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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마니아 3
쿠제 가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토리마니아>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이 만화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다. 작가가 왜 하필 배경을 가상의 '토리마니아'로 설정했는지, 인물들이 날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매력도 못 느꼈다.
그런데 2권을 읽고 3권을 읽으면서 점점 이 만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이제는 다음 권이 나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릴 정도다!). 겉보기에는 판타지를 가미한 코믹 만화 같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만화는 만화의 형식을 빌린 고도의 풍자 내지는 비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비유하자면 <세인트 영멘>에서 웃음기를 살짝 덜고 진지함과 독함을 더했달까.
<토리마니아>는 일본인 소녀 아카리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날개를 가진 '새 인간'이 사는 나라 '토리마니아'로 유학을 가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다. 토리마니아 사람들은 날개를 가진 채 태어나고 날 수도 있지만 어릴 때 날개를 접는 법을 배우면서 점점 날지 않게 되고 나는 법을 잊게 된다.


날개를 접고 나서 나는 법만 잊는 게 아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그림 그리는 재주를 스스로 하찮게 여기고 구직 활동에 매달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을 잃고 상처받는 게 두려워 고백하기도 전에 사랑을 포기한다. 그렇게 다들 자신의 본성과 개성을 숨기거나 포기한 채 평범하고 재미없는 삶을 택한다. 눈치챘겠지만 이는 개개인이 고유한 능력을 펼쳐보기도 전에 억압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유다.
구직 활동 중인 미대생 '츠루모토 비앙코'가 대표적이다. 츠루모토는 미대 동기들은 물론 교수님도 인정할 만큼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장래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혀 구직 활동에 매달린다. 하지만 취업과 거리가 먼 미대 출신인 데다가 성격이 모나서 구직 활동은 번번이 실패한다.
실패로 인한 상처 때문인지 츠루모토는 입만 열면 타인은 물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염세적인 말만 늘어놓는다(=독설왕). 이번 3권에서 츠루모토가 남긴 명언은 "일하고 싶진 않지만 일하지 않는 건 절대 싫어요" ㅎㅎㅎㅎ 공감은 하는데 이런 말에 공감한다는 사실이 참 암담하다...


'오우노 세룰리아'는 뛰어난 외모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홀리는 연애의 고수이지만 정작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은 얻지 못하는 사랑의 하수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좋다는 직업 다 마다하고 우편배달부가 될 만큼 순정파이면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 한 번 고백하지 못하는 소심남이다.
그런 오우노가 보기에 일부 남성들이 연애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연애를 하지 못하는 건 연애 상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는 성가셔, 여자는 제멋대로야, 여자는 글러먹었어... 이런 식으로 평가를 내리고 잣대를 들이밀면 이 세상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물론 남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작가의 성별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르겠지만 여성의 심리에 대해서도 제법 잘 아는 것 같다. 아카리와 우즈하시, 스즈메도와 친구 2인의 고기 파티 장면을 보면 만화나 게임 속 2차원 남성 캐릭터에 빠지는 여성의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현실 남성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2차원 남성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고, 2차원 남성에게 몰입할수록 현실 남성은 더욱 좋아할 수 없게 되는 무한 루프(남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요즘 인기 있는 여자 아이돌 대부분이 '우리 반에 있었다면 2번째 레벨이었을' 용모 레벨이라는 지적도 재미있다. 그림의 떡 수준의 외모를 아이돌보다는 손이 닿을 듯한 외모가 좋지만, 그렇다고 아주 평범한 외모는 안 되고 학급에서 2번째 수준은 되어야 한다니. 어렵다 어려워 ㅎㅎㅎㅎ
인물들 간에 교차하는 연애 감정과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도 매력적이다. 내가 이 만화에 이렇게 푹 빠질 줄이야! 어서 다음 권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