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
로버트 쉬네이큰버그 지음, 정미우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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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독서만큼이나 영화 감상을 매우 선호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책처럼 영화 역시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처럼 극장을 들락날락하다보니 자연스레 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체득하게 되었다. 이런 나를 제목만으로 단번에 사로잡은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는 절대 지나칠 수없는, 꼭 읽어야 할 작품으로 읽기 전부터 많은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영화가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시작되고 발전한 탓에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감독 대다수는 구로자와 아키라(일본)를 제외한 서양인(특히 미국)위주로 소개된다. 감독들의 생년월일을 기준으로, 일인당 약 10페이지 분량이 할당된 형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또한 감독의 성향을 에피소드화 시켜 그려진 삽화가 첨부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과 편집은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는 데 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작품의 내용과 무관하게 군더더기 없는 편집과 구성은 읽혀지는 내용의 즉각적인 정리를 가능하게 만든다.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편집과 구성이 간결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편집과 구성은 훌륭하나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이야기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작품을 읽어가면서 처음의 기대감은 사라지고 실망과 아쉬움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영화사적으로 위대한 영화를 탄생시킨 감독들의 이면에 숨겨진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를 다루자는 것이 작품의 목표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가 과연 진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는, 확인되지 않는 것들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비정상적인 일상, 내재된 잔인성과 폭력성, 문란한 성생활, 진흙탕 싸움 속 인간관계들이 무한 반복적으로 감독의 이름만 바꿔가며 나열되고 있었다. 마치 선정적인 내용과 사진으로 일관된 황색지 타블로이드의 가십난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한 사실보다는 카더라 통신의 비중에 힘을 실어 무책임한 내용이 난무했다. 이런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안타까운 작품이었다.

영화는 제 7의 예술로 100년 정도의 짧은 역사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장르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랑은 작품을 탄생시킨 감독으로 옮겨간다. 걸작을 만들어낸 감독들의 정신세계는 범인들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위대한 감독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그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가 이 작품에서 열거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과 함께 『위대한 영화감독들의 기상천외한 인생 이야기』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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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의 시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해적의 시대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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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있는 작가는 독자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왕이면 이들은 무병장수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켜야 한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이클 크라이튼은 아쉽게도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해적의 시대』는 그가 사망한 후, 작가의 컴퓨터 속에서 발견된 작품이다. 자칫 작가의 죽음과 함께 사장될 뻔한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해적의 시대』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 되었다.

