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 이외수의 감성산책
이외수 지음, 박경진 그림 / 해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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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면서 작가 이외수의 감성산책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현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자 집필되었다고 한다. 그 크나큰 몸집의 코끼리에게 걸맞은 날개는 얼마나 거대할까, 라는 즐겁고 우스꽝스런 상상과 함께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가 독자에게 어떤 깨달음을 선사할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나는 지난해 읽었던 그의 『아불류 시불류』가 떠올랐다.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는 『아불류 시불류』와 비슷한 노선을 걷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양과 서양을 총망라한 주옥같은 이야기들과 작가 이외수만의 철학이 담긴 몇 줄의 짧은 글귀들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다섯 개의 장으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장 모든 하루는 모든 인생의 중심부이다」에서는 반복되는 하루의 중요성을, 「2장 사랑이라는 것은 결코 반대말이 없습니다」에서는 사랑의 강력한 힘을, 「3장 우주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와 「4장 구름이 무한히 자유로운 것은 자신을 무한한 허공에다 내버렸기 때문이다」에서는 현재 생활에서의 용기를, 「5장 나 하나가 깨달으면 온 천하가 깨닫는다」에서는 지혜롭고 현명한 대처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 장의 큰 제목을 충분히 음미한 다음, 그 안에 담겨 있는 글귀를 마주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작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불류 시불류』와 비교했을 때,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는 조금은 불친절한 작품이다. 세상사와 인생사에 대한 깊고 깊은 철학이 담긴 글귀 안에서 깨달음을 찾는 것은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나는 이 작품을 상당히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읽어냈다. 많지 않은 활자의 나열과는 무관하게 구절구절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게다가 어떤 글귀는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고, 또 어떤 글귀는 생각의 꼬리를 무한반복 생산해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소비된 시간이 나에게는 기분 좋은 사유의 시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불류 시불류』가 작가 이외수의 깜찍 발랄한 소녀감성으로 무장한 작품이라면,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는 인생이라는 길을 한 발짝이라도 먼저 걸어가고 있는 선배가 뒤따르는 후배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응원의 메시지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태양은 어제 그대로의 태양이지만 당신은 어제 그대로의 당신이 아닙니다. 새롭고 아름답고 행복하소서.(415쪽)"으로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는 마무리된다. 나는 이 마지막 글귀에서 행복한 희망이 느껴졌다. 육중한 코끼리(세상사에 찌든 인간)가 스스로 날개(희망)를 달아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져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희망이라는 날개를 단 "나 자신"과 조우하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가 "희망 찾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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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지 오웰 지음, 김욱동 옮김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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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의 교과서에는 『동물농장』의 일부분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어릴 적부터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물론 교과서 수록 여부와 무관하게 『동물농장』은 아동부터 성인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아동 대상의 ‘동화’로도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를 깊이 인지하지 않더라도 소설적 재미를 충분히 맛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야기 속 내재된 작가의 목소리를 간과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작품 안에 녹아있는 정치풍자소설의 정수가 바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다.

이 작품을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에게 노동력을 무자비하게 유린당한 동물 집단이 주인을 몰아내고 동물들만의 농장으로 만든다, 라는 것이 기본 이야기구조이다. 과연 악(인간)을 소탕한 동물들은 그들만의 천국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처음에는 동물들만의 천국이 머지않아 보이는 듯 했고, 자신들의 ‘혁명’을 만족해한다. 하지만 정신적 지주인 메이저가 죽고, 농장의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서열은 또다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뉘게 된다. 그들이 지향하던 평등한 사회구조가 아닌 불평등한 이전의 관계로 회귀하게 된 것이다. 이전의 지배층이 인간에서 동물로 전이되었을 뿐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었다. 동물농장의 지배자 나폴레온은 비슷한 권력을 갖고 있는 스노볼을 추방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진다. 그리고 그 권력으로 무지한 피지배계급 동물들을 교묘히 이용한다. 나폴레온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 조짐이 보이는 동물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고 점점 독재자로 변모해 간다. 또한 처음에는 네발로 기던 나폴레온은 어느 순간, 인간처럼 두발로 걷기 시작한다. 그들의 ‘우리는 인간을 닮아서는 안된다!’의 혁명의지는 잊은 채 독재자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거리낌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재자로 변화하는 나폴레온의 모습은 현실에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독재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억압받는 동물들의 모습은 독재 치하의 민중과 흡사하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생생한 비유는 이 작품이 단순한 소설의 범주를 넘어서게 만든다.

나는 동물농장을 읽으면서 독재자를 바라보는 시점이 극단적으로 다른 복서와 벤저민의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건강하고 힘이 세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믿기만 하는 말, 복서는 한껏 이용당하다 결국 죽임을 당한다. 최악의 상황에 치닫게 되어도 나폴레온을 믿기만 하는 어리석은 복서의 모습은 내내 안타까웠다. 순박하고 착한만큼 우둔한 복서는 결국 토사구팽의 희생물이 되면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는 당나귀, 벤저민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영리하고도 비겁한 행보를 보인다. 그는 나폴레온의 악행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지만 그것을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는다. 불난 집을 구경하는 듯 한 행태의 벤저민은 작금의 상황을 타계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회의론자와 흡사하다. 복서와 벤저민은 과거의 우리이자 현재의 우리 모습이었다.

