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모녀 도쿄헤매記 - 번역가 엄마와 여고생 딸의 투닥투닥 도쿄여행기
권남희 지음 / 사월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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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번역가 '권남희'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권남희 님은 <무라카미 라디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밤의 피크닉>, <다카페 일기>, <카모메 식당> 등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일본소설, 에세이 등을 번역한 21년차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로,

최근에는 <번역은 내 운명>, <번역에 살고 죽고> 등의 책을 직접 쓰기도 했다.

 

작년 여름에 <번역에 살고 죽고>라는 재미있게 읽어서

권남희 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인터넷 서점에서 바로 구입했다.

책 소개를 보니 저자가 고등학생 딸 '정하'와 함께 한 도쿄 여행기라고.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가 쓴 도쿄 여행기라는 점도 매력적이지만,

역자 후기마다 정하의 이름을 쓸 정도로 딸 사랑이 끔찍한 저자인지라 두 모녀의 여행기가 적잖이 궁금했다.


사실 도쿄는 한국에서 멀지 않고 분위기도 서울과 비슷해서 여행지로서 그리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게다가 도쿄에 대한 가이드북, 여행기만 해도 수십, 아니 수백 권이 나와있어서

'도쿄여행기'라는 타이틀을 단 책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새로운 정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다시 한번 도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일본어를 할 줄 알고, 일본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 사람이

일본 여행을 할 때의 마음이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한국 여행자가 도쿄에서 가는 곳, 보는 것은 비슷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단 일정이 3년 전 내가 짰던 도쿄 여행 일정과 칠십 퍼센트 정도 겹쳤다.

도쿄타워, 롯폰기힐스, 하라주쿠, 시부야, 신주쿠, 우에노 같은 곳은 워낙 유명한 곳이라서 그렇다 쳐도,

칸다 고서점 거리라든가 키노쿠니야 서점 같은 곳에 들른 점까지 비슷할 줄이야...!

게다가 인터넷이나 책에서 사진을 보고 큰 기대를 품고 간 곳이 생각만큼 멋지지 않아서 실망하고,

가이드북에 없는 곳에 우연히 들어섰다가 의외로 멋진 경험을 했을 때의 기뻐하는 모습이라니...!

3년 전 도쿄에서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게 떠올라 신기했다.

가는 곳, 보는 것도 비슷하지만 느끼는 것도 비슷한 모양이다.

 

또 하나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

저자의 딸 정하는 여행 초반부터 지루해하고 짜증을 많이 냈다.

(만약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야자 빼고 일본 여행을 시켜준다고 했다면 나는 큰절을 올렸을 것 같은데...)

요즘 청소년 중에 이런 아이가 있을까 싶을만큼 알뜰하고 성실한 아이인 건 알겠지만,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인지 모처럼만의 여행을 백 퍼센트 즐기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반면 저자는 일본에서 산 경험도 있고, 일본문학 번역을 하면서 알게 된 지식도 있어서인지

발길이 닫는 장소마다, 눈길이 머무는 장면마다 애틋해하고 감격했다.

연못(산시로 연못) 하나를 보면서도 나쓰메 소세키와 오에 겐자부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같은 이름들을,

와세다대에서는 그 대학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하라주쿠에서는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을,

메이지신궁에서는 훗날 정하의 아버지가 되는 남자를 처음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는 저자를 보며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여행의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다시 도쿄 여행을 하게 된다면 잘 알려진 곳 말고 외곽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가보고 싶다.

저자는 다음 여행을 어떤 식으로 계획하고 있을까?

벌써부터 다음 여행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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