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에오스 클래식 EOS Classic 1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주헌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0년 타계한 법정스님이 사랑했던 작품 중 하나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나에게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읽을 수 있겠지, 라는 안일함과 게으름 덕분에 『월든』은 어느덧 나의 기억 속에서 슬슬 잊혀져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012년을 마무리하고 2013년을 출발하는 나의 손에는 『월든』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고 그것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였다. 때로는 세속적인 자신이 부끄러웠고, 때로는 스스로의 모습을 뒤돌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월든』은 미국인들만의 고전이 아닌, 전 세계인들의 고전이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임에 틀림없었다.


1800년대를 살다간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작가의 건강한 철학만으로 쉽고 간단하게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월든』을 읽고 있는 내내, 나는 작가 헨리가 과연 19세기 중반을 살면서 집필한 것이 확실한 지에 대한 의구심과 경이로움이 동시에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월든』 속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전혀 구태의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의 우리 모습을 보고 다녀간 것 같은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현대인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꿰뚫어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가 대단하고 신기했다. 그러하기에 지금의 독자들은 『월든』의 이야기를 놓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작가는 2년 2개월간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예나지금이나 타인과 동떨어져 스스로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고행덕분에 독자는 간접적으로나마 월든 호숫가 오두막을 상상할 수 있으며 또한 그가 수십 번도 곱씹었던 사유의 시간을 크던 작던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물론 작가의 이야기가 매우 복잡다단하지 않지만 읽는 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도 않다. 때문에 작품 초반에는 읽는 이의 인내심이 발휘되어야 중도탈락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인내심의 요구는 『월든』의 단점이 된다. 그래서 『월든』은 그 내용보다는 제목만 유명한 작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구성’이다. 『월든』은 경제, 독서, 고독, 호수, 난방, 봄 등 여러 개의 소제목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목차를 둘러보고 본인에게 흥미로운 카테고리를 선택해서 읽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게 바로 이 작품의 장점이라 말하고 싶다. 많은 독자들이 단점보다는 장점을 활용하여 『월든』을 만나보길 바란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점점 세속화될 수밖에 없는 환경과 상황 속에 처하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세속화를 반성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반성조차 잊고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른 채 잠시 덮어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또한 방치된 곪은 상처처럼 오히려 나중에는 더 큰 문제가 되어 우리를 괴롭힌다는 사실마저도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월든』은 자가당착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자성의 울림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힘 있게 이끌어가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중간 중간 느슨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이 범주에 속해 있지 않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다. 읽는 내내 독자는 작가가 풀어가는 이야기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궁금해 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이 작품이 시마다 소지의 작품 중 단연코 으뜸이라 칭하고 싶어졌다. 그럼 어떠한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이는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89년 도쿄, 노숙자로 추정되는 노인이 소비세 12엔(한화 160원) 때문에 가게 여주인을 칼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주인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노인은 경찰에 즉각 체포되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듯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숙자 노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기만 할뿐이다. 단순한 충동 살인으로 사건이 마무리될 찰나, 형사 요시키는 노인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이에 의문을 품은 요시키는 홀로 정체모를 노인에 대해서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노인이 억울하게 26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으며 평균이상의 지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욱 요시키를 놀라게 한 것은 노인이 다른 사람을 해칠 인물이 아니라는 주변인들의 확신에 찬 증언들이었다. 노인을 아는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절대 노인이 살인을 하지 않았으리라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노인은 왜 여인을 칼로 찌른 것일까? 높은 지성으로 사전에 계획한 살인인 것일까, 아니면 정말 노망난 노인의 실수로 벌어진 살인인 것일까!

형사 요시키가 노인의 정체를 파헤쳐가는 것처럼 독자 역시 그와 함께 열심히 노인의 정체를 따라잡는다. 이러한 점은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끝까지 힘 있게 독자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끊임없는 호기심을 생성시키는 시마다 소지의 문체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 구조 또한 그 원동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인이 쓴 소설을 작품 시작과 이야기 중간 중간에 배치해 놓은 점은 독자로 하여금 무한한 물음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책장이 넘어갈수록 아귀가 정확히 들어맞는 사건의 연관관계는 읽는 이를 매우 즐겁게 만든다.

시마다 소지의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단순한 추리소설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22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은 사회적 발언이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12엔의 소비세부터 당시 경제성장 위주만을 고집하는 일본사회, 재일한국인의 억울한 대우까지 능수능란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추리소설이 아닌 사회소설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매력적인 추리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으며 강한 사회적 메시지는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심도 깊은 작품으로 탈바꿈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크와 존 이야기 - 상처받은 영혼과 어리바리한 영혼이 만났을 때
로버트 윌리엄스 지음, 김현중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열네 살 루크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엄마와 이별하게 된다. 엄마의 죽음은 어린 루크에게도, 아내를 잃어버린 루크의 아빠 제럴드에게도 크나큰 상처를 가져다주었다. 루크와 아빠는 원래 살던 집을 처분하고 시골마을 듀어데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볼랜드 산꼭대기 집으로 이사한다. 매일 언덕에 앉아서 돌멩이와 바위만을 그리던 루크는 어느 날 우연히 편지를 발견한다. 그 다음날 편지를 쓴 주인공인 존이 생뚱맞게 루크의 집에 나타난다. 자신의 엄마도 돌아가셨다며, 자신이 그 편지를 썼다며 생면부지 루크를  위로하러 그의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존은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루크의 집에 찾아온다. 정체모를 타인이 자신의 일상에 들어온 이후, 루크뿐만 아니라 루크의 아빠까지도 자그마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루크와 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두 소년의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가 너무나 안타까웠으며 내내 그들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린 소년들이 받은 상처는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었다.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반항을 생각조차 못하는 존, 엄마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문 루크, 술로 세월을 보내는 루크의 아빠는 여전히 상처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이 한 장소에 모였고 그들은 서로를 통해서 치유의 과정을 지나오게 된다. 존이 산꼭대기 루크의 집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루크가 그런 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참담한 결과는 당연한 수순이었으리라. 하지만 존의 등장은 루크 부자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존 역시 루크 부자를 통해서 행복을 찾아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매우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고 있다. 감정이 폭발할 법한 부분에서도 절대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문체는 오히려 주된 이야기 전달에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펑펑 울어도 시원치 않을 것 같은 루크(화자)가 그저 남의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점은 역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기에 인상적이다.

