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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럴 땐 이렇게 - 분야별, 상황별, 주제별 영어 번역 강의
조원미 지음 / 이다새(부키) / 2013년 6월
평점 :
나는 번역에 관심이 많다.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번역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있지만,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고, 직업적으로도 필요해서 자연스럽게 번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대학교 때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번역이 외국어를 해석하는 것 이상의 고차원적인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지금도 보면 번역을 투잡이나 부업 정도로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는데, 번역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다. 번역 자체도 힘든 작업이거니와, 요즘은 독자들의 외국어 실력이 많이 높아져서 유명 번역가들도 오역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일을 투잡이나 부업으로 해보겠다? 어림없는 소리다.
각설하고, 번역에 관심이 많고 직업적으로도 필요하기 때문에 번역에 대한 책을 한번쯤 진득하게 공부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중에 있는 책을 살펴보았더니 어째 번역에 대한 책이라고는 통번역대학원에서 쓰는 것으로 보이는 정식 교재나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소개서 또는 번역가의 생활에 대해 쓴 에세이 정도가 고작이었다. 나는 번역가가 될 것도 아니니 통번역대학원 교재는 볼 엄두가 안 났고, 그렇다고 그냥 영어 해석이나 독해 교재를 보자니 이건 번역이 아니다 싶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책이 바로 <번역, 이럴 땐 이렇게>다. 고려대-맥콰리대 통번역 프로그램 교과과정 연구 전임을 지내고 있는 전문 번역가 조원미가 쓴 이 책은 나같은 초보자들도 알기 쉽게 구체적인 번역 기술과 사례가 정리되어 있고,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설명, 번역을 잘하는 방법 등 다양한 읽을거리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섹션은 주로 문장 차원에서 좋은 번역을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좋은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모국어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어 통역사, 번역가로 활동한 바 있는 작가 요네하라 마리 역시 비슷한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외국어(또는 모국어)로는 다양한 표현이 있을 수 있고 문맥에 따라 쓰는 표현이 따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번역가(또는 통역사)는 적확한 표현을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섹션은 보다 구체적인 번역 사례로서 정치, 경제, 문학, 과학 등의 장문을 번역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과 배경지식, 번역 강의, 학생번역, 관련설명, 수정번역 순으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독학으로 공부하는 학습자에게도 유용할 것 같다. 이 부분은 첫번째 섹션을 충실하게 학습한 다음에 공부하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세번째 섹션은 부록으로, 구체적인 번역에 대한 질문, 번역하면서 느낄 수 있는 어려움,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궁금증 등이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번역기의 등장으로 인해 번역가 수요가 줄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 인상적이었다. ('번역기 때문에 번역물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시대에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구글 번역기 등이 있긴 하지만 번역기라는 기계는 문장의 구조를 바꿀 수도 없고, 특히 다의어를 그 문장에 맞는 적절한 뜻을 찾아 번역할 수 없습니다. (중략)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에 번역기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p.260) 번역을 그저 기술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번역기의 번역이나 번역가의 번역이나 비슷비슷하게 보이겠지만, 번역을 또 하나의 창작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 둘이 결코 같아 보일 수 없다. 번역가 역시 이 사실에 유념하여 번역기가 대체할 수 없는 경지의, 완벽한 번역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