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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6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5/0129/pimg_7796361644586082.jpg)
<미들마치>.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몰랐다. 빅토리아 시대의 로맨스 소설이라면 <오만과 편견> 같은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남녀의 연애와 결혼이 주가 되는 소설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패스하려다가,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소설 <북과 남>을 읽고 영국의 로맨스 소설은 로맨스만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생각나 구입을 결정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읽기를 잘했다. 1,2권 합쳐서 1416쪽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분량이지만, 등장인물이 다양하고 줄거리가 흥미진진해서 걱정보다는 금방 읽었다. (종이책 읽기가 힘들다면 전자책으로 구입해 TTS 기능으로 읽는 걸 추천한다.)
이 소설에는 크게 세 커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커플은 도러시아 브룩과 윌 래디슬로다. 도러시아는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동생 실리아와 함께 삼촌인 브룩 씨의 집에서 자랐다. 외모 꾸미기를 좋아하고 적당한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목표인 실리아와 달리, 도러시아는 가능한 한 많은 공부를 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한다. 에드워드 캐소본 목사를 보았을 때 도러시아는 그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소본 목사와 결혼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도러시아는 아무리 존경하는 남자라도 결혼을 하고 한 집에서 살게 되면 더는 존경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설상가상으로 도러시아는 캐소본과 함께 로마로 떠난 신혼여행에서 캐소본과 친척인 윌 래디슬로를 만나고, 늙고 지루한 캐소본과 달리 젊고 열정적인 래디슬로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도러시아는 이미 결혼한 몸인 데다가 래디슬로는 캐소본과 친척이다. 이혼 자체도 어렵지만, 이혼을 한다고 해도 래디슬로와 맺어지기는 어려울 터. 도러시아는 래디슬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이후의 상황은 도러시아의 뜻과 반대로 흘러간다.
두 번째 커플은 터시어스 리드게이트와 로저먼드 빈시다. 리드게이트는 타 지역 출신의 젊은 의사로, 부와 명예보다는 의학 자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마을 최고 미녀인 로저먼드는 리드게이트를 보자마자 자신의 신랑감으로 점찍는데,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그가 귀족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는 데다가 타 지역 출신인 그가 자신을 마을에서 데리고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결국 두 사람은 결혼하는데, 로저먼드의 짐작과 달리 리드게이트는 귀족 출신도 아니고 이 마을을 떠날 생각도 없다. 실망한 로저먼드는 돈을 펑펑 써대고, 리드게이트는 점점 더 위기에 몰린다.
세 번째 커플은 프레드 빈시와 메리 가스다. 로저먼드의 오빠인 프레드는 부모의 뜻대로 목사가 되기를 거부하고 흥청망청 살다가 메리와의 결혼을 위해 새 사람이 된다. 이 커플은 앞의 두 커플에 비해 비중이 적고, 소설 후반의 전개를 보면 이 커플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불스트로드 씨다. 마을의 은행장 불스트로드 씨는 오랫동안 마을의 정치,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존경 받았는데, 사실 그는 부정한 수단을 사용해 부자가 되었고 이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여럿 나오기 때문에 의외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도러시아인데, 그의 대단한 점은 여자는 교육 받을 필요가 없고 얌전히 지내다가 남편 만나서 애 낳고 살면 그만이라는 당대의 사회적 규범을 받아들이지 않고, 결혼을 통해서라도 교육의 기회를 붙잡으려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는 등 사회 활동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작가 조지 엘리엇이 도러시아 같은 여성이었다고 하니 더욱 감동적이다.) 남성 캐릭터 중에서는 리드게이트가 도러시아 못지 않게 지적이고 정의감도 투철한데, 그런 그도 결혼 상대를 잘못 고른 바람에 인생이 꼬인 걸 보면 '결혼은 미친짓'이라는 노랫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