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라이즈
J. G. 밸러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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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히들스턴,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 <하이 라이즈>는 영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J.G. 발라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래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 구성과 내용이 워낙 독특한 작품이라서 원작 소설이 영화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구석이 많아서 놀랐다. 


영화는 로버트 랭(톰 히들스턴)이 화자인 데 반해, 소설은 로버트 랭, 리처드 와일더(루크 에반스), 앤서니 로열(제레미 아이언스)이 거의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화자다. 호화로운 초현대식 고층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나는 계층 간 갈등과 폭행, 살인, 치정 등을 그린 이 작품에서 앤서니 로열, 로버트 랭, 리처드 와일더는 각각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도하며, 각각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입장을 대변한다. 각각 다른 계층인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서 얽히고설키면서 발생하는 지옥도 내지는 수라도는 영화나 소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영화에서 로버트 랭은 리처드 와일더의 아내인 헬렌, 앤서니 로열의 정부인 샬롯과 정을 통하는 데 그친 반면, 소설에서 로버트 랭은 친누나 앨리스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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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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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세대(beat generation)'란 1920년대 대공황 시기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체험한 세대로서, 전후 50년대와 60년대에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반정부, 반체제적인 성향을 보였던 일군의 무리를 일컫는다. 비트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1935년 미국 워싱턴 주에서 태어나 1957년 비트 작가들의 본거지인 샌프란시스코로 옮겨가, 그들과 함께 미국의 반문화 운동을 주도했다. 브라우티건의 대표작 <미국의 송어낚시>를 당시 대학생들이 마치 성서처럼 늘 들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64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빅서(Big Sur)'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화자인 '제시'는 자신이 남북 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을 이끌었던 오거스터스 멜론 장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리 멜론'이라는 괴짜 남자와 함께 생활한다. 리 멜론은 남북 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이 승리했다면 자신의 삶은 지금과 180도 달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시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여자를 탐하고,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고 남을 속이거나 남의 돈을 빼앗아 생활하는 리가 탐탁지 않지만, 리와 어울리는 생활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뭘 전하고 싶었던 건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리 멜론의 허랑방탕한 생활을 비판하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리 멜론의 삶을 유유자적하다고 여기는 것 같지도 않고 본받을 만하다고 예찬하는 것 같지도 않다. 다만 저자는 "이런 삶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부와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 삶. 물질문명에 휩쓸리지 않는 삶.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발길 닿는 대로 떠도는 삶. 그런 삶을 동경할 만큼 당시 미국 사회가 혼란스럽고 각박했던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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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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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기를 바랐건만 내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믿고 읽는 김명남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기고 신형철 평론가가 드물게 칭찬한 책인데도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책보다는 저자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생애에 눈길이 갔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196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87년 소설가로 데뷔해 1996년 장편소설 <무한한 재미>로 큰 주목을 받았다. <타임>은 이 소설을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 소설' 중 하나로 선정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명성을 얻었는데도 월리스 자신은 행복하지 않았다. 월리스는 십 대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고, 술, 마리화나, 텔레비전, 섹스, 설탕 중독에 시달렸다. 스무 살 이후부터 여러 번 자살을 시도했으며 끝내 2008년 4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작가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가 남긴 책은 2.5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소설집, 3권의 산문집이 전부다. 월리스와 더불어 현대 미국 문학을 견인하는 순문학 작가로 추앙받는 조너선 프랜즌이 여전히 활발하게 집필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월리스가 남긴 3권의 산문집에 실린 총 32편의 글 중 9편을 골라 엮은 것이다. 표제작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은 저자가 <하퍼스>의 의뢰를 받아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한 경험을 담고 있다. 저자 특유의 냉소 어린 장광설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며 전체 길이가 150쪽을 넘는다(거의 책 한 권 분량이다). 이어서 카프카, 미국 영어 어법, 랍스터, 도스토옙스키, 페더러 등에 대해 쓴 길거나 짧은 글이 나온다. 문학에 조예가 깊고 영어를 몹시 잘하면 모를까, 이도 저도 아닌 나로서는 글에서 재미를 느끼기가 퍽 힘들었다. 다만 이만한 필력을 지닌 작가가 너무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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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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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면 질리도록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건, 즐겨듣는 팟캐스트 '요조, 장강명의 책 이게 뭐라고' 강원국 편을 듣고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요조, 장강명 같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입을 모아 이 책이 재미있다고, 직업 작가로서도 배울 점이 있다고 말하는데 안 읽고 배길 수가 없었다. 읽어보니 요조, 장강명이 칭찬할 만하다. 쓸모 있고 재미있다. 