어떤 인간이든 인간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진다. 죽음은 ‘충격’ 그 이상으로 인간에게 지독한 영향을 미치며 극도의 ‘슬픔’이라는 감정을 생성시킨다. 다행스럽게도 신은 이처럼 나약한 인간에게 ‘망각’이라는 선물을 주셨다. 인간은 신이 내린 선물 한 스푼을 복용하고 앞을 향해 한발 한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끔씩 신의 선물을 받지 못한 이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고난을 이겨나가야 하는 것일까! 『루크와 존 이야기』안에는 기로에 놓인 소년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 속으로 자신을 들여놓을 지의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밖의 독자들은  이 안타까운 소년이 과연 힘든 첫걸음을 뗄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갖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후의 문장
김애현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오후’는 ‘상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가 완전히 져버린 ‘밤’은 무(無)이지만 점점 빛을 잃어가는 ‘오후’는 당연하다는 듯 ‘상실’과 연관 짓게 되는 것이다. 『오후의 문장』, 작품의 제목만으로도 작가의 전반적인 감성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오후의 문장』은 무언가의 부재, 결핍, 상실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오후의 문장』은 「백야」, 「래퍼K」, 「빠삐루파, 빠삐루파」, 「오후의 문장」, 「K2블로그」, 「푸른 수조」, 「화이트 아웃」, 「실러캔스」, 「카리스마스탭」, 총 아홉 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묶어낸 단편집이다. 9편의 이야기에는 현실에 있을 것 같기도, 전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는 아리송한 느낌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 너무나 흰 피부를 갖고 있어 광채가 나는 인물, 동성동본사이에서 태어난 인물,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는 인물, 반신불구의 아버지를 위해 사는 인물 등 등장하는 캐릭터는 무언가의 결핍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이는 모자라고, 어떤 이는 차고 넘친다. 중요한 것은 모자람과 넘침은 결핍과 상통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의 결핍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풀어간다. 극도로 절망스럽게 혹은 어느 정도의 희망을 내포하면서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었다.

『오후의 문장』은 작가의 노력이 역력하게 눈에 보이는 작품이다. 누구나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가 활자로 표현되기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만큼 작가는 고심하고 고심해서 이야기를 빚어냈을 것이다. 또한 현실화된 활자를 만나는 기쁨은 독자로써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기존의 범주를 벗어난 평범치 않는 9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작가는 결핍된 인물들의 희망을 꼭 붙들고 있었기에 그 불편함은 알 수 없는 따뜻함으로 바뀔 수 있었다.

분량의 제한 때문에 단편은 장편보다 이야기의 여운이 깊어진다. 게다가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곧장 전해들을 수 있다. 『오후의 문장』은 마치 깜깜한 밤하늘에 홀로 반짝이는 별처럼 깊은 여운과 신인작가만의 새로움으로 빛나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의안그림자 2011-03-08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글들 중에서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내용인데, 감상 평을 보면서 꼭 보고 싶게 만들어 줍니다^^ 감각 있는 좋은 글 많이 쓰 주세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비밥416 2011-03-17 13:37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에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부끄럽네요. 그래도 좋은 기분은 감출수가..:D
 
삼.곱하기.십 - 내 인생의 발칙한 3일 프로젝트
장현웅 외 지음 / 소모(SOMO)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상당히 간단하고 단순한 질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간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해서도 나는 선뜻 이 물음에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급박한 시대의 변화 속에 살면서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순한 질문이 한없이 복잡하며 무언가를 쉽사리 결정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10가지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난 지금, 나도 나만의 3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되어 흐뭇하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3일의 시간동안 동물원으로, 외갓집으로, 완전 낯선 곳으로 떠난 사람이 있고, 특별한 요리나 공예품을 만든 사람도 있고, 그림을 그린 사람도 있다. 다양한 직업군의 10인은 다들 자신만의 3일을 창조해내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글과 사진을 모아놓은 옴니버스 에세이, 『삼.곱하기.십』은 참으로 산뜻한 작품이다. 특별한 제한이 없는 자신만의 문체와 이야기들로 엮어졌기 때문에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는 자연스레 편안해진다. 이러한 편안함을 만끽하게 해주는 작품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마치 따뜻한 봄날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글을 읽어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삼.곱하기.십』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사진작가, 라디오 프로듀서, 라디오 작가, 작곡가, 작사가, 플로리스트, 금속공예가 등의 개성강한 10인이 그 물음에 답한다. 각양각색의 10인의 대답은 천차만별이다. 자신만의 3일을 보낸 그들의 결과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따뜻한 에세이 『삼.곱하기.십』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