『해적의 시대』는 17세기 자메이카의 포트 로열을 중심으로 카리브 해, 대서양, 멕시코 만, 태평양을 잇는 바다 위를 무대로 펼쳐지는 정통 해양모험소설이다. 부(富)의 명암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포트 로열의 총독인 제임스 앨먼트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해적 찰스 헌터 선장은 마탄세로스 섬에 보물선이 정박했다는 정보를 듣는다. 두 사람의 상충된 이해관계 덕분에 앨먼트 총독은 헌터 선장에게 보물찾기 원정대를 허락한다. 헌터 선장은 믿을만한 정예 부하들과 함께 원정을 떠나게 된다. 보물을 얻기 위한 해적의 피비린내 나는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나는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자연스레 "캐리비안의 해적"이 떠올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해적의 모험 이야기에 환상이 덧칠해진 작품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해적의 시대』는 소설적 장치인 환상이 배제되었다. 환상이 빠진 모험에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해적의 시대』의 장점이자 매력이 된다. 물론 실재하지 않는 거대한 심해의 괴생물체 크라켄이 말미에 등장한다. 하지만 크라켄은 중세 종교관의 영향으로 뱃사람들이 창조해 널리 알려진 존재일 뿐이다. 이제는 여러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일반적인 소재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독자는 환상의 모험이 아닌 실제로 있을 법한 생생한 해상 모험을 흥미진진하게 접할 수 있게 된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주로 미래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가이다. 그런 그가 17세기 정통 해양모험을 다룬 『해적의 시대』를 유작으로 남겼다. 그동안의 작품 세계와는 정반대의 작품이기에 그의 팬으로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꼼꼼하고 정확한 작가의 성향은 『해적의 시대』에 고스란히 녹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장기인 책장을 쉴 새 없이 넘어가게 만드는 힘을 갖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도 빠지지 않았다. 또한 작가의 문장은 여전히 활자를 읽는 순간 머릿속에 영상이 구현되고 있었다. 『쥬라기 공원』을 영화화한 스필버그 감독이 벌써부터 이 작품 역시 영화화한다고 한다. 헌터 선장과 그의 부하들, 해상 전투와 추격 장면, 괴수 크라켄을 스크린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료한 일상이 지겹다면 보물을 찾아 떠나는 헌터 선장의 해적선에 승선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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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 청춘의 밤을 꿈을 사랑을 이야기하다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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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럴 수가!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이 작품의 제목을 보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을 보내며 수시로 밀려오는 나의 생각을 엿보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이나 동료는 이미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나는 나이와 무관하게 어른이 되려면 여전히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나의 조바심을 불러왔었다. 스물 살이 되었을 때도 그러했고, 서른 살이 되었을 때도 그랬었다. 물론 현재의 상황도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음에 나의 마음은 항상 조급하기만 하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이들도 나와 같은 조바심을 갖고 있노라며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이 작품의 저자 강세형은 라디오 작가이다. 저자는 테이의 뮤직아일랜드, 이적의 텐텐클럽,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에서 쓴 원고들을 모아서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당시 코너의 제목을 차용하여 ‘청춘, 그 길에 서서’, ‘기억, 한 컷’, ‘어떤 하루’,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편집하였다. 2~3페이지 분량 정도의 짧은 글들은 자유시 형식을 빌려 독자의 눈과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빽빽한 활자의 구성이 아닌 듬성듬성한 활자의 향연은 읽는 이가 작품을 쉽게 접근하도록 도와준다. 특히 라디오 원고의 특성상 읽는 즉시 독자의 머리 속에서는 영상이 그려진다는 점이 매우 즐거웠다. 글자를 통해서 ‘상상하는 라디오’가 실현된다는 점은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간간이 등장하는 본문의 일러스트 그림은 정겨운 느낌으로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 역할을 한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상당히 친절한 작품이다. 마치 청춘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이들의 등을 토닥거리며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할 수 있게 해준다. 즉 나만이 느낀다고 생각했던 고민들이 내 주변 사람들의 수많은 고민으로 탈바꿈 되는 순간 편안해져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에 무뎌진 나로서는 너무나 사소해서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이야기들을 작가는 다시 한 번 돌이켜보게 만든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주변인들과의 동질감을 중요시 여기게 된다. 그래서 나만 홀로 그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불안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것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청춘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자신 때문에 한숨짓는다. 그로 인해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마음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이런 일들은 인간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겪게 되는 것이고 그 누구도 완벽한 어른이 될 수 없으며 우리 모두 항상 청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잊고 있었던 청춘의 감성을 기억하고 싶은 이들은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를 읽으며 삐걱거려 더욱 아름다운 청춘을 즐겁게 복기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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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 빈민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약속한 베네수엘라 음악 혁명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김희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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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를 만나는 내내 음악의 힘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음악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자동차 경적소리만큼 잦은 총성, 지독한 가난,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약의 유혹 속에 베네수엘라 아이들은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집안에 있을 때조차 갑작스레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야하는, 10살이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베네수엘라의 빈민가이다. 일상 안에 폭탄처럼 내재되어 있는 폭력, 마약, 죽음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는 그들의 한 부분이다. 이처럼 앞날을 기대할 수 없는 빈민가 아이들을 음악으로 구출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알려 준 오케스트라가 있다. 바로 '엘 시스테마'이다.

엘 시스테마는 극빈층 아이들을 범죄와 마약에서 구하고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역할의 오케스트라 조직이다. 음악(오케스트라)을 내세워 사회를 변화시키자는 음악혁명을 기조로 엘 시스테마는 1975년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가 창립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현재 진행형 오케스트라이다. 창립자 아브레우는 음악의 힘을, 특히 오케스트라의 괴력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사람이다. 오케스트라는 서로 다른 악기로 합주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전체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듣기 좋은 음악은 아이들의 인성에 좋은 영향으로 작용한다. 결국 오케스트라를 통한 조화를 몸소 체험한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 타인과 잘 어우러질 수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그의 생각은 엘 시스테마가 창립된 이후 그 곳을 거쳐 간 아이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었다.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는 엘 시스테마의 창립자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인터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구성이다. 또한 엘 시스테마가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독자는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활과 음악을 접할 수 있으며, 엘 시스테마를 조직하고 참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엘 시스테마의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간단한 인터뷰와 문답식 편집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베네수엘라 전국 곳곳에 엘 시스테마의 센터가 있고 아이들은 즐겁게 열심히 악기를 연주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모두 전문연주인을 목표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인상 깊었다. "첫째는 열정, 둘째는 기술"을 외치는 엘 시스테마의 음악이기에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들은 음악인이 되고자 악기를 연주한 것이 아니었다. 악기를 연주하다보니 절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직업음악인을, 어떤 아이는 선생님을 꿈꾸게 되었다. 아이들은 엘 시스테마 안에서 무궁무진한 꿈과 희망을 얻고 있었다.

