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인트 (양장)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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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은 청소년만 읽어야 할까? 청소년 문학 중에는 청소년만 읽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 아주 많다. 이희영의 <페인트>도 그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양육이란 무엇이며 어떤 양육자가 바람직한 양육자인지를 묻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양육의 대상인 청소년보다도 양육의 주체가 되는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에서 센터를 설립해 부모 대신 아이를 키워주는 미래 사회. 제누는 바로 이 센터에서 자란 열일곱 살 소년이다. 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열세 살이 되는 해부터 자신을 자녀로 입양하기 위해 방문한 예비 부모를 면접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 대체로 '페어런츠 인터뷰(parent's interview)', 줄여서 '페인트'라고 불리는 면접을 몇 번 정도 하고 나면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자를 선택해 센터에서 나가는데, 제누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4년이 넘도록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센터의 가디(가디언)들은 제누에게 아무나 적당한 사람을 고르라고 독촉하는데, 제누는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는 부모가 나타날 때까지 고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제누의 관심을 끄는 후보자가 나타난다. 가디들이 보기에는 생활 방식이 지나치게 자유롭고 안정적인 직업도 없고 몸에 문신까지 있어서 탈락시키려고 했던 후보자인데, 웬일로 제누가 이 부부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 제누는 이 부부야말로 자신이 바라는 부모의 모습을 갖추었다며 처음으로 인터뷰에 열의를 보인다. 대체 제누는 이 부부의 어떤 면에 끌린 걸까. 힌트를 주자면 제누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의 조건'이란 '좋은 사람의 조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아직 열일곱 살인데도 웬만한 어른들보다 사람 보는 눈이 성숙한 제누가 참 믿음직하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 보면 좋은 부모도 될 수 있을 텐데, 어떤 부모들은 좋은 부모는 되고 싶어 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부모 없음'과 '자식 없음'이 흠이 되는 사회를 그렸는데, 만약 '부모 없음'과 '자식 없음'이 흠이 되지 않는 사회가 실현된다고 해도 여전히 부모가 되고 싶어 하거나 부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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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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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님은 군상극을 참 잘 쓰시는 것 같다. <피프티 피플>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등장인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엮으시는 것 같다. <시선으로부터>의 경우 주인공 심시선의 가계도에 등장하는 인물만 스무 명이다. 여기에 각 인물이 다양한 사연으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을 더하면 서른 명은 족히 이 소설에 나오지 않을까 싶다(세어보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다). 


이야기는 심시선이라는 여성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후손들이 하와이에서 제사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된다. 심시선이 타계한 지 10년 만에 첫 제사를 하는 이유는 심시선이 제사를 비롯한 일체의 유교적 허례허식을 거부했기 때문이고, 다른 곳도 아닌 하와이에서 제사를 하는 이유는 심시선이 젊을 때 '사진 신부'로 하와이에 팔려갔기 때문이다. 심시선의 후손 열네 명은 각자의 이유로 제사에 참가해 각자의 방식으로 제사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후손들은 서로에게 품었던 해묵은 오해나 갈등을 해소하기도 하고, 가까운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민을 풀 열쇠를 스스로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제사라면 나도 찬성이다!) 


원래 주인공의 사'후'에 일어난 일을 그린 소설이기도 하지만, 심시선이 죽기 전에 경험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대략적으로 추측 가능한 정도로만 서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퀄'에 해당하는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더욱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과감히 생략한 것일 수도 있지만, 심시선과 민애방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자세히 나오지 않은 건 아쉬웠다. 이 소설에서 최대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마티아스 마우어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민애방인데 이렇게 적게 서술되다니(ㅠㅠ). 작가님이 다른 작품에서 더 길게 이야기를 푸시려고 일부러 이만큼만 이야기를 들려주신 건 아닐까 하고 기대를 섞어 짐작해본다. 


이 소설은 챕터의 시작 부분에 심시선이 생전에 발표한 책이나 글, 인터뷰 기사 등의 일부가 일종의 발췌문처럼 삽입되어 있다. 심시선이 허구의 인물이므로 심시선과 관련된 글 모두 허구이지만, 이 모든 글이 실제로 존재하는(혹은 존재했던) 작가의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내용이 무척 좋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심시선처럼 타계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가 쓴 글이 널리 읽히고 여러 사람에게 회자되는 여성 작가가 (적어도 남성 작가만큼은) 많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그리고 나로선) 심시선과 비슷한 입지를 가진 여성 작가로 떠오르는 이름이 많지 않다(박완서, 박경리 정도). 더 많은 '시선'이 필요하다. 



