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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니치 코드
엔리케 호벤 지음, 유혜경 옮김 / 해냄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케플러는 살인자 아닌가요, 신부님?"
학생 시몬의 질문에 청년 신부 엑토르는 물론이거니와 독자인 나 역시도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타인의 비평을 받아들이는 데 여유가 없고 벌컥 화를 잘 내긴 하지만 천문학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일궈낸 천재 수학자, 요하네스 케플러가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살인의 누명'이 소설 속 픽션의 도구가 아닌 실재하는 책인 『천상의 음모(Heavenly Intrigue)』에서 주장되는 의견이란다. 가벼운 장르소설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친 『보이니치 코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이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80414145547565.jpg)
청년 신부 엑토르는 예수회 수도원 학교에서 수학과 물리를 가르치고 있다. 엑토르는 지적인 호기심, 특히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인터넷 동호회 '보이니치 리스트'를 통해 알게 된 천문학자 존, 암호학자 후아나와 '보이니치 필사본'에 대해서 함께 정보를 공유하며 연구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하룻밤 사이에 수도원 담벽에 엑토르를 협박하는 듯 한 글귀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 후, 미모의 여인이 엑토르 신부를 찾아온다. 그녀는 '보이니치 리스트' 동호회에서 왈도, 요아나 등의 여러 아이디로 활동하는 후아나였다. 그녀 역시 생명을 위협하는 협박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왠지 협박받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이다. 천문학자 존은 이미 스페인에 체류 중이었다. 이렇게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엑토르, 존, 후아나 삼총사는 한 곳에 모이게 되었다. 3인은 각자 나름대로 '보이니치 필사본'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도원장이 알려준 수도원 지하의 통로와 어렵게 찾아낸 이달고 수도원장의 옛 설계도(수도원 지하)를 도둑맞은 과정에서 엑토르 신부는 '보이니치 필사본'과 예수회와의 관계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실 조각들은 복잡한 퍼즐의 요긴한 실마리가 된다.
『보이니치 코드』는 사실을 바탕으로 물리학자 엔리케 호벤이 쓴 소설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사실인지 구별이 모호할 정도로 이 작품은 '사실'이 많이 담겨 있다. 일단 튀코 브라헤와 요하네스 케플러, 존 디와 켈리, 루돌프 2세까지 역사상 실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이니치 필사본' 이라는 아직까지 해석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안고 있는 예일대 소장 서적이 이 작품을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실제 인물들과 번역되지 않은 실재 도서의 관계를 독자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천문학과 과학, 종교의 역사가 끊임없이 소개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운 좋게 과학 관련서적을 읽었다. 그래서 튀코와 케플러의 관계, 루돌프 2세, 종교 안에서 천동설과 지동설의 위치 등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즐거움에는 1%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천문학에 관심이 없는 독자입장에서는 자칫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작품이다.
『보이니치 코드』는 열려있는 결말로 끝을 맺는다. 아쉽게도 '보이니치 필사본'은 발견된 이후 현재까지 그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신비한 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엑토르 신부가 제 2의 케플러가 되어 끝까지 '보이니치 필사본'을 연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독과 약의 차이점은 오직 화합물의 순도와 양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독과 약은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다. 가톨릭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츰 허점이 드러나는 천동설을 억지로 인정하고 정확한 증거로 확실하게 증명하는 지동설을 무리하게 박해했다. '보이니치 필사본'은 지동설을 몰래 주장한 갈릴레오, 튀코, 케플러가 그들의 이론(지동설)을 풀 수 없는 암호로 기록한 것은 아닐런지, 하는 생각과 함께 『보이니치 코드』를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