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제목이 특이한 데다가(감자파이도 아니고 감자'껍질'파이라니, 대체 무슨 맛일까?), 여러 사람들로부터 추천까지 받은터라 언젠가 꼭 읽고 싶었는데, 미루고 미루다보니 그 '언젠가'가 지금이 되고야 말았다.

 

미루고 미루다 기어코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바로 '이동진의 빨간책방'. 바로 18회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편 중 '책, 임자를 만나다' 코너에서 소개된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다. 안 그래도 읽고 싶었는데 빨간책방에 소개가 되고, 게다가 내가 좋아라하는 김중혁 작가님이 '강추'를 하시니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이 책을 구했다.
 
소설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전쟁 중에 필명으로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작가 줄리엣. 그녀는 우연한 일로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가로지르는 채널 해협에 위치한 건지 섬 주민들과 편지 교류를 하게 된다. 편지를 쓰는 주민들의 대부분은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조금은 독특하고 우스운 이름을 가진 모임의 회원들로, 줄리엣에게 북클럽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정을 쌓는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그런가. 책에 대한 이야기,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누구는 어떤 책을 어떻게 만났고, 어떤 책을 사랑했고, 지금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이런 이야기가 친구의 연애담보다도,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라마 줄거리보다 재미있으면 20대 여성으로서 실격일까? 책을 사랑하고, 그런 이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읽는 내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저자 매리 앤 섀퍼의 삶이 소설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감정을 실어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평생 책을 즐겨 읽고 문학회 활동까지 열심히 한, 열정적인 독서팬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무려!!!) 칠십대의 나이에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책이 바로 이 소설이다. 이 소설은 그녀의 창작혼이 담긴 작품이면서, 독서팬으로서 문학작품과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일생을 총정리한 자서전인 셈. 아아, 나도 죽기 전에 이런 멋진 책을, 나를 키우고 살린 작가들과 작품들에게 바칠 수 있다면...!

 

하지만 이 소설이 그저 책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긴긴 전쟁 기간 동안 독일군 치하에서 갖은 핍박과 수모를 당하며 살아야 했던 영국 건지 섬 주민들이, 그런 삶 속에서도 책에서 희망을 찾고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이야기는 그 어떤 전쟁 회고록보다도 생생하고 감동적이었다.

 

마침 어제 재일교포 정의신이 극본을 쓰고 쿠사나기 츠요시, 차승원 등 한일 배우들이 출연한 <나에게 불의 전차를>이라는 연극을 봤다. 연극에는 일제 치하의 조선에서,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우정을 쌓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겹게 그려져 있었다. 마치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건지섬 주민들과 독일군 몇 명이 어느 나라 사람이며, 어느 말을 쓴다는 구분 없이 인간으로서 사랑을 하고 정을 베풀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이란 뭘까, 국가란 뭘까? 삶이란? 사랑이란? 우정이란? 책은, 물론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도 있지만, 결국 삶을 살기 위한 도구이다. 국가 역시 인간이 더 잘 살기 위해 만든 수단에 불과하다. 책을 읽느라 삶을 잊고, 국가라는 굴레가 사랑과 우정을 방해한다면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너무나 간단하다.

 

험난한 현실을 잊기 위해 책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현실을 슬기롭게 살아낼 답을 구하며 더욱 끈덕지게, 건강하게 살았던 멋진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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