김욱동 교수가 번역한 『동물농장』은 매우 친절하다. 조지 오웰의 원문 그대로를 전하기 위해서 단어의 선택부터 각주 설명까지 열심히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출판 당시의 독자라면 부연설명없이 등장인물과 실제인물의 연관성을 금세 떠올릴 수 있지만 그 시대와 무관한 현대의 독자들은 바로 연관 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각주 해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동물농장』을 여러 번 읽어본 나 역시 상세한 각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또한 탄생비화부터 출간되고 난 그 이후까지의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다.

『동물농장』 속에는 조지 오웰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매번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결국 장원농장의 동물들은 현재 독재 퇴진을 요구하는 이집트의 국민처럼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 채 결말에 이른다. 나는 불합리한 상황에 안주하는 동물들이 못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상황에서의 『동물농장』은 출판 자체가 불가한 내용이었고 조지 오웰은 많은 출판사의 문전박대를 당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 소중한 작품의 결말은 독자에게 과제로 남긴 채 작품을 마무리한 것은 아닐까! 장원농장의 동물들도 언젠가는 한 목소리로 투쟁했으리라는 나만의 결말을 조심스레 상상해보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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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 영화 [남극의 셰프] 원작 에세이
니시무라 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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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영화 『남극의 셰프』를 관람했었다. 영화 속 배경인 남극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먹으며 사는 걸까, 하는 아주 단순한 호기심에 선택한 영화였다. 적당히 요기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화면 속 맛깔나게 등장하는 음식덕분에 침을 꼴깍 꼴깍 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의 원작 에세이 『남극의 셰프』가 내게 날아왔다. 그저 만들어진 것이라 여겼던 이야기가 실화였다니! 첫 장을 펼치기 전부터 영화 속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나의 설렘과 기대감은 무궁무진하게 부풀어갔다.

광활한 설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 남극 대륙의 해발 3,800미터에 조그마한 돔 기지만이 덩그러니 존재한다. 그곳은 펭귄도, 바다표범도, 그 어떤 바이러스조차 살 수 없는 극한의 땅이다. 극한의 땅을 연구하기 위해서, 연구원들을 의료, 설비, 기계 운영으로 보좌하기 위해서 9명이 모였다. 돔 기지의 월동대원은 과묵한 가네토 부대장을 필두로 겉과 속이 다른 히라사와 대원, 씻기를 거부하는 린 대원, 술고래 모토야마 대원, 유쾌한 바이러스 소유자 가와무라 대원, 열성 카프(프로야구단)팬 니시하라 대원, 추위에 약한 사토 대원, 가끔 정신을 놓는 마취의 후쿠다 대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남극의 셰프』의 저자인 니시무라 대원은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요리사의 막중한 사명을 갖고 돔 월동대원이 되었다. 앞으로 평균 기온 영하 57도에 돔 기지라는 협소한 장소에서 9명의 남자들은 싫든 좋든 1년 동안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만 한다.

『남극의 셰프』는 다양한 개성의 9인 성인남자들의 남극 적응기이다. 혹독한 기후의 남극이니만큼 당연히 그들의 적응기가 순탄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좌충우돌 남극적응기는 상당히 유쾌하고 즐겁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자칭 게으른 성격에 불량한 요리사인 저자를 비롯하여 다소 무겁고 진지할 것 같은 8인의 남극대원들 역시 그저 철없고 재미있는 아저씨들이라는 사실이 『남극의 셰프』를 유쾌하게 만든다. 또한 저자의 과감한 시선으로 대원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온 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장난기가 가득한 편안한 문체를 읽다보면 읽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오히려 전문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득이 되었다 할 수 있겠다.

월동대원들은 틈만 나면 이런저런 구실을 찾아 파티를 개최한다. 게다가 평소에는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내는 음식들을 돔 기지에서 맘껏 맛 볼 수 있다. 고가의 고기를 다 먹어치우지 못해 그 다음날 하찮은 라면의 고명으로 사용하기도하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초밥을 무한정 먹고 있는 대원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음식기행을 하러 남극에 왔나, 하는 착각이 드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종반부에 이르렀을 즈음, 독자는 그들이 매일매일 먹은 다채로운 음식만큼 대원들은 매순간마다 남극에 열심히 적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제한된 공간에서 그들 나름대로 동료로서의 정을 파티와 음식을 통해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극의 셰프』를 읽으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동하게 되었다. 아무리 척박한 환경이라해도 인간은 의지를 갖고 타인과 함께 열심히 적응하고 있음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발칙하고 귀여운 남극의 요리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또 다른 남극의 셰프는 지금 이 시각 남극 돔기지에서 대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지를 고심하며 열심히 요리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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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마게 푸딩 -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특별한 이야기
아라키 켄 지음, 오유리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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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뛰어넘는 "시간여행"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많은 창작물의 주된 소재로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꿈꾸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한한 관심과 끝없는 사랑을 퍼붓고 있는 편이다. 아라키 겐의 『촌마게 푸딩』은 18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 도쿄에 내버려진, 에도 시대 사무라이의 좌충우돌 현대적응기이다.