저자 강원국은 28년 넘게 '글밥'을 먹었다. 증권회사 홍보실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을 쓰다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 연설 비서관으로 재직했고 최근에는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를 썼다. 이쯤 되면 누구보다 글 쓰는 데 자신이 있고 글쓰기가 무척 쉬울 것 같은데 저자에 따르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글쓰기가 귀찮고 힘들어서 각종 딴짓을 하다가 겨우 책상 앞에 앉고, 책상 앞에 앉아서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때가 많다. 


이 책은 저자가 글을 쓰기 위해, 기왕이면 더 잘 쓰기 위해 수많은 책에서 배우고, 사람에게서 배우고, 경험과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배운 노하우를 담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조언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에 하나만 꼽는다면 나에겐 이 대목이다. 


1990년 신입사원 연수 때, 첫 시간에 인사부장이 '개발과 계발'의 차이를 물었다. 대답을 못하자 '보전과 보존', '부분과 부문', '운영과 운용', '파장과 파문', '회고와 회상'의 차이를 연달아 물었다. 아무도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그분이 일갈했다. "나는 농고 나온 사람입니다. 여러분 중 대다수는 일류대를 나왔습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155쪽) 


그날 이후 저자는 단어마다 어떤 고유의 뉘앙스가 있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강의, 강연, 강좌, 강습, 강론, 강독의 차이는 무엇일까. 유머, 위트, 해학, 기지, 재치, 익살, 풍자, 조크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런 차이를 알면 글 쓸 때 상황에 맞는 단어를 구사하게 된다. 단어의 의미와 뉘앙스 차이를 가지고 글을 쓸 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자존감은 키우고 자존심은 죽여라', '우리는 왜 부자보다 자산가가 되려고 할까' 등이다. 


저자는 글을 쓰기에 앞서 세 가지를 한다. "우선, 내가 써야 할 글의 키워드가 들어 있는 칼럼을 한두 편 읽는다. 그래도 생각이 안 나면 동영상 강의를 한두 편 듣는다. 그렇게 해도 생각이 안 나면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된 책의 목차를 몇 개 본다." 매일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면 무의식으로도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하루 3줄 이상 쓰는 게 목표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안경을 쓰면 자기도 모르게 '글쓰기 모드'로 바뀐다. 이 밖에도 꼭꼭 씹어먹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조언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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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 - 미친 듯이 웃긴 북유럽 탐방기
마이클 부스 지음, 김경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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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만 않다면 북유럽에서 살고 싶다.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무민의 고향 핀란드도 좋겠고, 복지 혜택이 좋다는 스웨덴도 좋겠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영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의 책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들>에 따르면, 북유럽이 여느 나라들에 비해 복지 혜택이 좋고 자연환경이 뛰어난 건 맞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천국'은 아니다. 


이 책은 저자가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을 아우르는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지역에 10년 넘게 살면서 경험하거나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나라들은 저자가 나고 자란 영국에 비하면 복지 혜택도 훨씬 좋고 자연환경도 훨씬 뛰어나다. 덴마크 사람들은 애국심이 대단하고,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열이 매우 높으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노르웨이 사람들은 부유하고, 스웨덴 사람들은 근면하고 성실하다. 노르웨이가 '북유럽의 두바이'라고 불릴 만큼 부유한 것은 1961년부터 북해유전을 개발한 덕분이다. 그전까지 노르웨이를 은근히 무시하고 비하했던 스웨덴, 덴마크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는 지금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5개국이 최근 들어서는 영 신통치가 않다. 정치적으로는 외국인, 이민자, 이슬람교 신자, 성소수자, 여성을 차별하는 극우파가 득세하고,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부 격차가 발생하고 복지 혜택이 줄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5개국 또한 한국, 일본, 중국과 마찬가지로 서로 침략하고 침략당한 역사가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나 갈등이 있는 것처럼,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사이에도 분쟁이나 갈등이 있다.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조롱하거나 비하하고, 서로 대놓고 또는 은근히 견주고 시기한다. 


띠지에 적힌 '미친 듯이 웃긴다. 큰 소리로 웃었다. 엄청나게 웃긴다.'라는 문구에는 속은 느낌이 들지만('미친 듯이' 웃기지는 않았다. '큰 소리로' 웃은 적도 없다. '엄청나게' 웃기길 바랐건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보다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북유럽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깨고 보다 냉철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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