이다. 천문학자 존은 이미 스페인에 체류 중이었다. 이렇게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엑토르, 존, 후아나 삼총사는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3인은 각자 나름대로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도원장이 알려준 수도원 지하의 통로와 어렵게 찾아낸 이달고 수도원장의 옛 설계도(수도원 지하)를 도둑맞은 과정에서 엑토르 신부는 '보이니치 필사본'과 예수회와의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실 조각들은 복잡한 퍼즐의 요긴한 실마리가 된다.

『보이니치 코드』는 사실을 바탕으로 물리학자 엔리케 호벤이 쓴 소설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사실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이 작품은 '사실'이 많이 담겨 있다. 일단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존 디와 켈리, 루돌프 2세까지 역사상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니치 필사본' 이라는 아직까지 해석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안고 있는 예일대 소장 서적이 이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실제 인물들과 번역되지 않은 실재 도서의 관계를 독자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천문학과 과학, 종교의 역사가 끊임없이 소개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운 좋게 과학 관련서적을 읽었다. 그래서 튀코와 케플러의 관계, 루돌프 2세, 종교 안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위치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에는 1%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입장에서는 자칫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작품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열려있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아쉽게도 '보이니치 필사본'은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신비한 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엑토르 신부가 제 2의 케플러가 되어 끝까지 '보이니치 필사본'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독과 약의 차이점은 오직 화합물의 순도와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독과 약은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츰 허점이 드러나는 천동설을 억지로 인정하고 정확한 증거로 확실하게 증명하는 지동설을 무리하게 박해했다. '보이니치 필사본'은 지동설을 몰래 주장한 갈릴레오, 튀코, 케플러가 그들의 이론(지동설)을 풀 수 없는 암호로 기록한 것은 아닐런지, 하는 생각과 함께 『보이니치 코드』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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