일만 하던 남편과 이혼한 히로코는 어린 아들 도모야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싱글 맘이다. 어느 날, 도모야와 귀가하던 히로코는 사무라이 복장에 칼까지 차고 있는 이상한 남자와 맞닥뜨린다. 이상한 남자는 '기지마 야스베', 자신이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라며 믿기 힘든 말들을 쏟아낸다. 히로코는 남자의 말을 완전히 믿지도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한다. 결국 두 모자는 과거에서 날아온 사무라이 야스베와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된다. 야스베는 식객으로 머물게 된 보답의 의미로 집안일과 육아를 히로코 대신에 맡게 된다. 남자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가부장적인 야스베이지만 전업주부로서의 일들을 척척 해낸다. 게다가 케이크, 초콜릿, 과자 등의 디저트 만들기에 탁월한 능력까지 보여준다. 이런 재능 덕분에 그는 TV 디저트 경연대회에 참가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파티시에가 된 사무라이, 앞으로 그의 행보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비장하게 쇼군(장군)을 호위해야하는 사무라이가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촌마게 푸딩』은 이러한 역설구조 때문에 매우 유쾌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일단 첫 장을 넘긴 순간부터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지막장을 향하게 될 정도로 가볍고 단순하다. 게다가 작가는 독자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에둘러 복잡하게 돌려 말하지 않는 점은 오히려 이 작품의 장점이 되었다. 『촌마게 푸딩』은 읽는 이의 입장에서 상당히 깔끔하고 개운한 이야기 구조라고 할 수 있겠다.

『촌마게 푸딩』은 우리가 절대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지만 가끔은 잊고 사는 것에 대해서 조용히 일깨워 주고 있다. 에도 시대의 사무라이가 바라본 현대인들의 잘잘못을 정확히 꼬집어주는 대목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아무리 나이가 어린 아이더라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하며, 타인의 사과를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등등, 사무라이의 시선을 통해서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로 날아와서 푸딩을 만드는 사무라이 기지마 야스베는 진중함과 순박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가 전하는 촌철살인의 진실함은 그 빛이 바래지지 않고 거부감 없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달콤 쌉싸름한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촌마게 푸딩』을 펼쳐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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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
박준기 글.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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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려올 것을 왜 그리도 힘들게 올라가나요?", 목숨을 담보로 전세계의 험준한 산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에게 품는 의문이다. 산 정상에 금은보화가 묻혀있는 것도 아닌데 기어코 등정을 하는 이들이 나에게는 별나라사람처럼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를 읽고 그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는 알래스카 매킨리 등정기와 아이디타로드의 개썰매 시합에 관한,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알래스카에 대한 정보가 흔치 않았던 90년대 후반 저자는 매킨리 등반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가 알래스카 매킨리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꼭 만나보고 싶었던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묻혀 있는 산이기 때문이었다. 매킨리는 에베레스트보다는 낮지만 엄청난 강풍과 폭설, 전문 셀파의 도움 없이 올라야 하는 점 때문에 많은 산악인과 모험가들의 목숨을 수없이 앗아가는 위험한 산이라고 한다. 매킨리 등반을 마치고 알래스카에 대해서 좀 더 알고자 저자는 홀로 남아 일부러 알래스카의 오지 속 마을을 여행한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아이디타로드의 개썰매 시합은 단숨에 그를 매료시킨다. 지금은 고인이 된 아이디타로드의 개썰매를 부활시킨 조 레딩턴과 만나기 위해 꼭두새벽에 그의 집을 찾아가는가 하면, 그 이듬해에는 홀로 개썰매 시합을 취재하러 알래스카에 다시 방문하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저자의 체험을 기본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는 참으로 생생하다. 게다가 사진작가의 이력을 갖고 있는 저자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사진들을 수록하고 있다. 매킨리를 오르며 혹독하게 추운 영하의 날씨와 점점 높아지는 고도 때문에 한계에 봉착하는 저자의 모습과 따뜻한 커피를 나눠 마신 미국인 산악인들이 며칠 후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는 불행한 사건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인간이 왜 산에 오르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한다. 그저 자신들은 한치 앞을 알수 없는 인생길을 걷다가 만난 것이 ""이라고 한다. 눈앞에 ""이 있기에 오르는 것이고 등정 후에는 무언가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인생길)"은 그저 알래스카에 있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나에게 깊은 고민거리를 던져준 의미심장한 문구였다.

인간은 누구나 안개 속 같은 인생길을 걷고 있다. 알래스카의 매킨리를 등반하는 이들은 그곳이 자신의 인생길 중 한 부분이기에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나의 알래스카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민해야 할 과제를 받아 들고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를 조심스레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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