하나를 베풀면 그것은 둘 이상이 되어 되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고 비전을 제시해준 엘 시스테마의 졸업생들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어릴 적 자신과 닮은 아이의 손에 악기를 쥐어 준다. 엘 시스테마를 통해 얻은 희망을 다시 엘 시스테마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창립될 당시, 그들을 향한 시선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패기 넘치는 창립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거대한 음악의 힘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룩해냈다. 그리고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창립자와 어른이 된 졸업생들이 엘 시스테마을 소중하게 꾸려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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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보다 여행>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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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하면 집에 있기를 소망하는 나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매번 '방콕족'을 자청한다. 집밖에 나가봐야 개고생이라던 광고카피를 100% 이상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는 내가 『집보다 여행』을 만나게 되었다. 읽기 전부터 나와는 맞지 않는 작품이라고, 처음부터 저자의 이야기를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착․안정주의자인 나와는 전혀 다른 모험․도전주의자인 저자! 나의 걱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부쩍 여행에 관심이 가는 터라 이 작품을 통해 여행에 대한 가치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며 한편으로 조금은 그의 이야기에 솔깃한 마음도 공존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집보다 여행』을 한 장 한 장 넘기기 시작했다.

『집보다 여행』은 편집상으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도입부에 해당하는 '함께 여행할래요?'에는 에세이, 소설, 인터뷰, 사설 등 여러 형식으로 표현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까운 미래의 로봇과 함께 하는 여행, 여러 곳을 유랑하는 유목 드라큘라와의 대담, 10년 뒤 저자 본인이 당하게 되는 마녀사냥식 재판 등 소설적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 즐거운 시작이다. 그리고 중반부인 '배워야 할 것은 여행에서 다 배웠다'와 '여행 철학자의 탄생'은 저자가 독자에게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여행의 본질적인 의미를 역설하고 있다. 바로 『집보다 여행』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우리가 눈여겨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결말부는 저자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몇 가지 일화들을 소개한 '모닥불 피워놓고 마주 앉아서'로 마무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 부인과의 만남, 절친한 친구의 죽음, 현재 운영하는 카페 아쿠아, 그리고 그 밖의 자신의 생각들을 솔직담백하게 이야기한다.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다룬 인간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 있으며 그가 왜 '여행'에 빠져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집보다 여행』은 여타의 여행에세이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잠시 일상을 떠난 휴식처로서의 여행이 아닌 삶과 여행이 같은 연장선 위에 있음을 인문,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탐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저자가 체험한 여행지에 대한 소개와 정보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 안의 여행, 혹은 여행 안의 일상을 끊임없이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저자는 표면적으로는 상반된 존재인 것 같은 안정과 도전, 여행과 일상, 밤과 낮, 속도와 공간 등은 실상을 파헤치면 언제나 함께인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안정'이라고 여기는 상태는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불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자는 우리가 늘상 놓치고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반복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 저자의 외침에 주의 깊게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존의 여행에세이와 다른 노선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보다 여행』은 독자가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다.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철학적으로 표현되는 '여행'이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독자에게 아주 친절한 작품이다. 또한 에둘러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쉽게 비유 설명하는 저자의 문장은 읽는 이에게 착하고 편하게 다가온다. 원론적으로 여행에 대해 서술하는 『집보다 여행』은 에세이의 가벼움과 재미를 가미하여 자칫 어렵고 난해할 수 있는 위험을 떨쳐버린 영리한 작품이기도 하다. 인문, 철학 장르의 진중함과 에세이 장르의 친화력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작품으로 굳이 여행과 결부 짓지 않더라도 인생의 여유를 위해 읽어볼 만한 『집보다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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