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보통 열차 - 청춘의 터널, 그 끝자락을 달리다
오지은 글.사진 / 북노마드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이십대. 당연하게 대학에 갔다. 삿포로에 살아보기도 했었고, 취재 번역일도 했었다. 또 두 개의 음반을 낸 뮤지션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수완이 좋아 하고 싶은 일 다 하는 그런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사실 돌아가는 아이였다. 늦된 아이였다. 밴드를 일찍 시작했을지는 몰라도, 정작 내 목소리에 맞는 곡을 쓰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이후로도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은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또 빨리 가는 척하며 멀리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p.260)

 

 

뮤지션 오지은의 이름은 전부터 많이 들었지만 인디 음악을 즐겨 듣는 편이 아니라서 호감을 가질 만큼 알지는 못했는데,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우연히 듣고부터 소탈한 매력에 반해 트위터도 팔로우하고 그녀가 나온 방송을 찾아 들을 정도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반한 계기가 바로 이 책 <홋카이도 보통열차>이다. 도서관에서 일본 여행 책을 찾다가 홋카이도 기차 여행이라는 컨셉이 마음에 들어 책을 펼쳐 보았는데, 오 마이 갓. 지은이가 뮤지션 오지은이었다. 고려대 출신에 번역도 하고 연애에 결혼까지 잘 한 능력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남편이 스윗소로우 멤버라고) 책까지 쓴 작가였을 줄이야. 서둘러 책을 읽어보니 20대 초반에 일본 삿포로에 거주한 경험도 있어 일본어도 일상 회화 이상은 한다고 한다. (인디 뮤지션들 중 다수가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이 책에는 1981년생인 저자가 서른이 되던 2010년에 돌연 떠난 홋카이도 기차 여행기가 담겨 있다. 뮤지션으로서 바쁜 일상에 치여 지내며 몸도 마음도 지쳐 있던 저자는 한때 살았던 삿포로가 있는 일본 북부의 섬, 홋카이도에서 기왕이면 보통열차를 타고 호젓하게 섬을 한 바퀴 돌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 출국 직전까지 일을 하다가 부랴부랴 떠난 통에 짐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반팔 차림으로 다니느라 추워 죽는 줄 알았고, 의도치 않은 실수에, 갑자기 엄습한 외로움과 서러움에 속이 상한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따뜻하게 맞이해 준 홋카이도 사람들과의 만남과 여행지에서 발견한 소소한 행복과 재미, 삿포로에서 열심히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과의 재회를 통해 그녀가 몸도 마음도 완전히 힐링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힐링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디저트에 라면, 스시, 에키벤 등등 당장이라도 홋카이도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먹방까지! 아, 떠나고 싶다~

 


그러고보니 나는 십대 때 저자와 비슷한 모습의 서른 살을 꿈꾸었던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든 간에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며, 여행과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고, 일본에도 여러 번 간 적 있는 여유로운 성인 여성의 모습을 말이다. 글자만 보면 지금의 나와 서른 살 때 그녀의 모습이 썩 다르지 않은데, 왜 그녀가 더 멋지고 부러운 걸까? 아직 스물 아홉이라서 그런가? 아님 짝이 없어서? ㅎㅎ 서른 살이 되는 내년,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저자가 아이디어를 준 홋카이도 보통열차 여행도 썩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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