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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왕의 방패 - 제166회 나오키 상 수상작 ㅣ 시대물이 이렇게 재미있을 리가 없어! 1
이마무라 쇼고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11월
평점 :

일본을 여행한 적은 여러 번 있지만 일본의 성(城)을 관심 있게 본 적은 없었다. 유명해서 또는 일행 중에 가보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서 가더라도 속으로는 관람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그랬던 내가, 앞으로는 일본에 갈 때마다 그 도시의 유명한 성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 있다. 2022년 나오키상 수상작 이마무라 쇼고의 <새왕의 방패>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 전국 시대. 오다 (노부나가) 군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교스케는 우연히 당대의 새왕(塞王)으로 불리는 도비타야 겐사이를 만난다. 첫 만남에 겐사이에게 재능을 간파당한 교스케는 겐사이의 양자로 입적해 본격적으로 성 쌓기 기술을 배운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며 평화의 시기가 이어졌지만, 도요토미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는 소문이 퍼지며 다시 전국에 전운이 감돈다. 일본 최고의 성 쌓기 기술자로 명성이 자자한 겐사이와 후계자 교스케는 위기를 느낀 각지의 다이묘들로부터 그 어떤 공격에도 최고의 방어를 펼칠 수 있는 성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으며 바빠진다.
이 소설의 장점은 일본의 전국 시대를 성 쌓기 장인의 관점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무수히 많지만,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 같은 패자(霸者)나 버금가는 지위를 누린 다이묘 또는 장군 등의 시점에서 서술된 작품이 대부분이다. 반면 이 소설은 전국 시대의 한복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성 쌓기 장인이라는 일반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이야기가 친숙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진다. 고아이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교스케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 친구와 절차탁마하며 성장하고 라이벌과 숙명의 대결을 벌이는 전개는 소년 만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성(城)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하는 점도 좋다. 앞에 서술한 것처럼 이제까지 나는 일본의 성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도, 대단한 인물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도, 문외한인 내 눈에는 무엇이 아름답거나 대단한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성이 있기 전에 성을 쌓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어떤 기술을 궁리하고 어떤 노력을 들여서 어떤 마음으로 성을 쌓았는지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이 권력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나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고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는 점도 감동적이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지만 전쟁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는 점도 좋다. 일단 교스케부터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로서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고, 성 쌓기 또한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기술로서 대하고 있다. 소설에서 가장 모범적인 유형의 성주로 그려지는 교고쿠 다카쓰구 역시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한이 있더라도 싸움을 피하려고 하는 성격이고, 전쟁이 일어나도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는 인물이다. 같은 장인이라도 총(철포)이나 칼처럼 사람을 해치고 죽일 수도 있는 무기를 만드는 장인은 한 수 아래로 그린 점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전쟁이 권력자들에게는 단순한 힘겨루기일지 몰라도 민중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보여준 점도 좋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는 내란뿐 아니라 조선 출병(임진왜란, 정유재란)처럼 외국을 대상으로 한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 소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기가 배경인 만큼 조선 출병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그중에 규슈 지방에서 조선 출병에 반대하는 농민들이 일으킨 '우메키타 잇키의 난'에 대한 대목이 있다. 이런 난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고 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몰랐던 역사를 소설로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규슈 히고 국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났다. 세상에서 말하는 우메키타 잇키의 난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1차 조선 출병 당시 우메키타 구니카네라는 토호 출신의 무장이 사시키 성을 점거했다. 우메키타가 사는 지역에서는 전년도에 쌀을 수확하지 못하여 많은 농민이 굶어죽었다. 그런 곤경에 처했음에도 조선 출병이 결정되자 쌀을 더 징발해야 했다. 우메키타는 농민의 고통을 보다 못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사실 우메키타도 전국을 평정한 대군을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조금이라도 오래 저항함으로써 히데요시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조선 출병을 체념하게 하려고 했을 뿐. (17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