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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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은 서경식 선생이 같은 제목으로 <한겨레>에 2년 간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저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을 추렸다고 해서 일반적인 형식과 내용의 독서 에세이를 예상했건만, 읽어보니 저자가 이제까지 걸어온 인생 여정을 알 수 있을 뿐더러 그 길 위에서 고민하고 성찰한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았고 읽을 수도 없었다.


 

저자는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코리안 디아스포라'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학문에 정진하던 저자는 1971년에 두 형이 한국에서 체포, 수감되는 일을 겪으면서 '높고 두꺼운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 루쉰을 읽고 말의 힘, 글의 힘을 다시 한번 믿게 되었고,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고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대항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라고 자각했다. 그 결과 현재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과 글을 전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나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는 것을 비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희생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있다. 루쉰 따위는 읽지 않으며, 설령 읽는다 해도 그 부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51)



그러나 전보다 경제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훨씬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인데도 저자의 비관은 그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 조지 오웰, 이브라힘 수스, 요한 하위징아, 미셸 드 몽테뉴, 가토 슈이치, 잉게 숄 등 동서양의 수많은 저자들이 남긴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저항의 몸부림이 담긴 책을 소개하면서, 한편으로 진지한 반성 없이 과오를 되풀이할 조짐을 보이는 일본 정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을 비관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비관하는 것이 그렇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바로잡을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는 저자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다. 저자가 생애 동안 온몸으로 읽고 배우고 쓰고 느낀 것들을 과연 후세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전해줄 것인가. 저자의 진지한 고뇌가 내 마음에도 사무친다.

 


생각건대, 이것이 시의 힘이다. 즉 승산이 있든 없든 그것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나카노 시게하루는 "서정시 형태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이라는 중국의 시인을 만나 그렇게 감동을 받았다. (중략) 나도 젊은 시절 루쉰의 어두운 말에서 절망과 같은 모습을 한 '희망'을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p.56)



다행인 것은 저자와 독자인 나 모두 글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역사상 밝은 곳에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어딘가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온갖 계급과 인종과 당파와 조직 등등에 속한 힘 없는 사람들은 말 대신 글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소통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을 우리는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본래 역할일 것이다. 일찍이 루쉰의 책을 읽고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시의 힘에 눈을 뜬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자신의 손에 전해진 항거와 자유의 증거를 세상에 알리고 후대에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힘없고 어리석은 독자인 나도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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