"여자도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공간을 크게 크게 쓰고 누가 뭐라든 해결하는 건 남들한테 맡겨버려요. 문제 해결이 직업인 사람들이 따로 있잖습니까?" 뻔뻔스럽게, 배려해주지 말고 일을 키우세요." (269쪽)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 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 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289쪽) 


"나의 계보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그것이 김동인이나 이상에게 있지 않고 김명순이나 나혜석에게 있음을 깨닫는 몇 년이었다. 만약 혹독한 지난 세기를 누볐던 여성 예술가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일가를 이루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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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홍차 1 (리커버판) - 오늘도 살며시, 티테이블
김줄 그림, 최예선 글 / 모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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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 가는 그림체와 공감 가는 이야기, 여기에 홍차에 관한 지식까지 얻을 수 있어서 홍차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2권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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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홍차 1 (리커버판) - 오늘도 살며시, 티테이블
김줄 그림, 최예선 글 / 모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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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홍차를 즐겨 마신다. 홍차가 지닌 다양한 맛과 향, 빛깔의 세계를 알아갈수록 나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아 즐겁다. <오늘도 홍차>는 요즘의 나처럼 우연히 홍차의 세계를 만나 전에는 상상해본 적 없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주인공인 만화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 구석에 작은 홍차 가게가 문을 연다. 가게의 주인은 남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홍마담(내 눈에는 김서형 배우를 닮은 듯 보인다). 손님을 보면 그의 기분을 알아맞히고 그에게 꼭 필요한 홍차를 내오는 능력자다. 


소유, 미우, 아란은 홍마담의 홍차 가게에서 만난 사이다. 20대 호텔리어인 소유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외국어에도 능통하지만, 지금보다 더 성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힘들 때가 많다. 30대 프리랜서 영상 번역가인 미우 역시 무탈하게 커리어를 이어왔지만, 아직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해서 고충이 많다. 중2 딸을 둔 주부 아란은 자신의 일을 가지고 싶지만 경력이 단절되어 새로운 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은 우연히 홍마담의 홍차 가게에 들렀다가 자신에게 꼭 맞는 홍차를 만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홍차 가게의 단골이 된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여성이고, 공교롭게도 나와 나이나 상황 등이 비슷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30대 프리랜서 영상 번역가인 미우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직업이나 처지도 비슷해서 마치 내 일상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에피소드마다 다르질링, 아쌈, 모모우롱, 얼그레이 등 다양한 종류의 홍차에 관한 지식이 나오고, 맛있는 밀크티 만드는 법이나 홈메이드 아이스티 만드는 법 등도 나온다. 올해 2권이 나왔다는데 이 책도 읽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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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것도 습관입니다 -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8가지 기술
아리카와 마유미 지음, 송소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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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업계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분의 업무 처리 비결에 관한 영상을 봤다. 그분의 비법이 (적어도 나에게는) 좀 신선했는데, 절대로 '투 두 리스트(To-do list)'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 '투 두 리스트'를 작성해 하나씩 지우면서 일하다 보면 일처리가 빨라지고 성취감도 있지만,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과 나중에 처리해야 하는 일을 구분하기 힘들다. 할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처리해서 나중에 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것도 비법이라고 덧붙인 것이 기억난다. 


자기계발서 분야의 스테디셀러 <서른에서 멈추는 여자, 서른부터 성장하는 여자>의 저자 아리카와 마유미의 시간 관리 기술을 담은 책 <바쁜 것도 습관입니다>에도 비슷한 조언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바쁘다', '할 일이 많다', '시간이 없다' 같은 말을 달고 사는 것은 왜일까. 실제로 바빠서,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많이 쓰고 중요한 일에는 시간을 덜 쓰는 비효율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저자의 시간 관리 기술의 대원칙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우선 자신에게 '중요한 시간'부터 확보한다. 둘째, 하고 있는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바꾼다. 앞서 말한 업계 선배는 자신의 집중력이 가장 높은 오전 시간대에 가장 중요한 업무부터 처리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집중력이 가장 낮아지는 오후 시간대에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업무를 처리한다. 영수증 처리나 서류 정리 같은 자잘한 업무는 한 번에 몰아서 하겠다고 미루지 말고 매일 조금씩 해두면 나중에 긴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거나 일을 좋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은 만족도가 높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하는 시간은 만족도가 낮다. 그러니 되도록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좋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할 때는 좋아하는 것의 요소를 넣어보면 어떨까. 가령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할 때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향초를 켜거나 좋아하는 옷을 입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조언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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