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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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쉰을 잘 모른다. 루쉰의 책 중에 읽어본 건 <아Q정전>이 유일한데, 그나마도 중고등학교 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루쉰, 길 없는 대지>를 읽게 된 건, 저자 중 한 사람인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기 때문이다. <아Q정전>이라는 괴작을 쓴 작가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인물일까. 반쯤 의심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니 과연 루쉰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일단 그 시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이동거리가 상당하다. 루쉰은 1881년 중국 저장성 사오싱에서 태어나 난징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02년에는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도쿄와 센다이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귀국한 후에는 중국의 베이징, 샤먼, 광저우, 상하이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이 책은 고미숙을 비롯해 공부공동체의 학인(學人)으로 인연을 맺은 여섯 명의 필자가 루쉰이 직접 살았던 장소들을 방문해 각 시기별 루쉰의 삶과 사상의 흔적을 좇은 일종의 기행문의 형식을 띈다. 루쉰이 한 곳에 머물러 살지 않은 덕분이다. 


일본 유학은 루쉰의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 도착한 루쉰은 변발부터 잘랐는데, 구한말 조선인들이 단발령에 반발한 것처럼 당시 중국인들도 변발을 자르는 것을 거부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루쉰이 변발을 자르자 중국인 유학생 사회 안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루쉰은 변발이 만주족의 풍속이라는 이유로 거부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중국 문화의 하나로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느냐며 중국인의 이중성에 치를 떨었다. 


루쉰의 수난은 센다이 의학 전문학교(현재 도호쿠 의과 대학) 시절에도 계속되었다. 루쉰은 이 학교에서 후지노 곤쿠로라는 평생의 은사를 만났다. 후지노는 중국인 유학생인 루쉰이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루쉰의 노트를 확인하고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틀린 문법을 바로잡아주곤 했다. 그러자 일본 학생들은 '후지노 선생이 루쉰에게 미리 시험문제를 찍어주었다'라는 루머를 퍼뜨렸고, 루쉰은 '1등도 아니고 고작 68등인 나를 시기하느냐'며 학교를 그만뒀다. 당시 일본에는 중국인 유학생뿐 아니라 조선인 유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어떤 핍박을 당했을까. 루쉰보다 더한 일을 겪지 않았을까. 


문예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문예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단 말인가. 루쉰은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단,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쓰지 않는다. 동시에 자신이 쓰는 글을 믿지 않는다. 루쉰의 글이 한없이 단순명쾌한 듯하면서도 버거운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자기부정과 자기환멸. 그러나 니체 말대로, 대체 자기를 환멸해 본 적 없는 인간이 어떻게 자기를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225~6쪽) 


의학 공부를 그만두고 귀국한 루쉰은 이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외국 도서를 번역하면서 생계를 잇다가,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쉰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창작 활동이 아니라 '문예 혁명'이었다. 루쉰에게 글은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정신에 파문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어둡고 막막한 현실 때문에 절망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루쉰은 무지몽매한 대중을 깨우치기 위한 글쓰기, 이른바 계몽적 글쓰기는 지양했다. 이것이 루쉰이 대단한 작가로 손꼽히는 점이다. 


루쉰은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고 바로 세워야 할 대상을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았다. 루쉰은 자기 자신의 우매한 생각이나 언행의 불일치, 과거의 습속을 생각 없이 따라 하거나 게으르게 사는 태도 등을 스스로 고백하고 반성하는 글쓰기를 즐겨 했다. 그래서 루쉰의 글은 무섭다. 잽을 날리는 데 남을 때리지 않고 자기 얼굴을 때리니 무서울 수밖에. 그러나 전통이든 습속이든 사회이든 문명이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이든 간에, 뭐든 무너뜨리고 부수고 없애야 다시 만들 수 있고 바로 세울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루쉰은 과연 대단한 작가다. 


문명은 부유함도 대중정치도 아니다. 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다. 사람이 서는 것[立人], 그것이야말로 문명이고 혁명이다! (231쪽) 


혁명은 부와 권력을 쟁취하는 권력투쟁이 아니라 "사람이 서는 것[立人]"이라는 문장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혁명을 통해 기득권층이 독차지하고 있는 부와 권력이 원래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고 대중에게 분배되면 좋겠지만, 혁명의 과실(果實)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뜻과 생각을 확립하고, 같은 뜻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대하고, 연대를 통해 원하는 세상의 모습을 스스로 만드는 것. 그것이 혁명의 진정한 목표이고 성과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대부분의 혁명은 권력투쟁에 그쳤다. 부디 2016년 촛불 혁명의 결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적폐 세력의 일부인 판검사들, 소신 없이 산 공무원들, 억압받은 언론인들 모두 돈(특히 삼성)과 권력에 기대지 말고 자기 두 발로 섰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나는 판검사도 공무원도 언론인도 아니고 기댈 돈도 권력도 없지만 아무튼...).


사람이 사람을 먹는 기괴한 이야기나 쓸 줄 아는 작가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대단한 글을 많이 남겼을 줄이야. 루쉰의 저작이라고는 <아Q정전>밖에 읽어보지 못한 까닭에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계기로 앞으로 루쉰의 저작을 많이 만나봐야겠다. 고미숙의 말대로 중국을 알려면 루쉰을 읽고 알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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